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3
9.0
제3 구역에는 모든 공장들이 모여 있었다. 겉에서 보면 거대한 벽들로 이루어진 창문 없는 건물들의 집합이었다. 이 수현경감은 공장지역의 가장 입구에 있는 공장관리 건물로 들어가서 주차되어 있는 에어카 옆에 자신의 에어카를 주차시켰다. 여기 에어카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의심스러워서 번호판을 흩어보니 공장관리를 담당하는 시스템회사의 소유였다. 그가 온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으므로 공장관리 건물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그가 불쑥 들어서자 모두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나이가 든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누구신가요? 어떤 목적으로 오셨나요? 만나러 오신 분이 있으신가요?” “저는 조사를 나온 경찰입니다.” 이수현 경감이 그의 신분증을 스케줄러에서 쏘아서 정면에 커다랗게 비춰주었다. “어떤 조사를 위해서 나오신 건가요? 저희들은 중장정부의 산업생산성부서의 직원으로 오늘 공장시스템 정기 점검 때문에 방문해서 시스템 정기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 후에는 점검이 모두 끝나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저희는 이곳을 떠날 겁니다. 혹시 그 안에라도 저희가 도와드려야 할 일이 있나요?” 직원은 자신이 갖고 있는 업무 명령서를 이수현경감에게 보여주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찾아보다가 나갈 겁니다.” 이수현 경감은 그들에게 짧게 대답하고 공장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서 공장 안으로 가는 다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수현 경감이 공장 관리 건물에 붙어있는 첫 번째 공장으로 들어가자 그곳에 있던 로봇 관리자가 그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이수현경감님. 환영합니다. 저는 공장장입니다. 제가 여기 공장을 전체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로봇의 인사가 끝나자 이수현경감의 발 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어워크가 작동되어 공장 위로 로봇과 함께 움직여 갔다. “저 아래보이는 우리 공장은 에어카를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가장 안쪽은 완성된 차를 그리고 저 바깥쪽은 티타늄 본체의 조립부터 시작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자동 시스템의 안내에 이수현경감은 난감해서 로봇의 가슴 쪽에 있는 도움 버튼을 눌렀다. “ 무슨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 저는 안내는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혼자 공장을 둘러보겠으니 에어워크만 작동시켜 주세요. 더 아래로 내려가서 세부 조립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주세요.” 로봇은 즉시 이수현 경감의 요청 사항을 들었고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이수현경감은 로봇이 조립하는 부분이 아니라 사람이 일하는 부분으로 가서 그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3급 시민이므로 그들에게 대단한 정보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 수현 경감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일하는 쪽으로 내려와서 그들에게 다가서자 에어워크에서는 경고음과 함께 메시지가 나왔다. “작업자들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작업에 방해가 됩니다.” 이수현 경감은 작업자들의 주변에서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들은 의욕 없는 눈동자로 그저 자동차의 문을 열고 내부의 버튼들을 누르고 이상을 체크하는 중이었다. 로봇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일을 시키고 있지만 그들의 작업 완성도가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수현경감이 별다른 특이 사항을 느끼지 못하고 다음 공장으로 가기 위해 처음 들어온 곳으로 돌아와 에어워크에서 내려설 때 처음 그를 맞이했던 공장장 로봇이 다시 다가왔다. “공장 견학은 만족스러우셨는지요? 더 도와드릴 일이 없습니까?” “사역침팬지들이 일하고 있는 식량 생산단지를 가려고 하는데 이 에어워크를 계속 사용해서 돌아다녀도 될까요?” “얼마든지 사용하셔도 됩니다. 제가 그곳까지 동행해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 수현경감은 공장장이 따라오는 것이 싫었지만 굳이 거부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수현 경감은 에어워크에 다시 발을 디뎠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장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 수현 경감이 탄 에어워크는 공장의 밖으로 나가 끝도 없이 펼쳐진 공장의 지붕 위를 날았다.
9.1
윤이는 아버지 집을 찾아갔다. 윤이가 형의 집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던 김정훈은 이미 윤이가 자신의 집에도 곧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윤이가 그의 집에 도착하자 김정훈은 몹시 기뻐서 그를 현관에서부터 맞아 주었다. 첫눈에 보이는 윤이는 생각보다 어릴 때의 얼굴이 많이 남아 있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키가 훨씬 더 커진 것뿐이었다. “네가 와주니 기쁘구나. 오늘부터 무엇을 하든 여기서 지내라. 여긴 너의 집이야.” 윤이는 아버지나 아버지의 집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럴게요. 전 좀 피곤해서 쉬고 싶어요.” “그래, 너 방에 들어가서 저녁 먹기 전까지 조금 쉬거라. 아, 그리고 너의 친구가 선물을 놓고 갔어. 방에 넣어 놨다.” “친구요? 누군데요?” “이재영이라고 네가 알 거라고 하더라.” 윤이는 재영이의 엉뚱함에 한번 놀라고 그녀가 자신이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었다는 것에도 놀랐다.
