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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Apr 27. 2024

6. 혼돈

<여름이 오는 소리가 둥둥둥

강력한 푸름을 즐길 준비가 되셨나요? 

오늘은 케냐 AA입니다. 

당연히 냉커피도 가능합니다.>  

   

일찌감치 글씨 쓴 칠판을 내놓고 봉숙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구름 몇 조각이 있었지만 푸르기가 가을 같았다. 

     

“아유 벌써 이렇게 더워서야 원. 올핸 장마도 빠르대요. 사모님, 일찍 나오셨네요?”

백 부장이 이 과장과 함께 출근하는 길이었다. 이 과장은 수줍은 듯 살짝 아는 체를 하고 부지런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여전히 후줄근한 면바지에 긴 맨투맨 티셔츠 차림이었다. 반면에 백 부장은 몸에 꼭 맞는 반팔 티셔츠로 불룩 나온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참, 사모님, 여기 순댓국집 있잖아요? 거기 문 닫는다네요. 장사 꽤 잘 됐는데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에요.”

봉숙은 듣느니 처음이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김현준 때문에 심심찮게 밥을 먹으러 가곤 했는데 아무런 낌새도 없었다. 물론 임신했다는 사장의 아내는 있다가 없다가 했다. 안 보이면 몸이 힘들어서 쉬는가 보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요?”


“아니, 저도 잘은 모르는데 아마 사장이 아프다나 봐요. 하여간 장사를 할 형편이 안 된다고 부동산이 그러더라구요. 매물로 나올지도 모른다고.” 

백 부장은 물건이 들어오니 주차장은 비워달라는 부탁을 하곤 2층으로 올라갔다. 봉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으나 생각을 털어내고 순댓국집을 들여다보았다. 

2주일 전쯤 김현준과 순댓국을 먹던 실내는 똑같았다. 안에 인기척이 있어 봉숙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 생각했던 대로 순댓국집 사장의 아내인 인도네시아 여자가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봉숙을 본 그녀는 앳되게 웃으며 반겼다. 그 웃음이 너무나 낯설어서 봉숙은 마치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가게를 못하신다고요?”

봉숙은 초록색 마커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여자는 눈을 한 번 크게 떠서 봉숙의 손가락에 묻은 마커 잉크를 일별 했다. 


“아니요. 목사님.”

여자의 독특한 억양이 지난날 그녀를 불렀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앉으세요.”

여자는 식탁 한쪽 의자를 권했다. 엉거주춤 앉는 봉숙을 보며 여자는 사이다를 가지고 와 스텐 컵에 가득 따랐다. 


“목사님 만나고 싶었어요.”


“예. 제가 기억하지요. 그런데 그동안 안 보이셔서 궁금하기도 했어요.”


“도망갔어요. 다시 잡혔어요.”

한 재상 말이 맞았다. 역시 여자는 남편을 피해 도망을 갔는데 잡혀서 다시 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장은 어딜 갔을까.


“남편 죽는다고 했어요. 정말 죽어요.”

여자는 시제를 뒤죽박죽으로 사용하긴 했지만 앞뒤 말을 잘 조합해 보니 줄거리가 잡혔다. 

남편이 죽는다는 말을 누가 했고 그 말대로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는데 곧 죽을 것 같단 얘기였다. 남편이 일을 못하니 업종을 바꿔 인도네시아 음식점을 하겠단 얘기였다. 봉숙은 순간 사장의 상태보다는 여기서 인도네시아 음식점이 될까를 생각했다. 그런데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아시아계 외국인들이 상당하긴 했다. 


“그런데 누가 그래요? 남편이 죽는다고?”


“우리 아버지요.”

봉숙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순댓국집 사장이 귀신을 쫓아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아버지요? 인도네시아 아버지?”

여자는 무슨 뜻인지 얼른 못 알아듣는 것 같았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님 만나서 물어보려고 했어요. 남편이 죽는지.” 

봉숙은 어이가 없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가 어떻게 알아요? 아버지가 점쟁이예요? 점쟁이가 뭐지?”

