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피해의식

by 미니작업실

피해의식은 사람을 참 무력하게 만드는 관점이다.

나는 종종 피해의식에 넘어가 수많은 청승맞은 스토리를 지어낸다.

그것이 사실인 양, 정말 내가 피할 수 없었음을 강조하는 스토리로 지어낸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의 무지, 나의 지혜롭지 못함을 먼저 봐야 한다.

나는 내 잘못을 인정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남탓하기를 즐긴다.

피해의식은 남탓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게 한다.

피해의식은 내가 그 상태로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안심시킨다.

어찌 보면 자애로운 느낌도 든다.


피해자는 적어도 가해자보다는 동정을 받는 입장이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 어리숙해도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 가까운 행동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나는 얼마 전 깊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었다.

아무리 양보해도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이다.

인정할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이 그런 태도, 그런 말을 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이다.

잔인한 상대를 탓하면 탓할수록 속 시원할 것 같은 내 마음은 그다지 자유롭지도 않았다.


잠시나마 마주 보는 누군가가 내 편을 들어 '맞아~ 맞아~' 거들어주면 그게 참 달콤했다.

더운 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순간은 달콤하지만 금방 달달함이 주는 끈적함이 더위를 더 느끼게 해 준다. 맥주도 마시는 순간은 시원해서 물보다 더 청량하게 느끼지만 곧 본질적인 갈증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일이 터지면 곧장 시시비비를 가르며 내가 잘못한 부분을 가렸다.

엄밀히 말해 내가 죄지은 부분이 없기를 바라며.


누가 봐도 잘잘못이 뚜렷한 사건들이 있다. 그런 건 뉴스로도 나와서 공개적으로 사람들의 시시비비를 기다린다. 그렇지만 삶에서 조용히 스며드는 피해를 주고받은 사건들은 제각각 스스로 치유해야 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피해의식에 젖어 지난 한 주, 아니 2주 가까이 일에 파묻혀 안 들리는 척 저 구석에 숨겨두고 보지 않았다.

그 일이 안 일어난 척도 해보고 아프지만 꿀떡 삼킨다는 심정으로 그냥 묵묵히 지낸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 탓도 참 많이 해봤다. 고민을 호소하는 마음으로 상담을 해봐도 시원하지 않았다.


결국 내 목에 남은 것은 피해의식이라는 가시였다.

피해의식은 내 힘을 더 무력하게 만든다. 내가 주체적으로 상황을 바꾸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때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는 시야를 흐린다.

내 목에 걸린 피해의식을 발견하자 오히려 가슴이 시원했다.

상대를 탓하는 마음에는 사과를 받을 수도 없고 상대를 바꿀 수 없다는 막연하고 답답한 상황이 전부인데 차라리 내 피해의식을 보는 마음에는 바꿀 수 있다는 후련한 마음이 든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마음 한 조각에만 집중하는 게 훨씬 건설적으로 느껴졌다.


여전히 그 일이 해결됐다거나 사과를 받거나 그럴 일은 없다. 적어도 내 마음에서는 가벼워졌다.

그만큼 그 일에 쏟는 마음이 감정적이지 않아진 것을 느낀다. 바짝 말라버린 풀을 마주하는 것처럼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바라봐진다. 어느 순간 이 피해의식이라는 가시마저 사라져 의식조차 못하게 되길. 그렇게 후련한 날을 은근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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