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 첨삭지도!
이제 가장 중요한 파트 1 챕터를 앞에서 다 읽었다면 파트 2에서는 자기 사랑의 바른 안목을 갖기 위해 잘못된 편견을 내려놓아보자. 이때 중요한 부분은 알아차리고 느껴주어야 내려놓을 수 있다. 사랑을 받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자꾸 감정을 흘려버리고 내려놓기를 강조할까?
정답, 우리 본체는 이미 사랑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명확한 진리는 없다. 우리는 온전한 사랑 그 자체인데 우리가 태어나 자라면서 생각과 분별하는 안목으로 인해 괜찮은 나, 사랑으로 가득 찬 나를 자꾸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과정을 매우 힘들다고 느낀다. 그래서 계속해서 오류를 끄집어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온전히 확장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인드 셋은 다음과 같다.
➀사랑받기를 포기하자
➁누가 도와줘야만 하는 피해자 의식을 버리자
➂자기중심적 연민을 버리자
이 세 가지는 자기 사랑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랑과 가장 비슷한 형태로 착각하는 개념이다.
첫 번째, 사랑받기를 포기하자.
누군가로부터 받는 사랑의 표현이나 친절을 거부하란 말이 아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부모님이 주지 않은 여분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망하며 살 수밖에 없다. 부모님이 꼭 채워줬어야 할 아주 개인적인 욕구의 빈틈이 있다. 그렇지만 그 부모님도 그 위의 부모님도 알음알음 알게 된 사랑을 대를 이어받게 된다. 이때 부모님이 인지한 사랑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이상의 배고픈 사랑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 한구석이 구멍이 난 것처럼 아플 수도 있고 처절하게 슬픔이 밀려올 수도 있다. 내가 그토록 바랬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뼈아픈 진실이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줄 수는 없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주 표면적으로 읽히거나 난 괜찮은 것 같다고 느낀다면 무의식적으로 사랑받지 않았을 리 없다고 느끼거나 사랑의 오해를 다 풀어내 성장해 가벼워진 상태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동안이라도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부모님의 한계, 나의 한계를 인정하자. 부모님이 줄 수 있는 사랑의 양과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양이 다름을 인정하자. 이 글이 끌리고 이 글이 저절로 읽힌다면 내가 차마 인정할 수 없는 아픔일 수 있다.
이때 아주 희망적인 부분은 우리가 자라면서 나의 자아를 키우게 되는데 이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랑 본성은 일치할 수도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아에 물을 주고 자라게 하지만 이때 왜곡된 사랑을 받은 만큼 본성과 다른 틈이 생기는 것이다. 그만큼 나의 본성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것 자체가 사랑이자 내가 찾는 길, 자체이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해 보는 것이다. 불가능한 애착의 사랑을 받으려는 생각을 버리면 오히려 주체적이고 건설적인 행동이 일어난다. 칼자루를 내가 쥐게 된다. 밖에서 사랑을 얻으려는 마음은 칼자루를 상대방에게 밖으로 돌려 아무나 잡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놀이터에서 넘어진 아이는 봐주는 어른이 없다면 툭툭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걸어간다. 아주 많이 혼자 일어나 본 아이는 넘어진 게 특별하지 않다. 그리고 저절로 기특한 마음이 드는 너무나 씩씩한 모습일 뿐이다. 사랑의 결핍에도 생존력이 있는 사람은 또 다른 성장을 할 수 있다. 결핍된 사랑은 살면서 불편하기는 해도 당신이 느끼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기도 했지만 더 진실에 가까운 말은 이미 사랑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자기 머릿속에 그려진 작은 사랑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는 더 큰 사랑을 느껴보자. 사랑이라는 말이 어색하면 자신의 존재감을 느껴보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지켜봤던 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언제나 지켜봐 주는 나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해 보자. 이만큼 잘 살아왔음에 감사하자. 기특하지 않은가?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본성을 따라온 또 하나의 빛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어떤 빛이냐 물으면 눈을 감고 자신의 아우라를 느껴보라. 그 느낌을 알아차린 그 자리, 그 자리가 나의 본성이다. 자아가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리광 많고 아직 부족한 게 투성이인 것 같지만 그만큼 가능성도 앞으로의 변화도 기대되는 나 자신이다. 내가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수많은 사랑의 손길과 눈길로 살아있음에 하루하루 감사를 찾아보자.
이때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좋지만 어리광처럼 일방적으로 받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은근히 있다. 덫을 놓고 인정 및 사랑을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이때 자신이 유아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면 사랑 비스끄레한 관심받기를 포기하자.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으면 사랑이라는 개념은 단어로서 스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저절로 알게 된다.
두 번째, 누가 도와줘야만 하는 피해자마인드를 버리기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에너지뱀파이어를 끌어들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다. 내가 피해자 마인드에 젖어있다면 나의 에너지는 계속해서 피해의식에 필터링된 언어로 얘기하게 된다. 피해자마인드는 내 것을 빼앗아갔다는 피해망상에 빠진 다른 사람을 끌어들인다. 바로 상대가 가진 게 자기가 받았어야 할 잃어버린 것이라고 우기고 빼앗으려 하는 당당한 가해자이다. 사랑에 고픈 두 사람은 상대가 가지고 있는 사랑받은 느낌을 빼앗으려 하거나 자신에게도 없는 사랑을 비슷하게 만들어 주면서 온 힘을 다해 헌신한다. 그렇게 하면 잃어버린 사랑을 채울 줄 알고 말이다. 이쯤 되면 위의 글과 이어지게 된다.
