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곁에 머문 것들을 영영 잊지 않기 위해
벌써 마른 잎이다. 아직 살아있는 나무의 낱 잎들이 추는 춤의 숨을 숲 깊은 곳 벤치에서 듣는다. 사락거릴 때마다 무언가 사라질 일을, 이내 또 기다리는 일을 생각한다. 이내 떨어지는 잎사귀 끝자락마다 맺힐 지난 일을 기다리는 일을 닮았다. 위태롭게 흔들거리다 바람이 너를 치고 가면, 너는 그제야 됐다는 듯 내 어깨 위로 내려 앉는다. 네가 갈 곳이 거기도 아니었을 텐데, 결국 너는 거기로 가고, 여기에 닿는다.
나는 ‘너의 정원’ 안에 살고 있다. 많은 곳을 돌아 왜 나는 여기에 닿았을까? 내가 잠깐 머무르며 살고 있는 이 곳, 너의 정원에서. 독일식으로 내가 사는 이 거리를 칭하는 이름. 수많은 날 동안 걸었던 많은 발걸음 뒤로 내 그림자가 길다. 내가 늘 밟고 있던 시간의 틈 속에서 내가 거쳐온 많은 사람을 떠올려본다. 평범한 날 동안 나를 감싸던 햇살 같은 순간들, 유난히도 아끼던 시간 동안 함께 한 많은 사람들, 달 같던 얼굴들, 위로가 되던 말들, 내가 너를 잊을 수 없는 이유들, 그리고 어느 때의 별 같던 나를 내 앞에 데려 온다. 나는 참으로 어렸고, 작았다. 내가 만난 이들도 다 그랬다. 나보다 큰 사람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몰라 날이 서 있던 뻣뻣했던 날들을 어렵게 걸어왔다. 여름을 닮은 청춘의 이름으로 미친 듯이 사랑했던 나의 너, 그리고 내가 온전히 나 같던 지난 아름다운 날들을 꺼내온다.
내 곁을 지나가는 것들에 고요히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때라는 것이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숲으로 들어가는 순간일까, 숲을 걷다가 적당한 의자에 잠시 앉아 쉬게 될 수도 있을까, 그러면 그 때의 나는 어떤 숨을 마시고 내쉬면서 삶을 매만지고 있을까? 가을 바람에 못 이겨 이내 떨어지는 나뭇잎들과 생채기 없이 바닥에 쌓여가는 나뭇잎들이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줄 아는 법을 배워간다. 여기를 걷는 이들의 수많은 모양의 발등 위에는 아무것도 아닌 적 없던 그들의 모든 순간의 온갖 무늬가 그려져 있다. 무늬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따뜻한 계절을 훗날 다시 꺼내보기 위해 남기는 작은 모양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적이 없던 각자의 날들을 살아오고 있다. 어제의 나의 정원과, 내일의 나의 정원이 될 곳에서 쓰고 남기게 될 또 어떤 이야기들을 두 손 모아 손에 쥐고, 피고 다시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