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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Apr 27. 2024

2. 산수유 노인

문을 연지 석 달이 되어 가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수진이와 2층의 이 과장도 더 이상 지하로 내려오지 않았다. 때때로 출근하는 이 과장과 백 부장을 마주치긴 했지만 그때마다 봉숙은 청소 중이었고 그들은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다. 

봉숙은 여전히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갔다. 누구도 그녀의 일과를 참견하지 않았고 근처의 상인들만 신기하게 그녀를 살펴보곤 했다. 주로 얼굴을 마주치는 이들은 봉숙의 좌우에 있는 뼈다귀해장국집과 순댓국밥집 주인이었다. 문을 열어젖히고 씩씩하게 청소하는 모습이나 매일 간판의 글씨를 써서 정성껏 세워놓는 모습은 그들과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눈인사를 할 뿐 이렇다 할 말을 아무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렇게 손님이 없으니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여과 없이 봉숙에게 전달되었다. 그럴 때마다 봉숙은 멀쩡하게 웃고 나서 입간판을 밖에 내놓고 자신이 쓴 글을 눈으로 읽었다. 그들도 함께 글을 읽는 것 같았지만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가게로 들어갔다. 

     

<노란 산수유가 손짓합니다.

‘봄이 오고 있어요.’

당신의 맘에도 봄이 오고 있나요? 

오늘은 에티오피아 커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  

   

흔들의자 앞의 창이 산수유나무의 꽃으로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반 지하 건물의 앞쪽은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공원길이었고 몇 그루의 소나무와 산수유나무, 그리고 담장처럼 철쭉이 낮게 심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나무벤치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앉지 않고 화난 사람처럼 부지런히 걸어 지나갔다. 봉숙이 가끔 반 지하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있곤 했는데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밥은 벌어먹나?”

오랜만에 벤치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묵직한 소리가 그녀를 건드렸다. 짐작하건대 근처의 인력시장에서 온 사람인 것 같았다. 아마도 오늘 팔려나가지 못하고 소주 한 병을 들고 온 듯 걸쭉한 소리였다. 

    

“여기 지하실 목사 맞지?”

다짜고짜 반말로 말을 걸어온 노인은 작고 왜소한 몸집에 낡은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비죽비죽 비어져 나온 은회색 머리카락을 뒤로 아무렇게나 묶고 마구 자란 회색 수염이 얼굴을 덮어서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길고 작은 눈이 두터운 눈썹 밑에서 반짝였다.


“아이고, 어르신. 어쩐 일이세요. 제가 여기 교회 목사 맞아요.”

자신이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호들갑이었다. 


“목사가 교회에 있어야지 왜 바깥에 나와 있어? 이거 마셔요.”

회색 노인은 메고 있던 배낭에서 멸균 팩에 든 딸기 우유를 꺼냈다. 

봉숙은 깜짝 놀라 자칫 눈이 감기려는 걸 얼른 털어내고 그 우유를 받았다. 먹는 것에 트라우마라도 생긴 듯 그녀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참으로 골고루 먹이시는군. 이번엔 딸기 우유네, 거참.’ 

그녀의 마음이 들린 듯 노인은 딸기 우유를 든 그녀의 손을 보며 웃었다.  

    

“그거 상한 거 아냐, 괜찮아. 그나저나 거기서 교회가 되겠어? 지금 교인 아무도 없지?”

노인은 옆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자신의 바나나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죠. 잘 아시네요. 아직 저 혼자입니다. 어르신이 오시면 좋지요.”

노인에게서 야릇한 냄새가 풍겼다. 나프탈렌 냄새와 오래된 털옷에서 나는 묵은 냄새가 뒤섞여서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참을 수 없는 냄새’였다. 

봉숙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 옆으로 물러나 앉았다.  

    

“허 참, 그런데 이름이 풀잎 교회가 뭐야? 난 그런 이름 처음 듣네.”

노인이 소리 내어 껄껄 웃었다.  

    

 “예, 남편이 지어놓은 이름이에요. 처음에는 풀잎 위의 이슬 교회라고 했는데 너무 길어서 제가 풀잎 교회로 줄였지요.”   

  

“잘했네. 이슬이 뭐야? 이슬은 참이슬이지. 허허.”

 비록 노인에게서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났지만 눈썹 털에 묻힌 안광이 맑았고 다행히 구취는 없었다.

      

“인생이 풀잎 같단 얘긴가? 잡초란 얘기야? 맞는 얘긴데 누가 그런 이름을 좋아하겠어? 이름 바꿔.”

봉숙은 딸기 우유를 감싸 쥔 채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으로 노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표정 보니까 맞네. 내일 친구 하나 보낼게. 잡초 같은 놈이 있거든.”

봉숙의 마음에 딱!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드디어 누가 오긴 오는구나. 

     

“친구 분도 좋지만 어르신이 오시면 저는 더 좋을 것 같은데요? 함께 오시지요.”


