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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Apr 15. 2022

Ep6. 직장생활의 No맨스

직원은 묻는다. 회사는 답한다. 그렇게 둘은 어긋난다.


직원은 묻는다.
회사는 답한다.  그렇게 둘은 어긋난다.




인생이 달면 술이 쓰고,
인생이 쓰면 술이 달다


“오늘은 첫 잔부터 술이 쓰네. 인생도 쓴데, 술도 쓰다니.. 참 그렇다.. 그렇지 주 과장?”     


“그러게요 부장님. 부장님이랑 단 둘이 먹어서 그런지 엄청 맛없고 쓰네요. 달달하니 술술술 잘 넘어갈 때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삭막한 직장생활에 마음 맞는 직장동료랑 저녁때 한잔하는 게 좋았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이제 못하게 될 거라 그런가.

그때마다 징글징글한 꼰대 서 부장님, 더 꼰대 오 차장님 뒷수습하는 거 너~어~무 싫었는데 말이죠. 저는 김 대리처럼 쿨하게 두 분 길바닥에 버려두고 가지도 못하고..”     


“ㅎㅎ그런 게 직장생활의 낭만! 로맨스인 거야 임마.. 네가 로맨스를 알아?”     


“No맨스 아니고요?

요즘 MZ세대들한테 그런 말씀하시면 음.. 그래 뺨 세대 정도 맞으실걸요? 제가 선물드렸던 90년대생이 몰려온다는 다 읽으신 거죠? 이제 저도 사라지면 그거라도 붙잡고 더 열심히 공부하셔야 할 텐데.. 헤헿”


“에헤이~ 이 사람! 기분 좋게 마시다 말고 DMZ도 아니고 MZ로 선을 딱 갈라버리네. 주 과장 자네도 이제 그렇게 젊지 않아.~ 저번에 뭐랬더라? 김대리 때문에 화딱지 나서 저걸 옮겨주든 주 과장을 옮겨달라고 난리 쳤던 게 누구였더라~”     


“하~하여튼 이상한 거에만 기억력이 좋으시다니까 노 맨스 부장님”     


“그래서, 어디로 옮기는데? 나한테는 먼저 좀 알려주면 좀 안 되냐?? 오 차장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서운하다 주 과장. 좋은 데면 나도 주 과장 라인 좀 타볼까~”     


“제 능력 제 팔자에 무슨 놈에 이직입니까.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이 회사에 너무 지쳤어요 번아웃! 전 아웃! 아무 계획 없이 내질렀어요. 다들 제가 말로만 그만둔다 하고 진짜 그만둘 줄 몰랐던 눈치던데.. 뭐 인생 별거 있나요”     


“뭐야? 그럼 아무 대책 없이 사표 낸 거? 야야. 주 과장 너처럼 철두철미 계획 끝판왕 AI 로봇 같은 애가 무슨 일 이래? 누가 그렇게 괴롭힌 거야? 내 주 과장 힘들까 봐 오 차장, 김 대리도 싹 다 정리해줬잖아!!하하~나갈 때 속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에이~ 서 부장님이요? 그 두 분 나가실 때 마지막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고 코 끝이 빨개지시던데요?“


“에헴. 쿨럭쿨럭. 전염병이 여기까지 왔나.. 갑자기 기침이 나네.. 흠흠. 그 표정 또 보기 싫으면 말해줘 봐. 회사에 뭐가 불만이야? 지금 그 망할 놈의 전염병 때문에 회사 사정이 이래서 그렇지. 회장 맨날 하는 말 몰라? 우리 회사 자금력이면 1년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하시잖아. 그리고 전염병 이놈 이거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거 보면 곧 종식된다고들 하니까 좀 참아봐 주 과장. 주 과장도 이 회사가 업계에서 알아주는 곳 중 하나인 건 나보다 더 잘 알잖아.”     


“이 회사 가요? 요즘 블라인드 안 들어가시나 봐요 부장님.. 옛 영광에 취해 계신 분이 여기도 한 분 계셨네요.. 실망 서 부장님...”     


“흠흠.. 그래서 정말 원하는 게 뭔데? 이 서 부장 이름 걸고 내일 당장 회장한테 건의해줄게! 너 조기 승진으로 과장 당겨온 거 누구 작품인 줄 알지? 에헴!”     


