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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Apr 27. 2024

4. 소란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의 소리였는데 성인 남자의 것도 섞여 있었다. 뚜렷하진 않았지만 남자의 소리는 야단치는 것 같았다. 봉숙이 밖으로 나갔을 때 아이들은 멀리 뛰어가고 있었고 순댓국집 사장은 아이들 뒤꽁무니를 보며 서 있었다. 그 뒷모습에 화가 어려 있었다.  

    

“애들이 장난을 했지 뭡니까. 여기 칠판에다요.”

순댓국집 사장은 민망해하며 손으로 가리켰다.   

   

  <불옆>


봉숙은 소리 내어 웃었다. 풀의 ‘ㅍ’기둥을 위로 길게 늘이고 잎에는 두 개의 점을 찍어 ‘옆’ 자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불꽃모양의 그림을 아주 조잡한 솜씨로 그렸는데 붉은 매직펜이었다. 지워지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순댓국집 사장에겐 별 일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풀잎이 불옆이 되었는데 고치셔야죠.” 

말을 하면서도 사장은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덧붙였다.

     

“여기 짓궂은 애들이 몇 있어요. 우리 집 문에도 낙서하다가 걸렸거든요.”

사장은 체구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소리가 가늘고 높았다. 봉숙은 그를 보며 자신도 웃었다. 풀잎이 불 옆으로 바뀐 것이 재미있는 사건이긴 했다.  

    

“괜찮아요 사장님, 풀잎보다 불 옆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네요. 띄어쓰기는 해야 하지만, 불 옆이라...... 따뜻하겠는데요?”

봉숙은 기회다 싶어 커피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지만 사장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자기 아내가 커피를 아주 좋아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목사님이시죠?”

순댓국집 사장은 굉장히 은밀한 소리로 물었다. 

다 알면서 묻기는.    

 

“저, 우리 집사람 때문에 그러는데요. 들어가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두 사람은 ‘불옆’의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봉숙이 틀어놓은 베토벤의 ‘전원’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멀리 옆으로 보이는 흔들의자에는 무릎 담요가 한가하게 걸쳐져 있고 창가에는 그녀가 마시던 커피 잔과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문득 이 정물이 주는 편안함이 고마웠다.  

    

“목사님이니까 아실 텐데, 귀신도 쫓아내시나요?”  

봉숙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귀신이라니? 나에게 축사(逐邪)를 하란 얘기야? 무슨 영화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 

마침 전원 교향곡이 끝나고 ‘콰과과광!’ ‘운명’이 연주되면서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러나 순댓국집 사장은 미동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덩치가 음악소리를 삼켜 버린 것 같았다.  

    

“우리 집 사람이 자꾸 뭐가 보인다고 해서요. 무섭대요. 어떨 땐 손님 보고도 바들바들 떨 때가 있어요. 병원에 가서 검사도 했는데 모른대요. 집에서야 괜찮지만 가게에서 증상이 나타나면 참 난감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식당을 혼자 할 수도 없고.”

한숨과 섞어서 말하는 순댓국집 사장을 보며 봉숙은 눈을 꾸욱 감았다가 떴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걸 삼켰다. 

아니, 아픈 마누라는 쉬게 하고 식당을 혼자 하면 되지. 주방 아주머니도 한 분 있던데 웬 귀신 타령? 그러나 그렇게 얘기해선 안 되지.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소리를 깔았다.  

    

“부인께서 몸이 많이 약하신 것 같던데.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고르고 고른 문장으로 대답했으나 기대했던 바가 아니어선지 사장은 풀이 죽어 발끝을 내려다봤다. 귀신을 쫓아내 주면 되련만. 이 목사는 사이비인가 봐.  

    

“와이프는 인도네시아 사람이에요. 몸이 약한 게 아니라 본래 작고 말랐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2년쯤 지나면서부터 뭘 먹으면 자꾸 토하더라고요. 뭐가 보인다고 한 때도 그때부터 구요. 몸이 허해서 그런가 보다고 보약도 해 먹이고 했는데 별 효과를 못 봤어요.”     

봉숙은 긴장감에 커피고 뭐고 준비할 생각을 못했다. 인도네시아 보약을 먹였어야지 하는 생각이 스쳐갔으나 얼른 집중해서 순댓국집 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시경요? 당연히 했죠. 작년에도 했는데 이상 없어요.”      

병원도 가고 내시경도 하고 보약도 먹였다면서 그럼 뭘 어쩌라고. 이 답답한 사람아.

 봉숙의 얼굴에 짜증이 일렁거렸을 텐데 사장은 무덤덤했다.


“결혼할 때 인도네시아 처갓집엘 한 번 가 봤어요. 정글에 있는 허름한 나무집이었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 깜깜하죠. 수돗물은커녕 화장실도 없어요. 밤에 불을 켰는데 그을음이며, 돼지우리 냄새며...... 방 아래가 돼지우리였거든요. 하아! 그런 데서 제정신으로 살기가 쉬웠겠어요? 그나마 내가 살린 거죠.”      

봉숙은 이제야 그녀를 불러 세웠던 순댓국집 여자의 울음 섞인 소리를 기억했다. 생각해 보니 울음이 섞인 것이 아니라 억양이 특이했던 것이다. 

그랬구나. 외국인 아내였구나. 말이 서툴러서 내게도 더 이상 말을 못 했던 것인가? 그때 분명히 그랬는데 담에 한 번 오겠다고.      

생각을 더듬고 있을 때 순댓국집 사장의 전화가 울렸고 그는 목례를 한 후 부지런히 바깥으로 나갔다. 손님이라도 몰려온 모양이었다. 

봉숙은 한숨을 후 몰아쉬었다. 일단 다행.