“에이, 나는 잡초는 아냐. 그런데 그 친구 냄새가 좀 많이 나. 그 친구는 나보다 더 밖에 오래 있었거든. 그런데도 둘이 오라고? 괜찮겠어?”

 정말 노인의 말대로 저 냄새가 온 지하에 퍼진다면 누가 온다 하더라도 도망갈 것이 뻔했다. 

     

“고민되지? 그래서 안 가는 거야.”

노인은 봉숙의 마음을 다 들여다본다는 듯 다시 껄껄거렸다. 

아니지, 냄새난다고 물리칠 일은 아니지. 그런데 과연 저 노인은 냄새 때문일까? 남편이라도 있으면 함께 목욕탕에 집어넣을 텐데.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게 걱정이시라면 목욕탕을 다녀오시지 그래요. 제가 친구 분과 어르신 목욕비 정도는 드릴 수 있어요.”

봉숙의 말에 노인은 정색을 하며 일어섰다.   

   

“가만 보니 월세도 제대로 못 낼 것 같은데 그런 소리 마시오. 우리가 돈이 될 위인들도 아니고.”

노인의 머리 위로 작고 노란 꽃잎이 떨어졌다. 산수유 꽃과 노인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개나리나 민들레와는 다른 다소 창백한 노란빛 이어서일까. 잠깐 사이에 노인의 냄새에 익숙해진 봉숙은 노인의 머리에 떨어져 내린 꽃잎을 잠시 바라보았다.  

   

“알았어요, 어르신. 그냥 오세요. 괜찮아요. 어차피 저 혼자인데요 뭐.” 

봉숙의 말엔 대답도 없이 노인은 벌떡 일어나 오던 길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노인에게 큰 소리로 말했지만 노인은 마시던 바나나 우유만 한 번 들어 보였다. 산수유나무 가지에 오래된 노인의 회색 머리털이 걸리는지 잠시 멈추는 모습이 보였다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노인을 보내고 봉숙은 노인과의 대화를 복기했다.     

노인은 아마도 그녀를 얼마 동안이고 보아 왔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반 지하의 교회에도 들어가 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한 자신이 목사인 것도 알고 교인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면 일요일 언젠가 들여다보기라도 했단 얘기였다. 더욱이 노인은 교회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봉숙 조차도 별로 부르지 않았던 이름을 발음하지 않았던가.  

   

‘내일이면 알겠지. 내일 친구를 보낸다고 했으니. 아무도 안 오는 것보단 얼마나 좋은가?’ 

봉숙은 마음이 들떠서 잰걸음으로 반 지하로 향했다. 내일은 누군가 하나라도 올 텐데 좀 더 확실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손에 남은 딸기 우유와 수진이 가져다준 빵을 녹여 함께 먹으면 점심이 거뜬히 될 것 같았다. 노인 말대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녀의 체격에 밥을 거른다면 아무도 안 믿을 노릇이었지만 이곳에 온 이후에 그녀는 입맛을 잃었다. 밥을 먹고 싶을 정도의 허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체중이 빠진 것도 아니었다. 

흔들의자에 몸을 푹 집어넣고 눈을 감았다. 조금 전의 노인과 빵을 가져다준 수진이와 김밥을 들고 왔던 2층의 여자가 생각났다.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네요.’     

 



봉숙은 예배를 준비하고 눈을 감았다. 구석진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그녀는 밝은 조명 아래 물체 같았다. 곁에 있는 소형 앰프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비스듬히 보이는 흔들의자의 창으로 산수유 꽃이 여전히 가득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봉숙은 하던 방식대로 혼자만의 예배를 드렸다.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어떤 기대감이 스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봉숙은 테이블을 정리했다. 기대를 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그런데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먼저 오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노인이었으니까.      

봉숙이 일어서서 흔들의자 쪽으로 향하는데 출입문 책장 밑의 벤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실내에 참을 수 없는 냄새와 알코올이 섞인 냄새가 배어있었다. 

노인은 의자에 간신히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친구를 보낸다더니 자기가 온 모양이었다. 봉숙은 난감한 생각에 잠깐 망설였다. 누구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노인의 앞 테이블 의자에 앉아 노인의 잠이 깨기를 기다렸다. 길고 지저분한 회색빛의 머리털과 수염으로 인해 더러운 털 뭉치 같았지만 노인의 이목구비는 단정했다. 잘 다듬어 놓으면 봉숙보다 어릴 것 같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아이고, 내가 너무 일찍 와서 기다리다가 잠이 든 모양이네.”

어느새 노인이 바르게 일어나 앉았다. 미안해하는 표정이라고 하기엔 눈이 지나치게 반짝였다.

깜짝이야, 노인을 찬찬히 살펴보다 놀란 것은 봉숙이었다.  

   

“아, 예. 오신 줄 알았으면 깨워드렸을 텐데요. 제가 죄송합니다.”