인도네시아어를 급히 검색하니 peramal이란 단어가 떴다. 여자에게 단어를 보여주자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

봉숙은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여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혹시 크리스천입니까?”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밀림에 살았을 때 자기 동네에 한국인 선교사가 왔고 여러 사람의 병을 고쳐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 사람은 모두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집에서 돼지를 길렀겠구나. 순댓국집 사장이 처가에서 돼지를 기른다고 했을 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무슬림이라면 돼지를 기르진 않았을 텐데.’

자신의 무심함으로 인한 오해에 혀를 끌끌 차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라고요? 병을 고쳐요? 어떻게요?”

다시 대화의 현장으로 돌아온 봉숙은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하고 말았다. 선교지에서 기적이 드문 일은 아니었으나 무엇인가 확인하고 싶은 자신에게 외려 놀랐다.


“의사 목사님이요.”

여자는 닥터라고 했다가 의사라는 단어를 썼다. 한 명이 아닌 세 명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하. 의료선교사였구나.’

봉숙은 갑자기 안심이 되었다. 약과 주사와 수술로 고친다면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방법이 안수기도였다면 여자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봉숙의 복잡한 심정과 상관없이 여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목사님도 알아요? 남편 죽어요?”  

    

‘오 마이 갓. 이건 또 무슨 질문인가’

봉숙은 손사래를 치며 눈을 꾹 감았다가 신음하듯 말했다. 

    

“아니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누가 알려줬다고요?”  

   

“꿈에 아버지가요.”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남편이 죽는다는 데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였다. 폭력 남편 이어서일까? 그래도 이 낯선 땅에서 남편도 없이 어떻게 혼자 장사를 하겠다는 것일까. 더욱이 임신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기 없어요.”

임신에 대해 묻자 여자는 자신의 배를 툭툭 치며 대답했다. 임신이 아니란 얘기였다. 

     

“남편 거짓말이요.”

아내가 임신했다며 좋아하던 순댓국집 사장의 얼굴이 떠올라 봉숙은 더욱 혼돈스러웠다. 사장의 표정은 너무나 진심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누군가의 거짓말이든 현재의 상황에서는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여자는 단어와 단어를 나열하는 수준이었고 대화가 진행될수록 토씨와 시제는 생략되었다. 의미를 해독하느라 집중한 봉숙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도 여자는 자신의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흡족한 표정이었다. 

봉숙은 반지하가 언제나 열려 있으니 한 번 방문해 달라는 얘길 끝으로 자리를 떴다. 순댓국집에서 반지하까지는 불과 몇 미터가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다리가 무거웠다.  

    

“목사가 어딜 그렇게 돌아댕겨?”

낯익은 실루엣과 냄새와 목소리였다.

      

“아, 어르신.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언제 들어오셨어요?”

한재상은 처음 만난 모습 그대로 자신의 낡은 배낭에 기대앉아 있었다. 다만 몸피가 줄어든 듯 배낭과 사람의 크기가 비슷했다.   

   

“커피 드릴까요?”

봉숙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이 한재상은 끄응 소리를 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초여름이었으나 그의 복장은 겨울이나 별 다름이 없었다. 

봉숙은 천천히 커피를 내려 예의 보랏빛 커피잔에 채워 그에게 들고 갔다.  

   

“요즘엔 일 안 하시나 봐요. 오시지도 않구요.”  

   

“그렇게 됐어.”

한재상은 커피를 조금 입에 담고는 얼른 넘기지 못했다. 초췌해진 얼굴은 양 볼에 깊은 주름을 만들었고 총총하던 눈빛조차 시든 듯했다.   

   

“어르신 말씀대로 순댓국집 부인이 돌아왔네요. 그런데 남편이 아프다는 것 같아요.”

한재상은 다시 한 모금 커피를 머금고는 한참을 있었다. 분명 몸에 무슨 이상이 있구나 싶은 직감이 들었다.


“풍을 세게 맞은 모양이야. 마음보를 좋게 써야지. 죽어도 싸지.”