“그러게요... 과장돼서 좋다고 힘내서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휴.. 원하는 거요? 음.. 글쎄요.. 지금 원하는 거는 이 회사가 나를 제발 좀 순순히 놓아줬으면.. 하는 거?

아! 부장님. 부장님 보시기엔 제 사표가 윗선에, 그러니까 설 팀장이 회장님께 전달한 것 같으세요?

사표 낸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 아무 반응이 없는 것 같아서요..”


“응? 아니. 오늘도 회장님 아무 소리 없으시던데.. 아셨으면 가만있으셨겠나? 오 차장에 김 대리 다 나가고 지금 주 과장까지 없으면 3팀 사업들 다 쓰러질 거 뻔한데. 설 팀장이 그때 본인이 직접 보고하겠다고 나한테는 일단 가만있으라고는 하더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무튼 설 팀장은.. 쯧”

     

“저한텐 아까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하시던데요? 오히려 오 차장님 대신 임원회의까지 참석하라니..참…과장 1년 차도 안된 직원이 무슨 임원회의입니까.. 게다가 전 사표까지 낸 상태인데..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근데 내 생각은 좀 달라.. 임원회의에 널 보내기 시작했다는 건, 회사에서 널 본격적으로 키우겠다는 아주 긍정적인 시그널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주 과장 나, 이 서 부장의 사회경험 촉 알지? 내 보기엔, 이건 지금 주 과장한테 큰 기회가 다가오는 걸 수 있어. 이번 전염병 사태만 한번 눈 딱 감고 참고 넘어가 봐. 상황 안정되면 지금 고생했던 거 다 보상해줄 거야.”  


“제가 지금 당장 죽겠다니까요.. 부장님.. 아시죠? 지금 3팀 영혼까지 빠져나간 그 빈자리들 업무 제가 다 뒤집어써서 하고 있잖아요. 과장 월급 하나로 몇 명 몫을 하고 있는지 하루하루 우울합니다.. 김 대리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둘이 으쌰 으쌰 해서 버텨봤을 텐데.. 사람 뽑아달라고 난리를 쳐도 회사 사정 타령하면서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죠. 지금 저희 팀 남은 사람이 설 팀장, 저, 사 대리인데. 저는 그 둘이랑은 한순간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썩은 산소가 저한테까지 오는 느낌 아세요? 일할 의지 아예 없는 그 둘 애써 무시하며, 거래처에 죽어라 해서 사업 가져오면 실수해서 망쳐놓기 일쑤고, 죽어라 수습해놓으면 너무나 태연하게 본인 실적으로 이름 딱 올려서 가로채죠. 그래 그건 그렇다 쳐요.

어느 조직에나 돌아이는 있으니까.

근데 절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그런 일을 겪었을 때 같이 이해하고 위로하면서 조금만 더 힘내자라고 말할 동료가.. 이제 제 눈엔 없네요..”     


서 부장은 쓴 소주 한잔 들이켜고, 일갈하듯 토해내는 아인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부서이동 로테이션 신청해도 설 팀장이 가로막고, 타 부서 팀장들은 설 팀장 눈치 보며 로테이션 수용도 거절한다죠? 이건 진짜 사방을 높은 벽으로 가로막고 넘지도 못할 천장으로 알아서 나와봐라 하는 심정이랄까요?     


”후.. 그래 내가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 주 과장.. 근데 내가 누누이 말했지? 직장생활은 그렇게 감정적으로 가기 시작하면 결국 본인 손해라고..

그래 니 그 잘난 사수, 오 차장 봤지? 겉으로는 설 팀장, 회장한테 엄청 깍듯이 잘했지만 업계 탑 기업에 이직 자리 다 만들어놓고 기관총 난사하듯이 뒤통수 갈겨놨잖아. 자네 사수라 옆에서 계속 봤을 텐데..

물론 오 차장처럼 그렇게 완벽한 비즈니스 가면을 쓰진 못해도.. 옮길 곳이라도 만들어 놓고 움직이는 게 맞아. 그때까지만 참으란 거지.. “     


”맞아요 부장님.. 저는 오 차장님이랑 오랜 시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저는 그분 보면 너무 삭막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비즈니스 거래 상대로 만나면 서로 업무 얘기만 딱 하고 서로 줄 건 주고받을 건 받는 깔끔한 관계지만, 딱 거기까지랄까?

