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ㅈ같은 회사가 정말 행복한 걸까?
"결국 써브웨이를 먹어보긴 하는군"
김대리와 마주 앉은 아인이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아인이 형!! 언젠가 한 번은 만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져그져?? 아침은 드셨어요?? 아침은 무조건 써. 브. 웨. 이! 아닙니까~~~ 하하 에그마요 드셔 보셨어요? 에그마요 절대 강추!! 우리 아인이 형 고기 좋아하니까 베이컨도 추가하시고!!"
얘는 항상 이런 식이다.
좋게 말하면 넘치는 자신감.
꼰대들이 봤다면 끝없는 무례함.
어린 시절 유학생활을 해서 그렇다고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저 근자감의 대명사.
과거 아인과 김대리가 부딪힌 일화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출근하던 김 대리는 평소와 같이 아침 인사를 건네는 아인에게 가서 뜬금없이 말한다.
"선배님 아침에 저 출근할때 인사하지 말아주세요."
'이게 아침부터 뭔 또 참신한 ㄱ소리지..'
웃으며 건넨 인사의 무안함을 애써 감추며 아인은 말한다.
"무슨 소리야 김 대리?"
"사는 것도 힘든데 저한테까지 뭐 그렇게 에너지를 쓰십니까.
선배님과 전 회사에서 만난 사이이니, 딱 회사가 월급 주는 만큼만. 자기 맡은 업무만. 딱 그렇게 하는 게 서로 편하죠. 선배님, 요즘 시대에 그런 꼰대같은 마인드 갖고 있으면 조직생활 적응 못한단 소리 들어요~ 제가 특별히 선배님을 아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고맙죠?"
김 대리에게서 너무 많이, 그리고 또 자주 들어본 ㄱ소리여서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는 아인이 말한다.
"아~그러세요. 우리 후배님, 근데 잘 들어보세요. 나는 저 누구 같은 꼰대 세대가 너무 싫어서 우리 후배님한테 강요하고 참견하고 그런 거 1도 안하잖아. 이건 인정하지?
근데 그런 내 생각에도 이런 인사는 아주 기본이라 생각해.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기본은 해야지.
아침 출근인사, 점심 식후 인사, 저녁 퇴근인사. 이렇게 딱 세 번 정도? 이건 사회생활 모 이런 걸 다 떠나서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사표시. 그래 그걸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 아닐까 우리 대단하신 후배님?"
"아이고.. 여기 또 젊은 꼰대 하나 납셨네.. 맨날 낀 세대를 자처하는 이 억울한 선배님을 어찌 구원해드리나..뉘예뉘예뉘예~ 그럼 그렇게 사세요. 저는 그렇게 살다 간 숨 막혀서 여기 바로 때려칠듯요. 그렇게 인사하고 그 잘난 기본 챙긴다고 월급 더 준답니까? 전 딱 제가 받고 있는 만큼만 일하고 퇴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선배님 생각이 그러시다면 말리진 않지만, 그러니까 저한테 혹시라도 그런 인사? 기본? 그런 건 기대하지도 마세요!"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가 보다 했다. 아니면 김 대리가 오랜 유학생활에 한국 정서를 내버렸거나.
하지만 퇴사를 앞 둔 지금의 아인에게 그때의 김 대리의 저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했다.
결국 직장이란 건,
돈이라는 목적 하나로 모여,
사표라는 종이 하나로 두 번 다시 볼 필요가 없는 사이가 되는, 어쩌면 뻔한 그런 쌔드 앤딩이니까.
다시 현실.
"그래, 어떻게 지내 김 대리?"
"에헤이! 누가 젊은 꼰대 아니랄까 봐. 아인이 형! 퇴사했는데 아직도 김 대리라고 호칭을 하시네. 저 사표내고 나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웃으면서 말했죠? 다음에 보면 형 동생 합시다~헤헤했던 거! 제가 그때 그래도 마지막이라고 활짝 웃으면서 사회생활 좀 했는데 벌써 잊으셨나~편하게 삽시다 편하게~"
아인은 생각했다.
정말 평소와 다르게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난 날이라고.
"알았어 그래. 그렇다 치자. 김 동생. 됐냐?
김 동생. 그래서 아침부터 여긴 어쩐 일이야?
복직하려고?"
"아인이 형, 며칠 안 본 사이에 아침부터 신선한 헛소리 잘하시네요? 복직이라뇨. 돌앗..
딱 보면 모르세요? 저 여기 써브웨이에서 아침 먹잖아요. 그리고, 제가 방금 놀라운 생각을 해냈어요.
바로 이 써브웨이에 취직해야겠다는 귀한 결심을 했답니다."
얘랑 하는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게 MZ세대인 건가.
대화가 또 이상하게 흘러간다 느낀 아인이 물었다.
"너는 여전하구나. 써브웨이로 이직? 너 먹고 있는 야채만큼이나 아주 신선한, 요상한 말을 하네?"
"네. 자. 잘 보세요 아인이 형. 저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초록색 옷 입은 직원들 보이죠. 그리고 아마 제 생각엔 그 옆에 혼자만 검은색 옷 입은 머리 좀 벗겨진 머머리 아저씨가 여기 매장 점주 정도 되는 거 같아요. 제가 여기 온 지 한 20분 정도 됐거든요? 근데 보시다시피 너무 이른 아침이라 손님이 저 밖에 없어서 저분들 미팅하는 소리를 어쩔 수 없이 슬쩍 듣게 된 거죠. 근데 글쎄!