순댓국집 부인이 귀신이 들렸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귀신이 들렸다 해도 그녀는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귀신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남편은 딱 한 번 귀신을 쫓아낸 적이 있었다. 대학 청년부 여름 수련회였다. 집회가 끝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남자 청년 하나가 쓰러지며 경련을 일으켰다. 건장한 청년들이 간신히 잡아 자리에 눕혔는데 그중 한 명이 나섰다.  

   

“동생이 간질 증상이 있어요. 그동안 괜찮아서 나아진 줄 알고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좀 있으면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말을 해 주었어야지, 놀랐잖니. 

은근히 마음속에 걱정과 화가 일어났지만 남편은 아무 일 아닌 듯 119에 연락을 했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까.     

기도를 확보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누웠던 청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으나 뭔가 아주 격렬하고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또 죽은 듯이 누워서 몸을 떨다가 다시 일어나서는 해괴한 웃음소리로 주변을 얼어붙게 했다. 동생의 간질을 알고 있던 형이 벌벌 떨고 있는 걸 보니 이런 일은 처음인 게 분명했다. 

그때 남편은 주위를 물리고 청년들 몇 명을 주변에 둥글게 앉혔다. 아무 얘기도 없었지만 둘러앉은 청년들은 간절하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누웠던 청년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 남편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자 남편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도, 그 이후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천둥 같은 소리의 낯선 언어로 크게 소리쳤다.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분명히 혼내는 느낌이었다. 귀신을 혼내고 있구나!

청년들 중 누구는 일본어 같다고 했고, 누구는 러시아어 같다고 했다. 또 아랍어 같다고도 했다. 자신이 아는 언어와 비슷하나 전혀 아니라고도 했다. 하여간 남편이 소리친 말의 국적이 어딘지 청년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궁금해했다.      

남편이 청년의 머리나 몸에 손을 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달려드는 청년을 향해 정면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다시 자리에 풀썩 쓰러져 거품을 뿜고는 잠잠해졌다. 순간 주변에 정적이 흐르고 모였던 청년들은 정신이 난 듯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이야, 목사님이 귀신을 쫓아냈어!”

청년들의 소음 속에서 봉숙은 온몸과 얼굴이 땀범벅 된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은 누운 청년만큼이나 창백했다. 남편은 수건을 봉숙에게 건넸다. 

     

“얘들아, 괜찮을 거야. 다들 들어가 자라. 당신은 얘 얼굴 좀 닦아 줘요.”

그게 끝이었다. 잠시 후에 119가 도착했지만 상황이 종료된 상태였다. 멀쩡해진 청년을 숙소로 들여보내고 남편에게로 갔다. 남편은 씻지도 않은 채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아침까지 계속.     

그걸 하라고? 내가? 나 혼자서? 하나님 왜 이러세요. 전 그런 거 못해요.


순댓국집 사장이 언제 또 나타날지는 모르겠으나 당장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형편없는 목사라 판단하고 다시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자괴감도 함께 들어서 우울했다. 

     

“사모님, 누가 장난했나 봐요. ‘불옆’이라고 되어 있네요.”

정신을 수습하느라 흔들의자에 맥없이 앉아 있는데 2층의 백 부장이 스윽 들여다보며 아는 체를 했다. 타닥거리는 가벼운 발소리는 이 과장이 2층으로 올라가는 소리였다.  

    

“그렇게 됐네요. ‘불옆’으로.”

응대할 기운도 없는 소리에 백 부장이 반 지하로 들어섰다. 

      

“저거 파스로 지우면 돼요. 제가 파스 갖고 내려올게요. 자식들, 장난할 걸 해야지.”

봉숙은 내버려 뒀다. 

불 옆이고 풀잎이고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데 저 남자는 왜 저렇게 글씨에 집착을 하나. 

잠시 후에 파스 냄새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니 백 부장이 글씨를 지우는 것 같았다. 

봉숙은 밖으로 나가 반쯤 구부린 채 칠판을 닦아내는 남자를 바라봤다. 완전하진 않았으나 제법 깨끗해진 칠판은 약간의 붉은 기운을 전체에 담고 있었다. 남자는 만족한 표정으로 칠판을 가리켰다.  

    

“이제 새로 쓰셔도 되겠네요. 웬만큼 지워진 것 같아요.”

사내에게 감사하다고 하며 이젠 글씨를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사내의 얼굴이 칠판처럼 불그스레했다.      

아직 어제의 숙취에서 못 깨어났나. 냄새는 안 나는데. 본래 붉은 얼굴인데 검다고만 기억했나. 인간 기억의 한계가 그렇지 뭐. 

남자는 붉은색으로 지저분해진 흰 융 같은 헝겊을 손으로 감아쥔 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글씨를 왜 안 쓰는데.   

  

“부장님은 왜 글씨가 낙인지 묻고 싶었어요.”

남자는 씨익 웃으며 손에 쥔 헝겊을 풀었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그냥 기대가 됐어요. 오늘은 무슨 커피일까. 그리고 사모님 컨디션이 어떤가도 알 수 있고요. 또 좋은 글만 써 놓으시잖아요.”     

남자는 쑥스러워했다. 그런데 민망해진 것은 봉숙이었다.      

원두는 마시지도 않는 사람이 커피라니. 그리고 저 남자는 나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는 거잖아. 이걸 고마워해야 해. 화가 나야 해. 

남자는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위로 올라갔다.      

봉숙은 빈 칠판을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칠판 앞에 마주 앉아서 보드 마카를 들고 망설였다. 저 남자를 보니 글씨를 쓰긴 써야 하는 모양인데, 뭐라고 써야 하나?   

   

<오늘의 커피는 인도네시아 만델링입니다. 귀신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라고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는 일이어서 이전처럼 ‘풀잎’이라고만 커다랗게 썼다. 오늘은 일단 이렇게, 여기까지만.  

