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설레는 처음

1~5일의 기록

by 수련

1일차: 서울을 떠나 제주로, 새로운 시작의 첫 걸음


서울에서 매일같이 스트레스에 치이며 살던 2024년 가을,
파트너가 문득 말했다.
“제주에 내려가자. 거기서 창업을 하자!”


나는 No라고 말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 가자.”


그렇게 겨울, 4년간 살던 전셋집 계약이 끝나자마자
고양이와 함께 짐을 꾸려 제주로 내려왔다.
서귀포 칼 호텔 근처에 임시 숙소를 구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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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단순하지만 선명했다.
조용하고, 공기 좋고, 따뜻하다.
이 세 가지면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예비창업패키지(예창패)’라고 불리는
정부의 창업 지원사업을 신청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작년의 예창패 서류를 열어보았다.
기입해야 할 칸이 참 많았다.
그리고 문득, 질문이 스쳤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사실, 명확한 창업 아이템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막연히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고민이 있을 때면 무작정 걷는 게 습관인 나는
숙소 근처 올레 7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올레길이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이 지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떠오른 단어는 “관광”.
그리고 내가 자신 있는 분야는 “기술”.


‘내가 잘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창업의 첫 발걸음을 때기 시작했다.


2일차: 서귀포 도서관에서 찾은 한 줄의 영감


제주에 내려와서 두 번째 아침.
오늘은 마음속에 가득한 물음표들을 안고 서귀포 도서관에 갔다.

나는 예전부터 고민이 생기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습관이 있다.
모르는 게 생기면, 일단 책을 한가득 쌓아두고
무작정 읽기 시작한다.

책 한 권에서 단 한 줄의 인사이트만 얻어도,
그 하루는 나에게 큰 수확이다.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나는 예술가이고, 기술가이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제주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일까?

머릿속에서 자꾸 맴도는 기술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나는 이 기술들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고,
그걸 활용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보고 싶다.

이야기와 기술의 접점.
그건 아마도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명확한 아이템은 없지만,
하나하나 생각을 채워가는 이 과정이
나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3일차: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주의 이야기를 만들기

오늘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데스크 리서치를 했다.
제주도에도 나처럼 고민하고,
창작하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


하지만 그 모든 걸 ‘동시에’ 하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건 내가 해봐야겠다.”


제주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도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예술과 기술의 융합된 콘텐츠로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이렇다.
풍경 속 이야기를 디지털로 풀어내고,
기술로 감각을 확장시켜,
관람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


누군가는 기술을, 누군가는 예술을, 또 누군가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조금씩 다룰 줄 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는 작업,
내가 해보는 건 어떨까?


하루 종일 리서치하며,
이 생각이 점점 내 안에서 선명해졌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이야기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4일차: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필요한 이야기로

오늘은 서귀포 스타트업베이에서
마케팅과 브랜딩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강연자는 인스텝스의 김기현 대표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얻은 인사이트는 꽤 깊었다.


예술을 하며 살아오며
나는 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왔다.
그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창업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몸으로 익히고 있다.


물롬 그 과정이 쉽진 않다.
진심으로, 아직도 뇌에 힘을 꽉 주고 있다.

‘남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최근 배운 기법 중 하나가 바로 Fake Door Test.
실제로 제품이 없는 상태에서도
랜딩페이지를 만들어 반응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광고를 집행해보고,
어떤 광고에 사람들이 더 반응하는지를 분석하는 것.


데이터가 곧 대답이 된다.
그들의 선택이, 내가 할 이야기의 방향이 된다.


나는 단지 지원사업을 위한 지원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
정말 사람들이 원하고,
정말 필요한 무언가를,
그런데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보고 싶다.


� 오늘의 인사이트
라밋 세티가 말한 ‘85퍼센트 솔루션’이 떠올랐다.
완벽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에 스스로 갇히기보다,
몇 가지 단순한 것에 집중해
그날 하루를 완성하는 것.

지금 내겐 이 말이 참 위로가 된다.


5일차: 바람 부는 날, 창밖 대신 안쪽을 바라보다

오늘 제주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창밖의 바람 대신, 내 안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하루였다.


나는 미대를 졸업했고,
예술과 기술을 융합한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그리고 미디어아트 회사에서
기획자이자 기술 연구자로 일을 해왔다.


요즘 미디어아트는 정말 ‘핫’하다.
빔프로젝션을 활용한 미디어파사드,
LED 패널을 통해 공간을 채우는 디지털 콘텐츠,
그리고 디스트릭트의 파도처럼 아나모픽 기법까지.

이 트렌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동안의 내 궤적을 돌아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가진 기술과 경험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 마침내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이건 내가 할 수 있고,
분명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일 수 있어."


하지만,
내 안의 확신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누군가에게 필요한지,
그걸 검증해야 한다.


그리고,
혼자서는 그 검증이 어렵다.
혼자 머릿속에서만 굴리는 생각은
언젠가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피드백,
그리고 함께 고민해줄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지금,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이 하루는 바람처럼 지나갔지만,
내 안에는 무언가 뚜렷한 것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
‘나만의 방식으로 창업을 한다’는 결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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