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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살면 어떤 느낌이야?

직업은 해녀. 말도 한 마리 키우고, 맨날 이쁜 오름 산책하고?

by 타샤할머니

우리 옆집은 엄마끼리도 동갑, 아빠끼리도 동갑, 아이도 같이 딸아이로 우리 둘째와 동갑.

친해진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제 날이 따뜻해지고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 서로 현관문을 열어놓고

엄마들은 각자 제 할 일을 하고 아이들은 네 집 제집 할거 없이 왔다 갔다 드나들며 노는 그림을 그렸다.

아파트에 살지만 최대한 아파트에서 키우는 거 같지 않게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던 내가 정말 바라던 일이었다.

그런 옆집에 살던 둘째 친구네가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이사를 갈뻔하다가 어차피 아빠 직장 계약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야 하기에 6개월만 살다 오는 걸로 떠났다.

한때 제주도에서 사는걸 꿈꿨었던 나는 제주도로 떠날 준비를 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현실 체감을 아주 제대로 했다.

'멀어도 육지가 나은 거구나.. 그 좋은 곳은 자주 여행으로 가면 되지.'

난 감히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옆집네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참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상상했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일까? 거기도 좋았는데 그런 느낌일까? 정말 그런 데서 사는 거라고?!

내가 가봤던 몇 곳이 떠올랐다. 생각만으로도 잠시 행복한 이 기분.




호주의 섬 호바트의 빈티지 포인트라는 이름의 마을. 이름도 느낌 있지 않나? 난 무지 그런데.

언덕배기 마을에 살고 싶은 마음은 늘 같지만,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내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사는 것도 정말 멋지겠구나 처음 느낀 곳이다.

브리즈번 근교에서 몇 달을 살고 짐을 다 싸들고 호바트로 여행을 오기 전

이미 난 퍼스에서의 생활을 계획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해놨었다.

고작 200불이 아까워 호바트에 그냥 눌러앉지 않았다니..

이건 호주 생활 통 털어 두고두고 후회하는 두 가지 중 한 가지이다.

이 이쁜 주택가를 산책하는데 마주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한적하고 조용한 곳.

그네 옆에도 드넓은 잔디밭에도 어디에나 큰 나무들이 함께 하는 멋진 곳.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미끄럼틀을 타고 흙놀이를 하며 노는 아이들은 정말 행복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썼다고 믿는 글씨와 그림들이 행복하다고 바로 답해주는 기분이었다.

"상추 모종과 난, 라일락, 백합 한 다발 사가세요~~ 돈은 우편함에 넣어주시고요~~~ 고맙습니다!!"


☺︎제주도 바닷가 앞 주택가는 다 이렇지?



신혼여행으로 캐나다에 오로라를 보러 갔다. 그리고 소원하던 록키산맥을 다녀왔다.

짧은 일정에도 욕심을 부려 밴프 국립공원을 찍고 재스퍼 국립공원까지 갔었다.

별거 없으면 어쩐다냐... 불안 초조해하며.

구름 낀 날씨로 허탕 칠걸 알면서도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다는 곳을 기분 좋게 드라이브할 만큼

재스퍼는 그냥 그 자체로 좋았던 곳.

캐나다에 산다면 재스퍼다!

좋은 곳은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직감한다.

세련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투박한 느낌의 시골도 역시 그랬다.

하지만 왜 좋았는지 설명하라면 설명이 잘 안 되는 그냥 좋았던 곳.

아마도 거기서 가장 분위기 있는 곳이었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갈 때

어스름해지는데 그때 이쁜 통나무집들에서 하나둘 켜지던 따뜻한 불빛이,

찻길을 아주 느릿느릿 건너는 순록을 기다려주면서,

다들 엉덩이만 내놓고 풀을 뜯어먹느라 사람이 다가가도 모르는 순록들을 한참 보고 있으면서,

내가 주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만큼 맘에 쏙 들었던 담날 아침에 운명처럼 맞닥뜨린 빵집이.

그나마 이것들이 재스퍼가 좋았던 이유에 대해 설명한 다이다.


☺︎겨울에 눈이 쌓인 한라산 근처 마을은 다 이렇잖아?




'맨날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도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 곳에서라면 정말 가능하겠어?'

아일랜드 애런 제도의 세 섬 중에 가장 작은 이니쉬어에 2박 3일 여행을 갔을 때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여긴 지인짜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젊은 사람도 몇 없다. 그것도 섬에 단 하나뿐인 펍에서 한 끼 때우다가 간신히 봤다.

자그맣게 귀여운 성당 하나 있다. 내가 정말 수녀님도 아니고 그거 가지곤 택도 없지.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들이 있다면...? 생각까지 하다 보니

또 그게 난 된다. 살 수 있다고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섬 전체를 자전거 하나 빌려 타고 다 돌아다녔던 그때의 나도 그랬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는 지금의 나도 그러하다.

내 처지는 달라졌어도 내 맘은 그대로라는 얘기.

이거 좋은 거 맞지?


