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1.1
10.0
구식 서빙 로봇이 말해 준 식당은 고기 냄새가 가득했다. 케이는 그런 구식 식당을 처음 와본 것이라 무척 신기해하면서 둘러보고 있었다. 이 수현 경감은 서빙을 보는 여자에게 아무 자리 나 달라고 말하고 빠르게 주변을 스캔하고 있었다.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 케이가 이수현경감에게 말했다. “이런 오래된 분위기의 식당은 처음 와 봅니다. 석유시대 테마 식당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간혹 과거를 추억하기를 좋아한다. 특히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과거에 그들의 조상이 누렸던 영광을 이렇게라도 맛보고 싶은 것이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주문하실 때 불러주세요.” 서빙하는 여자는 뒷모습과는 달리 앞모습은 케이와 같이 실리콘 피부가 코부터 목까지 덮여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우선 에너지음료와 이곳 특산물인 해양심층수를 먼저 가져다주세요. 식사 주문은 조금 뒤에 하겠습니다.” 케이는 서빙하는 여자가 맘에 드는지 자기가 알아서 음료를 빠르게 주문했다.
이 수현 경감은 식당 안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천천히 둘러보았다. 저녁이라서 사람들은 대부분 식사 중이었다. 입구 한쪽 구석의 바에는 바텐더도 없고 술병들만 붉은 전등불에 빛나고 있었다. “카페와 비슷한 구성비입니다. 트랜스휴먼이 대부분입니다. 휴먼이 3명이나 있네요. 신원을 알 수 없습니다.” 케이는 이수현경감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다. “휴먼 중 자세한 신원을 알 수 없다면 외국인이거나 범죄 사실이 없는 시민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기와 있는 게 신기하군. 항구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낮에 본 김이영 씨처럼 주변 동네 사람일까.” “보시다시피 둘 다인 것 같습니다.” 케이와 이수현 경감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김이영과 김준호 박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자리에 같이 앉아도 되겠지요?” 김준호박사가 양해를 구했으나 그것은 양해가 아니라 자리에 앉겠다는 통보였다. “우리를 만나러 오신 것 같은데 거절할 수가 없죠. 김이영 씨는 오늘만 두 번째 보게 되네요.” 이수현경감은 자신이 이 만남에 대해서 우연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고 싶어 했다. “저는 김준호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수현입니다.” “저는 케이입니다.” 짧게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여기서 일하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지금 어떤 일을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항구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항구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4 구역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와 식량의 유통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제가 김준호박사의 실종 관련 조사를 했었습니다. 병이 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건강은 다 회복하신 건가요?” “제 건강은 아직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낭비하지 않는 게 좋겠군요. 저를 만나러 온 이유가 뭡니까?”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면 좋겠어서 모시러 온 것입니다. 물론 경감님이 일하시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제 일에 도움이 된다고요?” 이수현경감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준호 박사의 제안이 자신에게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들었다. 제3 구역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얻지 못할 것을 김준호박사에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이 김준호 박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따라가지 않는다면 손해 보는 것은 자신 뿐이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오는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공장에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호텔에 투숙하신 것도 알았고 항구의 거리에 나타나신 것도 알게 되었죠. 언뜻 보면 제가 사람을 시켜 미행하게 된 것처럼 들리시겠지만 그저 제3 구역에 저의 친구들이 알려줘서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영 씨를 보낸 건 제가 그런 것입니다. 그 부분이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나쁜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을 통해서 접촉해서 거부감을 덜어내려고 한 것뿐입니다.” “저는 중앙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케이도 그렇고. 우리에게 어쩌면 많은 걸 노출시키고 싶지 않으실 텐데요.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도 중앙정부의 1급 시민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없으니 숨길 것도 없습니다.” 이수현경감은 김준호 박사의 눈을 보고 그가 자신감이 넘치는 1급 시민임을 진작부터 알았다.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는 듣기 좋은 저음이었고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시간이 늦은 것 같은데 내일 가는 게 어떨까요?.”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가도록 하죠. 오늘은 이렇게 처음 만났는데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게 좋겠네요.” “네, 좋습니다.” “여기 식당은 제가 잘 압니다. 제가 알아서 주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게 좋겠네요. 제3 구역에서 이런 식당은 처음이라.” “경감님께서는 최상의 재료로 만든 음식들만 드셔보셨겠죠. 여긴 그런 재료는 아니지만 항구 지역만의 특별한 재료들이 꽤 좋습니다. 