   

점심을 거른 채 저녁이 되고 창에는 다시 달이 걸렸다. 밖에서 순댓국 냄새와 뼈 해장국 냄새가 스멀거리고 들어왔지만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평소엔 못 느꼈던 돼지요리의 특이한 향이 별나게 거슬렸다.      

이걸까? 인도네시아사람이라던 순댓국집 부인이 견딜 수 없는 무엇이? 하지만 돼지를 기르는 집에 살았다는데? 돼지와 순대가 다르긴 하지.      

퇴근하려고 나서는데 순댓국집의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사장의 커다란 덩치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주방 쪽을 살폈으나 키 큰 아줌마만 정신없이 가스불 위에 옹기를 올리고 있을 뿐 작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프기라도 한 걸까 

이면도로에 겨우 주차해 둔 차를 향해 터벅거리며 가는데 ‘불옆’이라고 쓴 불그스레한 칠판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풀잎’으로 고쳐 썼는데? 

되돌아가 확인하려다가 마음을 바꿔 가던 길을 갔다. 

반 지하 교회 건물 왼쪽으로 붙어 있는 뼈 해장국 집에서도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다. 

가운데 자리 잡은 반지하의 입구에는 적막함이 돌고 양쪽은 사람들로 법석이었다. 

‘불 옆’이 맞는 것 같네. 양 쪽에서 불을 지펴대는 국밥집이니.      

갑자기 장난치고 도망가던 아이들과 순댓국집 사장의 얼굴이 겹쳐져 헛웃음이 났다.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면서 개나리가 여기저기서 피어났다. 봉숙이 출퇴근하는 도로 쪽 경사면에도 개나리가 등성이를 덮기 시작했다. 그런데 풀잎교회 산책로 쪽엔 한 나무도 없었다. 개나리의 늘어지는 성품을 견뎌줄 언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타리로 둘린 철쭉들이 피어나면 그 화려함이 얼마나 견고할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주차장은 비어 있었다. 그녀의 소형차를 덩그마니 세워 놓고 문을 밀고 들어가자 반지하의 서늘한 공기가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손을 비비며 구석에 세워진 난방기를 틀었다. 어제 청소를 했지만 밤새 가라앉은 먼지 때문에 걸레로 다시 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칠판을 들여와 깨끗이 지우고 다시 썼다.  

   

     < 함께 예배하고 싶은 주일입니다. 풀잎교회>  

   

칠판을 밖에 내놓고 글씨를 보는데 갑자기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왜지?      

커피를 넉넉히 내려놓은 후 흔들의자로 갔다. 

누구라도 오면 커피는 마실 수 있어야지.


벽에 걸린 시계에 자꾸만 눈이 갔다. 그러나 10시 40분이 되어도 한재상이라는 노인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를 기다리는 자신에게 갑자기 화가 났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


반 지하의 모든 불을 밝히고 앞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려는데 누군가 들어와 뒤 쪽 벤치에 앉았다. 50은 넘어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었다. 여자는 주변에 어떤 시선도 주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아무도 안중에 없는 것이 확실했다. 봉숙도 기척 없이 앰프의 볼륨만 약간 올렸다. 앰프에서 찬송가가 흐르자 여자는 따라 불렀다. 소리가 크진 않아도 아름다운 소프라노였다. 봉숙은 가끔 알토로 화음을 넣어가며 함께 불렀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이중창을 하는 동안에도 여자는 눈길 한번 없었다. 

사실 봉숙은 함께 성경을 읽고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예배 방식이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혼자 성경을 읽고 혼자 이야기했다. 아직까지 그래왔듯 기도로 마칠 때까지 여자는 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봉숙은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웠다.  

    

“잠깐만요.”

예배가 끝나고 일어서서 나가려는 여자를 불러 세웠다. 

훤칠한 키에 기품마저 있었다. 경희와 비슷한 아름다움이 그녀의 실루엣에 흘렀다. 그러나 뭔가에 시달린 듯 지친 기색 또한 역력했다. 

     

“그냥 갈게요. 목사님. 다음에도 올 거예요.”

그냥 간다는 말에 섭섭함이 증폭되었으나 다시 온다는 말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온다던 한재상 영감은 연달아 펑크를 냈으나 처음 보는 이 여인은 꼭 다시 올 것 같았다.  

    

“예, 혹시 근처에 사시면 놀러 나오세요. 늘 문은 열려 있거든요.”

여자를 보내고 ‘근처에 사시면’이란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주변의 집들은 소평 평수의 다가구 연립들이었고 그나마 오래된 것들이었다. 멀쩡한 아파트라도 보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저렇게 품위 있고 아름다운 여자가 이곳에 스며들었다면 필시 사연이 있을 텐데. 지쳐 보이던 그 표정도 그렇고. 그러나 아무것도 추측할 수 없었다. 다음에 온다는 말조차도.  

    

“어이쿠, 교인이 하나 생긴 모양이네.”

테이블을 정리하고 흔들의자로 가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하아, 어르신. 기다렸는데 지금 오셨네요. 하여튼 뭐.”

약간의 얄미운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한재상은 허름한 양복을 갖춰 입고 머리도 깔끔하게 빗어 묶었다. 바지는 너무 통이 큰 데다 흘러내려서 마치 오래되고 유행 지난 힙합바지 같았다. 벨트나 제대로 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의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낡은 가방까지 들려 있었다. 나름 신경 쓰셨네.   

  

“밥 먹으러 왔어. 목사 혼자 굶을까 봐.”

봉숙은 소리를 지를 뻔했다. 

오 마이 갓! 또 밥이야. 

     

“옆에 순댓국집 맛있는데 먹어봤나? 아니지? 오늘 같이 가서 먹지. 내가 살게.”