☺︎제(주도) 알못인 나도 여기가 제주도 느낌 제대로인 건 알겠다~




내가 제일 살고 싶은 나라는 독일이지만

(아! 얼마 전 티브이에서 핀란드 유치원을 보고 바뀌었지만 아직 핀란드는 못가봐서리...)

독일에서 가본 곳이라곤 베를린과 뮌헨 같은 도시나 너무 그림 같은 퓌센이어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가 그나마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잘츠부르크 전체가 울창한 숲 같은 이 곳은 계속 걷고 싶게 만든다.

사람이 많아서 길도 다져지고 가지치기도 잘해서 사람들이 보기엔 깔끔히 정돈된 정원 같은 곳은 싫고

사람이 일부러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조화로운,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 같은 숲이 정말 이쁜 잘츠부르크.


☺︎제주도에는 그런 숲이 있는 오름이 분명 많을 거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오스트리아 빈.

여행할 때 주택가를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빈에서도 오타크링이라는 이쁜 마을에서 이틀 밤을 묵었다.

산이 있는 언덕 마을. 넓게 펼쳐진 싱그런 포도밭 아래로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주택가는 정돈되어있지만 나무들이 많다.

나무가 많은 곳은 어디가 됐든 그곳을 훨씬 멋진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왜 유럽은 쓰레기통도 다 이뻐 보이는 거지?

그냥 지나칠뻔하다 발견한 곰돌이 두 마리가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 제주도는 포도밭 대신 귤나무로 대체가 되는데? 그럼 언덕 마을은 대충 다 저렇겠지!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한 번도 제주도에 가보지 않았던 나는 제주도에 사는 막연한 로망이 있었다.

집을 나가면 멀지 않은 곳에 바다와 오름이 있어 아무 때나 나가 수영을 하고 동네를 산책하듯 자연 그대로의 숲길을 산책하는 일상을 꿈꿨다.

이왕이면 말도 한 마리 타고 다녔으면 좋겠다.

예전에 놀러 갔던 시골마을에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난 그 모습에 홀딱 반해 한동안 남편에게 말을 갖고 싶다 했었다. 무슨 말이 명품백도 아니고 그런 걸 사달라 할까 싶었을 거다. 하지만 당장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난 명품백을 사달라 졸라 본 적이 없으니 당당했다.

인간극장 같은 프로에서 귀어를 한 건지 내 또래의 여자가 해녀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미숙하지만 할머니 해녀들과 배를 타고 나가 물질을 했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난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 나도 해녀 되고 싶다고, 문어며 전복이며 내가 엄청 많이 잡아서 다 먹여 살리겠다고, 해녀 학교를 보내달라고 졸랐던 것처럼 제주도에 가면 해녀도 될 수 있다!


따스했다. 부드러웠다. 처음이라 큰 용기를 내어 쓰다듬어 본 말의 촉감이. 말의 얼굴이 진짜 커서 무서웠는데 용기 내길 정말 잘했다. 그때 그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하트뿅뿅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

거기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무작정 뛰어들려고 한다.

제주도 하면 티브이에서 보는 멋진 풍경과 그곳에서 편안하고 느리게 사는 삶만 떠오르지 그렇게 많다는 중국사람과 경제적으로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역귀농하는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나다.

내가 타고 싶은 말이 차값만큼 비싼 것도 아니고 나는 차가 필요 없으니 말 정도는 갖아도 되지 않나 생각할 뿐 어떻게 기르고 돌봐야 할지 걱정은 않는다.

막상 지금 계획하는 것들 다 포기하고 물질만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일단 물질부터 배우고 해녀 좀 돼보고 결정하겠다고 대답할 만큼 무턱대고 하고 싶어부터 한다.

하지만 소심해서 세게 밀어붙이지는 못한다. 남편의 저지에 못 이기는 척 포기한다.

무엇보다 난 실패를 무서워한다.

이상적으로 생각만 할 뿐 이상을 실현하는데 내 삶의 가치를 두고 전투적인 노력을 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이런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내 삶에 스며들고 있어서 결국엔 내가 원하는 그림과 가깝게 살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제주도로 떠난 옆집네와 오가는 안부 문자와 보내주는 사진 속에는

흙 하나 없이 다 포장되어 있어서 정말 좋아 보이는 집도 하나도 안 부러웠다.

거기다 바다도 걸어서 갈 거리가 안된다 하고,

그렇게 꿈꾸는 이쁜 오름 산책도 쉽지 않다 하고..

내가 바라는 제주도 살이는 전혀 아니었다.

그냥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이 집 앞마당이나 바닷가에 걸어 나가 물이랑 흙이랑 마구 어지럽혀 놀 수 있다면 정말 부러웠을 텐데!


1층과 2층이 분리되어있는 타운하우스라고 코로나로부터 피신 오라고 연락이 오고

단 하루 만에 청정지역이었던 제주도가 다시 무너졌다.

그 하루 동안이 내가 제주도 살이를 열렬히 부러워한 마지막이었다.

그냥 제주도살이는 내 맘속에 환상으로 고이 모셔두고 코로나가 끝나면 여행으로 자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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