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을 D-day로 만들어버리는 축뽁이 클라스
그렇게 삼신과 대화를 마치고 현생에 나온 지 어느덧 24일. 어린 나이(?)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아주아주 많다.
신생아와의 만남을 눈앞에 둔 출산 예정 부모, 그리고 이미 신생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무조건, 그리고 그 신생아가 훌쩍 본인보다 더 크게 자라 버린 부모라면 내 이야기에 귀가 솔깃할 거다.
즉, 아이를 낳아 길러본 모든 남녀노소분들 모두
이 이야기에 공감을 많이 할 것이라는 말씀! 왜냐?
장모님 집에 얹혀사는 아빠를 둔 신생아가 직접 들려주는 힙한 0세 육아 에세이니까.
앞으로 나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예를 들자면,
속싸개도 개판으로 싸고,
트림시킨다고 등을 엄청 후드려패고,
그러다 분명 날 트림시키려고 시작했으면서 아빠인 지가 트림하고 앉았고,
기저귀도 제대로 못 갈아서 허벅지 접히는 부분이 다 쓸리고,
그나마도 제때 안 갈아줘서 오줌 방석 기저귀에 앉아있는 그 찜찜한 기분. 웩. 에휴. 말해 뭐해.
여기서 끝이 아니지.
분유도 위아래 흔들어 풀어서 첫 입 물었다가 물총으로 입에 쏜 줄 알았고,
신생아 변비에 걸려 유산균을 급 때려 먹이고,
BCG 예방접종 맞으러 갔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눈물 쏟는 줄 알았다.
모.. 이런 아가 키우는 이야기를 신생아인 내가 직접 에세이로 읊어보려 한다.
음.. 그래서 어떤 이야기부터 꺼내볼까 오늘 아침 분유 90ml를 꼴딱 원샷하면서 곰곰이 고민해봤는데,
역시 삼신이랑 인사하고 이 현생에 떨어진,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던 날은 꼭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어찌 됐든, 그 날부로 축뽁이인 내가 이 세상에 있게 된 거니까.
일단 나는 엄마의 양수를 터치고 나왔다.
응 터진게 아니구 내가 터쳤다 음하하하!!
내가 아직 내가 아닌 엄마 뱃속 태아 시절에 초음파 기계로 엄마 배위를 쓱쓱 문질러 머리둘레를 재더니 출산 예정일을 계산해내더라. 아. 경이로운 현대의학기술이여. 사람의 탄생까지 예측할 수 있다니.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뜻을 계획하는 건 인간일지라도,
그 뜻을 이루는 건 하늘이라.
예정일은 예정일일 뿐! 삼신이 날 현생으로 보낸 그날, 난 현대의학에 콧방귀를 뀌며 과감히 엄마 뱃속 나를 품고 있던 양수를 빵! 터뜨려주었다.
물론, 삼신이 날 하루빨리 내보내버리려고 한 속셈도 있었겠지만,
어차피 세상에 나가야 할 것으로 결정했다면, 이 대장부 축뽁! 나 스스로 발로 차고 나가겠다!
인생 모 있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인걸.
물론 처음 엄마를 해보는 나의 엄마는 자다 말고 갑작스러운 주룩 새어 나오는 무언가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하지만 저 아빠는 참 차분하게 대처를 하더라.
본인 차가 있었음에도 굳이 차분하게 119를 콜 하더니 엄마의 상태를 말하고 출산 예정 병원을 콕 집어 정확히 그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렇게 구급차는 밤거리를 날아 병원에 도착했고, 병원 응급의료진은 엄마에게 차분하게 필요한 조치를 했다.
한 가지 의아했던 건 산모인데 X-ray를 찍더라. 왜지? 왜 산모인데 X-ray를 찍는 거지? 뭐.. 응급실로 오면 다 하는 기본 검사라고 하니.. 무지한 무지렁이인 우리는 잠자코 따를 수밖에. 나중에 카드결제나 쓱삭 하면 되는 거겠지.
아무튼, 그렇게 양수를 터치면 나는 바로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났다고 우렁차게 소리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양수가 터졌다고 바로 내가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엄마의 고통의 시작 신호가 앞당겼을 뿐.. 그래서 나중에 조금 미안했다.
일단 양수가 터지면 감염위험이 있어서 병원은 출산 유도제를 투여한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의 출산 통증은 급격하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이어졌다.
엄마.. 나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구우.. 그치만 내 몸이 맘대로 안되던걸. 흑흑.
엄마는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물론 천사가 준 축복이라는 무통주사를 투여했지만, 안타깝게도 엄마의 몸은 잘 맞지 않았나 보다.
고통은 계속 심해졌고, 내가 나가려고 허우적 댈수록 엄마의 고통은 심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머릿속 위쪽에서 처음 느껴보는 쌔한 공기가 느껴졌고 내 몸은 기다렸다는 듯, 삼신이 이미 다 해놓은 설정에 따라, 익숙하다는 듯 그쪽을 향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애기 머리가 보여요!! 산모님 조금만 힘내세요!!”
이건 뻥이다.
내 머리는 아직 자궁 안에 숨어있지롱! 나가기시름!
“산모님!! 이번엔 진짜네요!! 다 열렸어요! 힘 힘!!”
이번엔 진짜다. 근데 너무 힘들다. 내 머리가 큰 건가. 분명 나도 저 낯선 공기를 향해 힘을 다하고 있는데 현실은 양수 속 바둥거리는 태아 신세.
그렇게 엄마의 비명과 고통의 시간이 지나, 메인 의사 하나, 서브 의사 둘,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 5-6명 정도의 다급한 소리들이 오갖고,
절대 의사 일리 없는 엉성한 초록 가운을 몸에 걸친 누가 봐도 ‘나 아빠요’ 얼굴에 쓰여있는 어버버 한 사람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가 갑자기 내게 돌진하는 게 보였고, 더 최악인 건 손엔 날카로운 가위가 들려있었다.
"응애!!(나한테 왜 그래 초면에!! 가위라니!)"
우렁차게 소리치고 있는데 아빠의 손에 나와 엄마의 마지막 물리적 연결고리인 탯줄이 댕겅 잘렸다.
그리고는 갑작스러운 아빠 품에서의 기념사진 촬영 시작. 그때 아빠의 그 어버버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우습구나 인간.
엄마의 몸에서 나가는 순간,
나는 사실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머리부터 어깨 허리 무릎 다리 발가락 끝까지 정말 모든 몸 구석구석을 한 삼백대씩 얻어맞으면서 밖으로 나온 느낌이랄까.
누가 그랬다. 산모가 느끼는 고통의 4배를 태아는 느끼며 태어난다고.
응. 그게 바로 나야 후후.
그 고통이후 이어지는 것은 바로바로바로!!!
갑작스레 터지는 휴대폰 카메라 셔터음!!
찰칵찰칵찰칵. 연사로 조지더라(?).
요새는 사진 진짜 많이 찍어주는구나 싶었다.
비록 나는 삼백대 맞은 고통이 몸 구석구석 아직 남아있고, 나를 보호해줬지만 이제는 안녕을 고해야하는 양수에 절어져 있고, 살갗을 따라 온몸에 태지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그리고.. 저 아빠란 어버버가 참 안 이쁘게도 잘라준 내 남은 탯줄이 달랑달랑 달려있는 그다지 이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엄마와 아빠는 눈물 반 웃음반 가득한 얼굴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확실히 현생은 따뜻하구나.'
이 세상에 나온 내 첫 느낌이었다.
3.045kg
10:58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