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 호랑이는 소를 잡아먹지 않을래요를 두 글자로 줄이면?
"할미야 할미. 어이구 이쁜 것. 이마 주름부터 콧볼까지 쏙 빼닮았네."
음.. 아침부터 장모란 사람이 본인을 할미라 불러주길 내 얼굴 앞에서 거의 주문처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하지만 힙한 0세 신생아인 나는 저분을 그냥 장모님이라 부르기로 결심했다.
아빠의 장모님이고 엄마의 엄마라는데 나는 왜 엄마가 있는데 엄마의 엄마가 또 있어서 엄마가 둘인 건가 하는 혼란과 근데 엄마의 엄마가 아니고 또 할미라고 불러야 한다니. 이게 머선129?
내 작고 귀여운 뇌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인지라..
그냥 나도 아빠 따라 장모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한번 해보자.
“응앵?(장모님?)”
목놓아 불러본다.
“얘 봐라~! 방금 나한테 할미라고 한 거 같지 않니? 어머 귀여워라. 그래 할미 여깄다 아가.”
응? 뭐지.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분인가? 다시 한번.
“응앙!(장모님!)”
“응? 응아 마렵다고? 어디 보자 기저귀 색이 바뀌었나~ 어디 어디”
그러면서 갑자기 내 왼쪽 허벅지 부분 기저귀 이음새를 들추더니 냄새를 맡는다.
'응?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장모님?' 음.. 이쯤 되니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가 우스운지 저 솜뭉치가 계속 내 눈앞에서 비웃으며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내 언젠가 이 두 손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오면 저 솜뭉치를 잡고 말리라. 원대한 꿈을 꿔보지만, 현실은 장모님에 의해 기저귀가 갈아지고 있는 응앵애기일뿐.
후. 0세의 삶은 쉽지 않다.
오늘은 저 장모님이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난 힙한 0세이니 힙한 감성으로 먼저 딱 다섯 글자로 장모님을 표현해보겠다.
음.. 내 생각에 장모님은 소 같은 사람이다.
황소 들소 코뿔소 투우소 미친소(?) 이런 싸움터 거친 소 말고,
그저 순진무구한 눈동자 꿈뻑꿈뻑하며 묵묵히 본인에게 맡겨진 일인 논밭을 가는 시골 소. (차마.. 한우라고 하진 못하겠다.. 왠지 투뿔++같은 등급을 매겨야만 할 것 같아.. 장모님을 한우라고 할 수는 없...)
나는 소가 좋다. 물론 신생아니까 본 적은 없지만.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자)
저 장모님이란 사람은 묵묵히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하신다.
나보다 60년은 현생에 더 머물렀을 것 같고, 그럼에도 아직 현직 간호사로 교대근무를 하고 계신다.
교대근무를 해봤으면 알겠지만 일 끝나고 집에 오면 잠 자기도 시간이 빠듯하고, 그렇게 자고 나면 다시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그렇다고 잠자는 게 싫어 그 시간에 TV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해서 잠자는 시간을 스킵해버리면 다음날 출근 타임은 그야말로 헬의 시작. 윀컴투덬헼!
하지만 저 소 같은 장모님은 나가서도 일을 하고,
집에 와서도 엄마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미역국을 끓이신다.
미역국도 그냥 미역국이 아닌 한우 무르팍을 팍팍 온종일 끓인 사골국으로 미역국을 끓여 엄마의 회복을 기도하신다. 그리고는 어디 가셨나 내 작은 눈동자를 굴려 장모님을 찾아보면, 어느샌가 바닥에 앉아 쓱쓱 청소를 하고 계신다. 그러다 내 응앙! 소리에 맞춰 똥기저귀를 갈아주시고, 내 몸도 목욕 시켜주시고, 얼마 전 떨어져 나간 내 배꼽 자리도 톡톡 소독해주신다.
그렇게 나를 품에 안고 꾸벅꾸벅 조실지언정 본인의 아늑한 침대에 본인 몸을 먼저 뉘이시지 않으시는.
저분에게 쉼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사람. 소중한 나의 장모님.
그 많은 일중 내 요 작은 눈에 장모님이 요새 제일 힘들어 보일 때는
장모님이 사위라고 부르는 저 사람. 그래 나의 아빠라는 사람을 대할 때인 것 같다.
저 아빠란 사람은 초보 아빠답게 나에게 온갖 실수를 퍼붓는다. 그래 절대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닌 건 알겠는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저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0세 신생아인 나도 들게 하는 사람. 하- 나의 아빠.
예를 들자면,
기저귀 붙이는 찍찍이를 거꾸로 하기도 하고,
분유를 타고 젖병 속 압력을 빼주지 않고 바로 내 입에 꽂아 물총 쏘듯이 내 식도를 강타한 적도 있고,
젖병을 칵테일 타듯이 냅다 흔들어 거품만 한 바가지 내 입에 퍼부은 적도 있다.
또 장모님께 목욕하는 거 배우겠다고 설치다가 뜨거운 물에 내 발을 익힐 뻔하기도 했고.. 또.. 하.. 너무 많다. 이건 나중에 따로 특집으로 모아서 저 아빠란 작자의 나에 대한 만행을 낱낱이 고해야지.
아무튼 그런 철딱서니 아빠를 대하는 게 힘들실 텐데도 장모님은 아빠에게 늘 친절하고 차분하게, 아빠가 나에게 어떤 사고를 쳐도 차분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해주신다. 그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지금도 장모님은 주방에서 무언가를 뚝딱뚝딱하고 있다.
“장모님 저 요리 알려주세요!. 나중에 집 가면 해 먹게요! 특히 요 노각무침(늙은 오이 무침). 장모님 요리 최고 bbbb”
철딱서니 없는 아빠의 목소리가 주방 언저리에서 들려온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팔이 길었다면 귀도 막았을 텐데 아쉬울 따름. '아빠 사람아..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말뭐(말해 뭐해)..'
엄마가 그러는데 저 장모님은 소띠라고 했다.
그래서 소처럼 본인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
가족을 위해 그리고 처음 보는 힙한 0세인 나를 위해 저렇게 열심히 살고 계신 걸까..
나는 소띠가 아니다.
마음 한 편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모닝검은흑호랑이띠. 어흥!
그래도 나는 장모님처럼 소같은 호랑이가 되고싶다.
소는 좋은 동물이고, 내가 아는 사람중에 장모님은 너무 좋으신 분이다.
물론 내가 아는 사람은 아빠엄마장모님 셋 뿐이란 게 함정.
음. 그래. 기분이 좋아졌다! 서비스로 그렇게 바라는 대로 할미라고 한번 해줘 볼까?
“어머어머 얘 봐라. 배고픈가 본데? 사위! 분유 좀 타 오게!”
음.. 여전히 의사소통은 쉽지 않군.
그냥 처음 생각한 대로 장모님이라 불러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