한번 맛보시면 저처럼 자주 드나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녁 식사 후에 김준호 박사와 이영은 내일 아침 카페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럼 우리도 숙소로 돌아가는 게 좋겠네요.” “경감님, 혹시 낮에 들렸던 카페에 다시 가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 거기에 뭔가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정보가 있을까요?” “낮에 보지 못했던 항구 노동자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케이는 카페에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이수현경감도 케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럼 잠깐 들렀다가 가죠. 하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식당 밖으로 나오자 하늘은 어두웠지만 거리는 환했다. 길가의 가로등도 밝지만 항구 쪽의 데이터 센터 건물에서 나오는 빛이 거리까지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케이가 앞장서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안은 낮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바 쪽에는 서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창가의 자리 쪽은 오히려 텅 비어있었다. 케이는 사람들이 많은 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따르던 이수현경감은 천천히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다시 오셨군요.” 어느새 낮에 그들을 맞았던 서빙 로봇이 옆으로 다가와서 말을 시켰다. “아, 네.” “자리에 앉으셔서 주문을 하셔도 되고 직접 바에 가서 바텐더에게 주문하셔도 됩니다.” 서빙 로봇이 말을 시키는 사이에 이수현경감의 앞에 있던 케이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 쪽에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낮에 보았던 덩치 큰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보다 키가 작은 케이를 찾기 힘든 건 당연했다. “필요하면 부르겠습니다.” 이수형 겸 감은 다소 날카롭게 대답을 하고 재빨리 바 주변의 사람들 쪽으로 가서 케이를 찾기 위해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다행히도 케이는 바의 가장 안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수현 경감을 보자 손을 흔들어 아는 척을 했다. 이수현 경감이 다가가자 케이는 음료를 건넸다. “제가 먼저 주문했어요. 좋아하실지 모르지만 이 지역에서 나는 맥주입니다.” 이 수현경감은 벽 쪽으로 몸을 기대에 케이와 마주 보면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나요?” 이수현 경감 옆에 서 있던 덩치 큰 사람 중 하나가 물었다. “아, 일이 있어서 1 구역에서 왔습니다. 항구에서 일하시는 분들 인가요?” “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항구의 노동자들이죠.” “여기서 오래 사셨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해양쓰레기 청소를 하는 잠수부들은 대부분 여기 토박이고 데이터센터나 물류센터 잡역부들은 여러 곳에서 옵니다.” “그런데 다들 덩치가 커서 외국인인 줄 알았습니다.” 케이가 틈을 봐서 끼어들었다. “오랫동안 외국인들과 교류가 잦은 지역이어서 조상들 중에 외국인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 일이 힘들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체력이 좋은 조상들의 후손이라 그럴 겁니다. 해양쓰레기 청소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한잔씩 사겠습니다. 바텐더 여기 계신 분들에게 원하시는 술을 드려요. 여기 이분들 술 값은 내가 계산하겠어요.” “좋은 곳에 사시는 분이라 마음도 좋군요.” 이수형 경감과 같이 이야기하던 사람과 그의 일행은 케이와 이수현 경감에게 잔을 들어 올리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항구 지역에 많이 보이던 덩치 큰 사람들은 직접 만나보니 3급 시민이지만 직업의식이 뛰어나고 체력이 뛰어난 사람들일 뿐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10.1
“특별한 건 없습니다. 김준호 박사가 나타나서 같이 저녁을 먹었습니다. 자기 과시를 위한 행동 같습니다. 김준호 박사는 우리에게 자신이 항구 물류 센터를 운영하면서 주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찾아온 것을 보면 역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군요. 잘 조사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이수현경감이 보고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들어갔다. 반대편에 케이는 이미 충전을 다 마치고 경계 상태로 창밖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수현경감은 내일도 케이와 동행할지 아니면 혼자 갈지를 잠시 고민했다. 케이는 로봇으로 그의 모든 시선으로 본 세계는 중앙정부의 데이터센터에 저장되었다. 지금까지는 케이는 이수현경감이 하는 일에 불편을 덜어 준 것이 분명하지만 내일도 그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내일 김준호 박사와 같이 간 곳에서 어떤 것을 보고 들을지 모르지만 케이로 인하여 중앙정부에 혼선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준호 박사가 케이에 대해 아무 언급도 안 한 것을 보면 김준호박사는 케이의 존재를 의식하고 중앙정부에 역정보를 흘리기 위해 꾸미는 일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김준호박사는 중앙정부에 속일 것도 꾸밀 것도 없이 그저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천재일 수도 있다. 이수현 경감은 오늘 본 김준호 박사의 인상으로는 김준호박사는 후자에 가까워서 케이가 보고 듣고 그것이 중앙정부의 데이터센터에 녹화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이수현경감은 케이와 동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케이의 정보 수집 능력이나 주변 경계 능력은 이수현 경감보다 훨씬 빨랐으므로 분명히 도움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김준호 박사는 1급 시민 중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충동성을 지닌 특별한 사람이므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네, 그가 잠시 행방 불명 되었던 이력을 보니 뭔가 특별한 사람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이수현 경감과 케이는 서로가 파악한 김준호 박사의 간단한 정보에 그들의 분석력을 덧붙였다. 인간은 자신보다 남을 파악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때가 있는데 그것이 어쩌면 인간을 생존하게 만든 가장 큰 무기였을지도 모른다. “벌써 저기 물류 센터에 기계들이 가동을 하고 있네요. 사람들도 제법 많이 보이고요.” 케이는 도착하기도 전에 멀리 항구의 모습을 전했다. 드디어 그들이 항구에 도착해서 어제 간 카페를 가기 위해 에어카에서 내렸다. 이수현 경감의 눈에도 케이가 전해 준 것과 같이 항구의 새벽은 활기차 보였다.
