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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국

공직자 2

by THERISINGSUN Mar 10. 2025

윤성국은 50대 중반의 중앙부처 국장(2급)이다. 국장이지만 보직이 없는 국장이다. 여러 가지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사무처에 대기발령 중이기 때문이다. 한때 그는 제일 잘 나가는 공직자였다. 대학 재학 중에 5급 공채 시험(考試)에 합격했다. 흔히 말하는 소년등과다. 서기관(4급) 승진을 부처에서 최연소로 했고, 부이사관(3급) 승진은 전 부처에서 최연소였다. 그리고 통상 고시 출신도 4급 과장 정도인 40대 초반의 나이에 국장이 됐다. 역시 전 부처에서 최연소였을 것이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던 그는 직업공무원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인 실장(1급)에 올랐으나 차관 승진 직전에 급전직하 추락하고 말았다.


명문대 법대 재학 중에 소년등과 한 윤성국의 강점은 스마트한 두뇌지만, 그 두뇌에 기반한 슈퍼컴퓨터급 계산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다. 그는 누군가가 또 어떤 일이, 자신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를 신속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계산한다. 득이 되는 윗사람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자신에 대한 충성의 대가로 각종 하사품을 내려준다. 그리고 득이 되는 일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끌어와서 부풀리고 포장한다. 누가 봐도 대단한 업적으로 만들어낸다. 득이 안 되는 일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명쾌한 논리로 그 자리에서 쳐내버린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는 그만의 계산능력이다.


그런 탁월한 계산 능력과, 그래서 가능했던 처세로, 윤성국은 스스로 기록들을 경신해 가며 최연소 국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것이다. 중앙부처의 국장은 대기업으로 치면 임원이고 군으로 치면 장군이다. 국장이 되면 그 아래 4~5개의 부서, 30~40명의 직원들이 배치된다. 개인 집무실과 비서가 배정되고 법인카드가 지급되며 필요시 관용차량과 기사를 이용할 수 있다.


모든 조직은 목표를 가지고 있고, 효과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인사와 보상체계를 운영한다. 높은 자리로의 승진, 좋은 자리로의 영전, 국비 유학, 성과급, 표창 등으로 목표 달성을 독려하고,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실시하는 것이다. 국장이 되면 그런 것들을 누구에게 줄지를 결정하는 모든 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이 된다. 윤성국은 국장이 되자마자 위원회들을 장악했다. 특유의 계산 능력과 처세, 그리고 화술로 선임 국장들을 압도했다. 그는 늘 장관과 차관의 인정을 받았고, 장관과 차관의 권세로 호가호위했다.


윤성국에게도 흑역사는 있다.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이 제일 잘 났고 자신의 판단이 무조건 옳다. 그런데 자신이 무시를 당하거나 자신의 의견이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소문에 의하면 복수 기술의 핵심은 이간(離間)질이다. 절대 자신은 드러내지 않는다. 장관과 차관의 지시를 빙자하고, 자신에게 충성하거나 자신에게 약점이 잡힌 이들을 통해 적을 제거한다. 이러한 사람을 통한 이간질과 자신이 가진 인사권으로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나 못마땅한 하급자들은 손쉽게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상급자나 정치적 뒷배를 가진 적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때 사용하는 기술이 투서(投書)질이다. 적의 약점을 조사하고 파헤쳐서 상위기관이나 사정기관에 익명의 투서를 보내는 것이다.


윤성국을 보며 갖게 되는 의문이 있다. 굳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그는 좋은 학벌과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소년등과를 했고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최연소 승진을 거듭했다. 공직사회에서 모범이 되고 국민들에게도 사랑받는 훌륭한 공직자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자신이 이미 가진 것들이 그 누구보다 넉넉해서, 주위를 돕고 나누고 베풀어도 부족해지기는커녕 더 풍성해졌을 텐데, 왜 그렇게 전쟁하듯 치열하게 살았을까.


자타공인 실력도 처세도 최고인 윤성국은 직업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1급의 한계를 뛰어넘어 차관으로 무난하게 승진할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 그런데 차관 한 자리를 놓고 고시 선배이자 부처의 또 다른 실장인 강기준과 경합하는 상황이 됐다. 순리대로 하자면 선배인 강기준을 먼저 승진시키고 자신은 다음 기회를 기약했으면 됐을 텐데, 그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강기준을 선배로 인정하지도 않았던 터다. 실력도 없으면서 몇 살 더 먹고 시험에 몇 년 일찍 합격했다는 이유로 선배 노릇하려는 것이 늘 거슬렸었는데 자신이 가야 할 차관 자리를 양보하고, 더욱이 상관으로 모실 수는 없었다.