분명 순댓국집 사장을 얘기하는 것이었으나 마치 자기 얘기 같았다. 그런데 한동안 보이지도 않던 한재상이 그 집 형편을 알고 있는 것이 궁금했다.


“아직 죽은 것은 아니네요. 부인은 죽는다고 확신하던데. 좀 이상하긴 했어요.”

봉숙의 말을 듣던 한재상은 씩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묻지 않았다. 

     

“그냥 앓다 죽게 놔두겠지 뭐. 마누라네 식구들이 와서 자기네 고향 밥장사 한다고 하는 것 같던데?”

한재상의 말을 듣고 나니 얼마 전 순댓국집에서 보았던 외국인들이 생각났다. 그때는 아직 사장이 건재했을 땐데 무엇을 알고 왔단 말인지 봉숙의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 같았다.

     

“저, 어르신. 언제 여길 다녀가셨나요? 매일 출근하는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네요.”

한재상은 마침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반도 더 남은 커피가 보랏빛 도자기 안에서 맑게 흔들렸다.

      

“목사는 아직 멀었네. 내가 볼 땐 그 집 사장 놈이나 그 마누라나 다 목사에게 하고픈 얘기가 있던데, 목사는 사장 놈을 미워했나 봐? 그런데 그럼 안 되지 않아?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말야. 차별이 없어야지.”

한재상은 일어서려고 했으나 한 번에 일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봉숙이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잡으려 하자 그는 밀어냈다. 마치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웬 참견이냐는 말을 몸으로 하고 있었다.  

    

“목사는 교회에 있어야지.”

한재상은 처음과 같은 말을 하곤 봉숙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 웃음에 봉숙은 기분이 상해 단호하게 말했다.     

“어르신, 목사가 있는 곳이 교회지요. 성도들이 있는 곳이 교회이듯이.”  

   

“누가 뭐래? 그러니까 부지런히 다니라고. 순댓국집이나 공원이나 저 옆에 뼈다귀 집이나 여기 위에 회사도 있네. 아유, 이 게으른 목사야.”

봉숙이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기도 전에 한재상은 바람처럼 나가버렸다. 그의 몸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봉숙은 열린 출입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 영감탱이! 진정으로 화가 난다.’

다시 비어있는 반지하를 가로질러 봉숙은 흔들의자로 갔다.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남아 있는 커피를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한재상의 보랏빛 잔에는 커피가 조용히 남아 있었는데 치우고 싶지도 않아 그대로 두었다.


의자를 흔들며 한참을 앉아 있는데 이전에 보았던 안개가 주변에 피어올랐다. 꿈이 아닌 것이 그녀의 정신은 유리처럼 맑았다. 그래도 봉숙은 두리번거렸다. 사물은 다 제자리에 있었고 산책로엔 여름 복장의 젊은이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봉숙아, 너 왜 여기 있는 거야? 진정으로 네가 있어야 하는 이유’

갑자기 경희가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환청인가? 내가 미치려나 봐. 

봉숙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목사님, 김밥 가져왔어요. 점심 드시라구요.”

입구에서 이 과장의 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지영 씨, 잠깐만요. 소나기 오던 일요일날 드럼 치러 오지 않았어요?”

이 과장은 검은 봉지를 테이블에 놓은 채 주춤거리며 서 있을 뿐 답이 없었다.    

 

“그냥 들어와 치면 돼요. 노래하는 남자는 안심해도 돼요. 기타를 칠 수 있대요. 아마 팀을 만들어 보고 싶어 하던데. 건반은 제가 알아볼게요.”

주절거리며 얘기하는 봉숙을 바라보던 이 과장은 참치김밥이니 맛있게 먹으란 말만 남기고 나갔다.  

    

‘아, 그놈의 김밥.’

튀어나오려는 말을 입에 가두고 이 과장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그냥 오고 싶은 때 아무 때나 오라구요. 내가 같이 있으니까.”  