미팅 주제가 뭔지 아세요?"
여기서 잠시 호흡을 멈췄던 것 같다. 김 대리가 도대체 아침부터 뭔 헛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먹겠어서.
"무려.. 저 초록 친구들의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명 한 명 물어보고, 검정 점장이 엄청 진지한 눈빛으로 들어주고, 다른 친구들은 손뼉 치며 응원해주는 미팅인 거예요..!! 대박이죠?? 충격...!! 와~~~~~"
"야. 김 동생. 나 오늘 회장이랑 대판 싸울 거야. 초록 꿈이고 나발이고, 이 얘기가 더 궁금하지 않냐? 샌드위치 다 먹으면 다신 볼일 없을 저 초록이들 꿈 얘기보다?"
"엥? 그 할배랑 싸운다고요? 짤리시려고요?
그럴 줄 알았어. 제가 나올 때 말씀드렸죠? 이 위대한 김 대리를 잡지 않는 그 팀 그 회사에게 남은 미래는 딱 두 가지라고.
하나. 아인이 형이 설 팀장 자리를 차지한다.
둘. 아인이 형 내쫓고 나락!! 바이~~
아! 아냐. 아인이 형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저런 써브웨이 조직 문화가 놀랍지 않냐고요!!"
".. 계속해봐"
아인은 포기한 듯 나즈막이 말했다.
"보세요. 아인이 형이랑 나. 우리는 같은 팀에서 근무하며 옆자리에서 맨날 출근 인사하고 점심 메뉴 박 터지게 고민하고, 경쟁사 실적에 빡쳐서 야근 때리고, 그러다 화딱지 나서 밤에 회식으로 달리고. 그렇게 맨날 설 팀장 했던 말처럼 가족보다 오랜 시간 같이 있는 그 잘난 가ㅈ같은 관계였잖아요.
근데. 단 한 번이라도 저렇게 같이 일하는 옆자리 동료의 꿈이 뭔지, 저희가 그런 속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나요? 장담하는데 제 기억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설 팀장이랑 있을 때는 회식 언제 끝나나 만 기다렸죠. 그러다 아침에 불만 가득 얼굴하고 있으면 끽해야 조용히 저~2 회의실로 불러서 불만이 뭔데로 시작하는 허울뿐인 인사 면담! 이딴거나 하고."
"너 뭔소리 하는 거야 아침부터. 혹시 어젯밤에 여기서 밤샘 술 달리고 아침 해장 샌드위치 중인 거야?"
아인은 더 못들어주겠다는 투로 말했다.
"제 말은.. 이 작은 써브웨이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보다 과연 이름도 유명한 그 잘 나가는 우리 회사, 아니 이제 나는 발 뺐으니까..삐까뻔쩍한 그 사옥에서 일하는 아인이 형 회사 직원들이 더 행복하겠냐는.. 뭐 그런 거죠."
아인은 순간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아인도 그 일원 중 하나였고, 단 한 번도 옆자리 동료의 꿈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등의 속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간혹 궁금하긴 했어도 뭐랄까..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묻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그것을 서로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젠틀'하고 '성숙한' 직장인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음.. 아무튼 그래서 저는 저런 조직 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거죠. 얼마나 귀한 아침입니까 정말.. 혹시 아인이 형 써브웨이 인사팀에 아는 분 없죠? 에휴..
아무튼 이 업계 사람들은 맨날 여기서만 뒹구니까 사람도 그렇고 업계도 그렇고 발전이 없는 거예요.
형 맨날 술 취하면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 만화 뭐냐 원피스인가 투피스인가 거기에 "너 나의 동료가 되어라!" 하면서 형만의 팀 꾸리고 싶다 했었죠?
자, 기회예요. 이제 그 기회가 왔어요! 저랑 같이 써브웨이로 갑시다! 오 마침 잘됐네. 오늘 회장이랑 멱살 한번 잡고 사표내고.. 일사천리! 오늘이 바로 운명의 그날입니다!"
'듣기만 하는데도 지친다.. 그냥 병가 내고 집 가서 누워있고 싶다..' 아인은 생각했다.
"근데.. 그래서 저 써브웨이 직원들보다 더 큰 꿈을 꾸는 아인이 형 야망이나 들어봅시다. 형 팀 꾸려서 하고 싶은 꿈이 뭔데요? 술 취해도 절대 그 뒷얘기는 안 해주더라. 오늘 한번 들어봅시다. 아 근데 제가 정확히 10분 뒤 오는 전철을 타야 하니까 딱 10분만 대화하죠 우리. 아아~그 맨날 하는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는 그런 대화 말고. 아인이 형 여기. 심장 속에 품은 꿈에 대한 진심의 대화"
아인의 심장 부분을 빨대로 가리키며 김 대리가 말했다.
'하.. 나는 왜 항상 얘한테 말리는 기분이지..가스라이팅이 이런 거 아닐까?'
아인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미국 유학시절 우물쭈물하며 들어갔던 써브웨이 매장에 선 학창시절 아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작은 샌드위치 가게에서 바로 아인의 꿈이 처음 시작되었기 때문이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