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주인

by 캐리소



동네 어르신들이 밭에서 일한다.

고랑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는 이십 걸음 남짓이다.

아고, 되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더한다.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밭 옆을 지나는 내게 실려 온다.


거실 안마의자가 제 몫을 하고 있다.

휴일까지 일에 몰려 있는 남편이 안마의자 위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다.

피곤을 씻어낸 후 저녁식사를 막 끝낸 참이었다.

조용히 코 고는 소리가 하루의 무게 위에 놓여 있다.


쇼펜하우어는 어떤 관계에서든, 본질적인 요소들이 늘 살아 꿈틀거리기를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생을 다소 비관적인 어조로 그린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소로우를 떠올렸다. 일상은 수많은 생존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고 본질은 속으로 숨어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고통과 투쟁으로 일관한 인생은 다른 생명체들의 생존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대체로 사업에 골몰하면서 삶 대부분을 보낸다. 영혼은 진공상태를 혐오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고귀한 능력을 꾸준히 발휘할 만한 일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게 실망에 빠지지 않기에 그다지 한탄하지도 않는다. 잠시 노고에서 벗어날 때 즉 잠시 게으름에 빠져들 때 병마와 죽음이 찾아온다. 아니면 가족과 그로 인한 의무와 미혹이 찾아온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다. 내가 아는 한 유럽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내 인생 일대기의 한 국면이나 모습일 따름이다. 터키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신문이 내게 알리는 외신 기사들 대부분도 나의 내적 사고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소로의 일기 _ p. 331



대체로 이렇게 사는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

크게 실망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잠시 잊어야 견딜 수 있었다.

내면이 텅 빈 상태를 견디지 못해 계속 무언가를 채우려 했다.

실망을 발판 삼아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만한 일을 찾은 지금, 그 방향을 향해 성실하고 근면하게 걸어가려 한다.

때론 멀리서 들려오는 뉴스 속 내용이 내 안의 사유와 감정의 한 장면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주변에 흙을 일구는 어르신들을 마주치고, 피곤에 잠든 사람의 일상을 만난다.


이곳에 있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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