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확실히 알 수 없는 정체로 내 삶에 언제부터인가 들어와 나를 이리저리 휘말리게 했다. 그런 우유부단한 사람은 옛날부터 내가 정말 혐오하고 제일 티 나게 “난 이런 사람 정말 싫어”하며 사람들한테 말하면서 살지 않았던가.
그 사람은 정확히 내가 극도로 질색하는 사람이 확실히 맞다.
억울한 감정을 추스르면서 한편으로는 이 사람은 내가 찾는, 나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그런 감정들로부터 벗어나 홀가분한 기분도 들어 양쪽의 마음을 다잡으면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학교 수업 마치고 문자를 보았는데 김형제가 보낸 문자가 있었다. “율아 어제 일은 정말 미안했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해 안 돼.. 한 번만 용서해 줘.. 오늘 데리러 갈게..”
어제부터 계속 오는 전화에 핸드폰을 꺼놓고 잤더니 아침에 골키퍼가 많이 와있었다. 김형제가 나의 퇴근 시간을 알고 있기에 학교 정문으로 나가지 않고 퇴근 시간 30분 전에 후문으로 얼른 가 그가 혹시 있을까 살짝 엿보고 없다는 걸 안 후 혼자 버스 타고 왔다.
그는 나에게 바람을 맞았다 아니 약속한 게 아니니까 혼자 드라이브하고 왔다고 해야 하나.. 그는 저녁에 우리 집 앞에 와서 나를 불렀다.
같은 교회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살면 되는 데, 어쩔 수 없이 매주 보는 사람이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집 앞에 있는 그의 차에서 얘기했다.
김형제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사과의 의미로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내가 시푸드 뷔페를 좋아하는 것을 아니 광화문에 오션푸드를 예약할 거라며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그래, 한 번만 용서하고 이제부터 교회에서 아는 척만 하자.. 개인감정들은 없던 걸로 하는 게 좋겠다”라고 나는 굳게 다짐했다.
다음 주 홍언니가 다른 자매들 앞에서
지난주 금요일 김형제와 새벽 한시까지 있었다는 얘기를 들려주는 것을
우연히 옆에서 듣고야 말았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철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결혼해서 크나큰 속을 상하게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더 이상 이 유치한 노름 속에서 난 빠지자”라고 다짐했다.
목사님은 김형제 소개를 주선한 이후로 부모님께 자주 그에 대해 말씀하셔서 부모님도 진행 상황을 궁금해하셨고 매우 더딘 것에 대해서 아닌 것 같다고 부정의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는 여럿이서 있을 때는 모두와 동등하게 대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다정한 남자로 바뀌었다.
교회의 오빠 동생으로 지내는데 갑자기 자기의 마음을 들키기가 겁나서 그런지 아니면 보기에는 엄청 적극적으로 연애를 잘할 것 같은데 보기보다 숙맥인가. 그의 마음이 알고 싶었으나, 사실 나도 여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냈는데 갑자기 포지션을 바꾸기도 그렇고 한편으로는 잘 성사가 안되면 매주 교회에서 보는 것도 힘들겠거니 생각도 들었다.
김형제는 그날그날 날씨 상황을 알려 주며 '율아 오늘은 영하 10도니 따뜻하게 입고 가, 오늘 같이 진짜로 추운 날에는 분홍색 패딩이 잘 어울려. 그거 꼭 입고 목 더리와 장갑도 꼭 끼고 출근해' 이런 식으로 매일같이 나를 진정 생각해 주는 다양한 안부의 메시지를 아침마다 보냈고, 매일 밤마다 자기 꿈을 꾸라며 다정한 말로 자기 전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화이트데이날 맛있는 거 사주겠다며 전화 왔다. 나는 예상은 했지만 그가 용기를 낸 것에 대해 많이 놀랐다.
집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그가 픽업해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게 아닐까.. 약간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얘기도 오고 간 게 없고 평소 교회에서 보듯이 편하게 대화하고 집에 도착했다.
그는 또 다정한 메시지를 남기며 오늘 정말로 즐거웠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10개월이 지났다. 나의 나이는 곧 내년이면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서른. 교회에 형제란 진짜 없기로 유명한 이 교회.
서른 되기 전에 결혼하는 게 목표였다.
지방에 계신 아버지가 오랜만에 교회에 참석하셨다. 김형제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그 형제는 인사도 안 하고 외
면했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의 아버지한테도 인사도 못하는 놈이 어디 있느냐며 굉장한 불쾌감을 드러내셨다.
관계를 주선해 준 목사님과 시간을 갖고 여쭈어보았다.
목사님은 아무래도 그가 예전에 좋아하던 교회 자매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을 못해서 가슴 아프게 헤어진 사례가 있다고 또 그런 일이 있을까 봐 겁이 나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가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그런 깊은 사연을 내재한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면서 “언젠가는 되겠지 “란 희망을 가지고 지냈다.
사업차 주말 부부로 계신 지 2년, 이제 합칠 때가 되어서 11월에 아버지가 계신 지방으로 이사 가기로 했다.
그는 우리 집이 다음 달에 이사 갈 계획이라고 목사님께 들었다며 충격받고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율아, 너 네 집 이사 간다며? 왜 여태 말 안 했어? 그럼 이제 나 혼자 어떻게 사냐..‘하며 빈정대었다. 근데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남자라면 최소한 가기 전에 붙잡고 자기 마음을 표현했을 것이다. 아니면 같은 교회에 있으니 쑥스러워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
이사 가면 분명 여느 연인들처럼 부담 없이 잘 만나게 될 거야! “ 생각했다.
친구 선영이의 딸 돌잔치가 있었다. 나는 그도 갈 거니 당연히 그가 전화해서 같이 가자고 할 줄 알았다.
그가 전화 왔다.
"나 일찍 출발하려고 하는데 선영이한테 전화 왔네. 너랑 같이 오라고 하더라고. 너 지금 나올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