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도자를 찾아서 3
앙겔라 도로테아 메르켈(Angela Dorothea Merkel, 1954~). 독일연방공화국의 제8대 연방총리로 16년간(2005~2021) 재임했다. 메르켈은 독일 역사에 수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최초의 여성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 역대 최장수 총리, 그리고 역사상 최초로 자발적으로 퇴장한 총리다. 또한 메르켈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정치인이었지만, 수많은 별명들을 얻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Forbes), 자유 세계의 총리(TIME), 서방 세계에서 신뢰할 만한 마지막 정치 지도자(NYT), 두 번째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여인, 유로존 위기를 극복한 구원자, 그리고 무티(Mutti, 엄마)다.
메르켈은 1954년 함부르크에서 목사인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 교사인 어머니 헤어린트 카스너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이름은 '앙겔라 도로테아 카스너'였다. 아버지는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해, 함부르크대학에서 학업을 마쳤고 라틴어와 영어를 가르쳤던 어머니는 사회민주당 당원이었다. 태어나고 몇 주 후 부모님과 함께 동독으로 이주했는데, 아버지가 당시 동독에 속한 브란덴부르크주 지방의 개신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족은 목사관에서 살았으며, 독일 통일 이전에는 공산국가였던 동독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아버지는 목회에 어려움을 겪었다.
1957년부터는 동생 마쿠스, 이레네와 함께 브란덴부르크지방의 작은 도시인 템플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71년에 기술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수학과 어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특히 러시아어는 경시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명문 라이프치히대학에 진학했고 물리학을 전공해 1978년 석사학위, 1986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은 <양자화학적, 통계적 방법에 기반한 단순결합 붕괴와 그 반응상수 계산 메커니즘에 대한 조사>로 탄화수소의 반응속도 상수 계산에 대한 내용이었다.
메르켈은 1978년 동독 국가보안부(슈타지)의 일자리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고, 이런 이력으로 인해 훗날 동독 출신들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당시 슈타지의 기록에는 메르켈의 동독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와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의사에 따라 운영되는 자유노조를 주장한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에 대한 동조적 성향이 기재되어 있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는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양자화학분야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동안 그녀는 자유독일청년회(FDJ) 과학 아카데미에서 지구선도위원, 선전부 의장을 지냈다. 1989년 결성된 민주개혁(DA)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후에 대변인이 되었다. 1990년 민주개혁과 기독민주당(CDU)의 합당으로 기독민주당원이 되었고, 헬무트 콜 내각에서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 1994년 환경부 장관이 되었다. 2000년 기독민주당의 첫 여성 대표로 선출됐고, 2005년 사민당과 대연정에 성공하면서 독일의 제8대 연방총리가 됐다.
메르켈은 앞서 언급한 세계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세출의 지도자다. 그녀에 대해서는 정치 지도자로 한정하고 싶지 않다. 그녀는 정치를 통해 정치를 뛰어넘는 수많은 가르침을 남긴 지도자다. 첫째, 메르켈은 정치에 대한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접근이라는 정치 혁명을 일으켰다. 메르켈 이전의 독일 정치계는 남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며 권력 획득 수단으로써의 정치를 하는 남자들의 모임이었다. 그랬던 것을 양자화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물리학자 출신의 메르켈이, 정책 토론이 핵심인, 사실 기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정치로 바꿔버린 것이다. 특히 정치가 양극단으로 분열될 때 메르켈은 문제에서 ‘정치적 요소’를 제거하고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상황을 진정시키고 해법을 찾아내는, 마치 물리학 실험 같은 능력을 선보였다.
메르켈은 정치에 입문한 이후 24년 동안 단 한 차례의 스캔들이나 부패 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다. 그녀의 실용주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냉철한 평가가 가능하고, 그 결과는 신뢰감이다. 그녀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정적의 정책도 거리낌 없이 실행했다. 2005년 총선 당시 경쟁자이자 전임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어젠다 2010’를 계속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어젠다 2010’은 노동 유연성과 실업 급여, 임금 삭감을 골자로 한 슈뢰더의 경제개혁 정책으로, 국민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슈뢰더를 패배하게 만든 정책이었지만, 메르켈은 독일에 필요한 경제개혁이라고 판단했고 과감하게 추진해 버렸다. 그리고는 “슈뢰더는 경제·복지 개혁을 추진해 독일 경제에 큰 도움을 줬다. 현재 독일의 성공은 슈뢰더의 헌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모든 공을 전임자에게 돌렸다.