윤이는 아무리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있었어도 몸이 집을 기억하고 있었다. 방안은 차분하게 브라운 색의 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재영이 준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유심히 보지 않았을 법한 그저 그런 납작한 하늘색의 작은 상자였다. 윤이는 책상에 앉아서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쪽지와 함께 얇은 장식품 같은 금으로 된 물체가 있었다. “네가 집에 갈 거라고 생각해서 너의 집에 맡겨. 이건 과거에 사람들이 책을 볼 때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해서 책사이에 끼던 책갈피야. 내가 아끼는 거야. 너에게 빌려줄게. 책을 많이 읽는 네가 나보다 필요할 것 같아서. 손목에 차고 다니라고 내가 직접 매듭을 땋은 실로 팔찌를 만들었어. 집에 돌아오면 나한테 연락해.” 책갈피를 자세히 보니 윗부분은 동그랗게 테두리 안에 새 모양이 있고 아래는 열쇠모양이 붙어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로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재영이가 실을 넣어서 팔찌로 만들지 않으면 잃어버리기 딱 좋았다. 윤이는 웃으면서 그것을 집어 왼쪽 손목에 찼다.
윤이는 스케줄러를 켜서 재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물 고마워. 잘 차고 다닐게.” “집에 지금 온 거야?” “응” “종종 너네 집에 놀러 가도 돼?” “내가 있을 때 언제든지 오면 환영할게.” “네가 환영해 준다고 하니 더 놀러 가고 싶어 진다.” “그래.” 재영과의 메시지를 주고받던 윤이는 침대로 가서 자리에 누웠다. 실내조명을 모두 끄고 천장에 스크린을 쏘자 준호가 나왔다. “아까부터 요청했는데 집에서 자고 있었나요?” “네, 무슨 급한 일인가요?” “급한 건 아니고 여기 이수현경감이 자료조사를 하러 나왔습니다. 오늘은 공장지대를 직접 둘러보고 있는데 계속 3 구역이나 4 구역에 머물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잘 아시는 것 같아서요. 제가 만나서 우리와 같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설득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부정적 의견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중앙정부를 위해서 끝까지 일 할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한번 만나 보시면 좋을 겁니다.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심은 높지만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어서 친구는 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일단 만나보고 이야기를 해봐야겠네요. 디엔에이 구조상 저도 그렇게 예상은 했는데 역시 신중하고 충성심이 높은 경찰이군요.” “네, 혹시 또 도움이 필요하시면 알려주세요. “ “알겠습니다. 또 연락하겠습니다.” 준호가 스크린에서 사라지자 사방은 잔잔한 어둠이 깔렸다. 윤이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자기 방에 누워서 수십 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안도감을 느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윤이가 낮잠을 자고 나오자 아버지 김정훈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네가 왔으니 밖에 나가서 구경도 하고 저녁을 먹자.” 윤이는 별로 내키지 않아서 아버지가 서둘러서 옷을 챙겨 입고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직도 잠이 덜 깬 거냐? 너도 옷을 입고 나와. 해지기 전에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들이 있다.” 윤이는 첫날이니까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아버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1 구역에 윤이가 봐야 할 특별한 곳이 있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내 집이 있는 이 건물이 과거에는 너의 증조할아버지가 만든 회사의 건물이었지.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는 봤겠지?” 김정훈은 윤이에게 물었다. “여기 쓰여있는 대로 신문박물관이 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 이 안을 구경은 해봤니?” “아니요. 아직은 안 해봤지만 뭐가 있을지는 짐작이 됩니다.” “네가 짐작하는 게 맞을 거다. 신문을 만들기 위한 기계들과 신문사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지. 시간 나면 한번 둘러봐. 오늘 너랑 가고 싶은 곳은 여기는 아니야.” 김정훈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윤이가 따라가기에도 몹시 빠른 속도였다. 곳곳에는 퇴근 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윤이는 속도를 내서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기는 하지만 점점 사람들이 붐비면서 아버지를 놓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조금 천천히 가세요.” 윤이가 뒤에서 하는 말을 들었는지 김정훈은 약간 걸음을 주춤거리며 윤이를 기다리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걸음은 빨랐다. 윤이가 보는 그의 뒷모습은 하얀 머리카락과 마르고 굽은 어깨가 영락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걸음걸이는 누구보다 빨랐다. 집에서 나와 거의 이십 분쯤 걸어서 중앙정보국의 건물들이 몰려있는 시내의 가장 안쪽에 도착해서야 김정훈은 걸음을 멈추고 윤이를 뒤돌아 보았다. “저기 들어갈 거다. 기억나니?” 김정훈이 가리키는 건물은 은빛 유리로 된 원형의 높은 타워였다.
