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깨끗한 피부에 예쁜 얼굴을 가졌는데 눈과 눈 사이에만 선명한 주름이 진 친구가 있다.
몸이 약했던 친구는 어릴 때부터 여러 번 했던 수술 때문에 통증에 특화된 주름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래선지 조금 이르게 표정이 고정되었고 그것 때문에 조금은 우울한 인상이 되었다.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주름이 자리 잡기까지 크레이프 반죽처럼 쌓였을 고통과 괴로움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그것들이 부유물이 되어 피부세포에 켜켜이 내려앉아 새겨진 것일까?
때론 미간에 새겨진 주름은 '성질머리'로 인식되기도 한다.
'말 안 듣는 아이가 있나?'
'식구들과 언성을 높이다 생겨났나?'
'조바심 내는 조급함이 주름을 만들었나?'
'에고가 강한 사람인가?'
'몸과 마음에 통증이 있나?'
머릿속으로 두더지 여러 마리가 동시에 올라오지만 적중할 때보다는 틀려서 놓칠 때가 훨씬 많다.
새벽에 일어나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신다.
세수를 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과거엔 희미하게 흔적만 있었던 눈썹 사이의 '내 천(川)' 자가 더 선명해졌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미간에 새겨진 시냇물은 떠내려갈 줄 모른다.
붙박이 주름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내 주름을 본다면 떠올릴 질문은 어떤 것일까? 주름진 사람의 진짜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처음부터 덜그럭거리며 잘 읽히지 않는 인문학 책을 후벼 팔 때의 고민으로 생긴 것이고,
몇 시간 원고를 들여다보고 흐릿한 시야를 모은 끝에 맺힌 땀방울 같은 것이다.
초점이 맞지 않는 다초점 안경을 위아래로 조절하며 문장의 의미를 캐내고 또 캐내어 내 정신에 수혈하며 고심한 흔적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 미간 주름의 정체는 집중이다!
그렇게 읽은 내용과 통찰이 내게로 스며들어 제대로 기억하고 똑띠 알아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역부족이다. 될 때도 있는데 안될 때가 더 많다. 될 때가 더 많아질 수 있게 하고 또 하고 거듭되는 반복을 쌓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좌충우돌 흐른 시간들이 이렇게 얼굴에 흔적을 만들었다.
그래도 좋다.
좀 몰라도, 좀 못해도 난 콩나물 같은 사람이니까 물을 계속 준다면 언젠가 노랗고 기다랗고 튼실한 콩나물이 자랄 것이다.
함께 읽는 새벽 독서를 만나기 전 나의 책 읽기는 주제도 목적도 없이 입이 심심한 사람 주전부리하듯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잡다구리 독서였다. 유행하는 웹소설이나 웹툰을 제외하고는 에세이, 소설, 자녀교육서, 시집 등 가리지 않고 그냥 읽었다.
그래선지 기억에도 마음에도 남지 않았다. 나중엔 독서 기록만 덩그러니 적혀있는 것을 들춰보곤 놀라곤 했다.
어, 나 이런 책도 읽었어?
지금은 사람마다 다른 모양과 증상으로 진찰을 받듯 개인코칭을 받는다. 이어서 마구잡이 독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사고나 정신을 세울 체계적인 독서처방을 받으니 독서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코칭과 독서가 이끌어주는 과정에서 자기 계발은 저절로 따라오는 열매가 된다. 읽은 책을 사장시키지 않고 토론으로 나누며 새롭게 깨달은 것을 삶으로 구현한다.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 되려면 삶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마음의 특성을 계발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특성에 집중하고, 생각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사악한 특성은 사용하지 않아서 굶겨 죽여야 완전히 제거될 수 있다.
- 나폴레온 힐/ 황금률
그래서 나는 지난날의 게으르고 사악한 특성을 가차 없이 버리고 새로운 특성을 키우고 성장시켜 나가기로 했다. 명석한 지각을 사용해서 내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고 스스로의 내부에서 엄격히 구별해서 목적을 향한 한 걸음씩만 옮기기로 한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나에 대해 배우고 알고 내 정체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나에 대한 앎을 간직하는 것은 내 본질과 가능성을 계속 탐구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을 의미하니까. 이는 마치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확장하듯이 존재가 자신의 고유한 무늬와 잠재력을 드러내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내 안의 앎을 넓히기 위해 나는 물 주기를 멈출 수 없다.
콩나물은 쑥쑥 자라야 한다.
나를 실현하는 즐거움과 기쁨에 흠뻑 빠질 때도 있을 것이고 남루한 자신을 발견할 때는 한없이 추락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꿈틀거리는 성장 앞에서 그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집중의 미간주름은 더 깊어질 것이고 그에 비례해서 나는 계속 성장할 것이다.
주름 곁에 나란한 슬기 한 알
주름 사이에 누운 통찰 한 땀
주름 안에 새겨진 지혜 한 줄
주름이 내게 가져다줄 것들이 정신의 주름을 펴 줄 것이다.
*헬렌 슈크만, 기적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