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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06. 2023

과자로 만든 집

도시스케치_바르셀로나

거리가 검게 보인다. 길도 건물도 먼지를 뒤집어쓴 것 같다. 여름의 끝에 다가 가면 문득 선풍기의 날개 끝에 까맣게 먼지가 끼여있는 게 보인다. 그런 먼지의 색이었다. 이 도시에는 수천 년 동안 바람에 쓸린 먼지가 건물과 길의 테두리에 촘촘히 박혀있는 것 같다. 아니면 기름때와도 비슷하다. 도시 전체가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이른 아침의 까맣게 반질거리는 커다란 자동차 공업사를 닮았다. 가만히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다 보면 냄새도 난다. 기름 냄새는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의 공해 냄새도 아니다. 바닷가에서 나는 비린내도 섞여있다. 나는 이런 냄새를 미국의 뉴올리언스에서 맡아본 적이 있다. 이건 분명히 길 위를 뚫고 올라오는 오래된 하수구의 냄새다.  


오래전 어떤 탐험가는 바다를 가로질러 새로운 땅을 찾아 이곳을 떠났다. 문득 그의 설렘이나 두려움을 일렁이는 바다의 표면을 보면서 느껴졌다. 나도 집을 떠나 무언가를 찾고 싶어서 먼 곳에 나와 있다. 바다 위로 석양이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눈이 부셔서 제대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지중해의 빛은 사그라지는 순간까지도 강했다. 항구를 지나며 내가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들뜬 표정으로 거리를 걷고 있다. 나는 어딘가 들어가서 석양의 뜨거움을 피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거리의 카페와 식당은 먹고 마시는 사람이 넘쳐 났다. 조용히 앉아서 거리를 내다보면서 앉아 있고 싶은 여행자에게 석양이 지는 이 거리는 너무나 소란스럽고 화려하기만 했다.   


나는 켜켜이 먼지가 쌓인 듯한 검은 바닥을 보면서 걸었다. 저물어 가는 태양을 등지고 걸어갔다. 내 앞에 다가오는 도시는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는 표범같이 유연하고 규칙적인 무늬를 가졌다. 심지어 길 위에 사람들과 오토바이가 그리고 자동차가 모두 날카롭게 반짝이는 눈으로 먹이를 찾는 표범 같다. 상점이 있는 거리를 몇 바퀴 돌면서 마땅한 가게를 찾지 못했다. 드디어 몇 번을 지나치다가 골목의 귀퉁이에 있는 작은 젤라토 가게에 들어갔다. 나무로 만든 문이 삐걱 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 사람들은 없었다. 나는 커피맛이 나는 젤라토를 샀다. 커다란 젤라토가 금방 사라졌다. 입안의 달콤함은 내 마음도 부드럽게 만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거리에는 살짝 어둠이 덮여있었다. 표범은 이제 잠들기 위해 몸을 틀어 움츠리고 눈을 깜빡거리며 있었다. 


잠들지 않는 건 사람뿐이었다. 나 같은 관광객들은 아직도 끝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전거가 지나갔다. 돌바닥 위에 통통 거리면서 바퀴가 구르고 그걸 타고 있는 남자는 경쾌해 보였다. 자전거는 쭉 뻗은 골목길을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광장에 있던 수많은 비둘기들은 아직도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미세한 하수구의 냄새도 그대로였다. 

바르셀로나는 유럽의 도시보다는 아프리카를 연상시킨다. 뜨겁고 거칠다. 도시는 잘 구워진 사브레 쿠키 또는 초코칩 비스킷이다. 도시의 질감도 그렇고 색도 그렇다. 게다가 거리에는 동화에서 튀어나온 과자로 만든 집 같은 신비한 건물이 길에 넘쳐난다. 설탕을 톡톡 뿌리고 잘 구워서 살짝 거친 표면을 가진 비스킷들이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 내 눈에는 과자로 만든 집으로 보인다. 과자의 집은 유연하고 단단히 지구의 표면에 달라붙어 살아남았다. 지구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지구의 피부 같이 붙어있다.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가고 나가고 그리고 지나가고 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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