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영 Aug 02. 2022

춤추면서 불행하기 있기 없기

공연장에 들어섰다. 다른 날보다 로비가 북적였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새롭게 보이는 풍경이다. 그 날은 4명의 무용가 작품이 차례로 오르는 공연이었다. 객석에 앉았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무용계 내에서 꽤나 인지도가 있는 무용가들이였고 그에 따라 스승은 물론 수많은 후배, 제자가 공연장을 찾은 덕에 북적임 이 더했다. 여기저기 사제지간, 선후배지간, 인맥확대용 인사가 오가느라 시끌시끌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보니 사실 객석은 거의 대부분 무용계 사람들로 채워진 샘이다.

“교수님 제가 무릎담요를 좀 가져다 드릴까요?” 

옆자리의 누군가가 누군가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하필 귀에 꽂혔다. 그러고 보니 그 전에 뭘 빌리려면 무슨 절차가 있다고 안내했던 소리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 교수님이 그러라고 대답을 하니 이번엔 그 주변에 동행한 이들에게 “교수님도 가져다 드릴까요?”를 재차 묻고는 나가 무릎담요를 구해왔다.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공연장에 무릎담요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나는 무릎담요가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면서 교수님께 자발적 충성을 하는 그녀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녀는 기쁘게 기꺼이 그 일을 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몸을 사용하는 장르는 다 그렇겠지만 부상의 위험과 그 외 다양한 이유로 엄격한 서열중심의 문화가 몸에 배어있다.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순종과 충성을 하게 되는 묘한 노예근성을 장착하게 된다. 나 역시 선생님이 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고 선생님 눈에 들고 싶었고 선생님께 애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무용이 좋다.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특히 무용하는 사람과 선생님들을 좋아한다. 어려움에 처했던 ⌜몸⌟지 편집장을 맡았던 것도 그저 대학시절 보던 잡지가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 싫어서였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무용계에 남아있는 것도 하던 것이라서 하는 거라기보다는 좋아서이다. 그런데 20년도 더 전의 악습들이 지금까지 남아있거나 때로 더 나빠졌거나 기형적으로 자라 있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될 때는 너무나 안타깝고 분노가 일어난다. 무용만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라고. 물론이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무용은 몸으로 하는 거니까.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 거니까. 몸으로 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건 더 나쁘니까 안 그랬으면 좋겠을 뿐이다. 자기 선생님한테 담요 한 장 갖다 준 게 뭐 대수냐고 할 수 있다. 맞다. 다만 우려가 되는 것이다. 기쁘고 기꺼이 하는 그 행동이 혹시 자기 착각은 아닌지, 그것마저 교육된 것은 아닌지, 강요인줄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있는 것인지 노파심이 든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데 그런 것 때문에 자신을 잘못 평가하거나 때로 좌절하거나 낙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부디 바라기는, 주제 넘는 바람일 수 있지만, 내가 전에 그랬으니까, 내가 아팠고 고민했고 넘어졌고 좌절했으니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부디 누군가의 소모품이 되지 말기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하루하루 살아내기를, 누군가를 만족시켰는지 그러지 못했는지로 좌절하지 말기를, 누구보다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비교하지 말고 작은 것을 이뤄내고, 혹은 이루지 못했더라도 최선을 다한 스스로를 칭찬하기를, 스스로에게 괜찮은지 물어보고 스스로를 토닥일 수 있기를, 그렇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기쁨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제발 춤을 추면서 불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나의 춤추는 후배들이.

이전 07화 하루에 몇 번 포옹하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