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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자의 첫 도시락 싸기

보온 도시락의 의미

by 사이의 글

보온 도시락을 하나 샀다. 학창시절에 쓰던 원통형 보온 도시락. 쿠킹 호일로 구획을 나누어 반찬을 담아야 했던, 학창 시절의 그 도시락이다. 충동적으로 보온 도시락을 주문한 것은, 최근 취나물을 무쳤기 때문이었다. (6장 참고) 나물, 연근조림, 멸치볶음, 장조림, 계란물에 부친 햄, 그리고 비엔나 소시지. 육식파인 아들에게 어떻게든 채소를 먹이고 싶었던 어머니는 나물 반찬을 꼭 넣곤 했다. 고작 나물 하나 무치면서 어렸을 때 먹던 단골 도시락 반찬을 떠올린 것을 보면, 어머니의 의도는 근 삼십 년이란 세월을 무사히 통과한 듯하다. 혼을 빼놓는 사회 생활에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중년의 아들이 당신의 돌봄을 받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여기저기 고장나기 시작하는 몸과 마음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꼈을 때, 어린 시절 어머니의 방식을 떠올린 것이다. 마음의 고향.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도시락 반찬으로 취나물과 함께 멸치볶음을 챙기기로 했다. 멸치볶음은 아내가 알려준 방식대로 했다. 아내의 멸치볶음은 바삭하고 고소한 것이 매력이다.


식용유 한 컵을 팬에 붓고 달군다. 멸치 하나를 떨어뜨려 금방 떠오르면 충분히 달궈진 것이다. 이제 멸치를 전부 붓고 색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잘 저어가며 튀겨준다. 튀기는 게 포인트다. 멸치는 따로 건져내고, 이제 맛술과 설탕을 깨끗한 팬에 적당히 놓은 뒤 살짝 끓인다. 시럽을 만드는 작업이다. 시럽이 끓으면 불을 끄고 멸치, 견과류, 크랜베리 등을 넣고 섞어 준다. 불을 끄고 한 김 식으면 물엿을 조금 넣고 골고루 버무린다. 다행이다. 첫 시도였지만 스승의 가르침 덕분에 맛있게 되었다.


곰취를 손질한 뒤 살짝 데친 후 국간장, 다진 마늘,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좀 해봤다고 이제 제법 속도가 난다. 햄과 소시지는 대충 자르고 칼집을 내어 팬에 구웠다. 밥은 따끈하게 지었고, 김은 따로 챙겼다. 준비한 쿠킹 호일을 반찬 통에 깔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반찬을 담을 차례. 나물과 멸치볶음을 넣고, 김치는 국물이 다른 반찬으로 넘어가지 않게 더 신경 써서 담았다. 뚜껑을 닫고 도시락을 가방에 넣을 때는 묘한 뿌듯함이 몰려왔다. 꼭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혹여 반찬이 뒤죽박죽 될까봐, 출근길 도시락 가방은 신주단지가 되었다. 어렸을 때는 흔들면서 걷거나, 신발 주머니와 함께 발로 차기도 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된다는 건 뒷수습부터 걱정하는 소심한 인간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전 10시, 책상 아래에 놓인 도시락 가방을 자꾸 힐끔거렸다. 아. 까먹고 싶다. 아니. 평소에는 이 시간에 뭐 먹고 싶지도 않았잖아. 어떻게 삼십 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니. 기분 탓인지 도시락이 있으니 배도 금방 고파지는 것 같았다. 참아야 한다. 도시락을 단출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일찍 먹으면 금방 배가 꺼질 테다. 정오가 되자마자 도시락을 펼쳤다. 뚜껑을 여는 순간, 아차 싶었다. 김칫국물이 쿠킹 호일을 넘어간 것. 취나물과 멸치볶음에 김칫국물이 묻었다. 어차피 이럴 거 뭐 그리 조심스럽게 가져왔나.

마음 편히 도시락을 차고 다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더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믿어.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은 힘겨웠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임용시험 실패, 연애와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 녹록치 않은 아르바이트 생활. 모든 것이 효율과 경쟁으로 돌아가는 도시 시스템은 타지 생활을 하는 청춘에게 쉬이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혜원은 고향에 내려와서 스스로 농사를 짓고 계절을 따라 음식도 만들며 점차 자신을 회복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고향에서 스스로를 돌본 이 기억이 앞으로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혜원처럼 돌아갈 고향이 남아있기는 할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현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라고 진단한다. 현대인은 기술 문명의 발달로 인해 자신의 고향을 잃었다는 것. 그런 탓에 인간은 불안과 공허, 권태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하이데거에게 고향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가 뿌리내리는 근원적인 장소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래 '고향'에 거주해야 하는 자라고 그는 정의했다. 그러니 '귀향'은 삶의 본질과 자신의 뿌리를 다시 찾는 과정을 의미하는 게 자연스럽다.


도시락은 나에게 귀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부모님의 돌봄을 받던 학창 시절은 내게 고향이었던 모양이다. 청년을 지나 중년이 되어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학창 시절 어머니가 싸주시던 도시락이 생각난 것을 보면 말이다. 매일 스스로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 도시락에 담는다면, 혜원이 회복했던 그런 믿음을 나 역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도시락을 다 비우고, 쿠킹 호일도 정리를 했다. 국물이 넘쳐 김치 냄새가 밴 나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조심한다고 해도 국물이 넘치듯,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하고 조심하며 살지는 않아야겠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잘 돌보았다는 마음만 생각하고 살면 그만이지. 지금의 기억은 앞으로 내가 흔들릴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작은 고향이 되어줄 테니까.


아마 내일도 뚜껑을 열면 김칫국물이 옆 반찬에 넘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늘 완벽하진 않아도 따뜻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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