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변화의 시점이 있었다.
그때마다 지각은 흔들려 빨리 나침반을 들고 길을 찾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지금 있는 곳은 곧 허물어지거나 틀어질 테니 다른 인연을 찾든, 공간을 찾든 변화를 하라고 파도를 쳤다.
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안전지대에서 안주하고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귀찮은 선택을 할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런 시험이 들어왔다.
각자의 나잇대별로 혹은 각자의 가족사의 변곡점 별로 내 모든 걸 뒤흔들 만큼 변화를 하라는 파도가 한 번씩 찾아온다. 남들이 보기엔 별일 아닌 아주 흔하고 흔한 일이지만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왔을 때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오롯이 홀로 독대하듯이 그런 시점이 온다. 그 변곡점을 넘은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지대가 그때서야 펼쳐진다.
그런데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렇게 변화해야 할 때 꼭 가까운 주위에서 가장 안전한 말로 협박을 한다.
혹은 협박처럼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하지 못하게 한다. 혹은 빈정거리거나 거들먹거리거나 내가 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당사자인 나보다 더 걱정하는 말투로 오만가지의 불안한 레퍼토리와 부정적인 결과를 늘어놓는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말을 들으란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기에는 사실 많이 자라 버렸다. 나는 변화의 기회가 올 때마다 주위 사람에게 허락을 구하다 변하지 않는 선택을 늘 했었다. 돌아보니 그렇게 잃은 기회에 대해 진심으로 대면해 본 적이 있다. 그걸 알아챈 순간 느낀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분노를 많이 느낀 지점과 슬픔을 느낀 지점이 제때 성장하지 못해서 오는 게 어마어마하게 컸던 것이다. 그 고통이 큰 만큼 그걸 격렬하게 막은 대상에 대한 증오와 거부감도 함께 올라왔던 것도 사실이다.
자기가 온전히 자기답게 길을 걷는다는 것은 내가 태어난 이유와 같은데 그 걸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국 매번 안전지대만을 요구하고 계속해서 주저앉히려 드는 고루한 성격 탓에 주위에 모든 사람은 그 사람들의 바람대로 변화하지 못한 만큼의 스토리로 지어내며 얘기하고 더 이상 깊은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곁에는 자기가 만들어둔 시야로 완벽하게 구연되었다. 사람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설득될 사람인지 그저 자기 생각만 고수하는 사람인지 말이다.
그렇게 전부 하지 말라는 것을 벗어난 사람만이 제각각 자기 살길을 찾았고 훨씬 제 모습에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다. 자기 호흡을 찾고 자기만의 관계 바운더리를 찾으면서 말이다.
이제는 내 차례가 온 것이다. 친절하게 웃을 수는 있지만 나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고 잘 도전해 볼 예정이다.
비단 내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뭔가를 시도하거나 변화를 하고 싶은 나만의 신호를 들은 사람은 그때야말로 자기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어느 정도 결과가 나왔을 때 그때는 그렇게 말렸던 사람들도 마치 자기는 그런 적 없었던 것처럼 숟가락을 얹을 것이다. 그때야 말로 내가 그 숟가락을 편하게 바라볼 만큼 넉넉한 내가 되길 기도해 본다. 물론 그 숟가락 얹을 사람은 그 소식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