한재상은 색이 다 빠지고 곰팡이가 핀 듯 가죽이 허옇게 일어난 가방을 탁탁 두드려 보였다. 여기 돈이 있다는 표시였다.   

  

“아니, 제가 밥을 아직......”

더듬거리는 봉숙을 찬찬히 훑어보던 그는 빙그레 웃었다.


“밥심으로 사는 거야. 그렇게 안 먹으면 세상이 노래지지. 그러다 황천길이라고.”

아니, 저 영감은 밥을 먹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같이 먹고 싶단 얘기가 본론이라고 해야지.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순댓국집 아내가 궁금하기도 해서 결국은 동행하기로 했다.  

    

“도망갔어요. 미친 여편네.”

순댓국집 사장은 봉숙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주방에는 키 큰 아줌마만 어슬렁대고 있었다. 쉬는 날이라 그런지 점심 손님은 없었다. 

봉숙이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멍하니 있는데 한재상은 의자에 앉아 물을 따랐다.  

    

“그렇게 두들겨 패는 데 도망가지. 젊은 여자가 늙다리 하고 살기가 쉬운 줄 알아? 잘해 줘도 모자랄 판에.”

느닷없는 말에 봉숙은 얼어붙을 것 같았다. 

아니, 저 영감은 도대체 뭐야? 이 집구석을 다 아는 듯한 저 태도는. 

    

“어르신,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죠. 어딜 두들겨 패요. 하도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니까 정신 차리라고 흔들고 토닥거린 거지.”

사장의 말에 한재상은 눈을 사납게 흘겨 뜨긴 했으나 모른 체 밥을 주문했다. 봉숙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가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대로 밥을 먹으면 체할 것 같았다. 

     

“오늘 점심 첫 손님인데 좋은 순대로 잘 모실게요.”

뜻밖에도 사장은 괘념치 않고 큰 몸뚱이를 흔들며 주방에 주문을 넣었다.  

    

“찹쌀 순댓국 2개. 머리고기 듬뿍 넣어서.”

사장은 마치 봉숙을 처음 보듯 대했다. 아니, 무시하는 빛이 역력했다. 

정말 도망한 것이 맞을까? 죽어버린 거 아냐? 가둬버렸거나. 저 인간을 만난 것이 며칠이나 되었다고? 귀신 들린 얘기는 그냥 흘리러 왔던 거야? 

머릿속에 온갖 상상이 난무했다. 

    

“저 사장이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야. 내가 여길 그냥 지나다닌 게 아냐. 벌써 1년이잖아 이 동네 짬이.”

한재상은 주문한 순댓국이 나오기도 전에 깍두기 국물을 떠먹었다. 저렇게 먹으면 짤 텐데 늙어서 감각이 없나. 

그러나 그는 순댓국의 건지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밥을 말아 국물만 몇 숟가락 후루룩 거렸을 뿐이었다. 치아가 시원찮은 건지.  

    

“목사도 조심해야 돼. 어여, 먹어.”

두 사람은 순댓국을 거의 고스란히 남겼다. 한 명은 무슨 까닭인지 도통 먹질 못했고, 또 한 명은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음식 값은 봉숙이 치렀지만 한재상은 굳이 만 원권 세장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내가 낸다고 했는데.   

   

“어르신, 오늘 왜 늦으셨어요? 기다렸는데.”

밖으로 나와 작심을 하고 다그쳤으나 그는 무심했다. 

    

“내가 일요일날 간다고 했지, 시간은 얘기 안 했는데. 그리고 걱정 마, 나 천국 갈 거야.”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안심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오늘 밥 같이 먹어서 고마워. 너무 오랜만이라. 걱정 말라니까.”

뭘 걱정 말라는 거야. 천국 못 갈까 봐 걱정하는 걸로 보인 모양이네. 하긴 저 영감의 천국행을 누구도 판단할 순 없지만, 배짱과 뻔뻔함은 타고나셨네. 

봉숙은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신경이 온통 순댓국집에 가 있었다.  

    

“순댓국집 아줌마 죽었는지도 몰라. 그 아줌마가 목사를 만났어야 했는데. 그래야 천국 얘기도 듣고 했을 거 아냐. 그럼 천국 갔을지도 모르고.”

한재상의 말은 봉숙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귀신 들렸네 어쨌네 하던 날, 아니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를 듣던 날을 왜 놓쳤을까? 다음에 온단 말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들어 넘겼을까? 정말 도망간 것일까? 차라리 그랬으면. 그래, 사람이 죽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정신 차려, 목사. 나는 하나님을 알고 믿으니까 걱정 말고. 저 순댓국집이나 잘 들여다봐. 혹시 알아? 아줌마가 다시 나올지?”

어이가 없어 봉숙은 소리를 질렀다. 

    

“어르신은 왜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면서 또다시 나올지도 모른다니요?”

한재상은 작은 눈을 부릅뜨며 봉숙을 노려봤다.   

   

“벌써 몇 번이나 그랬어, 목사야. 도망갔다고 하곤 잡아다 놨는지 또 보였다니까. 이번에 아주 안 보이면 죽은 거 아냐? 성질머리 하고는.”

그는 혀를 몇 번 차고는 휙 가버렸다. 다시 온다는 얘기도 없었다. 

오든지 말든지. 고약한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다른 때보다 양치를 세배는 세게 한 것 같았다. 입안이 얼얼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순댓국집 여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망을 갔는지 갇혔는지 알 수 없지만 살아있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이 반 지하에 올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담에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에 대한 응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문을 열어 놓자. 잠그지 않는 거야.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순댓국집 부인이 가만히 들어올 수도 있고, 수진이도 아무 때나 드나들지 않을까. 물론 맘에 안 드는 한재상 영감도 오려나 모르지만. 또 아까 왔던 우아한 여자가 들를 수도 있지.

