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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가서 안아보고 싶다

너가 애를 낳을 줄이야...

by 타샤할머니

우리 중에 세 번째로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던 친구가 얼마 전 회음부 방석이 절실하다며 단톡방에 자연분만 소식을 알렸다.

정기검진을 하러 갔다가 그대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아주 덤덤히 출산을 말해서였을까

오히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원래도 시끄럽거나 유난스럽지 않은 애라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만 느껴지지만

여자 일생에 가장 큰 변화이자 그 큰일이 어떻게 쉽기만 했으랴

먼저 겪어본 나로서는 내 친구가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노산임에도 힘들이지 않고 아기를 갖게 되었지만 육아휴직할 때까지 입덧과 야근 그리고 힘든 출퇴근을 버텨내더니 자연분만까지!

우리 중에 가장 먼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친구에게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 친구는 결혼하고 애를 낳고 사는 게 당연한 거라 했으니 그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도 처음이었지만 그냥 당연하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친구들 중에 가장 공부를 잘했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서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었던 이 친구는 뭔가 보통 여자들과는 다르게 특별한 삶을 살 거 같았다.

맘 한구석엔 화려한 싱글로 남길 바랬는데... 아니 결혼을 하더라도 우리 중에 가장 마지막에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결혼과 출산. 이 친구에겐 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이유에서였을 거다.

코로나 때문에 가보지도 못하고 말로만 축하를 전하는 통화에서 자꾸 울컥했던 이 감정이..

정말 수고 많았어! 장하다 장해 내 친구.





둘둘이 단짝으로 우리 넷은 중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고, 나만 대학에 떨어지고, 내가 이사를 가고, 다들 대학교를 다닐 때 나만 직장 생활을 하고, 나만 재수를 했었고, 연락이 끊기거나 소원해질 법도 했는데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우린 당연한 거였다.

다들 대학에 가면서 핸드폰은 있었다 해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싸이월드가 유행일 때도 우리 중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사는 지역도 달라서 자주 만나지도 못했지만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평생 친구일 거라는 믿음이 모두에게 있었던 거 같다.

그런 관계에 어느 누구도 불안해하거나 나서서 애쓰지 않았다.

그저 한 번씩 만났을 때 서로의 스토리를 너무 모르는 건 안될 거 같았다.

그러긴 싫어서 우리는 2002년 다음에 비공개 카페를 열었고 매주 근황이나 쓰고 싶은 글을 올렸다.

초반 몇 년 동안에는 못 만나는 달에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 한 달에 한 번씩 채팅도 했다.

채팅 시간에 지각을 하거나 글을 늦게 올릴 때는 벌금을 저금했다.

매달 약간의 회비와 함께 모인 돈으로 우리는 한 번씩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그렇게 2005년에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갔던 해외여행이 필리핀 수빅.

(그때만 해도 비행기를 탈 때부터 내려서 그 후텁지근한 동남아 공기와 냄새를 맡을 때까지 집에 가고 싶단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랬던 내가 영어도 못하면서 워홀을 가고 ABC 트레킹이며 까미노까지 하게 될 줄이야...)

생각나는 에피소드?

숙소에서 둘둘이 방을 썼는데 나와 이번에 출산을 한 친구가 싸운 것처럼 친구들을 속이는 몰래카메라를 했다가 나중에 속은 친구 화를 풀어주느라 엄청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스노클링을 하고 난 뒤 배 위에서 먹었던 인생 망고와 가는 식당마다 먹는 치킨에 부서진 뼈가 씹히는게 비위가 상해 밥을 잘 못 먹었던 것도.


그 뒤로 5년 뒤 우리는 터키와 그리스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에 출산한 친구는 그 당시 미국에서 왔다. 그것도 칠레에서 자원봉사를 마치고 난 후.

이스탄불을 관광하고 그리스로 가기 전 날 게스트하우스에서 내 깜짝 생일 파티를 했다.

여행 중 셋이 돌아가며 몰래 쓴 카드와 미국에서부터 준비해온 플래카드. 그리고 내가 씻을 때 사온 케이크까지.