“어제 오후에 보았던 첫인상보다는 더 좋아 보이네요. 제3 구역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해양자원을 전략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이 가속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 왔는지 김준호 박사가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일찍 나오셨군요.” “네, 새벽부터 물류센터 시스템을 가동시키면 저도 확인할게 많이 생깁니다. 아직 제 물류 관리 시스템이 안정화된 것은 아니라 제가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김준호박사는 어딘지 모르게 어제 보다는 다소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새벽이라 피곤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의 표정도 많이 경직되어 있었다. 김준호박사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는 뇌에 생긴 종양을 떼어내고 나서부터 얼굴이 조금씩 굳어지고 저혈압 증상이 나타나는 일이 잦아졌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이영이 그들을 맞이했다. “다들 일찍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저를 따라오세요.” 이영은 카페의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주방은 텅 비어 있었고 이영은 정면에 냉장실로 보이는 철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철문 앞에 서서 손바닥을 대자 문이 열렸다. 안에서는 차가운 기온이 흘러나왔다. “여기로 들어오세요.” 이영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서 일행을 보고 말했다. 이영의 바로 뒤에 있던 케이는 가장 먼저 이영을 따라 들어갔고 이수현 경감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김준호 박사에게 차례를 양보했다. 그가 가장 마지막에 들어가려고 생각한 것은 아무래도 냉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게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김준호 박사는 이수현경감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머뭇거림 없이 먼저 들어갔다. 냉장실에 들어간 이수현 경감은 앞서 가던 이영과 케이가 보이지 않고 단지 김준호박사와 자신만 냉장실에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어디에 간 거죠?” “먼저 내려갔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수현 경감은 조금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불안하지는 않았다. 김준호박사가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할 의도는 없다는 것이 그의 눈빛에서 읽혔기 때문이다.
“자, 이제 저랑 가시면 됩니다. 여기 캡슐이 이인승이라 나눠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냉장실 양쪽으로는 선반에 간단히 과일이나 채소가 놓여있고 가운데는 둥근기둥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이수현경감의 눈에 단순히 기둥으로 보였던 가운데 부분이 갈라지면서 원통의 캡슐형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어서 타시죠.” 김준호 박사가 먼저 엘리베이터에 타서 이수현경감을 불렀다. 이수현 경감은 머뭇거리다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의 눈에는 분명히 지름이 삼십 센티도 안되어 보이는 기둥이었다.
