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헌 날이 가고 새 날이 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일이라는 말보다는 '새해'라는 말에 더 많은 의미부여를 한다. 어쩌면 먼지 쌓인 일상에 기존과는 다른 전복을 꾀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새해라는 날에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각자가 자신의 길을 계획하지만 그 길을 인도하는 건 나의 의지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하루'라는 완성품을 이루는 건 나다. 내 생각이라는 기준을 벗어나 대법의 기준안에 나를 두고 라인 밖에서 커지는 나를 만나야 한다.
오늘의 시도는 이렇다.
김우창 교수의 책을 처음 읽었다. 대단한 석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었는데 몇 장을 넘겨
예이츠의 시를 만났을 땐 요한계시록 속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예이츠가 시를 쓸 당시 직면했던 문제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지금에 이르렀다.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불안, 인간의 불합리성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면 거기엔 그것이 존재하게 된 필연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우창 교수는 그 이유로 확신의 소유 또는 결여를 말하고 있다. 예술적 균형을 보여주는 문명에 통일성이 없어지고 사람의 삶에서도 존재의 통일성이 사라지면 폭력성이 늘어난다고 한다.
어렵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 책을 읽으며 작은 일 하나에서도 전체를 보는 시야가 생겼으면 한다.
넓어질수록 날카로워지니까.
하나만 바라보는 답답함에서 벗어나 관점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멀리 보는 눈이 필요하다.
움직임의 마음을 갖는 것
밖으로부터 오는 것에 대응하여 움직이면서 그것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로 엮어내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연마된 마음은 대상 세계에 민감함을 유지하면서도 거기에서 오는 압력이나 강박에 초연하다고.
그래서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남들처럼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통찰을 가지는 것.
어떤 일에서 봐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
그것을 얻고 싶다.
오래 걸리겠지만 이 책이 그 눈을 키우는데 일조할 것이다.
종일 일 속에 파묻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일을 하면서 잠시나마 세계 속에서의 나를 생각했다. 이곳에서 나는 통일성에 이르고 있다는 생각, 완성된 나를 만나기 위해 지금이 필요하며 더 궁극적이고 순수한 의지를 지키기 위해서 이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
책과 생각이 만나는 지점이 생활을 만들고 삶을 더 분명하게 만들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