그런데 나쁜 사람들이 드나들면 어쩌나? 어디는 노숙자가 와서 똥을 싸놓았다고도 하고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고도 했다. 불장난을 해서 119가 출동하기도 했다는 둥.

똥을 싸면 치우고, 훔쳐 가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 뭐. 중요한 건 이곳이 열려 있다는 거니까. 

물론 자신이 지금보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방법을 쓸 예정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지하가 혼자 비어 있는 시간은 한밤중을 포함해 10시간 남짓이 될 것이다.      

일요일이라서 이른 퇴근을 하려다 오늘부터 늦게까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흔들의자에 주저앉았다. 저녁이 되려면 아직 멀었음에도 피곤이 엄습했다. 복잡했던 하루의 생각들로 두드려 맞은 듯 온몸이 욱신거렸다. 슈베르트의 잔잔한 음악을 크게 틀었다. 아침에 내려놓은 남은 커피를 머그잔에 가득 채워 빈속에 천천히 내려 보내는데 노인의 말이 생각났다.      

밥 먹으러 왔어. 목사 혼자 굶을까 봐.     

왜 다들 밥 타령일까? 먹는 게 그렇게 중요해? 한두 끼 굶는다고 뭐가 문제야? 너무 먹어서 탈인 세상에. 

생각할수록 한재상의 여러 가지가 괘씸했지만 자신이 굶을까 걱정했다는 말은 진심 같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순댓국집 사장의 너부데데한 등판이 생각났다. 당신은 정체가 뭐야?      

하여튼 문을 열어놓기로 한 것은 잘한 것 같았다. 

그래, 꽉 닫힌 세상에서 어디 한 군데는 열려 있어야지. 잘했어 숙아.

이런저런 상념 가운데 한재상 노인과 순댓국집 사장과 며칠 전 본 그 아내와 2층집 사람들, 수진이가 망막을 스쳤다. 그리고 경희와 닮은 그 여자까지. 

    

‘아까 그 여자분이 꼭 다시 오면 좋겠다.’

처음 본 그녀를 다시 생각하니 공연히 마음이 즐거워졌다.      

볼륨을 크게 올린 슈베르트의 자장가가 공원에까지 들렸는지 지나가던 강아지가 흠칫 놀라 창문 쪽에 오줌을 누었다.     

   



한재상 노인과 밥 아닌 밥을 먹고 나서 열흘이 지나도록 그를 볼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박스를 줍는다거나 공병을 수집한다면 한두 번이라도 눈에 띄었을 텐데. 벌써 일을 집어치웠나? 아니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를 찾으러 다닌다는 아들에게 잡혀갔나? 

만나기만 하면 화를 돋우는 사람이었지만 안 보이자 궁금했다. 

순댓국집은 여전히 키 큰 여자와 사장이 장사를 했다. 유심히 들여다보아도 자그마한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었으나 자기 입으로 도망갔다고 하는 여자에 대해 더 무슨 말을 할까 싶어 그만두었다. 어쩌면 물어볼까 봐 도망갔다고 미리 연막을 쳤을 수도 있는데. 자신이 있는 곳이 참 복잡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 새로 쓴 글씨를 바라봤다. 

     

<풀잎>     


다른 글을 쓸 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냥 매일 칠판을 닦고 그 자리에 같은 글씨를 정성껏 썼다. 허리를 펴자 2층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처럼 밝고 맑은 날에도 2층의 창은 불이 환했다. 

2층의 남자가 똑같은 이 글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그는 오늘도 술에 취해 2층 여자, 아니 이 과장의 손에 이끌려 출근했을까? 그녀는 여전히 눈이 피곤할까? 그 목의 흔적은 흐려졌을까? 아니, 없어졌을까?

생각지도 않은 2층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살아났다. 마치 그들이 있는 2층의 작업장에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섬유 기계 속에서 돋보기 같은 안경을 끼고 비단의 흠을 찾아내는 이 과장이 보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 쪽가위까지도 선명하게. 그러나 남자는 무엇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아, 그는 짐을 날랐지. 거래처에서 트럭이 오면 그 짐을 풀고 나르고 하는 걸 본 것 같아. 여기서 생산된 비단을 날라서 트럭에 실어주기도 하고.      

봉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반 지하로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흔들의자의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짧고 선명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목사님, 오늘은 치즈 김밥이에요. 목사님이 좋아하신다고 해서요.”

봉숙은 소리 나는 출입구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 과장이 예의 검은 봉투를 들고 들어섰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나? 치즈를 좋아하긴 하지만 치즈 김밥은 아니었다. 치즈를 좋아한단 얘기조차도 꺼낸 적이 없었는데 이 과장은 도대체 어디서, 무슨 정보를 가지고 오는가. 그러나 치즈와 치즈김밥의 상관관계를 따지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치즈김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으니까.  

   

“오랜만이에요. 점심시간인가 봐요.”

짐짓 반가운 소리로 인사하자 여자는 반응 없이 실내만 두리번거렸다. 이전보다는 약간의 살이 오른 듯했지만 여전히 깡말라 있었다. 이번엔 턱 밑까지 오는 회색 터들 니트를 입고 있어서 그녀의 목을 볼 수는 없었다. 빈약한 그녀의 엉덩이 때문에 바지는 마치 헌 부대자루처럼 축 처져 있었다. 그 모습이 측은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깐 앉아요. 쉬는 시간만이라도 좀 편안히 쉬어요. 앉아서.”

여자는 마지못해 의자에 주저앉았지만 여간 불편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리는 모은 채 두 손을 깍지 껴서 무릎에 올려놓았다.   

