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자신의 신성한 생각을 부끄럽게 여긴다. 예정조화에 순응하는 태도를 신중하다거나 알맞은 태도로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겁쟁이를 통해서는 결코 그 어떤 일도 시도하지 않는다.
구원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의 재능을 내버려 두는 한 우리 곁에는 그 어떤 영감도, 창조도, 바람도 없다. 자신을 믿어라, 우리의 마음은 강철과 같은 진리에 진동한다. 신의 섭리가 당신에게 마련해 준 자리를, 당신과 그 시대 사회를, 모든 일의 연결 고리를 받아들여라.
자기신뢰 철학/영웅이란 무엇인가-랄프 왈도 에머슨 p. 27
모든 일의 연결고리.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안전한 줄 알고 살았는데, 지금 보니 그게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
며칠 전 아들이 내게 와서 와다다다 털어놓은 내용은 이랬다.
길에서 배터리가 꺼진 아*폰을 주웠다. 화면이 켜지지 않아서 폰주인이 전화를 한다고 해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집으로 갖고 왔다. 폰을 충전시키고 나니 바로 폰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위치를 알려주며 가지러 오시라고 했고 주인이 집 앞으로 폰을 가지러 왔다. 주인에게 돌려주니 너무 고마워했고 작은 사례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들은 괜찮다고 하며 거절했고 바로 돌려보냈다.
그 말을 하는 아들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턱을 치켜들며 '나 이런 남자야!' 하고 너스레를 떤다. 아들의 자부심에 호응하느라 나도 엄지를 들어줬지만 뒷맛은 쓰다.
아들의 행위는 보답을 받았다고 해도 비난을 받을만한 일은 아니지만 보답을 받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을 유발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그 당연한 일이 점점 특별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사람을 생각하는 도덕적 기준이 점점 낮아져서 도처에서 안전을 위협받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히 인간의 안녕을 최우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이 남에게서 기대하는 것들이 줄어들면서, 기본적인 인간의 행동조차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이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지켜야 할 인간적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안전을 위협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안전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결여를 의미한다.
인간 사회에서의 도덕성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윤리가 자주 칭찬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안녕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도덕적 행동이 '특별한' 것으로 부각되는 사회란 본질적으로 관계와 신뢰가 약해진 사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색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나 보다.
내가 속한 사회와 시대의 맥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게 정말 옳은지는 개인이 깊이 상고해 봐야만 한다. 개인의 경험과 그 시대 상황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것들은 과거에 내가 선택했던 결과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