   



바깥의 열기에 비하면 반지하는 아직 시원했다. 양 옆의 가게와 건물의 공장은 진즉에 에어컨을 가동해서 실외기들이 각자의 박동에 맞춰 돌아가다 쉬곤 했다. 아직까지 반지하가 시원한 걸 보면 웬만한 더위는 선풍기로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봉숙은 흔들의자에서 여전히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일요일엔 박 집사와 김현준이 꾸준히 왔고 아무 때나 경희가 왔다. 박 집사는 김현준의 음악에 길이 든 듯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춰 노래했다. 그리고 셋이서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다. 순댓국보다는 뼈다귀 해장국이 봉숙에게는 더 입맛에 맞았고 주인 부부는 살갑게 친절했다. 그들 셋 누구도 문을 닫은 순댓국집 얘길 하진 않았다. 그곳엔 이따금 사장의 아내 외에도 두 명의 인도네시아 사람이 드나들었는데 아마도 사장의 장인 장모인 듯했다. 그러나 쉽게 음식점을 개업하지는 못했다. 아직 간판도 순댓국집이었고 특별히 리모델링을 하지도 않았다. 순댓국집은 그냥 이전처럼 그대로였다. 순댓국집 사장은 한 번도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다. 백 부장 말에 의하면 요양병원에 보내진 것 같다고 했다. 

     

<덥고 지치거나 화가 날 땐

반지하를 이용하세요.

자연냉방과 시원한 음료가 준비되었어요.> 

    

글씨 칠판을 내놓고 반지하로 들어와 사무실에서 원고를 작성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모든 문은 열려 있었기에 봉숙은 돌아보지도 않고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열려 있는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수진이었다. 

봉숙은 컴퓨터를 켜 놓은 채 벌떡 일어나 수진에게로 갔다. 

     

“설교 준비하시는 것 같아서요.”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는 수진은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른 모습이었다. 

무슨 까닭으로 그 탐스럽고 긴 머리를 잘랐을까 묻고 싶었지만 봉숙은 입을 다물고 반갑게 인사만 했다. 수진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비닐봉지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시간이 꽤 지난 듯 브라보콘은 많이 녹아 있었다. 밖에서 봉숙을 제법 기다린 것 같았다.  

    

“이거 드실래요? 너무 녹아서.”

수진은 하나를 봉숙에게 권했다. 그러나 자신은 나머지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유, 같이 먹어요. 자, 어서.”

도리어 봉숙이 남은 아이스크림을 수진의 손에 쥐어 주었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은 서둘러 먹어야 했지만 수진은 손에 쥐고만 있었다. 

     

“수진 씨, 녹아요. 어서 먹어요. 맛있네.”

봉숙의 먹는 모습을 보던 수진은 마지못해 아이스크림의 뚜껑을 떼고 먹는 듯했으나 동작이 멎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봉숙은 자신이 무엇을 잘 못 보았거나 혹은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아서도 아닐 것이고 울만큼 매운 것도 아닌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래요?”

입 주변에 범벅이 된 아이스크림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봉숙은 티슈를 가지러 뛰어갔다. 그 바람에 그녀의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수진의 손에서 녹은 아이스크림은 테이블로 흐르고 봉숙의 아이스크림은 바닥에서 널브러졌다. 난감했지만 봉숙은 테이블과 바닥을 말끔히 닦아내고 수북이 쌓인 휴지를 비닐봉지에 꽁꽁 묶어 넣었다. 마치 아이스크림은 처음부터 없었던 듯 두 사람 사이에는 봉숙이 가져다 놓은 물 컵만 말갛게 놓였다.  

    

“커피 한 잔 할래요?”

수진의 침묵을 깨려고 꺼낸 말이었으나 진정 커피가 필요한 사람은 봉숙이었다. 

     

“여름이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와 있더라구요.”

봉숙이 몸을 일으키려는 데 수진의 말이 그녀를 주저앉혔다.  

