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의 본질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취업해 희망찬 새 출발을 했다. 그때는 별로 어렵지 않게 소위 5대 그룹에 입사를 하고 그룹 계열사 중 일해 보고 싶었던 회사에 지망을 했다. 그때에도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채용 프로세스를 통해 선발되었지만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공채 경쟁률도 5:1 정도였고 대학생 수도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80년대는 경제 성장률도 높았고 서울에 있는 10대 대학 경상대 정도면 각 대기업에서 학교에 보낸 추천장만 가지고도 골라서 입사가 가능했었다. 나름 똑똑한 친구들은 인기가 있던 국책 은행, 공기업, 제2 금융권으로 먼저 빠져나가고 5대 그룹의 대기업 입사는 그 후순위였다.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고 뒤늦게 대기업에 취업을 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취업 시험 준비를 했다. 도서관에 자리 잡고 공부 세 시간, 대학 생활의 낭만을 즐기는데 대여섯 시간을 보내도 그럭저럭 어렵지 않게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똑똑한 여학생들과 취업을 놓고 함께 경쟁할 일이 없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학교 앞에서 당구도 치고, 미팅도 틈틈이 하고, 저녁엔 각 대학 앞을 찾아다니며 술도 먹고 나름 지금과 별반 다름없는 대학 시절을 보냈다. 무슨 특별한 꿈과 희망을 찾는다기 보다는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취업을 한 경우도 많았다.
용인 놀이공원 옆에 있는 그룹 연수원에서 한 달간 입소 교육을 끝내고 관계사 지망을 통해 계열사에 배치가 되고 나면 이제 사회생활 , 즉 직장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 계열사에 배치된 회사에서 또 한 달간의 신입 사원 집합 교육을 끝내면 이제 직접 일하게 될 부서에 배치를 받아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략 두 달 반 정도의 입사 교육을 끝내고 현업 배치를 받았다. 처음 몇 달 간은 대충 부서 업무 돌아가는 것도 파악하고 스폰서로 임명된 부서 선배 눈치도 보며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업무를 배당받아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인기 드라마 미생처럼 회사 내 업무와 인간관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회사일 말고는 다른 일에 정신을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회사 일에만 몰두 하기 시작한다.
사업부 내 첫 간부 격인 과장이 되기까지는 정상적으로 진급하면 만 6년이 걸리고 7년 차에 과장이 되었다. 그때. 소위 말하는 평사원일 때 제일 궁금했던 것이 사내에서 인품도 좋고 인간적으로 착한 간부나 선배들은 회사에서 대개 상사로부터 엄청 혼나고 구박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많았다. 반대로 후배들한테 욕 많이 먹고 은근히 인기 없는 간부나 못된 선배들은 상사들이 엄청 예뻐하고 잘 챙긴다는 사실에 학생 티를 못 벗어난 신입 눈에는 불합리해 보이고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회사 생활의 힐링 타임이었던 동기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회사의 앞날과 잘못된 방향에 대해 걱정하고 불만을 토로할 때가 많았다. 그때 한 동기로부터 나온 말이 있었다.
“귀신은 무얼 잡아먹고 사는지 몰라. 저런 인간들 안 잡아먹고!!! “
나름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렇게라도 욕처럼 말했나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인내의 시간과 치열한 직장 생활 뒤에 인정을 받고 첫 간부급인 과장이 되고 나면 그 말에 대한 해답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회사의 메인스트림으로 합류해 가게 되는 것이다. 조직에서는 인간성과 인품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맡겨진 일을 리더십을 발휘해서 추진해 내고 좋은 성과를 내야지만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업무의 성과를 내기가 어렵지 후배나 동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일이야 제대로 되든 말든 동료나 유관 부서와 부딪히면서 문제 해결할 생각은 않고 좋은 게 좋은 걸로 그저 잘 지내면 된다. 상사나 간부 입장에서는 속 터지고 환장할 노릇이니 성질을 부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과장이나 부장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 당신, 국회의원 선거 나갈 거야? 여기가 무슨 유세장이야. 인기 관리나 하고 있게. 일을 하라고, 일을!!!”
조직에서 상사 입장에서는 팀의 구성원중 누군가가 미꾸라지를 수송하는 수족관의 메기 역할(catfish effect) 같은 악역을 대신해주길 바라고, 내가 해야 할 악역을 대신해 주는 후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조직이 늘 활력 있고 창조적인 긴장감이 돌게 하는 메기 같은 역할을 해주는 직장 후배를 예뻐하지 않을 상사가 어디 있겠는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회사에서 맡겨진 일은 추진되고 속도를 내게 한다. 항상 의문이 생기면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빨라진다.
드라마 미생에서 마 부장 같은 사람도 일만 잘하면 조직에서는 매우 소중한 존재다. 아무리 악질이어도 상사에게 까지 악질 짓을 할 리 만무하고, 그런 친구들은 대개는 오히려 상사에게는 엄청 예쁜 짓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미안하지만 기업이 스포츠 정신이나 올림픽 정신이 꼭 필요한 곳은 아니다. 주어진 법과 제도 안에서 매출과 이익창출이라는 성과를 내야만 지속 가능한 곳이란 걸 감안하면 어쩌면 그 마 부장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임원까지는 되었을 지도 모른다.
주인의 입장에서 또는 회사 상사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일을 되게 만들고 잘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동호회나 친목단체가 아닌 만큼 인기가 많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장에서는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최고이듯, 회사에서는 일 잘하고 업무의 좋은 성과를 내는 사원이 최고라 할 수 있다. 회사의 평가는 성과 중심이어야 공평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초청받고 와서는 노쇼로 문제를 일으켰던 호날두는 축구선수로서 축구를 잘하기 때문에 여러 구설수와 함께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어도 아직도 세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거기다가 인간성도 좋고 인품도 훌륭하면서 축구까지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원망할지도, 신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잘 생긴 미남 배우 송승헌에게는 그것도 모자라 숯검댕이 같은 눈썹과 훌륭한 연기력까지 주었으니,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믿어왔던 하느님의 사랑이 과연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나마 지금 다행인 것은 좋은 기업에서는 인사관리가 많이 발전을 거듭해와 상하, 좌우 회사 내, 회사 밖의 다면평가를 통해서 대부분 정확한 평가와 인사를 하고 있으며, 업무의 성과 및 업적 중심으로 평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