“어떻게 된 거요?” “ 일단 기둥은 착시 현상 때문에 좁아 보였던 겁니다.” “우린 어디로 가는 겁니까?” “다 도착했습니다. 내려서 설명드리죠.”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발 앞에는 계단이 이어졌다. 계단 밑에 이영과 케이의 모습이 보였다. “계단을 계속 내려가시면 됩니다. 여기만 통과하면 넓어진 공간이 나오니 불편해도 조금만 참으세요.” 꽈배기처럼 계속 돌아가는 계단을 내려가자 드디어 환하고 넓은 길이 나왔다. “어서 오세요.” “여긴 어디인가요? 지도에 없는 곳 같은데.” 이수현경감은 자신의 손목에 있는 스케줄러를 보았다. 위치 표시는 되지 않고 있었다. 케이도 마찬가지인 듯 이수현 경감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긴 중앙정부의 위성과 통신이 안됩니다. 다른 모든 통신도 마찬가지 구요.” “김준호 박사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지금 외부네트워크와의 연결이 모두 끊어졌습니다. 리서치가 안되고 있습니다.” 케이는 이수현경감을 보면서 말했다. “ 저기 우리를 마중 나온 에어카가 옵니다..” 이영이 가리키는 방향에 불빛이 보였다. 잠시 후 일행 앞에 에어카가 멈췄다. “자 다들 타세요. 여러분의 궁금증은 곧 풀릴 겁니다. 이제부터 제가 살고 있는 곳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수현경감과 케이는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들이 에어카에 올라타자 차는 바로 출발했다.
11.0
“환영합니다. 여긴 생활 단지입니다.” “여긴 1 구역 구시가지인데요.” 이수현 경감은 다시 손목에 있는 스케줄러를 보았다. 아직도 위성과 통신은 되고 있지 않았다. “맞습니다. 경감님은 공간감각이 뛰어나시군요. 여긴 그냥 보면 1 구역의 구시가지 중심가와 비슷해 보일 겁니다. 그러나 사실 이곳은 제가 살고 있는 지하의 도시입니다. 우리는 이곳을 트윈시티라고 부릅니다.” “여기 바닥에서 저기 하늘로 보이는 곳까지 높이는 1백 미터가 안됩니다. 그리고 이곳의 공기 중의 산소 비율은 1 구역보다 더 높고 자외선은 없습니다.” 케이가 환경을 분석하는 대로 조용히 이수현 경감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긴 제3 구역이나 제4 구역 어딘가의 지하이군요.” “경감님의 말이 반은 맞습니다. 여기서 위로 올라가면 4 구역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어쩔 때는 1 구역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도시는 계속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수현 경감은 김준호 박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케이도 마찬가지여서 둘은 서로 마주 보고 눈빛을 교환했다. “외부 통신이 작동하지 않아서 저의 리서치는 한계가 있습니다. 김준호 박사의 말은 현재 분석할 수가 없습니다.” 케이는 다시 이수현 경감의 귀에 대고 읊조리고 있었다. “제 말이 조금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일단 깊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저를 따라오세요.” 김준호박사는 어느덧 바로 앞에 보이는 오래된 은행 건물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수현 경감과 케이도 그를 따라 걸었다. 그들은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기둥이 양옆을 바치고 있는 석조 건물의 입구에 이르렀다.
“환영합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어부의 도시에서 보았던 덩치 큰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긴 여자였다. 이수현경감은 그 사람이 여자인 것은 목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이수현경감 자신보다 키가 월등히 크고 덩치도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이수현경감과 케이에게 작은 목걸이를 하나씩 걸어 주었다. “트윈시티를 돌아다니실 때 간단한 리서치나 위치 정보 등 도움이 필요하면 사용하시면 됩니다. 평소 사용하시는 스케줄러는 여기 맡기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하겠습니다.” 이수현경감이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이영이 말했다. “원치 않으시면 그대로 스케줄러를 갖고 다녀도 됩니다. 이곳에서 스케줄러는 중앙정부의 위성과는 연결되지 않아서 무용지물입니다. 그 점은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냥 손목에 차고 있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이수현경감은 스케줄러를 벗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이곳을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김준호 박사를 따라 2층의 회의실에 들어가자 정면의 커다란 컴퓨터 화면에 트윈시티 소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상을 보면 좀 더 빨리 이해가 되실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김준호 박사와 이영은 자연스럽게 회의실의 자리에 앉았고 이수현경감도 망설이지 않고 앉았다. 케이는 혼자 서서 이수현경감의 뒤에서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는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이 저장된다는 것을 의식하고 좀 더 완전한 영상을 녹화하기 위해서 서서 보고 있었다.