    

“제가 기억하는 엄마와의 첫 만남이었어요...... 저는 그때 1학년이었고 엄마의 얼굴은 처음이었는데도 저도 모르게 자석처럼 끌리더라고요. 그때 엄하기만 했던 외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핏줄이 어쩌고 하셨어요...... 외할머니는 엄마를 야단치는 것 같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정말 야단친 것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엄마가 데리고 온 어린애가 있었는데 걔가 동생 영진이란 건 나중에 알았어요.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정확히 브라보콘이었어요...... 저는 그게 먹고 싶단 생각만 했을 뿐 말을 하지도 못했어요.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방에 묻히니까 엄마가 붙들고 끝까지 먹이더라고요...... 그 광경을 가만히 서서 보는 저에게 엄마는‘얘, 너는 방에 들어가.’라고 했어요......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게 가셨어요.”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나지막하고 느린 속도의 말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마치 책을 읽는 듯했으나 듣는 봉숙의 마음은 불타는 것 같았다. 

     

‘아니 미친 여편네가 아니고서야 7년 만에 만난 딸을 얘, 너라고 부르다니.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아이고, 수진아. 불쌍한 것.’

그렇다고 마음에서 오가는 시끄러운 말들을 수진 앞에 풀어놓을 수도 없었던 봉숙은 이를 꽉 문 채 조용히 일어섰다.   

   

“수진 씨, 부탁인데 잠깐만 있어줄래요? 내가 밖에 볼 일이 있어서. 5분이면 될 거야.”

수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봉숙은 겉옷을 휘날리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열기가 사방에서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뼈다귀 해장국집을 지나고 부동산을 지나고 건너편 파O이스를 지나니 코너에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냉동고를 뒤져 브라보콘을 하나 나서 들고 나오는데 갑자기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가 실수하는 건 아닌지 몰라. 어쩌면 수진이는 아무렇지 않은데 공연히 오버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눈물이 그냥 나오진 않지...... 모르겠다. 내 머리로는 이게 최선인 것 같으니까.’

봉숙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천천히 반지하로 들어갔다. 

     

“내가 수진 씨 브라보콘을 사주고 싶었어요. 어쨌든 가져온 것이 다 녹아서 먹지 못했잖아요.”

봉숙은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고 수진이 손에 쥐어 줬다. 수진은 받아 들긴 했지만 바로 봉숙에게 돌려줬다. 


“목사님도 바닥에 떨어져서 못 드셨잖아요. 이거 드세요. 저는 이 콘을 먹으면 바로 배가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안 먹어요”

봉숙은 자기 머리털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수진에게 브라보콘은 상처 그 자체일 텐데 그걸 먹으라고 주었으니. 그래서 얼른 수진의 손에서 아이스크림을 받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목사님 마음은 알아요. 그때도 제가 그 콘을 사다 먹었거든요. 두 개나 막 먹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맛도 모르겠고...... 바로 설사해서 고생했어요. 그다음부턴 안 먹어요. 그 아이스크림은.”


“그런데 왜 수진 씨는 하필 브라보콘을 사 온 거죠? 먹지도 못할 거면서?”

봉숙의 질문에 수진은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렀다. 무언가를 지우듯이. 

    

“그냥 목사님께 드리고 싶었어요. 날도 덥구요. 그런데 기다리느라 녹아서......”

봉숙은 먹던 아이스크림을 내려놓고 수진을 바라보았다. 선이 가느다란 얼굴은 단발로 더욱 작고 어려 보였다.  

    

“수진 씨, 괜찮으면 내가 한 번 안아도 되겠어요?”

수진의 눈망울이 잠시 흔들렸고 테이블 위의 손가락도 떨렸다. 미세 진동이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는 것 같았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 작고 연약한 어깨를 봉숙은 포근하게 품었다. 아이를 잠재우듯 눈을 감고 등을 토닥이는 봉숙의 손에 수진의 떨림이 전해져 왔다가 사라졌다. 

     

‘공중의 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다고 했는데 이 아이는 마음 둘 곳이 없군요. 마치 이 세상에서 당신이 머리 둘 곳이 없었던 것처럼.’     

수진을 안고 있었지만 마치 바람을 안고 있는 듯 봉숙의 품은 너무 허전했다. 