   

“식사는 했어요? 아, 오늘은 김밥이었겠네요. 저도 잘 먹을게요.”

그녀의 검은 봉투를 풀어 치즈 김밥을 꺼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김밥을 집으며 과장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저 치즈 김밥 좋아해요.”

여자의 입가에 야릇한 웃음이 돌았다. 저 웃음은 뭐지? 들켰나? 그럴 리가. 

어쨌든 김밥을 연신 집어 먹으며 맛있다는 제스처를 계속했다. 

     

“저도 치즈 김밥 좋아해요.” 

여자는 한 마디 하고는 다시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약한 사시가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저거 전자 드럼이죠? 제가 드럼 좀 치는데.”

깜짝 놀라 김밥과 함께 자신의 입안을 깨물어 버린 봉숙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아, 비린내. 그런데 드럼을 알아차리네. 지난번에도 있었는데 그땐 아무 말이 없더니. 

한쪽 구석에 테이블보로 덮여 있는 드럼은 벌써 몇 년째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버리지도 못하고 창고에 쑤셔 두었다가 이번에 꺼내서 세팅만 해 놓은 것이었다.

     

“그래요? 그럼 과장님이 드럼을 치면 좋겠네요. 칠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다가 봉숙은 실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나 신디처럼 멜로디를 할 만한 그 누구도 없지 않은가. 자신이 간단한 코드의 기타 곡은 가능했지만 그마저 손 놓은 지 몇 년이었다.  

    

“정말요? 제가 쳐도 돼요?” 

여자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선화가 신디를 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경희가 선화를 박살 내던 상황이 생각나 고개를 흔들었다. 어림없지, 그 자존심에.   

   

“그럼요. 이리 와서 자세히 봐요.”

덮었던 테이블보를 젖히자 자그마하고 견고한 전자 드럼이 드러났다. 여자는 여전히 봉숙을 외면한 채 드럼만 한동안 바라보았다. 니트 스웨터 뒤로 드러난 각지고 얇은 어깨뼈가 드럼 스틱이나 제대로 쥘까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여자는 드럼 주위를 어슬렁대며 손을 대 보기도 했다. 앙상하기 이를 데 없는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을 봉숙은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다. 오른손 검지에 물든 어두운 그림자는 쪽가위의 흔적인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녀의 모습만 눈으로 좇고 있는데 갑자기 가벼운 심벌즈 소리가 공기를 흔들었다. 여자가 손끝으로 심벌즈를 몇 번 튕겨서 나는 울림이었다.  

    

“작긴 작구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였지만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아마도 어쿠스틱 드럼에 비해 여러 가지가 작다고 하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 과장은 페달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매트가 있어야겠네.”

맨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드럼을 향해 그녀가 처음으로 정감 있는 따스한 소리를 냈다. 

봉숙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마치 그림자처럼 그녀를 대했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혼잣말이어서 그게 편했다. 

그렇게 드럼을 한참이나 관찰하던 여자는 시간이 되었다며 바람처럼 가볍게 2층으로 올라갔다. 물론 피차 인사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치즈 김밥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나머지를 깨끗이 먹고 식은 커피로 마무리를 했다. 

묘하게 밥을 먹게 되는구나. 

생각해 보니 하루에 한 끼는 그나마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하루를 깡그리 굶고 지내던 날들이 허다했는데.     

배부르면 딴생각한다더니 이 과장의 드럼 얘기가 의심스러워졌다. 드럼을 친다는 얘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치즈김밥을 상대방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녀를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기나 한가?

그리고 언제 온다는 걸까? 만일 아무 때나 와서 두드려대면 그 시끄러움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래, 온다는 사람을 막을 일은 아니지, 정신 차리자. 그러나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 다음 테이블보로 다시 드럼을 덮으려는데 문득 이호가 생각났다. 



10여 년 전 남편의 교회에 쑥 들어온 청년은 술에 취해 있었다. 말끔한 이목구비와 달리 의복은 낡고 유행에 처진, 보통 젊은이의 옷차림과는 사뭇 달랐다. 이호는 교회의 맨 뒷자리에 앉아 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며 두어 번 나오더니 어느 날 드럼을 칠 수 있느냐고 물었었다. 그 당시의 드럼은 시끄럽지만 풍채 좋은 어쿠스틱이었다.

      

“당연하지.”

남편은 정말 당연한 표정으로 허락했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알 수 없는 단지 이름이 이호라는 것만 아는 청년을 위해 자리를 비워줬다. 

잠시 후에 봉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한 드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말이 달리다가 멈추고 바람이 휘몰아치다가 잔잔해졌다. 아주 작고 희미한 소리로부터 천장을 들썩거릴 만한 볼륨까지 자유자재로 소리가 날아다녔다. 드럼 스틱을 놓치거나 부러뜨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미친놈인가 싶었으나 분명히 예술적이었다. 

남편은 보이지 않는 이호를 향해 박수를 쳤다. 대단하네.      

그렇게 이호는 남편의 교회에 스며들었고 1년을 멋진 드러머로 자리매김했다. 이호는 얼마나 드럼을 잘 다루던지 시끄럽단 생각 대신 예술만 남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호는 오던 날처럼 말없이 사라졌고 남편은 1년 후 청송 교도소에서 온 이호의 편지를 받았다. 

     

봉숙은 드럼 스위치를 켜서 스틱으로 살짝 건드려 보곤 곧 껐다. 드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다시 테이블보를 덮어씌우고 나서 흔들의자로 갔다.      

참 많이 닮았다. 이 과장과 이호가. 

이 과장이 사시만 아니라면 둘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그렇게 생긴 사람들이 드럼을 잘 치나? 이 과장도 이호만큼 치는 걸 괜한 걱정을 한 건 아닐까? 갑자기 생긴 기대감이 생뚱맞긴 했으나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으니까. 드러머를 하나 얻은 좋은 날이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저녁까지 온종일 혼자 있으려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괜한 오지랖으로 사서 고생인가? 아무도 안 오잖아. 

