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1 - 자기사랑, 나를 살펴보다
여기서 정의하는 '사랑'이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말한다. 쉬운 표현으로 양육을 하는 태도로 부터 사랑이라는 무형의 개념을 답습하게 된다. 부모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그 부모가 자신을 대한 대우를 자신의 가치로 믿어버린 경우가 많다. 이건 부모 모두가 그런 경우는 물론 한쪽 부모만 역기능 가족의 성향이면 안 좋은 쪽을 상처로 가져가기 쉽다. 다른 한쪽 부모의 사랑을 받아도 늘 어딘가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진다면 이때 역기능 가족의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처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부모님의 몸을 빌려 태어났지만 엄연히 이 세상에 소중한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양육'을 알아차리기까지 빠르면 10대, 늦으면 30대쯤 자각하게 된다. 어느 선까지 내가 더 정서적 지원을 받았다면 내 삶은 좀 더 나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경제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이 글에선 그 부분은 다루지 않겠다.)
이쯤 읽으면서 “내 얘기는 아닌데? 나 정도면 사랑받고 있는데?” 자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 돈의 그릇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자신이 받았으면 하는 사랑의 크기와 배려의 범위가 다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어쩌다 받은 엑기스 같은 사랑 한 방울로도 자기 삶에서 수많은 색으로 표현해 내지만 어떤 사람은 한 트럭으로 사랑을 쏟아부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다로운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 간에 사랑의 양과 기질에 따라 그 사랑의 종류가 다르다. 그래서 100프로 잘하는 부모도 100프로 잘하는 자식도 없게 된다.
그럼 이쯤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증거보다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증거를 얘기해볼까 한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신의 장점만을 뽑아 특히 예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단점을 뽑아 제거하려는데 투쟁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두 가지 면을 모두 지켜보고 온전히 함께 살아가는 데에서 출발한다. 자기 사랑의 기준이 비뚤어지면 남을 신화화 하거나 혹은 깎아내림으로써 자신감을 얻고 싶어 안달하게 된다. 남들에게 아주 관대하고 철저히 잘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참 혹독하게 다그칠 수도 있다. 모든 감정을 억압하고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이 많고 자신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뚝뚝 떨어지는 걸 경험한다.
사랑이 부족하면 남이 참 부럽다. 부러운 사람, 잘난 사람, 좋은 환경을 가진 사람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비교, 분별의 감옥에 가둔다. 이 습관이 너무 오랫동안 자리 잡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그냥 하루하루 자신도 남도 미워하는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세상이라는 비교로 일그러진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을 때, 자신에게 장단점을 보는 그 시선만큼 남들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댄다. 나에게만 적용되는 옳고 그르다는 선입견을 정의감이라는 이름으로 숨겨 자신의 열등감이 순간순간 폭발한다. 열등감이 폭발하는 이유는 그 부분이 상처이고 건드리면 부끄러워 지기 때문이다. 이때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면 열등한 자신을 인정하는 모습일까봐 다소 강해보이는 화내는 모습으로 우쭐해하지만 근본적으로 얻을 수 있는 해소점이 없다.
자신이 부족한 것 같아 무엇인가 배우려고 해도 자신이 못하는 모습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고 그만둬버린다. 이때 부모님이 양육하는 태도가 계속 불안을 자극하는 성향이 있다면 모든 뇌의 활동은 자신을 보호해야하는 데 에너지를 다 써버리기에 다른 활동에 호기심을 갖지 못한다. 당연히 집중력있게 끝낼 능력을 연습할 기회가 줄어든다. 이때 불안으로 인해 잃어버리게 되는 '호기심, 집중력, 끈기'는 사회적 활동에서도 약점으로 이어지게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작은 실천조차 점차 하지 않게 된다. 성장도 멈추고 배움도 멈추게 된다. 이런 자신을 나도 보기 싫고 남들에게 보이기도 싫어서 점점 혼자 지내게 된다. 이쯤 되면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보다 자신을 서서히 사회적으로 죽이고 감추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우울증,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절차이다. 이 글을 읽고 불편하고 찔리고 답답한 감정이 든다면 너무 다행이다. 그 감정을 오롯이 느껴주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누가 누구에게 탓하려는 게 아니다. 나의 어린시절에 대한 연민, 부모님 세대에서 오는 한계에 대한 연민을 충분히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자.
처음부터 슬픈 얘기로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크고 작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미워한다. 그렇지만 그 모든 여정을 거친 당신이 아직 다행히 살아있고 또 남은 하루가 있다는 것부터 시작하는 단계를 가지면 된다. 그리고 나를 100프로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51프로 사랑하는 행위까지가 내가 제안하는 자기 사랑의 기준이다. 그 1프로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저울은 기울고 자신을 향한 시야가 바뀔 수 있다.
‘진실, 모든 사람은 내가 나를 사랑한 만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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