9.2
이 수현 경감은 공장을 돌면서 아무런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정보들과 비교해도 공장에서는 달라진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너무나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는 공장 기계들이 그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하루를 완전히 공장을 돌아다니는데 소비했지만 이제 겨우 공장의 반도 돌지 못했다. 분명 더 돌아보면 뭔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처음 왔던 공장의 중앙 관리실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였다. 에어워크의 충전이 필요하다는 불빛이 들어왔다. 목적지인 중앙관리실을 찍으니 연료 부족으로 거기까지 갈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지금 에어워크에 연료부족으로 연료주입 등이 들어옵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연료 충전소로 안내해 주거나 다른 에어워크를 보내주기 바랍니다.” 이수현 경감은 신소재 섬유를 만들고 있는 공장 안에 기계음을 들으면서 중앙관리실의 공장장으로부터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계속 실을 만드는 기계들의 소음을 뒤로하고 이수현 경감은 공장을 나갔다. 해가 지려고 어둑해지고 있었고 밖의 공기는 공기청정기가 돌지 않아서인지 공장 안보다 좋지 않았다. 이수현 경감은 중앙정보국에도 요청을 했다. “여기 위치를 확인하고 공장의 중앙관리실에 연락해서 에어워크를 보내주기 바랍니다.” 공장의 불빛과 소음 그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삭막한 풍경 안에 이수현경감은 오로지 혼자 서있었다. 그는 잠시 두려움을 느꼈다. “여기 제 위치를 보냅니다. 에어워크를 보내주기 바랍니다.” 그는 다시 중앙정부의 경찰국과 공장의 중앙관리실에 요청을 보냈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지만 이 수현 경감의 스케쥴러에서는 어떤 답장도 오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거대한 벽으로 둘러 쌓인 공장 이외에 사람이나 로봇의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이 수현경감은 에어워크의 연료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일단 길을 되돌아가서 공장의 중앙관리실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부근의 통신장애가 있지 않고서야 중앙정부까지 답장이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사실 이수현경감은 그의 손목에 있는 스케줄러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버린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에어워크를 타고 일단 장소를 옮기면서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수밖에 지금은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수현경감이 온전히 고립된 느낌으로 에어워크를 타고 거대한 공장들 사이를 지나 올라가고 있을 때 드디어 그의 스케쥴러가 반응했다. “지금 위치를 확인 중입니다. 기다리십시오.” 공장장의 응답이 경찰국보다 먼저 왔다. 이수현 경감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자리에 멈춰 섰다. 이수현 경감의 심장이 조금 두근거렸다. 아까보다 이제는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더 조급한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에어워크는 계속 연료주입을 요청하는 불빛과 신호음을 보내고 있었다.”위치확인 되었습니다. 새로운 에어워크가 3분 내에 도착할 겁니다.” 3분이라는 시간이 길게 흘렀다. 멀리서 반짝이며 다가오는 에어워크의 빛과 공장의 거대학 벽들 사이로 내려앉은 어둠이 꿈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 공장 중앙관리실로 돌아갑니다. 저의 마지막 라이브 메시지 통신이 되지 않았던 이유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에어워크를 타고 가면서 경찰국에 메시지를 보냈다. “직전 통신은 네트워크 오류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제3 구역은 네트워크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개인정보 중 위치 정보를 오픈시켜 놓으시기 바랍니다. 작전 중에만 사용하고 폐기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이제 공장을 나와서 3 구역의 호텔로 이동합니다.” 이수현경감은 작전을 수행할 때도 위성을 통한 자신의 위치정보 노출은 허락해 본 적이 없었다. 개인의 정보에 대한 권리가 완전히 보장된 1급 시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수현경감도 자신의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중앙정부에 노출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다른 시민들과 자신들의 차별점이고 그것을 통해서 개인적인 의사결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고 모두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경우를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이수현경감은 만일 네트워크가 장애를 일으킨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부족한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면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에어워크가 연료 문제로 말썽을 부려서 죄송합니다. 좀 오래된 기계라 연료가 빨리 소진되었습니다.” 공장장이 중앙 관리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옆으로 다가와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공장은 잘 돌아가고 있더군요. 하지만 며칠 더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가시는 곳까지 안내하겠습니다. 경감님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최대한 서포트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 공장장은 이수현경감 옆에 바짝 붙어서 그를 따라갈 태세로 말을 이어갔다. “여기는 제3 구역의 가장 끝입니다. 해가지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같이 동행하도록 해주십시오.” 공장장은 로봇이지만 말투는 꽤 친근한 사람의 말투였다. 굽신 거리는 것도 사람과 비슷했다. 단지 실리콘으로 된 그의 피부가 불빛에 번들 거리는 것이 조금 거부감을 줄 뿐이었다.
