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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왜 자동차를 좋아할까

자동차를 애정 하는 남자들에 관한 개인적 고찰

by 봄날

가끔 글을 읽다 보면 우리 남편은 아이들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몇 반 몇 번인지는 몰라도 새로 출시된 자동차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며 흉보는 아내들의 글을 읽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들이를 가다가도 지나가는 옆 차를 보고 국산, 수입 관계없이 차 이름과 그 차의 히스토리까지 묻지도 않았는데 가르쳐 주고 한다는 소심한 복수겸 흉을 보며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글을 읽을 때가 있다. 오늘도 그와 같은 글을 우연히 읽고 나름 남자 입장에서 늦은 밤에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며 지극히 개인적인 분석을 해보았다.


사실 나도 삼십 대 초반 첫차를 가지고 난 후 이삼 년만 지나면 또 다른 새 차를 사고 싶어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운을 띄웠다가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동차를 지난 세월과 함께 바꾸어 온 것이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세 번 지급된 회사차를 빼고도 내차만 다섯 번째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우리 세대 남자들의 개인적인 목표는 나이에 걸맞게 자동차 바꾸고 아파트 평수를 넓히며 살아온 삶이라고 해고 무방할 정도다. 자아실현은 온 데 간데없고, 가만히 돌이켜 보면 자동차와 아파트를 대여섯 번 정도 바꾸고 넓히고 나면 개인적인 삶은 그 찬란한 마감을 향해 가고 있다.



오십이 넘으면 집 넓히지 말라는 충고를 선배들로부터 들으며 반면교사로 삼아 살아왔다. 정말 맞는 말이다. 오십이라고 강남에 오십 평 아파트를 사고 대출금 갚으며 해외여행을 가뭄에 콩 나듯 다니다 문득 어느 날 어떤 계기로 경치 좋은 포르투갈 포르투의 도루 강 동루이스 다리 위에서 깨달음을 얻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다 큰 자식에게는 말도 못 하고 은행 대출금 갚으며 뒤늦게 끙끙 앓는다 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평생을 돈 벌고 직장 생활해서 결국은 자동차와 아파트 평수 넓히느라고 요즘 트렌드인 YOLO의 삶 한번 못살아보고, 여행 다니며 힐링은커녕 은행 대출금 갚고 나니 온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소비, 문화생활은 윤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달랑 강남에 아파트 한 채 가지고 마음만 부자인 경우가 많다. 또한 주택담보 노후연금을 받을까 말까 자식들 눈치를 보는 몇몇 선배들을 볼 때면 정신을 번쩍 차린다.


왜 남자들은 자동차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개인적인 고찰을 통하여 밝혀 볼까 한다. 개인적인 고찰이니 그 이유를 모두 동일하다고 일반화시키는 오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이유는 아닐 수도 있으니 참조만 하면 될 듯하다.



첫째, 남자들은 자동차가 또 하나의 명함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에게 있어 명함이 나를 대신 함축해 표현하는 것처럼 자동차를 또 다른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다른 이름의 명함 정도로 생각한다. 오래전엔 국산 자동차는 수입차에 비하면 장난이었는데, 이젠 장난이 아닌 수준으로 발전했다. 오히려 수입차의 비행기 프로펠러나 오륜기 같은 엠블렘 하나만 빼고 생각하면 국산 자동차가 훨씬 유지 관리비가 경제적이면서도 수입차 가격 대비 두배 정도 엔진 성능이 높은 배기량의 중대형 차를 소유할 수 있다.


지금도 독일 계열 세 브랜드의 수입차를, 국산 대형차의 반 밖에 안 되는 배기량의 그 수입차가 연간 몇십만 대가 팔린다고 한다. 일반 상식이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 섬씽 스페셜의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바로 남자들의 평생의 로망을 이루어주면서 한편으로는 허세가 작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패션 명품 시장에서도 남자들이 가장 애정하고 분수에 넘치는 소비가 명품시계인 것만 봐도 이해가 될 것이다. 사실 요즘은 모바일폰 때문에 손목시계는 액세서리 기능 이상의 용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둘째, 치열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무것도 자기 계획대로,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산전, 수전, 공중전을 모두 거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살고 있는데, 집에서 조차 어느 누구도 내 맘대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말이 안 통해서, 아이들이 크고 난 후에는 사춘기, 대학 진학, 군입대, 취준생으로 그들 자신의 삶을 살아 내기 위해 바쁘고 정신이 없다. 나의 동반자인 아내마저도 아이들로 인한 스트레스와 갱년기까지 힘든 사오십대를 넘기면서 생활하다 보니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내 자동차만큼은 애완동물 이상으로 한마디 말대꾸도 없이 내가 신호만 주면 알아서 크루즈 기능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기도 한다. 왼쪽으로 가라 하면 왼쪽으로 가고, 덥다 하면 운전대, 좌석까지 에어컨을 틀어주고, 장맛비에 기분 우울하다 하면 그에 맞는 음악도 틀어준다. 때때로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서비스센터에 돈만 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 풀고 원래대로 돌아와서 충성을 다한다. 회사나 집에선 문제가 생기면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내 맘 같지가 않고, 문제 해결이 너무 복잡하고 심하면 돈 내고 병원이나 전문 상담사와 해결해도 될까 말까 한다.


셋째, 남자들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머물 수 있고 내 자동차 그 자체가 나만의 카렌시아 즉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할 때 교통신호에 막히면서도 어렵고 난해한 여러 문제들을 그 공간에서 사색을 통해 해결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한평 남짓한 공간에서 큰 깨달음과 때때로 대오각성하기도 하는 그런 소중한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다.



지금까지 몇 가지 이유로 남자들이 자동차에 열광하고 애정 하는 이유에 대해 매우 주관적인 고찰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요즘처럼 이제 남녀 공히 공동 생계, 공동 육아를 하는 세대에게는 앞으로 집 마련만 끝나면, 아니 집의 소유 개념도 바뀌고 거주 중심으로 변해 이제 사회생활을 하는 남녀 모두 위와 같은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에 공감한다면 자동차에 모두 함께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남자들이 자동차에 열광하는 이유에 동의한다면 너무 나무라지 말고, 아니면 서운해하지 말고 자동차를 바꿀 때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만 더 투자해서 기도 살려주고 자신감을 재충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경제적 동기부여를 해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마중물을 통해 도랑 치고 가재 잡고, 투자 대비 효율적인 리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아내가 앉아서 사랑하는 남편이 운전하는 멋진 자동차 안에서 드라이브하며 오손도손 얘기도 많이 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남자들은 평소엔 말을 많이 안 해도 아내와 함께 차를 타면 말을 많이 하는 습성이 있다. 할 말이 없을 때라도 앞뒤 좌우로 지나가는 자동차를 향해 평소에는 못 들어봤던 찰진 욕이라도 한다. 또한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안전하게 국내 여행도 다니며 YOLO의 삶을 영위해 보면 어떨까 싶다. 물론 투자와 소비 생활은 분수에 맞게, 스스로의 결정과 형편에 따라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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