속내를 털어놔도 그게 진짜 본심 일지 알 수 없는 사람. 어제까지만 해도 웃고 술 마시고 사업실적 분석하며 보람차 하고 같이 그랬던 사람이, 다음날 바로 사표로 뒤통수쳤죠. 심지어 회사 내 가장 가까운 사이라 생각했던 분에게 그런 일 당하니, 멘탈 부여잡기 힘들더라고요..

그것도 제 사표에 분명 큰 영향을 주었죠..”


”봐봐. 그때 설 팀장이 오 차장 왜 못 잡았겠어? 이직할 곳, 이직해야 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까 회사에서도 더 이상 손쓸 수 없다는 걸 알고 붙잡질 못했던 거야. 주 과장 네가 낀 세대라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 성숙한 직장인의 이직은 다 그렇게 해. 주 과장 성격 올곧아서 누구 속이고 회사에 피해주기 싫어하고 그런 거 다 아는데, 그래도 아무 준비 없이 이런 일 벌인 건 주 과장이 너무 성급했어 “     


”부장님.. 저는 그 잘난 성숙한 직장인 하고 싶은 생각이 정말 1도 없어요. 왜 제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누군가에게 맞춰줘야 하나요? 누구 속이고 이런 거 정말 싫고, 누구처럼 완벽하게 해 낼 자신도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멀리까지 안 가도, 현실적으로 딱 봤을 때 당장 내일 아침 또 설 팀장, 사 대리랑 얼굴 마주할 생각 하면 토악질이 날 지경입니다.

출근하면 회장실 밀고 들어갈 겁니다. 그 망할 보고 절차에 딱딱 맞춰서 사표 제출하고 제 발로 이 회사 나가겠다는데, 도대체 이 회사는 그동안 해준 것도 없으면서 이제 와서 사람 좋은 척들 하며 왜 놔주지도 않는지 모르겠어요.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고요.

이제 그만 말하고 싶네요 부장님.. 내일 같이 회장실 문 부시고 들어가 주실 거 아니면 이제 이 얘기 그만해요..”


아니 그러니까 주 과장이 회사에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냐? 그걸 한번 말이라도 해보라니까..? “     


“원하는거요? 그래요.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내일. 전. 회장실 문. 박차고 들어가서.

사표 던지고. 때려치웁니다. “     


신입 때부터 쌀쌀맞은 척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선의로 본인을 돌봐준 츤데레 동네 형 같은 주 과장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인으로서는 계속해서 서 부장과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때마침 울리는 전염병 시대의 9시 땡 신데렐라 퇴장 곡.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헤어지는 마음이야 아쉽지만

웃으면서 헤어져요~“


물론 저녁 9시밖에 안 됐는데 이 노래를 들어야 한다는 게 조금은 서글픈 시대지만.     


원하는 걸 말하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서 부장을 고이 택시에 접어넣어드리고,

아인도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래.. 회사는 늘 그런 식이지..’


재킷 속 잠들어있던 사표를 내던진 직원은 그 사표를 방패 삼아 본인의 요구사항을 회사에 요청한다.

회사 입장에선 별로 대단치도 않은 그 요구사항을 두고 한낱 일개 직원은 말하기 전 수십 번, 수백 번을 눈치 보고 고민한다.


회사는 답한다.

일단 참아. 여태껏 부품 1로 잘해왔듯이 잠잠히 입 다물고 지금 하는 니 일, 그리고 니 옆에 그만둔 오 차장 일, 그리고 그 앞에 그만둔 김 대리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옆 팀 일 조금 정도까지만 참고 일단 하면, 지금 네가 말한 요구사항을 들어줄 거야.

니가 그만큼 이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는 뜻이야.

무려 이 큰 회사가 너라는 일개 직원을 인정해준다는 거룩한 뜻이라고.

니 요구사항? 들어준다니까? 일단 참으면.


이렇게 둘은 어긋난다.     

회사의 뻔한 말을 믿지 않는 아인이 한 가지 다행이라 생각한 건,

아인의 사표는 이미 던져졌다는 것이었다.

즉, 더 이상 아인은 회사의 되도 않는 감언이설에 고민할 필요도, 여지도 없어졌다는 것.


 어쨌든 퇴사를 한다.’


그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에게 위로가 된 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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