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로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 어두운 방의 벽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반대쪽 벽에 외부의 풍경이 비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곳을 찾았다.
내가 살던 도시에 설치된 이 방은 가끔 도망치듯 삶으로부터 도주하다 잠깐 뒤돌아보고 싶을 때 들어가기에 더없이 좋았다. 8년째 불면증인 우리 엄마가 이런 방에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여름의 거리는 태양이 땅을 뚫을 기세지만 그곳은 안전했다. 사방을 암막커튼으로 두른 채 주인공이자 외부인을 기다리는 작은 공간은 모든 것을 피할 수 있던 완벽한 타인의 공간이었다.
이토록 로맨틱하고 기괴한 공간 속에는 정육면체의 상자가 거울로 된 원형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커튼 속 공간에는 상자뿐이었으므로 나는 상자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뚫린 아주 작은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댄다.
벽에 구멍이 있는 어두운 방, 그 속에는 작은 치마를 입고 팔을 동그랗게 올린 발레리나가 있다. 뒤편으로 눈이 부시게 초록 초원이 펼쳐진다. 언제가 목동이 살았다면 당나귀도 함께 오르기도 했을 동그란 언덕과 그 위에 담상담상 피어난 민들레도 있다. 불어난 시냇물이, 시큼한 밤나무가, 오래전 밟고 울었던 눈밭이 있더니 갑자기 계절이 바뀌어 내가 혼자 앉아있던 카페의 붉은 지붕 위로 플라타너스가 떨어진다.
온통 검은 세계 속에 내가 본 것들은 불안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세계였고, 가장 먼 과거였다. 방 속의 상자는 나를 크고 작은 세계로 데려간다. 나는 눈을 여러 번 깜빡였고, 그때마다 모든 것을 인식했고, 본 것들을 가슴속 깊이 파놓은 우물 속에 파묻었다. 비가 와도 커튼 속 방은 젖지 않았고, 밖에서 길을 걷다 맞은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우물에 한 방울 씩 떨어지는 것을 깊고 진한 초점으로 바라본다. 계몽이라고 하는 세계가 왔고, 여전히 빛은 따갑다.
가끔 여길 지나는 사람이 까만 커튼 속으로 들어올 때면 나처럼 탁자 위에 놓인 상자 위에 얼굴을 놓고 작은 구멍을 바라보길, 그리하여 나처럼 한 번, 두 번 미소 짓길, 깊은 우물에서 비치는 풍경을 눈앞에 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