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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Apr 22. 2022

Ep9.그때 그 아인; 원하는 꿈을 이룬 삶에 남는것.

#1. 왕자님의 키스로 깨어난 백설공주는 그 후 행복했을까?

#2. 원피스를 찾아낸 루피의 남은 삶은 계속 그렇게 즐거웠을까?

그렇게. 원하는 꿈을 이룬 사람에게 남은 뒷 이야기는 달콤할까.


아니, 이런 질문은 이미 충분히 바쁜 현대인인
당신에겐 이미 진부할까?


"This one. yes, That one. yes. This. This. this. Perfect. Cool."


아인의 미국 유학시절 어느 한 공항 써브웨이에서 원하는 야채와 소스를 선택하기 위해 마치 모스부호찍듯 따박따박따다닥 내뱉었던 짧은 영어.

야채 종류의 영어 이름을 외우는 것이 무척 어려웠던 어린 날의 아인이 낯선 외국인 앞에서 주문을 위해 내뱉을 수 있었던 말은 고작 디스와 예스, 노. 그리고 그만큼 어렵고 낯설기만 했던 외국 생활은 아인에게 친구, 가족, 한국 등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그와 함께였던 것들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을 남겼더랬다. 아인이 너무 나약해서 였을까?

그리고 써브웨이 매장 안 무자비한 야채들의 영어 이름 앞에서 아인은 그런 낯선 향수병을 극명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샌드위치 주문을 위해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긴 줄의 사람들. 거의 쇼미더머니 초고속 랩처럼 들리는 빠른 영어로 재촉하는 초록 유니폼의 직원. 끝없는 선택을 갈구하고 기다리고 있는 많은 야채들. 그 틈바구니를 이겨내고 마침내 샌드위치를 집어 드는 데 성공한 아인.


공항 아무대나 주저앉아 야무지게 한 입.

때마침 공항 창 밖 이륙하는 거대한 항공기의 아랫 배 부분은 특이하게도 그날의 아인에게 무척 따뜻한 인상을 남겼었다. 마치 위로해주는 듯한. 그리고 이미 지독한 향수병에 빠져있던 아인은 그 공항과 그곳을 수도 없이 왕복하는 항공기들을 보며 막연히 "집에 가고 싶다"며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인의 꿈은 그때 그 순간 시작됐던 것 같다. 첫 생각의 시작은 단순했다. 집에 가려면 공항으로 가야 하고, 공항에만 가면, 비행기만 타면, 그러면 본인을 아껴주었던 모든 것들, 아마도 향수병을 깨끗이 닦아내 줄 그 소중한 것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인에게 공항이란 공간은 집으로 갈 수 있는 수단, 즉 목표이자 꿈이 되어버렸고, 그것이 그저 막연히 ‘공항에서 일하고 싶다. 항공사에서 일하면 행복할 것 같다’라는 목표를 남겼다.


이처럼 인생은 때론 사뭇 갑작스레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마치 이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사상 최대의 청년실업의 시대였다. 하지만 될놈될이라 했던가. 어쩌다 보니 서류심사를, 면접을, 그리고 최종 회장할배의 면담을 통과한 아인은 본인이 그토록 염원하던 항공업계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왕자님과 혼인한 백설공주, 원피스를 찾은 루피처럼 아인도 본인이 간절히 원하는 꿈을 이루게 된 것 같았달까?


본인이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직업을 본인의 직장으로 다닐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꿈을 이룬 그들은 본인들이 꿈꿨던 것처럼 과연 그렇게 계속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갈까?


어쨌든 원하는 직장을 움켜쥔 아인은 무척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아인에게 그 직업, 그 회사는 다른 누구의 어떤 것보다 소중한 곳이 되었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해야 한다면 지금 하자."


아인의 직장생활 첫 신념.

이 회사가 인정한 MZ세대의 대표 주자인 김 대리가 들으면 "토하겠네 진짜. 왜 그렇게 살까 쯧쯧"하고 혀를 차겠지만.


아무튼 그러한 본인의 신념에 따라 아인은 누가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다.

물론 여느 평범한 직장인들이 겪는 3년, 6년, 9년의 슬럼프가 아인을 거세게 흔들기도 했지만,

아인은 그럴 때에도 옛날 그 공항에서의 반짝반짝 불빛을 보며 먹먹한 써브웨이를 우겨넣던 그 때, 막연히 항공업계에서 일하길 꿈꿨던 그때 그아이 모습을 회상하며 잘 이겨내었다.


누군가는 그런 아인을 보며

"나이스한 거절이란 걸 할 줄 모르는 우둔한 사람", "남한테 이용당하고 버려지기 딱 좋은 스타일",

"받는 월급은 똑같은데 왜 저렇게 오바하지?" 등 조소섞인 뒷담을 수근거렸고 아인도 그런 이야기를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아인은,

"그냥 할 뿐."


또라이 할당량의 법칙이랬나.

어떤 조직이든 사람이 모인 곳에는 일정 비율로 돌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그런 법칙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일정 비율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했다.

만약 그 조직에 돌아이가 없다면..

그래서 본인에게 그곳이 정말 좋은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안타깝지만 본인이 그 돌아이는 아닐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인은 그런저런 생각으로 그들을 외면해냈고,

'결국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 돌려받는다'는 본인의 다른 신념 하나를 더 붙여 직장에서 성실한 하루하루를 살아내었다.

그렇게 세월을 어찌어찌 살다 보니 본인의 스페셜한 능력을 굳이 전수해주겠다며 미리 감사하라는 오 차장도 알게 되었고(물론 아인이 먼저 그런 부탁을 한 적은 당연히 없었다), 본인 일처럼 아인의 승진을 챙겨주었던 서 부장도 알게 되고, 사회생활 그렇게 하면 인생ㅈ망이라고 늘 틱틱대던 김 대리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김대리가 지금 내 눈앞에서 꿈이 무엇이었냐 묻고 있었다.


"아~아인이 형은 처음부터 꿈이 이런 거지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거였군요?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성실할 수 있던 거였어. 이제 이해가 됐어요! 그래, 그럼 하나 물어봅시다.

꿈을 이루고 나니까 정말 그렇게 행복하던가요?"

특유의 거슬리는 천진난만한 투로 김대리가 물었다.


"오 마이 갓. 전철 오네. 10분 참 빠르네요 정말. 이래서 마음맞는 사람이랑은 늘 아쉬움이 남는다니까. 저 먼저 일어날게요! 형은 드시던 에그마요 마저 드시고 찬찬히 일어나쇼~ 또 만날 일 있을까 모르겠지만 기회되면 또 보는 걸로.

그때 꼭 대답해주기~! 그럼 쿨하게 바이~!"


요즘 친구들은 다 저렇게 자유롭게 사나.

내가 늙은건지 세상이 바뀐건지 알 수가 없다.


원하는 꿈을 이룬 사람.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아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을 걷어차러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그것도 지금의 아인이었다.


그때 그 아인,

지금의 아인에게 과연 뭐라 해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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