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나는 처음부터 나를 이렇게 불렀다. “Meine Liebe.“ 내 사랑스러운 친구. 마음을 열기 충분한 말. 그래서 나도 마음을 활짝 열었다. 로잔나가 말을 할 때의 매끄러운 쇠구슬이 천정에 부딪히는 듯, 오르락내리락하는 리듬감이 참 좋다. 우리는 아침마다 아이 등굣길에서 만난다. 이 부지런하고 의무적인 루틴이 하루를 기분 좋게 해 준다.
그녀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모국어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모양이다. 흥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와 리액션은 약간 힙합 음악 같기도 하다. 이탈리아어는 대화의 공간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느낌이다. 그녀 입술 앞에서 따뜻한 해가 솟는다. 어느 날은 내가 무심결에 한국어로 말한 적도 있는데, 웃긴 건 로잔나도 내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는 거다. 언어는 감정의 매개체라는 말이 진짜였다.
“수영장 오후에 갈 건데, 너랑 카탈리아도 함께 갈래?” 담상담상 피어있던 웃음이 갑자기 일그러진다. 나 사실 조금 힘들어. 우리 엄마가 이틀 전 진단받았어, 폐암. 마음이 쓱싹 쓸리어 찢어졌다. 작년, 소폐암 말기라며 갑작스러운 선고를 받은 나의 시어머니의 일이 생각났다. 결국 오진이었던 해프닝이었던 일, 그때의 나는 지금의 로잔나와 얼마나 달랐고, 또 얼마나 비슷했을까.
나,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안아주는 일 밖에. 아직 검사 전이니 다음 주를 기다려보자. 의사가 구두로 보내온 진단을 내게 들려주고, 비처럼 주룩주룩 울어 버리는 이 친구를, 어설픈 나의 독일말로도 너는 내 마음을 잘 안다고 했다. 여름에 어머님이 한국에서 작두콩을 말려 소포로 보내온 것이 생각났다. 어머님은 말했었다. 내가 꾸준히 작두콩차를 마신 것이 호흡기에 도움 된 것 같아, 물처럼 꾸준히 마신 것이 좋았던 것 같아. 로잔나, 지금 우리 집에 들렀다 가. 내가 뭘 좀 나눠줄게. 두세 개 조각을 뜨거운 물에 부어 잘 우려내서 여러 번 마셔. 자주자주 물처럼 마셔. 자, 봐 이렇게 생겼어. 이 링크를 이태리 말로 번역해서 볼까? 그리고 러시아 캄차카에서 난다는 버섯이 있어. 그게 그렇게 좋대. 그 버섯 이름 뭐였는지 내가 독일어로 번역해서 있다가 알려줄게. 독일에도 있을 거야. 우리 더 알아보자. 나도 계속 정보를 모아볼게. 또 뭐가 좋을까. 걱정하지 마, 응? Alles hoffentlich, ja?
수많은 언어로도 위안이 될 수 없는 시도라도 끝없이, 끝없이 흘러야 한다. 그래야지 슬픔은 눈물을 내보낼 수 있다. 마음의 위로가 얼마나 슬픔의 당사자에게 닿을는지 가늠하지 않는 마음으로 로잔나를 생각한다. 그저 네 손 위에 내 손을 얹고, 너를 안아주던 내 등 뒤로 오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