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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Oct 27. 2024

내가 가장 하기 싫은 잔소리: 공부해!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한다. 너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내 일 중엔 학습 지도도 있다. 학습 실에 들어오기 싫어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의자에 앉히는 것만 해도 진이 빠지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앉자마자 아이들은 딴소리를 하며 내 혼을 쏙 빼놓는다.

“선생님! 저 힘들어요.”

“선생님! 저기 모기 있어요!”

“선생님! 오늘 제가 간식 뭐 먹었게요?”

아이들이 중구난방 말을 거는데 각자 내가 대답할 때까지 부르는 걸 멈추지 않는다. 말 그만하고 책부터 꺼내오라고 하면 책꽂이 앞에 서기도 전에 이렇게 말한다.

“제 책이 사라졌어요!”

그럴 리가. 분명 아이들 문제집은 책꽂이에 꽂혀 있다. 찾기 귀찮아서 하는 말이란 걸, 이제는 안다. 다시 찾아보라고 해도 아이들은 진짜 없다면서 말대꾸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 내 눈초리가 매섭게 변할 때쯤 “아, 여기 있다!”하고 책을 꺼내온다. 요 녀석들!

“연필 좀 주세요!”

이번엔 연필 타령이다. 연필꽂이는 책상 가운데 떡하니 있다.

“직접 꺼내 쓰세요.”

일일이 챙겨주면 혼자 하는 버릇을 기를 수 없으니 정말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아니면 웬만하면 다 혼자 하라고 시킨다. 자, 이제 겨우 공부할 준비를 마쳤다.

“오늘 반장만 풀래요.”

매일 아이들이 풀어야 하는 양은 한 장 반이다. 다른 프로그램이 있을 땐 한 장으로 줄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매번 양을 줄여달라고 조른다. 놀 때는 쌩쌩하더니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팔이 아프다, 흐느적거리면서 책상에 엎드리고 의자에서 미끄러지고 온갖 술수를 다 쓴다.

기껏 책을 펴는 것까지 설득했는데 아직 난관은 끝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열심히 연필을 놀린다 싶더니 문제집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님 문제집 속 등장한 이름을 친구 이름으로 고치고 재미있다고 낄낄대고 있다.

어찌어찌 겨우 한 문제 풀고 장난치고 또 한 문제 풀고 잡담하고, 이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다 어느 순간이 되면 내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르고 만다.

“지금부터 입 연 사람은 한 장 더 시킬 거야!”

큰소리 없이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지만 이런 엄포를 놓아야 그나마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하니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아니, 갈수록 애들이 공부를 싫어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아예 학습을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 공부해야 해요?”

아이들이 이렇게 물으면 솔직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학생 선생님들이 대답하는 걸 들어보면 다 다르다. 장난기 많은 선생님은 “공부 안 하면 멍청이로 살아야 해. 그래도 괜찮겠어?”라고 대답하고 “너네 집 부자야? 아니면 공부밖에 답이 없어.”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선생님도 계시다. 내 대답은 이랬다. 공부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현명하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 이미 똑똑하다구요!”

아이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솔직히 나도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싫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는데도 학원 숙제를 해야 한다고 책상에 붙어 있는 아이를 보면 대견하다기보다 안쓰럽다. 그 아이는 곧 센터를 끊었다. 부모님께서 센터 대신 학원을 보내기로 결정하신 모양이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그 아이는 전과 달리 장난기가 하나도 없었고 표정이 어두웠다. 걸핏하면 내 휴대전화를 가져가서 감추고 수시로 학습실을 들락거리며 귀찮게 굴었던 아이였는데 그때 얌전히 좀 있으라고 한 잔소리가 어쩐지 후회가 된다. 아이들이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 시대의 어른들의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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