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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Jul 19. 2021

자기 앞의 생


-마음속으로 영원히 우리 엄마 생각할래요.


우리 아빠가 작아진다. 문장에 가득 담긴 것은 어린이의 울음이다. 나는 어떻게 위로를 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병명이 소설의 글감이 되고, 혈기 왕성한 청소년의 말 놀잇감이 되고, 툭툭 내뱉어질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그런 세상을 지나왔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간절한 마음으로 알츠하이머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아버지가 가장 지키고 싶은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적기 위해서다.


심장 응급 수술을 한 아빠의 안부를 물으러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아빠는 또 시골에 간 모양이다. 그런데 웬 할머니 면회를 한다고.


“왜? 할머니 병원에 입원하셨어?”

“치매가 심하셔서 광주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하셔서 면회 가려고 기다리고 있단다.”


우리 아빠는 효자다. 서울에서 땅끝 마을 해남까지 일주일에 여러 번 다니곤 했다. 할머니는 어린이였던 내가 달이 나를 따라온다고, 그 길은 어떤 길인지를 꿈꾸게 했던 무궁화호에 대한 기억이고, 꽁꽁 묶인 보자기의 매듭만큼 단단한 병풍이었다. 또 우리 아빠에게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모성의 바다이고. 남겨질 것이 있다면 그것 마저도 넘치고 넘쳐흐를 사랑이고.


그런데 전혀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알츠하이머 소식은 나의 아버지를 점점 어린아이로 안쓰럽게 데려간다.


-한 달 전에 갑자기 치매가 와서 지금은 아무도 못 알아보고 계시단다.


할머니는 둘째 아들이 코로나로 자신을 떠날 뻔했던 소식을 들으셨을까? 병원에 있느라 해남을 다녀가지 못한 시간 동안 머리에 그 못된 꽃이 얼마나 만개했던 걸까. 그리고 이제 나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는 나의 할머니를 어떻게 기억해야만 할까. 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꼭 끝이 임박해올 때 더 간절한가. 나는 나의 아버지를 어떻게 위로하면 좋았을까. 아빠 힘내,라고만 했다. 어떻게 해야 마음속으로만 우리 엄마 생각할래요, 라는 메시지에 대답할 수 있을까.


그 길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할머니한테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 어떻게 해.”


“어떻게 하겠니. 시간이 원래 그런데. 나이가 드는 건데. 잡을 수가 있겠니, 어떻게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가 있겠니.”


얼마나 담담하게 내게 말했나. 시간은 너무나 공평하게 흘러 그 시간 동안 누구는 가진 것을 기록하고, 지나간 것을 후회한다. 또 그리워하던 사람을 하얗게 잊기도 하고, 행복했던 일도 새까맣게 칠한다. 내가 여섯 살 때 가마솥이 있었고, 그 앞에서 부지깽이로 불장난을 했지. 아랫목이 따뜻했던 사랑방에서 할머니가 건네는 유과를 먹으며 입술에 흰 가루를 잔뜩 묻힌 내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 할머니를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일까. 그런데 왜 나는 병원 창문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떠오를까. 손톱 사이에 낀 까만 흙은 아마 사라졌겠지. 우리 아빠는 면회를 갔을 때 얼마나 가득 울어버렸을까.


착한 사람은 더 많이 서툴고 더 많이 아프다. 평생을 그렇게 산 내 할머니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그런 엄마를 평생 놓지 못하겠지. 요양원을 거쳐 거기서도 손을 쓸 수 없어 요양병원으로 보내진 할머니를 아빠가 마지막으로 봤었을 봄에 대해 물었다.


“아빠 코로나 입원하기 전에는 할머니 어땠어?”

“그때는 좋았지. 같이 밥 먹고 놀고 웃고 했지.”


자기 앞의 생을 살았던 사람을 추억하는 쓸쓸하고 영원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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