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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Apr 25. 2022

Ep10. 괜찮다가도 문득 안 괜찮은 그런 날.

문제가 있다하면 니가 문제있다 하는 회사


"그래서.. 그날 그 회장이란 사람 만나서

거사를 치른 거야?"

아인의 사람을 끌어당기는 입담은 여전하다고 느끼며 예소가 물었다.


"내가 말했지? 아침부터 오 차장 연락에. 김 대리 만나고. 그날은 이상하게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음.. 괜찮다가도 문득 안 괜찮은 날.
그날은 그런 날이었어.

‘드디어 오늘이다.

내 몸을 움직이고 있는 이 발걸음으로 드디어 회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갈 테다.

그리고 외쳐야지.

 더러운 회사!!! 때려치겠습..!!!'

통쾌한 상상을 하며 회장실 문 앞에 선 아인이 생각하던 바로 그때,


"내가 말했지? 주 과장 니 뜻대로 안 될 거라고.. 크크"


어제 술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주 멀끔한 모습의 서 부장이 아인을 향해 말했다.


"회장님 안에 계시죠?"


"글쎄..? 내가 주 과장이라는 미사일 오늘 날아갈 거니 피하시라고 속삭여드렸더니 땅으로 꺼지셨어"


"서 부장님.. 저 장난할 기분 아니에요. 가뜩이나 아침부터 오 차장님 연락에, 말도 안 되게 김 대리까지 마주쳐서 진이 다 빠졌다고요.. 빨리 회장님한테 사표내고 집 가서 쉬고 싶어요. 지금 당장."


"뭐?? 김 대리? 그게 여기 왔었어? 나한텐 연락도 안 하고. 나쁜 놈.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은 그런 식이야. 90년생이 몰려온다가 아니라 몰려간다야 이건 뭐 다 나가. 응급사직이래나 모래나. 그런 단어 만드는 것도 재주야 김 대리 그거."


서 부장의 김 대리에 대한 푸념에 신물 난 아인은 서 부장의 말을 끊으며 이어갔다.


"회장님 아직 출근 전이시냐고요!"


"어?  아니 일찍 나오셨더라고. 근데, 가셨지. 크크"

다시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짓궂게 서 부장이 말했다.


"아침에 감기기운이 좀 있으시다고 하시면서 전염병 검사받으러 가셨어. 요 앞에 선별 진료소에서 받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굳이 본인 다니는 집 근처 강남 병원에 가야 한다며 가시더라고. 자기 건강은 자기 주치의만이 정확히 판단할 수 있대나 모래나, 아 물론. '오늘 안 나올 거야'라는 말을 덧붙이셨지. 즉 주 과장의 안타까운 사표는 오늘도 회장에게 닿기 실패했달까. 주 과장. 이제 그만 받아들여.. 이것도 운명이지 않을까? 주 과장과 이 회사의 끈질긴 운명.!! 운명적인 스토리 크~~~"


"휴... 진짜."


전체 안내방송드립니다. 지금 사내 전 직원분들께서는 회사 우측 선별 진료소에서 전염병 검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명일 오전 결과 확인되는 대로 운영총괄부로 즉시 통보 바라오며, 열외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치 공습 사이렌같은 사내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귀찮다 귀찮아. 자 들었지 주 과장? 그 사표 가슴속에 다시 고이 집어넣으시고 검사부터 받고 오라고."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 웬 전체 검사? 확진자라도 나온 건가?"


"이거 이거 주 과장, 회사에 마음 너무 뜬 거 아냐 이거~? 소식이 이리 늦어서야. 여객영업 1팀에서 확진자 나왔대. 그래서 회장도 눈도 안 마주치고 고이 귀가하신 거고. 본인 몸은 하여튼 어지간히 챙긴다니까.."


"그럼 직원들도 검사받고 귀가하면 되는 거예요? 사표는 못 냈지만 꿀이네요. 개 꿀!"


"크크. 아직도 이 회사를 모르네.. 그건 회장님만 가능하지. 나머지 직원은 검사 후 정상근무. 왜? 결과가 아직 안 나왔으니까. 자자. 이제 검사받으러 어서 움직이라고."


'참.. 한결같이 거지 같은 직장이다.'

본인의 몸을 지키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파란 갑옷의 방오복을 입은 검사관에게 본인의 콧구멍을 내주며 아인은 생각했다.

확진자가 나왔다는데 당장 사무실 폐쇄는커녕 검사 후 정상근무하라니. 나라에서 정한 최소한의 보호도 무시하는 회사. 이거 노동청에 확 찔러버려? 이럴 때는 김 대리가 그립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직구 전력투구로 회사에 따졌을 텐데.


‘이놈에 회사는 고쳐야  점을 말해주면 

 직원을 고쳐야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어버리니..'


아인이 어젯밤 서 부장에게 호언장담했던 회장실 문 부수기 프로젝트(?)는 결국 오늘은 아무런 수확 없이 끝이 났고, 씁쓸한 기분으로 시큰거리는 콧구멍을 어루만지며 하릴없이 본인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 코를 왜 이렇게 깊이 쑤시는 거야 정말. 골이 울리네 골이. 아, 아인 씨 검사받고 왔어? 팀장님이 오전 임원회의 들어갈 준비 하라고 하시던데~?"


젊은 시절 설 팀장이 있었다면 저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설 팀장의 젊은 버전인 팀의 하나 남은 멍한 사 대리가 시큰거리는 콧구멍을 거울로 보며 얄밉게도 말했다.


'여기도 역시는 역시가 하나 더 있네.. 저 꼴 보기 싫은 건 잘도 붙어있네.. 미칠 노릇이다 정말..'


임원회의 자료 확인을 위해 아인은 오 차장의 빈자리로 가 노트북 전원을 켰다.

오 차장, 김 대리의 퇴사 후 그들의 빈자리는 아인의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둘의 업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아인에게 넘어왔고, 현재 해외 물류 3팀에서 유일하게 그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인 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오 차장의 자리에 털썩 앉은 아인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때려치움의 의지를 굳게 담은 아인의 사직서는 여전히 설 팀장의 서랍에 고이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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