둘째, 메르켈은 통일 후 내리막길을 치닫던 독일 경제를 기적적으로 회복시켜 두 번째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여인이 되었다. 그녀가 집권했던 2005년 당시‘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재임 기간 유럽 1위,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면서 유럽의 패권 국가가 됐다. 2005년 독일의 실업률은 11%까지 치솟았었다. 그러나 그녀는 예의 그 철저한 과학자적 실용주의와 취임 닷새 만에 유럽연합 재정 프로그램을 마스터해 당시 유럽연합 재정위원장을 놀라게 했다는 뛰어난 경제 감각으로 독일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녀가 취임한 이후 독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영국·캐나다·일본·프랑스의 2배 속도로 증가했다. 또한 그녀의 최대 공적으로 꼽히는 고용 창출은 특히 여성·난민·고령자에게서 크게 확대됐는데, OECD에 따르면 25~64세 독일 여성의 노동 참가율은 80%로 주요 7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메르켈 퇴임 시점의 실업률은 5%로 낮아졌고 70%에 달하는 독일인들이 자신의 경제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메르켈이 불과 몇 년 만에 독일 경제를 소생시킨 덕분에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 불황을 이겨낼 수 있었고, 훗날 유로존 위기가 유럽연합을 덮쳤을 때 재정위기로 허덕이던 이웃 국가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
셋째, 메르켈은 엄마(무티, Mutti) 리더십을 보여줬다. 현직에 있을 때도 퇴근 후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보는 모습이 일상처럼 언론에 보도됐다. 세상은 그런 그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 멋진 말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멋진 행동을 보여주었다.”, “인기와 칭찬에 연연하지 않고 경청과 인내, 설득으로 성과를 도출했다.”, “참모 중에 아첨꾼은 없었다. 누구나 메르켈을 비판할 수 있었다.”, “독일인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정치인이 아닌 자신들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정치인을 원했다. 메르켈은 자신에게 초점이 집중되지 않는 정치 스타일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옷차림도 검소하고 헤어스타일도 늘 똑같습니다, 부를 과시하지도 않죠. 원래 사치를 하지 않는 분이라 뇌물로 매수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메르켈리즘’으로 불리는 메르켈 리더십은 실용주의, 신중함, 용의주도함, 타협, 도덕적 가치로 대변된다. 집권 초기 ‘메르켈하다’는 느리고 우유부단하다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 눈에 띄지 않게 목표에 도달하는 겸손과 배려의 리더십’, ‘군중을 휘어잡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진정성 있게 접근하여 상대의 마음을 얻는 능력’, ‘물질적 가치, 명예,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 지도자’, ‘정당이 아닌 정책에 집중하며 소속 정당을 떠나 모든 동료 정치인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화합형 리더’를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넷째, 메르켈은 독일만의 지도자가 아닌, 유럽의 지도자, 세계의 지도자였다. 유럽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세계적 경제 불황의 여파로 2009년 그리스발 유로존 위기를 겪었다. 당시 독일은 메르켈 집권 후 가파른 경제 회복을 달성하며 어려움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메르켈은 주저 없이 유럽을 위해 나섰다. 당시 그녀는 유럽연합에 대한 긴축정책을 주도하며 특히 그리스를 압박했는데,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은 “그렉시트의 파국은 막아야 한다.”며 그리스와 협상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그녀는 “유로화가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며 유로존 국가들의 강력한 구조개혁과 긴축재정을 주문했고 그리스는 엄청난 재정압박을 견디며 스스로 부채를 갚아나가야 했다. 이런 노력으로 유럽은 세계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위기가 지나간 후 세계는 “메르켈의 재정 구원이 없었다면 유로존은 몰락했고 유럽연합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다.”며 그녀를 ‘유로존 위기를 극복한 구원자’로 평가했다. 또한 메르켈은 코로나 여파가 유럽연합 전체를 덮친 경제 불황 때에도 마크롱과 손잡고 능동적인 정책을 주도해 제2차 유로존 위기를 막아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메르켈은 재임 기간 그리스발 유로존 위기는 물론 우크라이나 분쟁, 브렉시트, 시리아 난민 사태 등 수많은 국제적 현안에 당면했는데, 피하지 않고 맞서 해결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세계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메르켈은 총리 4선은 계획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 선거 8일 후 오바마는 작별인사차 베를린을 방문하였고, 그녀가 총리직에 다시 출마해서 서방 진영과 세계가 단합하도록 이끌어 줄 것을 부탁했다. 또한 오바마가 대통령으로서 가장 마지막으로 통화한 인물도 바로 메르켈이었다. 오바마는 미국을 대신하여 서방의 자유세계를 지킬 인물로 메르켈을 뽑았던 것이다. 오바마는 그녀를 “현명한 실용주의를 선보이고 윤리의 나침판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이라 칭했다. 포브스紙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2010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메르켈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선정하였고, 타임지는 2015년 ‘자유 세계의 총리’라는 이름으로 메르켈을 ‘올해의 인물’에 선정하였다.