9.3
이 수현 경감은 제3 구역에 하나밖에 없는 호텔로 가기 위해서 에어카에 호텔의 위치를 표시하고 자동 운전을 예약했다. 옆에 앉아 있는 공장장은 주변을 경계 태세로 둘러보고 있었다. “자, 이제 출발합니다. 설마 내가 여기서 위험을 느끼고 공장장이 동행하도록 허락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나는 좀 더 공장장과 친해지고 싶어서 동행을 허락한 겁니다. 제 안전은 지킬 수 있으니 경계태세를 풀고 편히 있으세요.” “술과 약에 취한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어떤 짓을 할지 모릅니다.” 공장장은 밖을 내다보면서 언제든지 같은 말을 반복할 것처럼 담담하게 답했다. 이수현 경감도 더는 공장장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공장장 내부의 알고리즘은 위험을 감지하고 그를 위해 나서 준 것이니 그대로 두는 것이 이수현 경감에게는 해가 될 것이 없었다.
대부분의 로봇들은 인간의 모든 감정을 상황에 대한 스코어링으로 파약하여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공포심이 가장 많았는데 그것은 로봇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위험에 대한 대처능력의 하나였다. 공장장도 공포심이 많아 보였다. 그 예로 공장을 벗어 나는 순간부터 어둠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자 경계태세로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공장장은 시내를 얼마나 자주 가나요?” “가끔 일 때문에 이렇게 중요한 분들과 나올 때가 있지만 평소에는 공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공장은 관리 시스템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데 공장장이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까?” “맞습니다. 관리 시스템이 공장을 제어합니다. 저는 관리 시스템이 할 수 없는 관리를 합니다. 지금과 같은 공장의 방문자를 보조하는 일도 그런 일중의 하나입니다.”
공장을 벗어나 시내로 점점 접근하자 어둠 속에서 시내의 건물 불빛들이 뿌연 공기를 뚫고 반짝이고 있었다. 공장장이 염려한 덕분인지 공장에서 호텔까지 오는 도중에 별다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시내로 들어왔을 때 술 취한 사람이 모는 에어카가 갑자기 다가와서 피한 것이 다였다. 자동 감지 시스템이 있어서 충돌은 안 일어나겠지만 무질서함과 예측 불가능함은 이수현경감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제3 구역에 하나밖에 없는 호텔은 시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원반처럼 보이는 거대한 복합 교통 정거장 안에는 물류센터와 호텔이 같이 있었다.”여긴 처음 와봅니다. 지나다 본 적은 있어도.”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로비는 텅 비어있고 무인 시스템이 반짝거리며 이수현 경감에게 다가와 예약된 방을 알려주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수현고객님. 예약된 방의 지도와 키가 스케쥴러로 전송되었습니다. 동행하신 분은 예약에 없던 분입니다.” 이 수현 경감은 공장장을 돌아보았다.
“저는 내일 아침까지 차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 수현 경감이 알았다고 대답하자 공장장은 호텔을 나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텅 빈 복도를 걸어서 방을 찾아갔다. 가는 도중 내내 공장장이 자꾸 생각이 났다. “공장장 케이에 대해서 이력을 확인해 주세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수현경감은 공장장에 대한 조사를 중앙정부에 의뢰했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12년 전 서비스 업종 자동화를 위한 로봇으로 제조되어 중앙정부의 실물자산 배송업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3년 전부터 공장장으로 공장관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같이 다녀도 되나요?” “현재 로봇 중 하위버전이지만 중앙정부의 의사결정 시스템과 같은 모델을 사용하고 있으니 같이 다녀도 가치충돌의 문제가 없을 겁니다. 감시능력이 뛰어나고 외부 공격에 대해 공격과 방어도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동행하셔도 됩니다.” “공장밖에서 조사를 할 때도 동행 가능한가요?” “지금 보조할 조사원을 뽑고 있지만 경감님께서 괜찮다면 당분간 같이 다니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