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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uin Sep 25. 2024

III - 여행이란 경계를 넘는 자유

새가 알에서 깨어나듯, 세상밖으로 나간다

2개월간의 어학원 생활
평일에는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근처 카페에서 영어 공부를 했다. 가끔은 인도에 거주하는 영국인이나 현지 분들과 과외를 하기도 했는데, 매주 두세 번 한 시간 수업을 받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학원에서의 배움보다, 과외를 받으러 가는 동네와 과외 선생님의 집에서 베풀어주신 맛있는 음식과 커피, 인도 상류층 문화 경험이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배운 'Polly Put the Kettle On'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Do Re Mi Song' 같은 음악이 들릴 때면,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주말에는 학원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요가 수업을 듣거나, 멀리로는 인도에서 유명한 이슬람 건축물 타지마할에 다녀오는 등, 다양한 인도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건 자연스러웠다.

그들의 생각과 문화 그리고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꽃피는 시간은 색다른 경험을 주었다. 이렇게 계속 반복된 생활을 한 후, 한국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쩌면 내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학원에서 새로운 일본인 친구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그 친구는 웃음이 많고, 잘 생긴 외모에 또래에 비해 남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학원에서 제공한 렌트에 머무는 대신, 직접 집을 구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어떤 운명인지 함께 새로운 집을 구해 살게 된다.

새로 구한 집은 싼 값을 제외하고는 좋을 건 없었다. 넓은 거실에 두 개의 방 그리고 주인이 배려해 주신 책상과 탁자들이다. 넓은 거실은 카펫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까지 차갑게만 느껴졌다.


그 친구를 얘기하자면, 늘 새로운 도전을 즐긴 것 같다. 학원이 제공한 틀 안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것을 찾기 위해 행동했다는 점이 나에게 좋은 의미로 색달랐다. 나와는 달리 그는 발리우드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할 기회가 생겨 열심히 활동하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요가를 배우고, 인도어를 익히는 등 인도 문화를 흡수하는데 열정적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지만, 늘 그렇듯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가끔은 문화적인 차이로 작은 충돌도 있었다.

작은 충돌이 어쩌면 시발점일 수도 있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함께한 숙소 그리고 학원 생활은 안락하면서도 불편했고, 끊임없는 갈망이 없으면 깰 수 없는 단단함이 있었다. 그 단단함은 누구에게나 있는 신념, 가치관, 사람관계 그리고 그동안 지불해 온 돈의 무게였다. 하지만 나는 그 세계에서 나오게 된다. 이 결정이 모두 옳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서른두 살에 어학원이라는 울타리가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내 의지를 움직였다. 어쩌면 한때 내게 영향을 주었던 그녀의 발자취가 떠오른 여행일지도 모른다.


특별한 계획 없이, 나는 조드푸르로 향했다.

내가 가진 물품은 단출했다. 등산 가방 안에 몇 벌의 옷과 전화만 가능한 핸드폰, 그리고 신용카드. 그게 전부였다.

기차를 타고 조드푸르에 도착한 나는 "와" 할 정도로 대단한 첫인상은 없던 풋내기 여행자의 시선이었다. 인도에 머물면서 숙소를 미리 잡아본 적은 없었고, 숙소 문제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5만 원 이하, 아니 만 원 정도면 하룻밤 묵기도 가능했다. 혼자 여행하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렇듯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그곳의 역사를 느끼려 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즐거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조드푸르 도로와 도로 사이를 걷고 또 걷다가, 두 명의 일본인 여행자,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인도에 대한 이야기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등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여행에서 만난 인연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여행자를 만나면서, 느껴보지 못한 여행의 감정을 느꼈다.

여행이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그리고 혼자만의 고요함이었다. 고요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물으며 나의 방향을 수정해 나간다. '나는 왜 여기 온 걸까?'

여행이란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혼자만의 고독으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고스란히 내 기억 속에 남았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이어 나간다.


인도 여행에서 특별하진 않지만 두 가지 경험이 생각난다.

여행에서 너무 걷다 보니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었다. 도대체 내 체중을 알 방법이 없었는데, 인도는 길가에서 나의 몸무게를 돈을 내고 잴 수 있었다. 델리에서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 비로소 빠진 몸무게를 실감했다.

또 하나는 샤워였다. 덥고 습한 날씨 덕분에 숙소까지 가는 길은 어려웠다. 가끔씩 화장실에서 돈을 내면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단비와 같았다.


여행이란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저런 경험들은 나중에 나에게 힘이 됐다.

인도 여행 중 유명한 관광지에 대해 이야기는 자세히 못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사람들은 이야기할 수 있다. 관광지가 목적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기대감으로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하게 된다.




여행을 목표로 인도에 온 것은 아니었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사람들은 왜 인도에서 영어를 공부하냐고 자주 묻곤 했다. 나 스스로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몇 가지 이유는 있었지만, 특별하진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모습에 대해 좋고 나쁨을 이야기한다. 인도는 나쁨에 속하지만 수천 년의 역사와 유적, 그리고 삶에서 우러나오는 영적인 느낌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나라다. 유럽이나 선진국처럼 빠르게 감정이 끌려오진 않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느낌이 있다. 그런 만큼 이 감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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