다섯째, 자국 우선주의, 힘의 논리가 부상하며 세계 곳곳이 전쟁의 소문으로 흉흉한 시대에, 너무나 아름다운 인도주의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유럽연합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리아 등 분쟁 지역에서 대거 유입된 난민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세계적 경제 위기에서 이제 막 벗어난 어려운 경제 여건에, 자국민에게도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와 복지 예산으로 다른 국가들은 난민 유입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메르켈은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원한다면 모두 수용하겠다.”고 결단을 내렸고, 그녀의 리더십에 따라 유럽연합은 난민을 분산해 할당받게 됐다. 인도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인도주의를 선택한 메르켈의 선택은 많은 난민에게 ‘인간다운 삶’을 돌려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그녀는 코로나 19 위기 상황에서 백신 개발과 경제회복기금 마련 등을 위해 발 벗고 나섰고 아프리카에 백신 7000만 회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메르켈을 생각하면 직관적으로 어떤 따뜻함이 느껴지고 그다음은 든든한 신뢰감, 그리고 부드럽지만 그 누구보다 단단한 내면의 강함이 떠오른다. 그야말로 무티(Mutti, 엄마) 리더십이다.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치이고 다쳐서 지쳤을 때 찾아가고 싶다. 그녀에게 가면, 그래서 그녀가 차려주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저녁밥을 먹고 나면, 모든 게 회복되고 새 힘이 솟을 것만 같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벽난로가 있는 거실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밥 먹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임기를 끝내며 메르켈을 찾아가 자유세계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던 오바마의 심경이 그랬을 것이다. 자국우선주의 시대, 경제만능주의 시대다. 오직 우리, 파워, 래디컬(급진) 같은 구호들만 넘쳐나는 시대다. 메르켈의 빈자리가 크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첫째, 우리 정치는 여전히 권력, 명예, 물질의 정치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에 대한 토론은 꿈도 꿀 수 없다. 상대 정파와 정적을 제거하려는 극단적 정쟁만 판친다. 온통 허울뿐인 명분에 가려 실용은 찾아볼 수도 없다. ‘정적의 정책이지만 나라에 꼭 필요하니 추진한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전 정권을 탈탈 털어서 현대판 사화(史禍)를 일으키고, 뭐든 문제가 터지면 전 정권의 탓이라고 떠넘기는 정치다.
둘째, 우리 정치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뒤통수를 때리는 정치다. 보수는 기업의 사회 환원 운운하며 기업인들을 줄줄이 그물에 꿰어놓고 진보는 그 그물을 걷어 올려서 기업인들을 죄다 감옥으로 보냈다. 기업인들이 잘했다는 거 아니다. 애국자라고 치켜세우며 어떻게든 기업인들을 이용하려 드는 보수, 범죄자 취급하면서 기업인들에게 족쇄 채우는 진보, 그런 우리 정치에 대해 말하는 거다. 세계무대에서 싸우기도 바쁜 기업인들 데려다 놓고 보수, 진보 오가면서 온탕, 냉탕 번갈아가며 괴롭히고 있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좋은 일자리 창출’이다. ‘스포츠도 정치가 망친다.’에서 썼듯이,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정치가 다 망치고 있다.
셋째, 우리 정치에 ‘메르켈리즘’은 없다. 겸손, 배려, 경청, 인내, 설득, 신중함, 용의주도함, 타협, 도적적 가치 추구와 같은 무티(Mutti, 엄마) 리더십은 없다. 권위주의와 허세, 인기와 칭찬에 목을 매는 포퓰리즘, 독선과 아집과 편견, 아첨꾼과 간신들의 득세,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제 행동은 없는 정치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이 걸려있는 산적한 문제들에는 등을 돌린 채 거울 속 자신의 얼굴만 들여다보는 정치인들이 있을 뿐이다.
넷째, 우리에게는, 세계에 아니 아시아에라도 내놓을만한 자랑스러운 정치인이 지금 있는가. 밖으로 나갈 거 없다. 우리나라 안에서만이라도 똑바로 하면 좋겠다. 우방국 외교, 세일즈 외교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국민들 부끄럽게 만들고, 기업들 불안하게 만들지 말고, 국내 정치라도 제대로 하기 바란다. 메르켈이 유럽의 지도자,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건, 독일 경제를 반석 위에 세우고, 단합된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정파가 아닌 정책에 집중하는 화합의 정치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30년 후 대한민국’에서 섰듯이, 언젠가는 우리도 경제대국, 국방강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일류 모범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세계 평화, 기후위기 해결 같은 전 지구적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어려움에 처한 나라, 병들고 굶주린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