씻고 식당으로 내려갔을 때 해외에서 처음 본 여행객들과 가장 오래된 친구들이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색다른 경험을 선물 받았다.

무엇보다도 정말 오랜만에 넷이 완전체가 되어 내 생일을 함께 한다는 게 정말 행복했다.

호주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더 따뜻한 기분이었던 거 같다.

'곁에 내 친구들이 있다는 건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한 거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를 가서 어렸을 때의 친구들처럼 사람을 사귀는 건 힘들다는 걸 알았고 외로움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는데..

거기다 긴 외국 생활 후에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기분은 내 친구들과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이스탄불에서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듯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최근에 다녀온 게 괌.

2014년부터 줄줄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이번에 출산을 한 친구가 결혼한 지 1년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얘가 애 낳기 전엔 꼭 가야 한다고, 이번에도 못 가고 임신하면 또 몇 년 동안은 못 가는 거라고, 지금밖에 없다고 부랴부랴 날짜를 정하고 갈 준비를 했다.

거의 모든 준비가 되었을 때 출국 날짜를 일주일 앞두고 임신 소식을 카페 글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도 특별히 조심하란 말도 없었고 남편의 반응도 임신 사실을 알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축하부터 했지만 임신 초반에는 조심해야 하는데.... 내색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친구는 예상보다도 훨씬 쿨했다.

일정을 임신부 친구에게 최대한 맞추기로 하고 우린 아이들과 남편을 남겨둔 채 2019년 거의 10년 만에 다시 함께 떠났다.

이 얼마만의 자유인지 나와 같이 애 둘을 아빠에게 맡기고 온 친구는 공항에서부터 만나자마자 계속 웃었다.

신성 휴양도시인 베트남의 호텔과 괌의 오래된 호텔이 비교되고, 깨끗한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너무 후줄근해서 내가 최근에 갔던 나라들에 비해 나라 자체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사실 쇼핑천국이란 말 자체부터 난 거부감이 들었는지도)

하지만 얼마 만에! 그리고 어떻게 온 우리들의 여행이란 말이냐.

여행 가서 쇼핑하는 시간을 제일 아까워하는 나도 즐겁게 쇼핑하고 비가 내리든 말든 물에 들어가 놀고 스킨스쿠버도 하고 할 거 다 하고 왔다.

'아무리 못살게 굴어봐라 그런다고 우리가 못할 줄 아냐? 안 즐거울 줄 아냐!'




벌써 가물가물해진 출산의 기억을 더듬어 당황하지 않아도 될 것들, 굳이 맘 쓰지 않아도 될 것들을 알려주고

몸 쓰는 건 최대한 아끼라고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임신해서 지금까지도 정말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고, 무서울 거 없다고.

조리원 퇴소를 앞두고 걱정이 많던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며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마음을 다해 힘을 주었다.

난 조리원을 가지 않았기에 산후조리 풀코스?를 경험해보지 않아서 그냥 이런 거려니 하는 것도 있었을 거다.

첫째 때는 엄마가 잠깐 와계시기도 했고, 첫째도 순했고.

하지만 친구는 조리원을 퇴소하고 집으로 갔다가 며칠 만에 친정으로 갔다.

유별나지 않은 데다가 차분하고 뭐든 잘하는 내 친구지만 특급 관리를 받던 사모님이 하루아침에 보모가 되는 현실은 당해낼 수가 없었을 거다.

생각해보니 우리 첫째야 집에 온 첫날부터 모유를 먹는데도 네 시간씩 자고 잘 누워있었지만,

만약 처음 엄마가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데 우리 둘째 같은 아기가 태어났다면 맨날 붙들고 같이 울었을 수도.


코로나가 물러가길 원하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

어서 빨리 그 쪼꼬미를 만나고 싶다.

더 크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가서 안아보고 싶다.

얼마 만에 이 작은 아가를 볼 수 있는 건지,

그래서 이모들이 모두 얼마나 기대를 했었는데...

이 상황이 원망스럽지않을라야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엄마와 아이 모두 건강하게 와준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다 아가야!

이모들의 막둥이로 이쁨 독차지하며 무럭무럭 잘 자라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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