드럼이 세팅된 곳에만 핀 조명을 켜 둔 채 사무실로 들어가 간이침대를 폈다. 

스산한 느낌에 오리털 침낭을 펴고 들어가 앉으니 온화했다. 

창밖이 어스름해지고 봉숙은 까무룩 잠에 빠져 들었다.  

         



“정신이 있는 거니? 여기서 잔 거야?‘’

한쪽 어깨가 저려서 돌아누우려는데  경희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평소의 그녀라면 내지 않는 데시벨이었고 톤이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눈을 가늘게 뜨니 흔들의자 쪽 창에 보기에도 신선한 아침 햇살이 머물러 있었다.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봉숙은 기침을 두어 번 했다. 한기가 온몸에 들었다. 어제 집엘 안 간 모양이네. 

     

“너 일단 이 따뜻한 물부터 마셔. 입 돌아가려고 작정을 했구나. 이젠 하다 하다 한뎃잠을 다 자니?”

다시 차분해진 경희는 보라색 꽃무늬 찻잔에 끓인 물을 담아 줬다. 

저건 영감님 찻잔인데. 

봉숙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어리자 경희는 어이없어하며 자기도 따라 웃었다. 

     

“내가 뭘 본 거니? 봉숙아. 지금 너 웃는 거 맞지?”  

   

“어, 그런데 여기가 왜 한데야? 엄연히 실내지. 어제 잠깐 눈 붙인다는 게 잠들어 버렸나 봐. 간만에 안 깨고 잤구먼. 근데 춥다. 좀 불 좀 켜자.”

봉숙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형 난로에 스위치를 넣는데 입구에서 목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목사 있어?”

봉숙은 혼이 나간 것 같은 경희를 놓아두고 입구 쪽으로 갔다. 어제 입은 채로 잔 통바지는 마구 구겨졌고 머리는 털실을 헝클어놓은 듯 산발이었다.  

    

“이런? 삽살개인 줄 알겠어, 목사. 머리 좀 빗어.”

한재상이 개나리를 한 묶음 들고 들어섰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봉숙의 머리나 차림새에 아무 관심이 없는 말투였다.  

    

“요즘 개나리가 한창인데 이쪽엔 없더라고. 내가 좀 꺾어왔지.”

뭐라고 응대할 사이도 없이 경희가 쪼르르 나왔다.  

    

“누구세요?”

부드러웠으나 경계심이 잔뜩 묻어 있는 소리였다. 

한재상은 경희를 일별 했을 뿐 대답 없이 개나리를 봉숙에게 내밀었다.  

   

“누구냐니까?”

경희가 화병을 가지러 가는 봉숙에게 붙어서 작게 물었다.  

   

“누군 누구야, 여기 교인이지. 그러는 아줌마는 누구슈?”

한재상의 목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마치 자기가 주인 같았다.

봉숙은 조용히 하라는 듯 붙어선 경희를 툭 쳤다.

      

“목사, 나 커피 한 잔 마시러 왔는데. 일전에 그 컵에 좀 줘.”

한재상은 가운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옷에서 개나리 꽃잎 몇 개가 주르르 떨어져 내렸다. 경희의 표정은 뭉크의 절규 그 자체였다. 봉숙은 웃음이 나려는 걸 참고 개나리를 화병에 꽂았다. 항아리 모양의 화병과 꽃잎이 절반이나 떨어진 개나리는 그럴 수 없이 안 어울렸다. 

봉숙이 개나리가 꽂힌 화병을 다른 테이블로 옮기고 커피 내릴 준비를 하는데 경희가 한재상 앞으로 가더니 마주 앉는 게 보였다. 

    

“할아버지, 여기 교인이라고요? 언제부터요? 그리고 개나리 함부로 꺾어오면 안 되는 거 아시죠?” 

한재상은 그 작고 매서운 눈으로 깜빡이지도 않고 경희를 응시했다.   

   

“이 아줌마가 오지랖이 태평양이야. 거, 별 참견을 다 하네.”

경희의 선전포고에 한재상이 답을 했으니 전쟁은 시작되었다. 

이걸 어쩌나? 얼마 전엔 봉선화와 일전을 벌이더니 얘가 쌈닭이 되었나, 왜 이렇게 예민하지? 봉숙의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였다.   

   

“아니 할아버지, 무슨 말씀을......”

경희가 한재상의 말을 받기 전에 봉숙이 먼저 말을 나꿔챘다.  

     

“어르신, 여긴 제 오랜 친구인데 오늘 놀러 왔네요. 그리고 경희야, 어르신은 진즉부터 우리 교회에 오셨어. 서로 인사를 하시죠.”

봉숙이 보랏빛 찻잔에 맑은 커피를 내려 한 재상에게 권하자 그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만족하게 커피를 받았다. 

경희도 어느 정도 숨을 고르더니 예의 차분하고 굴곡 없는 억양을 되찾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일찍 불쑥 찾아오시는 건 아니잖니?”

경희의 말에 한재상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경희라는 존재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좀 아팠어. 한 닷새 앓고 일어나 보니까 비닐집 마당에 개나리가 환히 피었더라고. 땅으로 깔려서 제멋대로 구부러졌지만 그래도 좀 갖다 주고 싶어서. 이 동네는 개나리가 없잖아.”

한재상은 보랏빛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조금씩 마셨다. 헝클어져 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굵게 주름지고 여윈 볼이 드러났다. 손톱은 뭉툭하고 거칠게 깎였는데 때가 끼어서 보랏빛 본차이나의 표면과는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한재상을 한참 관찰한 경희는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여기 교회에 계속 나오실 건가요?”

