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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단돈 천 원이라니 놀랄 수밖에

소규모 자영업자들께 좋아요 라이킷을!!!

by 봄날


낮의 길이가 제일 길다는 하지에 일식을 맞이하고 난 후 주초부터 낮 기온 최고 35.5도로 62년 만의 가장 더운 유월이었다고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유월을 부르는 말 중에 퐁카 족은 ‘무더위가 시작되는 달’이라고 했다는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도 되기 전에 폭염의 무더위를 겪고 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장맛비가 내리고 오늘은 조금 시원해졌다. 정오쯤 가까운 아파트 상가에 있는 내과에 다녀왔다. 내과 진료 및 검사를 끝내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하 식당가에 내려가서 시원한 콩국수를 시켜 먹고 난 후 1층에 있는 두 평짜리 테이크아웃 커피 가게에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오천 원을 지불했다. 조금 후 사천 원의 거스름 돈을 내어 주고 가게 주인은 커피 분말을 추출가에 넣기 위해 눌러 담고 있었다.


처음엔 거스름 돈을 잘못 받은 줄 알고 물어보려 했지만 일을 방해하기 싫어 메뉴판을 둘러보았다. 메뉴판을 보던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가 단돈 천 원, 1리터가 이천 원이라고 되어 있어서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건네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정말 스벅에 못지않게 훌륭한 맛이어서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 갈 때면 어느 마을 어느 도시 뒷골목 작은 카페에서 먹는 커피도 맛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소규모의 자영업자들이 하는 테이크아웃 커피 가게들도 스스로 훌륭한 바리스타의 자격을 갖추고 자부심 있는 커피나 음식을 내어 놓는 선진국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강남 3 구라는 송파 잠실에서 맛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단돈 천 원이라니 놀랄 수밖에.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매일 믹스커피 두 잔은 우리들의 운동 에너지가 된다는 E=mc2의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의 그 믹스커피 한잔 값 밖에 안된다.



실제 소비 생활에서 나는 가능하면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라면 동네 주변의 소규모 자영업자나 중소 프랜차이즈 대리점 점포에서 김밥 한 줄이라도 소비하고 사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내의 영향으로 조금 품질이나 맛에 있어서 부족하다 해도 오랫동안 생활에서 실천하고 있지만 오늘 새삼스럽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에 큰 감동과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었다. 신혼 때는 동네 지하철역 입구 길가 좌판에서 봄나물이나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에게서 많이 사주기도 했다. 가끔은 중국산을 가져다 놓고 속여 팔기도 했지만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성질을 버릴 만큼 큰돈도 아니고 일부러 도와주기도 하는데 어쨌든 물건은 받았으니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지난 오월에 재난 지원금을 모두 기부하고 허세를 부린 것을 조금은 후회했다. 재난 지원금을 기부할 때 처음에는 국가에서도 코로나 사태 때문에 본의 아니게 실직을 당한 분들을 위해 고용안전자금으로 활용한다고 해서 전액 기부를 했는데,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재래시장 등 영세상인들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해 현장에서 소비 지출을 해야만 한다는 쪽으로 캠페인의 기류가 바뀌면서 실제 기부한 사람의 구성비가 1% 정도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 같은 날 그 아파트 상가에서 젊은 친구가 운영하는 두 평 짜리 테이크 아웃 커피 가게 같은 곳에 서 많이 소비해서 격려하고 배려하는 직접적인 소비 지출이 되었어도 좋았을 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같은 코로나 사태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소비 생활을 할 때 우리가 사는 동네 주변에서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하는 가게나 점포에서 소비 지출을 함으로써 그들의 치열한 삶을 격려도 하고 때로는 응원도 하면 그들에게도 글을 읽고 브런치의 라이킷이나 댓글을 달아서 작가에게 힘이 나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싶다. 나름대로 오래 준비하고 꿈을 이루어 가는 소규모 청년 창업자들이나 일반 자영업자들에게 응원과 힘이 되어주는 소비 생활의 작은 실천으로 스스로의 보람과 함께 단골도 되고 사람 사는 세상의 소소한 행복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끔은 또한 시설이 잘 갖추어진 멋진 카페나 스타벅스 같은 곳에 혼자 앉아 허세를 부려 볼 때도 있어야 인생의 사는 맛과 멋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선풍기로 극복할 수 없는 무지하게 더운 날이나, 아니면 운동 약속 없는 주말에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어디를 오도 가도 못할 때는 노트북과 신문, 책을 들고 스벅으로 내려가서 에스프레소 한잔 시켜놓고 넷플릭스 영화를 보거나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이며 허세를 떨 때도 많다.



물론 서너 시간 정도 있을 땐 추가로 한번 더 메뉴를 주문해 눈치도 피해 가고 예의를 갖추는 센스를 발휘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제일 무섭고 보기 싫은 모습인 눈치와 염치가 없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생활 속의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것처럼 우리의 소비 지출에서도 특별하고 전문적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는 동네 주변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배려와 응원의 소비 생활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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