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ear's resolution
인터넷에서 주문한 ‘나의 서양음악 순례(2011, 서경식 지음)’란 책을 쉬엄쉬엄 읽고 있다. 지은이 서경식은 일본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났다. 그는 한국에서 유학을 하다 정치범으로 투옥된 둘째, 셋째 형의 옥바라지를 하던 중 여동생과 함께 문득 유럽으로 떠나서 여러 미술관을 둘러본다.
그가 암울했던 시대의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하며 서양 미술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나의 서양미술 순례’(1992, 서경식 지음)를 읽고 나는 본격적으로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그 무렵 내가 일하던 건물에 우리나라의 미술계를 선도하던 두 화랑의 갤러리가 오픈하는 신기한 우연이 함께 했다. 또한, 그들 갤러리에서 기획 전시되는 미술작품들을 매번 직접 감상하며 현대미술을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이 뒤따랐다. 그리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구매해 읽기도 했고, 틈틈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읽었다.
최근 아내 덕분에 우연히 알게 된 어느 트위터리안의 글을 읽다가 서경식이 지은 같은 이름의 ‘나의 서양음악 순례’란 책이 오래전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터넷 서점에서 바로 구매했다. 하지만 읽고 멈추기를 무수히 반복한 덕분에 일주일이 지났지만 절반도 채 읽지 못했다.
팝송을 제외한 클래식 서양음악에 무지한지라 저자가 책에 옮겨 쓴 음악들을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며 감상하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유튜브는 가끔씩 정보 검색과 운동하러 갈 때 차량 오디오에 연결된 블루투스를 활용해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곤 했지만, 이젠 덕분에 프리미엄 기능을 유료로 가입해서 아이폰으로 글을 쓰며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주말 오후, 첫눈이 펑펑 내리던 날에 책상 위에 있던 ‘나의 서양음악 순례’ 책을 발견한 아내가 단숨에 절반을 읽고는 내게 말했다.
“여보, 세상에 우리랑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부부가 있네요. 이 부부가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음악제를 매년 참석하고 있다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서 유튜브와 블루투스로 연결된 책상 위의 야마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의 녹턴을 듣고 있던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 음악제는 아니지만, 우리도 잘츠부르크는 가봤잖아요. 사실 나도 그 대목이 제일 부럽더라. 지금부터 틈틈이 클래식을 공부하면 그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지도 몰라요.”
창밖 하늘이 온통 뿌옇게 어두워지도록 내리던 함박눈이 이제 땅에서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주말 오후에 그렇게 또 새로운 꿈이 하나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는 집 앞에 콘서트홀이 생긴 이래로 매년 마지막 날 밤이면 관람했던 ‘송년음악회’ 티켓을 바로 구매했다. 작년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고는 그냥 아무런 송년 의식 없이 집에서 조용히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나의 서양음악 순례’ 덕분에 다시 그 송년 의식을 시작하고, 새해부터는 TV 뉴스를 보는 대신 하루 한두 시간이라도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듣기로 작심했다. 분노가 절망보다는 쓸모가 있지만, 지금의 상황을 감안하면 더 이상 계속 뉴스를 시청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에 클래식 음악을 듣고 가끔은 오락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이 웃고, 많이 배우며 또 다른 세상을 꿈꾸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