봉숙이 당황한 표정으로 경희를 툭 건드렸지만 한재상은 괘념치 않은 듯 컵을 차받침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 내가 나오면 아줌마도 나오려고? 그럼 그러지 뭐. 난 죽을 때가 돼서 나오긴 해야 돼. 그런데 아줌마가 젊다고 해서 먼저 죽지 말란 법은 없지.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지 않습디까? 맘 고쳐먹고 열심히 나와. 목사 친구라며? 이번 일요일 날 봅시다. 난 일 하러 가야 해.”       

한재상은 자기 할 말만 하곤 일어섰다. 그러나 경희를 보는 내내 그의 눈빛은 오기와 측은함으로 가득해서 경희가 불쌍해 보였다. 그가 일어서니 앉았던 그 자리에도 개나리 꽃잎 한 개가 눌려 있었다.  

    

“저 영감 위험하지 않아? 너무 이상한데?”

경희의 질문에 봉숙은 한재상의 개나리 항아리를 가까이 끌어당겨 놓았다. 

    

“너 개나리를 꽃 선물로 받아 본 적 있니? 없지? 나도 없어. 그런 분이야. 저 개나리가 물에서 얼마나 견디겠니? 오늘 밤이라도 아마 거의 떨어지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너 저런 영감이 아무 때나 들어오는 데서 잠이 오니? 너 아직 젊고 여자야. 너야말로 정신 좀 차려. 봉숙아, 여기 접고 그냥 목 좋은 데서 카페 하나 하자. 우리 건물에도 카페 할 만한 데 있어. 어떻게 여기서 이러고 사니?”

경희는 거의 울 것 같았다. 그러더니 진정시키려는 봉숙을 밀치고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저 영감하고 내가 끝장을 내야겠어.”

봉숙이 잡고 어쩌고 할 시간도 없이 경희는 출입문으로 휑하니 나갔다. 아마도 한재상을 뒤쫓아갈 심산인 것 같았다. 봉숙은 경희를 내버려 두고 흔들의자로 갔다. 

이리 지나갈 거야. 아마도.

예상대로 한재상은 손수레를 끌고 흔들의자 앞 유리창 밑 산책로를 천천히 지나고 있었고 그 뒤를 아름다운 경희가 따라갔다.   

  

“할아버지, 잠깐만요. 저랑 얘기 좀 하시죠.”

경희는 산책로 앞의 의자로 한재상을 이끌었다. 한재상의 손수레에는 접힌 빈 박스가 서너 개 실려 있을 뿐 가난했다. 하긴 아직 본격적으로 일을 하긴 이른 시각이었다.

봉숙은 따라 나갈까 하다가 그냥 흔들의자에 주저앉아 모습만 바라봤다..     

한재상과 경희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한재상은 앉았다가 가끔 일어나곤 했는데 화를 삭이는 듯 얼굴이 찡그려지곤 했다. 경희는 등을 보이고 앉아 표정을 볼 수는 없었으나 조신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손짓을 하는 걸 봐선 꽤 격앙된 상태인 것도 같았다.     

그들을 보면서 봉숙은 급격하게 피곤함을 느꼈다. 둘 다 봉숙을 위해서인데 둘 다 힘들었다. 아직 점심때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지치거늘 밤 10시까지 있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최대한 반 지하에 오래 머물러야겠다고 결심했던 며칠 전의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 왜 그런 객기를 부렸을까? 

그냥 6시에 퇴근하되 문은 열어놓기로 생각을 바꿨다. 결국 호기롭게 계획은 했으나 실행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봉숙아, 저 영감 내가 오지 말라 그랬어. 주일날만 오든가 말든가. 아무 때나 오지 말라고. 여기가 무슨 노숙자 쉼터도 아니고 무료 찻집도 아니잖아. 교회를 교회로 알아야지 원.”     

한재상과 헤어져 들어온 경희는 바람 없는 깃대의 늘어진 깃발 같았다.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읊는 걸 봐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정작 기운이 빠진 것은 교회를 오래 지키기로 한 계획 실행에 실패한 봉숙 자신이었다.  

    

“경희야, 저분이 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 시작이 그랬잖아. 여긴 교회이기도, 아니기도 하다고.”      

경희는 맑고 큰 눈에 걱정과 의심을 가득 담고 봉숙을 바라봤다.  

    

“봉숙아, 너 왜 여기 있는 건데?”

아주 낮고 작은 소리로 천천히 묻는 질문이었다.  

   

“네가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경희야?”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내 말은 표면적인 것 말고, 봉숙이 네가 여기 있어야 하는 진짜 이유. 여기서 저런 이상한 영감과도 아무렇지 않게 지내려고 하는 이유.”     

봉숙은 아무 말 없이 경희의 눈을 피했다. 

둘 사이에 다소 긴 침묵이 있었고 잠시 후에 경희는 미안하다며 자리를 떴다. 

이상한 영감 때문에라도 일요일에 교회에 와야 되겠다는 말과 함께.      

경희를 보내고 흔들의자로 온 봉숙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머리를 빗었다. 거울이 있는 화장실엘 갈까 했으나 출근한 2층 사람들을 만나기도 버거웠다. 한재상이 갖다 놓은 형편없는 개나리가 꽃잎을 툭툭 떨구었다. 그 모습이 가을처럼 쓸쓸했다. 떨어진 꽃잎을 바라보다가 봉숙은 일어났다.      

칠판에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의 남자를 생각해서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칠판을 안으로 들여놓고 초록색 마카를 집어 들었다.    

 

<이 봄을 빛내준 꽃, 

개나리가 지고 있네요. 

오늘 특별히 슈프리모 커피가 

그 이별의 순간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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