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지도할 때 가장 난감할 때는 나도 정답을 잘 모를 때이다.
학습지 속 문제를 알려줄 때는 슬쩍 해설지를 보면 그만이지만 그밖의 일은 오롯이 내 판단에 달려 있다. 문제는 내가 그리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들은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리는데 초등학생들이 어디 가만히 있겠는가. 앞사람, 뒷사람과 떠들고 밀고 장난치고 소리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면 잠깐 줄에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앞사람과 간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루는 한 아이가 잠깐 줄에서 벗어났을 때 뒤에 있던 아이가 냉큼 그 자리를 차지했고 원래 그 자리에 서 있던 아이는 새치기라면서 억울한 표정으로 악을 썼다. 자리를 비운 시간이라야 십 초 남짓이었으니 분할 만도 했다.
“내 자리야! 저리 가!”
몸싸움으로 번지기 전 떨어뜨리긴 했지만 두 아이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말다툼을 이어갔다.
“형이 아까 나갔잖아! 그러니까 내 자리지!”
“잠깐 나간 건데 그걸 뺏어가는 건 아니지!”
이럴 때 가장 공정한 중재가 뭘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배식할 때 기껏해야 1분나마 차이가 날 텐데 누가 앞에 서는가가 그렇게 중요한가? 어른의 눈으로는 의아할 따름이지만 어쨌든 중재를 해야 하는 게 내 몫이다. 아니, 사실 어른들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별 일 아닌 일인데 양보가 사라지면 골치 아픈 고민이 시작된다.
어쨌든, 원래 순서대로 서라고 해야 할까, 아님 지금처럼 바뀐 순서대로 서라고 해야 할까.
둘 다 조금씩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나는 바뀐 순서 그대로 서라고 했다. 그동안 했던 지도 방식과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앞사람이 움직이면 바로 앞으로 붙어 서라고 한 점, 배식을 기다릴 땐 장난치지 않고 바르게 서서 기다리라고 한 점, 이 두 가지를 고려했을 때 뒤에서 앞으로 당겨온 아이에게 원래대로 돌아가라고 하긴 어려웠다.
사실 여기에 사적인 감정도 조금 개입했다. 뒤에서 앞으로 온 아이는 1학년이고 원래 앞에 있던 아이는 3학년인데 그동안 이 3학년 아이가 1학년 아이를 많이 무시했다. 1학년 아이는 목소리가 유독 커서 다른 아이에게 시끄럽다는 핀잔을 자주 들었고, 가끔 떼를 쓰면 그 누구도 못 말릴 정도여서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1학년 아이가 학습실에서 안 나간다고 3학년 아이가 방문 앞에 서 있는 1학년 아이를 방문으로 누른 적도 있었고 그냥 힘으로 밀어붙여서 울린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신체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엄하게 다그치긴 했지만 이후로도 3학년 아이가 1학년 아이를 못마땅해 하는 건 여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3학년 아이 편을 들어준다면 앞으로 더 기세등등해서 1학년 아이를 힘으로 누를 것 같았다. 1학년 아이도 3학년 아이에게 당한 걸 조금이라도 되갚아주려고 기를 쓰고 자리를 지키려던 건 아닐까. 만약 다른 아이가 앞에 서 있었다면 기꺼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센터에서 어떤 경험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배우고 갔으면 좋겠다. 정답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 말이다. 세상을 살아갈 땐 힘의 관계가 아니라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힘으로 약자를 억누르지 않고, 강자가 자신을 억누른다면 굴복할 것이 아니라 원칙의 힘에 기대어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걸 꼭 기억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