자신의 사랑을 알아야 알맞게 대처할 수 있다. 사랑이 가득할수록 자신을 지키는 힘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타인의 공격을 금방 알아채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 진실된 사랑은 자신을 지혜롭게 이끌기 때문이다.
사기꾼들 중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정말 이런 사람이 있었나 싶게 능력자인 분, 또 하나는 이렇게 딱한 사람이 있나 싶게 불쌍한 분이 있다. 사기꾼은 선망하는 마음으로 유혹하기도 하지만 안쓰러운 마음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 둘 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나 스스로 발 벗고 돕지 않아야 한다. 도움을 주되 내가 하는 행동이 나의 우월감 섞인 동정인지 진심으로 돕는 이타심인지 돌아봐야 한다. 사랑의 본질은 크고 작은 게 없지만 더 넓고 사려 깊은 사랑이란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그 사람이 일어날 힘이 있다는 걸 알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다. 그 시선으로도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 나 역시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도와주고 도움 주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어린 아이나 노약자를 돕는 게 아니라 겉은 멀쩡한 어른이 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도움을 달라는 사람이 있다. 어른이 돼 알게 된 것은 그 어떤 것도 이유 없이 버선발로 다가와 공짜로 척척 도와주는 관계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돕는 사람은 도움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은 내가 준 도움은 꼭 그 사람에게서만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쉽게 내 도움을 받기만 원하는 사람들은 기본 상식이 없는 사람이란 것도 알아야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이익이 어느 정도 있을 때 만남이 이어가진다.
자신은 약하고 누군가로부터 피해만 받았다고 주장하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건설적이게 능동적인 행동이 없다. 좀 더 성숙하고 유연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떻게 대처했고 그 이후 어떻게 성장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다. 성장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곁에 둬도 되지만 자기 말고 모두가 적이었던 사람은 당신도 그 사람에게서 거리를 두자. 그건 당신의 몫이 아니라 당사자가 돌아봐야 하는 게 맞다. 더 이상 자신의 피해의식에 감정이입하며 상대를 보지 말자. 피해자의식 안에는 보이지 않는 극단적인 기준선이 있다. 세상을 너무 불쌍하게 보는 마음, 너무 대단한 사람만 있다는 마음이 있다. 내 안에 붙잡고 있는 불쌍한 마음이 불쌍한 사람을 자기인 양 도와주고 자기처럼 기뻐해주길 기대한다. 사실은 자기 결핍을 상대에게 투사해 도운 것이라 도움 받은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나에게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을 대단한 사람을 만들어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거나 더 심하면 맹신하게 돼버리고 관계에 중독된다.
모든 건강한 재료는 자극적이지 않고 섬섬하다는 특징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피해의식이 농도가 옅어져 섬섬해질 때까지 자신의 피해망상을 대면하고 놓아주자.
이번에는 은근히 어려운 부분이다. 앞에 나온 피해의식 내용과 조금 비슷하다.
세 번째, 자기중심적 연민을 버리자
앞서서 글을 잘 읽었다면 불안정 애착으로 힘든 자신을 알아차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연민이 생길 수도 있다. 속상해하며 충분히 감정을 받아주라고 했다. 이때 또 부모님에 대해서도 연민이 생겨 '불쌍한' 부모님과 '불쌍한' 자신을 만들기도 한다. 이제는 피해의식에 찌들어있는 불쌍한 나를 눈물로 보내버리자. 누군가 나를 불쌍하게만 생각한다고 생각해 보자.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이 시선을 즐긴다면 위에 1, 2를 천천히 반복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자기를 불쌍하게 여기는 만큼 부모님도 불쌍하게 보는 이가 많다. 이게 효성스러운 마음일 수도 있지만 매번 불쌍한 부모님을 쥐고 버리지 않는다면 그 부모님은 내 왜곡된 투사에 정말로 불쌍해져 버리고 말 것이다. 이제 불쌍한 자신과 불쌍한 부모님을 이제 보내버리자. 살면서 인생에 굴곡 없고 매끄러운 사람이 있을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수치스러운 기억이 없는 집이 있을까? 실수 한번 없기 힘들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한 번씩 이불 킥 할 만큼 자신의 잘못인 게 명백한 경우가 참 많다. 아무리 유명한 재벌가라고 해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들 가슴속 어딘가 불편함을 지니고 살고 있다. 피해를 보았든 내가 피해를 줬든 그런 경우도 일정기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옛 기억은 털어버리고 자신을 건강하게 새로운 추억을 쌓아보자.
지금을 살아내자.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 단순하고 사소한 것일 수 있다. 나를 최고로 만들기보다 나답게 살아가기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보자.
오히려 일상적이고 아주 평범한 추억을 쌓아보는 게 좋다. 내가 아주 어린아이로 돌아갔다고 상상해 보자. 그때 그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얼굴을 보고 자주 웃어주고 장난도 쳐주고 또 식사도 챙겨준다. 또 계절에 맞춰 옷도 적절히 입혀준다. 어릴 때 꼭 갖고 싶었던 예쁜 신발, 나이키 신발을 사 신어봐도 된다. 심심할까 책도 읽어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기도 해 보자.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평범한 루틴을 알려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식사를 챙기고 이를 닦는다. 그런 루틴을 다양하게 적용해 보자. 이 아이(내가)가 앞으로 어떤 말썽을 부릴지, 어떤 재미난 모습을 보일지 알 수 없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응원해 준다. 그렇게 남과의 비교, 자기비판이 심한 사람들은 특별한 묘수를 개발하려 하지 말고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 한번 자신의 일상에 여행자의 마음, 관찰자의 눈을 세팅하자. 그렇게 진짜 부모가 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누구보다 관대하고 유연한 태도로 자신을 사랑으로 대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