“이곳에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영상이 끝나자 김준호 박사가 이수현경감과 케이를 보며 말했다. “보기는 좋아 보이는군요. 완벽해 보입니다.” “보기만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살기도 좋습니다. 바다에서 얻은 산소로 공기의 질도 1 구역보다 좋고 지열을 이용한 전기도 무제한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통제받지 않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들을 위한 천국을 직접 만드신 것을 자랑하기 위해 우리를 여기 데려온 것은 아닐 테고 우리를 이곳에 초대하신 진짜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우리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해제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인간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속으로 느끼고 있는 사실입니다. 저만이 아닙니다. 가장 많은 권리를 가진 1급 인간으로 편하게 살 수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가 소멸되어 갈 겁니다. 경감님도 저희와 함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회의실 안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케이만이 에너지가 부족한지 눈을 깜빡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케이, 어디 불편한 데가 있어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케이는 말을 잘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응급의를 만나게 해 보겠습니다. 뭔가 시스템 에러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영이 케이의 팔을 붙잡아 부축하며 회의실을 나갔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응급 상황이 발생하다니.” 이수현경감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케이를 지켜보면서 중얼거렸다.”아무래도 케이를 따라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수현경감은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도 에너지 충전을 하면 좋아질 겁니다. 네트워크와도 연결이 되어있지 않아서 혼자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버거운 대화들을 듣고 정보 시스템 부화가 생긴 겁니다. 아무리 최신 모델의 로봇이라도 네트워크에 연결 안 되면 자체 프로세스는 버그가 많습니다. 앞으로 우리 인간의 상황도 케이와 비슷해질 겁니다.” 김준호박사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이수현 경감은 그의 눈빛에서 단호함을 느꼈다. “케이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중앙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김박사님의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경감님께서 쉽게 저의 제안에 동의해 주실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돌아가셔서 좀 더 시간을 갖고 결정하셔도 됩니다.” “제가 만약 중앙정부에 김준호 박사의 이런 계획과 도시에 대해서 말하면 위험에 빠질 텐데요.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한 거죠?” “이제까지 저의 제안을 받은 모든 인간들은 제 제안을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하더라도 결국 다시 저에게 연락해서 동참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인간이고 자유를 향한 본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시군요. 하지만 케이는 인간이 아닌데 어떻게 되나요? 그가 본 것과 들은 것은 모두 저장됩니다.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순간 그의 내부에 저장된 모든 기록들은 중앙정부로 전송될 겁니다. 혹시 의도적으로 케이에게 시스템 이상을 일으킨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중앙정부에 들어가는 데이터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데이터는 어떤 네트워크로 가든 우리가 필요에 따라 지우거나 변형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 정도는 우리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직접 조사를 나오신 것으로 아는데요.” “제 예상보다 훨씬 더 일이 많이 진행되어 있군요.” “중앙정부의 가장 큰 강점은 모든 데이터의 통제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죠. 데이터 자체의 무오성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중앙정부는 결국 무용지물이 될 겁니다. 기계는 의심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습니다. 맞고 틀리고 그리고 에러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의심하고 상상합니다.” 김준호 박사는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11.1
케이와 이수현 경감은 항구의 카페로 다시 돌아왔다. 케이는 자신이 이상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이수현 경감은 그들이 오전 내내 보냈던 시간들이 중앙정부에는 어떻게 전송되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정상이라면 그들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케이와 통신이 끊긴 순간부터 중앙정부는 비상체계를 작동하여 그들을 찾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카페로 돌아와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의 스케쥴러에는 중앙정부로부터 비상연락은 오지 않았다. 케이는 김준호 박사의 지하도시에 다녀온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수현경감은 오전에 있던 일을 중앙정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자신과 케이의 행적이 어떻게 변형되어 중앙정부에 저장되고 또 그것이 어떻게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경감님, 제가 방전되어 늦게까지 충전하느라 시간이 지체된 것을 용서해 주세요. 오전에 일찍 만나기로 한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케이는 굳은 표정을 하고 아무 말없는 이수현경감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내가 알아볼 게 있어서 여기 온 것이니 오늘은 이 지역에서 좀 더 시간을 보냅시다.” “오늘은 항구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습니다. 해저도시까지 이어진 해저 철도를 통해 물류 이동이 있다고 합니다. 공장지대로 들어가는 원자재들은 이 항구에서 내려져서 이동하게 됩니다.” 이수현 경감의 귀에는 케이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다.
