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공저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우리는 뜨거운 지난여름을 더 뜨겁게 만들었고 소슬바람 일렁이는 가을도 등 뒤로 넘겨버린 계절을 살고 있었다.
그 글들을 읽으며 나는 그들이 자신과 싸우면서 칼 같은 정밀함으로 정신의 날을 푸르게 벼린 흔적을 발견한다. 표면적으로는 겨우 두 편의 편지글을 쓰느라 몇 개월을 고군분투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린 그랬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글이 아니다.
스스로의 상처와 고통이 서린 밀도 높은 시간들을 녹여내어 부실한 정신을 바로 세우는 담금질을 문장에 새겨 넣은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 대기 중을 떠돌 뿐,
덕스러운 풍채와 신념을 지켰으나 스스로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거꾸로 남들에서 그런 미덕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 사랑스러움은 말하자면 그들과는 완전히 별개여서 그들이 없다 해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과 가까이 있을 때에는 눈에 보이진 않았으나, 그 사랑스러움이 우리를 시중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미덕은 다른 이들을 인정하는 만큼만 우리의 것이 된다. 자신이 갖고 있는 만큼만 보이기 때문이다.
* 소로의 일기- 청년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이 글은 나와 그의 마음이 일치하는 환희 앞으로 데려간다.
나도 공저를 하며 그런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자신의 존재를 만드는 공저의 말똥구리들.
각자 자신의 정신을 해체한 후, 책 속의 영양분을 흡수해서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들이고 함께 나누는 사람들.
그들은 순수하고 타협하지 않는 정신의 곳간을 채우고 있다. 자신과 상대를 비추는 통찰의 빛을 지녔으나 그것을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남에게 있는 포용력이나 명민함, 지혜의 미덕을 알아본다.
그들의 사랑스러움은 그들과 별개라는 소로의 말에 공감한다. 그 사랑스러움은 새로운 에너지로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 비록 직접 얼굴을 대하지는 못하지만 화면 안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에너지와 사랑스러움은 또 다른 동기를 일으켜 선순환의 회오리를 창출한다.
나는 이들의 잠재력과 미덕을 지금보다 더 많이 알아보기를 원한다. 다른 이들을 인정하는 만큼만 나의 것이 된다니 나를 더 확장해서 서로를 담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들의 글은 잠자고 있던 내 정신에 찬물바가지를 붓는다.
진짜 찬물바가지를 뒤집어쓴다면 얼마나 화가 날까? 그러나 타성에 젖은 정신의 가슴에 진동이 울리도록 영감을 준다. 그래선지 그들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명치께가 근질근질하다. 찬물바가지가 아니라 감동바가지를 부어주는 사람들이다.
이제 다시 그들을 만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지만 얼음장같이 선명한 정신의 주인들과 나의 정신이 조우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소고집과 에세이와 소설이 탄생하는 자리에 더 넓은 세계로의 초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이제 책이 출간되면 이 책은 또 어떤 사람들의 정신에 진동의 주파수를 발신할 것인가?
아낌없이 나누어준 그들의 진심이 글에 담겨 독자에게 가닿을 것이다.
그래서 독자의 정신을 흔들고 마음을 펼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마음껏 독려할 것이라고 믿는다.
어제보다 새로운 나를 만들고 그것을 결과물로 창조한 우리들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