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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03. 2023

바다 위에 산

도시 스케치_남해

눈을 떴을 때는 창밖으로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잔잔하다. 어디선가 스며든 담배연기 같은 안개가 바다 위에 자욱했다. 해가 떠 있다고 늦게 일어난 건 아니었다. 호텔은 조용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직은 이른 시간이다. 남들이 다 가는 장소를 사람들을 피해서 가보기 위해 움직인다. 지금이 그러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호텔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한편에는 이른 체크 아웃을 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키가 꽂혀있다. 언뜻 보아도 다섯 장은 넘어 보인다. 


아침 운전은 눈 내린 길을 가장 먼저 밟고 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낯선 곳을 붐비지 않는 시간에 찾아갈 때는 더더욱 그렇다. 나는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면서 이방인 운전을 한다. 뭐 하나 조급함이 없는 운전이다. 어제 오후에 좀 돌아다녔다고 길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다리를 건너 드디어 섬으로 들어가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보다 한참 높은 지대에 길이 있다. 구불거리며 길이 휘어진다. 나는 바다를 힐긋 거리며 쳐다보며 혼자 탄성을 지른다. 차를 세우고 쳐다보고 싶어도 길이 너무 좁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 혹은 바다가 가까운 해안의 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길의 경사는 몹시 가파르다. 감히 차를 꺾어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길이 아니라 90도 각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다.


간혹 트럭들이 뒤따라 오면 천천히 길을 비켜준다. 끝없이 구불거리면서 왼편 오른편으로 나왔다 사라지는 바다를 본다. 밭이 보이고 논이 보이는 평지도 지난다. 사람은 없고 나는 고요한 풍경 속을 지난다. 이제는 드디어 산속으로 들어간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산길은 양 옆으로 나무가 울창하다. 차들이 정말 한 대도 없다. 

드디어 제1주차장에 이른다. 텅 빈 주차장을 지나 다시 구불거리는 산길을 오른다. 경사가 아주 높다. 이건 내차가 길에 매달려서 올라가는 기분이다. 길은 계속 구불거려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4킬로가 평지를 달릴 때는 금방이다. 하지만 이렇게 경사도 높은 구불 거리는 산길은 이십 킬로는 되는 느낌이다. 차는 역시나 한 대도 없다. 지루하다 못해 무서울 지경쯤 제2주차장에 도착했다. 작은 주차장에 대여섯 대의 차들이 있다.

이제부터는 걷기의 시작이다. 경사도가 있는 길을 걸어 올라간다. 양옆으로는 숲이다. 차로 올라온 높이를 알려주듯이 중간의 전망대에서 보이는 경치가 아름답다. 밑에서는 불지 않던 바람이 몹시 세게 분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별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지도에 쓰여 있던 대로 20분 정도 지나서 드디어 절이 나왔다. 아침이라 계단을 쓸고 있는 사람 한 명을 빼고는 나밖에 없다. 바람은 태풍이 올 것처럼 세게 분다. 나는 절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우선 산으로 올라간다. 대나무숲을 지나고 바위를 지난다. 나무 사이를 지나고 돌계단을 오른다. 아무도 없는데 바람만 나를 따라온다. 돌들이 여기저기 모여있는 정상에서 바다를 본다. 


남해금산. 오래전 시에서 본 이름이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처음 듣는 산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건 어떤 사랑에 관한 시였다. 그때 남해금산에 가고 싶었다. 그 후로 나에게는 남해금산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느낌이었다. 외국보다 더 이국적인 바다와 산에 대한 상상을 간직하게 해 줬다. 그 후 오랫동안 잊힌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의 느낌을 더듬어 여기까지 왔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람은 세차게 분다.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바람 때문에 몸이 흔들린다. 구름 위에 올라와 있는 느낌이 든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잔디밭 같은 섬도 보인다. 바위들도 보이고 바람은 자꾸만 세차게 분다. 남해금산은 시 안에 아직도 있고 여기 이 자리에도 있다. 하지만 내 기억은 많이 소멸되었다. 시가 한 줄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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