“저기 하역 작업을 하는 로봇들은 모두 최신식입니다. 기계지능으로만 움직이지만 움직임은 인간처럼 부드럽네요. 저보다 상위급 관절을 장착했습니다.” 카페에서 나와 항구 근처로 걸어가면서 케이는 물류 센터에서 하역 작업을 하는 로봇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수현경감의 눈에도 로봇들은 움직임이 딱딱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들어 올리는 무게가 엄청나다는 것을 무시하고 보면 사람이 하는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기 마침 해양 쓰레기 수거 잠수정이 들어오네요.” 바다 쪽에서는 잠수정이 반쯤 떠올라 쓰레기 처리장으로 다가가 도킹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 잠수정은 매일 100톤 이상의 쓰레기들을 수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바다를 떠도는 쓰레기를 수거할 때는 무인 잠수정이 효율적입니다. 저 잠수정의 뚜껑이 열리는 걸 보니 저건 유인 잠수정입니다. 바다 밑에 좁은 바위틈새나 모래에 끼인 쓰레기들은 잠수부가 가장 효과적으로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꺼낼 수 있습니다.” 케이는 쉬지 않고 리서치한 지식을 이수현 경감의 귀에 대고 읽고 있었다. “잠수정의 윗부분이 열리고 얼마 후 잠수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덩치가 일반인보다 큽니다. 일반인보다 큰 폐활량을 타고 난 사람들이라 그런지 가슴이 무척 넓습니다. 모두 자세히 등록되어 있는 정보는 없습니다. 아직까지 범죄를 일으킨 이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평균 나이는 22살이고 성별은 모두 남성입니다.” “잠깐, 오늘 저 사람들을 만나 보기로 합시다. 일단 쓰레기 처리장으로 가는 동안 내가 중앙정부에 쓰레기처리장과 물류센터의 출입허가를 받도록 하죠.”
항구에 있는 쓰레기 처리장은 거대한 네모 산과 같은 모습으로 항구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쓰레기처리장 건물은 창이 하나도 없는 네모난 건물이었다. 건물 위에는 거대한 굴뚝이 솟아나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수현경감과 케이가 건물의 출입문으로 다가가자 거대한 벽의 일부가 스르륵하고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문 안쪽으로 노란 선을 따라 들어오시면 됩니다.” 바닥에는 노란선과 파란 선이 있었는데 노란선은 게스트를 위한 동선을 일러주는 선이었다. 이수현 경감과 케이는 지시대로 노란선을 따라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노란 선을 따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시면 됩니다. 어디든 다녀도 되지만 노란선을 반드시 지키시기 바랍니다. 지정된 곳 이외에 돌아다니다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비상상황이 발생하거니 요청이 필요하시면 벽에 있는 노란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센터 내부는 겉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은은한 조명 때문에 아늑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곳 내부 지도를 보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노동자들은 여기 지하의 휴식공간에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시스템으로 쓰레기처리가 돼서 노동자들은 잠수부와 청소노동자가 전부입니다. 그들을 보려면 여기 선착장 옆 휴게소가 적격입니다. 그리고 이 건물 가장 꼭대기층에 통제실에 노동자가 한 명 또 있습니다.” 케이가 센터 내부 지도를 이수현 경감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센터의 지하는 바다와 연결되어 선착장과 노동자들의 휴게소가 있었다. “저쪽에 사람들이 나오는 엘리베이터가 보입니다.”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저 엘리베이터 앞에서 좀 기다려 봅시다. 오가는 사람들을 분석해 주세요.”
이 수현 경감은 오늘부터는 김준호 박사를 만나기 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김준호 박사가 원하는 세상이라면 중앙정부의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데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어부의 도시에 왔을 때도 느꼈지만 덩치 큰 사람들이 뭔가 다르게 보였다. 비록 그들이 노동을 하는 3급 인간이어도 이수현경감이 이제까지 만나 본 3급 인간들과는 어딘지 다른 느낌이었다. “경감님도 아시겠지만 범죄 기록이 없는 사람들은 상세한 신상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 나오는 사람들도 모두 간단한 프로필 이외에 자세한 정보는 없습니다. 좀 더 기다려보다가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를 겁니다.” 케이의 말이 맞았지만 이수현 경감은 쉽게 노동자들에게 접근해서 말을 시킬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이 너무 몸집이 컸고 그로 인한 두려움이나 공포가 있었다. 또한 김준호 박사가 이곳에서도 이미 자신의 세상으로 들어오도록 사람들을 포섭해서 인적 네트워크를 지배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솔직한 그들의 상황이나 생각을 들을 수 없을 가능성이 있었다. “저들은 말을 시키기 쉽지 않은 눈빛과 몸집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케이도 이수현 경감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저기 저 사람은 그래도 조금 선량해 보이는데 저 사람에게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요?” 케이가 지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확실히 몸집이 작았고 눈빛은 다소 힘이 없고 멍청해 보이기까지 했다. 케이는 이수현경감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사람이 걸어 나오는 앞으로 다가가 말을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