윤성국은 자신을 따르는 과장들을 시켜 강기준의 뒷조사를 시작했다. 강기준의 30년 근무기록을 확보해서 뭐든 문제를 삼을만한 사실들을 샅샅이 뒤졌다. 또한 부처 내에 떠돌던 강기준에 대한 나쁜 소문들도 수집했다. 근거가 있는 사실들과 정황만 있는 소문들을 적절히 버무려서 투서를 완성했다. 누가 봐도 강기준은 파렴치한이었다. 차관은커녕 당장 공직에서 물러나게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는 투서를 익명으로 감사원에 보냈다. 늘 그랬듯이 감히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강기준은 낙마할 것이고, 자신은 곧 차관이 될 것이다.


사실 윤성국은 오래전부터 정치권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공직사회의 본질이 일(公職)이 아닌 정치에 있음을 간파하자마자 공을 들여 구축했던, 그의 성(城)을 둘러싼 해자(垓字)다. 그는 정치의 힘으로 공직사회에서 정상에 오른 뒤 정치로 옮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려면 하루빨리 차관이 되어야 하는데, 다행히 모든 게 자신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됐다. 여당의 실세들이 힘을 실어주고 있고 대통령실도 자신을 차관 후보 1순위에 올려놓은 상황이었다. 그걸 아는 장관도 자신을 적극 밀고 있었다. 이제 걸림돌인 강기준만 사라지면 된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일어났다. 강기준은 차관이 됐고 윤성국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강기준의 뒷조사를 맡겼던, 자기 사람이라고 믿었던 한 과장이 강기준으로 라인을 갈아탄 것이었다. 강기준은 윤성국이 자신에 대한 뒷조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역으로 증거를 수집하며 반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윤성국이 강기준의 뒤를 밟으면 밟을수록, 강기준은 윤성국의 뒤를 더 캘 수 있었다.


윤성국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철옹성의 한쪽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자 이내 성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를 건드릴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감히 그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강기준에 대한 무고, 명예훼손,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윤성국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그간 그의 일격에 숨죽이고 엎드려 있던 적들이 일제히 일어난 것이다. 그에 의해 승진에서 탈락하고 기피부서에 처박히고 최하 성과급을 받았던 이들이 윤성국의 악행들을 낱낱이 기록해서 검찰에 제보했다. 또한 자신이 당한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하기까지 한 불이익을 그저 관운이라고만 여겼던 이들도 그 배후가 윤성국이 있었음을 알게 됐고 제보에 동참했다. 윤성국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쐈던 갑질, 이간, 투서의 화살들이 그대로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윤성국의 성은 철옹성이 아니었다. 모래성이었다.   


여기 30년 전 공직에 막 입직하던 윤성국이 있다. 소년등과로 5급 공채 합격하며 유명세를 치렀던 그의 인터뷰가 당시 한 일간지에 박제되어 있었다. “막연하지만 어려서부터 어떤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법학과에 진학했고, 1학년 때부터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대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던 시절이어서 사회 문제에 참여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이 심적으로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더 의지를 다졌습니다. 이제 기회가 주어졌으니 신나게 일하고 싶습니다. 대학시절 운동권 친구들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을 늘 잊지 않겠습니다.”


윤성국의 몰락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다. 그런데 어떤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꿈을 꾸는 듯한 소년의 맑은 얼굴, 자신이 공부할 때 학생운동하던 친구들에게 마음의 빚을 가졌던 젊은이의 빛나는 얼굴,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신나게 일하고 싶었던 한 공직자의 믿음직한 얼굴이 어른거린다. 명석한 두뇌와 탁월한 판단력을,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가 아닌,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데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쩌면 권력과 인사권으로 대변되는 먹이사슬에 갇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 아닌 위에서 원하는 일을 해야만 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자가 아닌 영리하게 정치를 하는 자가 살아남는, 우리 공직사회가 윤성국을 괴물로 만든 것은 아닌지. 우리는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현재를 바꿔서 다시는 초심을 잃고 방황하는 공직자가 나오지 않는, 그런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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