어정쩡하게 일어선 노인은 자신의 배낭을 찾아 짊어졌다. 그 묵직함에 봉숙은 절망했다. 얼마나 많은 술병을 담으셨는가.   

   

“내가 어제 과음을 해서 좀 냄새가 나지? 오늘은 안 마셨어. 교회 오는 데 그럴 리가?”   

  

“물론 그러셨을 테지요. 그런데 이왕 오셨으니 식사를 하고 가시지요.”

그냥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일단 말을 내놓았다. 제발 그냥 가기를. 

    

“그럴까? 나한테 참치 깡통이 있어. 컵라면도 있는데.”

참사였다. 옆 식당으로 노인을 보내 음식을 시켜줄 작정이었는데 라면이라니.   

  

“아니, 라면보다는 옆에 순댓국밥집에 가셔서 식사하시는 게 어떠세요?”

어정쩡한 그녀의 권고에 노인은 그냥 일어서서 가려고 했다.  

   

“그냥 해 본 소리야. 누구랑 밥 먹어본 지가 오래돼서. 주책이지.”

그녀의 마음속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저 냄새나는 노인네와 컵라면에 참치를 함께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욕지기가 나는 듯했다. 

봉숙이 주춤하는 사이에 노인은 문을 밀고 휙 나가버렸다. 노인의 웃음소리가 밖에서 크게 들렸다. 노인을 잡을 생각도 못하고 일어서서 한참을 있었다. 참치 캔 하나가 노인이 있던 벤치에 놓여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슬퍼서도 억울해서도 아니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 낼 일이 아니어서 더욱 화가 났다. 아직도 노인의 체취가 남아 있는 반 지하의 공기를 그대로 가둔 채 출입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다. 문을 열고 누군가를 맞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뺨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닦고 흔들의자로 갔다. 따스한 햇볕이 산수유 노란빛과 함께 창으로 가득 들어왔다.      

흔들의자에 몸을 부리고 가만히 흔들자 편안한 삐걱임 소리가 낮게 흘렀다. 그 소리와 함께 서러움이 밀려와 창틀에 엎드려 울었다.  

     


“숙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너무나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안개인지 연기인지 모를 기체가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냄새인 것 같아 순간 불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이 따갑지도, 숨이 막히지도 않았다. 마른풀냄새 같기도 하고 엄마가 풀 먹여 빳빳하게 다려준 여름교복 냄새 같기도 했다. 보얀 연기에 둘러싸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한없는 포근함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숙아!”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방향이 없이 전체적으로 그녀를 덮었다. 엄청나게 큰 소리인 것도 같고 아주 세미한 것도 같은, 성량마저 가늠이 어려운 소리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정신을 차려야지, 눈을 부릅떴지만 연기에 갇혀버린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어떤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가 부르실 때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여라.-

어린 사무엘에게 스승인 엘리 제사장이 가르쳐준 응답법이었다.      

짙고 보얀 연기 속에서 봉숙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소리가 없었다. 그녀가 아는 대로라면 그다음 이야기가 있어야 했다. 

    

“제가 여기 있다고요!”

용기를 내 더 크게 소리쳤지만 사방은 조용했고 동시에 연기는 사라졌다. 

눈이 밝아진 그녀에게 들어온 창밖의 풍경은 젊은 남녀가 사이좋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었다.

창문은 닫혀 있으니 담배연기는 아니었다. 사라져 버린 소리와 연기가 그들 때문인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창문을 열고 한 마디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도 없었고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남녀는 담배를 끄더니 서로 얼싸안고 뺨과 입술을 비비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가지가지한다. 하긴 금연구역이지 포옹금지구역은 아니니까.’

산수유 꽃잎이 그들 머리 위에 사뿐 내려앉았다. 노인에게 그러했듯.      

심통 난 봉숙은 흔들의자를 돌려 앉았다. 그리고는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분명히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과 향기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고 대답했다. 소리는 엄마의 것이기도 했고 천둥 같기도, 속삭임 같기도 했다.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부른 소리였고 그녀의 대답도 단순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연기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던 생각도 났다. 너무 희미해서 짐작할 수도 없는 어떤 물체가 있었던 것 같기도 했으나 그 기억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잠깐 꾼 꿈이었을까.      

봉숙은 다시 의자를 돌려 앉았다. 연인들은 떠나고 없었다. 그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의자를 홱 돌려 버린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리고 연기 속에서 혼자 떠들었던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 여기 반 지하에 있는 건 맞지, 그래서 뭐? 

생각이 뒤죽박죽 섞이는 걸 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유리창 밖으로 산수유 꽃잎이 계속 떨어졌다. 노숙자 노인에게도, 담배 피우던 남녀에게도 살포시 내려와 앉던 다소 창백한 노란 빛깔의 작은 꽃잎. 

천천히 문을 열고 산책로에 나서자 봉숙의 머리 위에도 어김없이 노란 산수유 꽃이 내려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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