‘내가 진정 허공을 안고 있구나. 너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거니.’     

봉숙의 허허로움과는 달리 안긴 채 한참을 울고 난 후에야 수진은 진정이 되는 듯 코를 풀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늘 세상에서 혼자인 것 같았어요. 외할머니가 아직 계시긴 해도.”

수진의 컵에 우려낸 국화차를 따르며 봉숙은 가만히 들었다. 지금은 그녀가 얘기할 시간이었다. 

    

“저는 외할머니 호적에 입적이 되었고 지금도 할머니 딸이죠. 엄마가 처음 집에 왔던 날 이후로 엄마는 종종 들렀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저를 감추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병이 점점 심해져서 그러신 것 같아요. 저는 숨어서 시들어가는 엄마와 커가는 동생 영준이를 훔쳐보곤 했어요.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중학생이 될 때까진 엄마와 함께 왔어요. 그다음엔 영준이 혼자 오곤 했죠. 제가 엄마의 병원을 찾아다니던 게 그때부터예요.”

수진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봉숙은 마음이 깨어졌다. 깨어진 곳에서 진물과 핏물이 스며 나오는 것 같아 견디기가 힘들었다.  

    

“저는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는 철저히 저를 외면했어요.”

말을 조심스럽게 이어가던 수진은 갑자기 멈추고 봉숙을 살폈다. 봉숙이 마치 급체한 사람처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목사님, 괜찮으세요? 아이스크림이 체하신 것 같아요.”

수진이 벌떡 일어나 자신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상비약이라도 갖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아니, 체한 건 아니고. 수진 씨. 잠깐 쉬었다가 얘기할까요?” 

수진은 얼굴에 잔뜩 근심을 얹고 고개를 끄덕였다. 봉숙은 자신의 흔들의자에 가기까지 부축을 받아야 했고 수진은 그 옆에 의자를 갖고 와서 앉았다. 여전히 봉숙의 상태가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산책로엔 손 선풍기를 들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몇 보였다.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수진 씨,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게 뭔지 나도 알아요.”

봉숙이 천천히 입을 열자 수진은 놀란 얼굴로 바짝 다가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도 그랬거든. 오래전에.”

봉숙이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자 수진도 묻지 않았다. 마치 체온을 보존하려는 듯 차가워진 봉숙의 손을 꼬옥 잡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고마워요. 오늘 오프예요? 오랜만에 쉬는 데 내가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 같네.

봉숙의 말에 수진은 고개를 저으며 야간 근무라고 했다. 외할머니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는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일어섰다. 

    

“목사님, 식사는 거르지 마세요.”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자신을 걱정해 주는 말을 듣자 봉숙은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마치 낭떠러지에 있던 아이가 돌아서서 첫걸음을 뗀 것 같았다.


“내 걱정은 말아요. 어떻게든 밥은 먹더라구요.”

수진이 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밖에서 잠시 멈칫하던 다른 발걸음이 타다닥 안으로 뛰어들었다. 

     

“목사님, 수제 버거 가져왔어요. 콜라도요.”

이 과장이 누런 종이백을 테이블에 놓고 드럼 쪽으로 갔다. 

봉숙은 자신이 무심코 했던 밥 이야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정말 밥이 오네. 

      

“오늘은 햄버거 파티인가 봐요. 저도 이 회사 직원 같아요.”

봉숙의 말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이 과장은 드럼을 한 번 훑어보곤 미소를 머금었다.


“매트를 까셨네요.”

김현준이 깔아놓은 버건디 색 매트를 흘끔 보던 이 과장의 표정에 만족함이 묻어났다. 

     

“네, 그 노래하는 남자가 사다가 깔았어요. 필요하다고.”

봉숙의 말엔 아무 대답 없이 이 과장은 다시 타다닥 위로 올라갔다.      

봉숙은 수진의 걱정과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테이블에 턱 놓인 봉투를 열고 버거를 꺼내어 먹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먹어보는 수제버거는 모든 스트레스를 일거에 날릴 정도로 맛있었다. 

     

“대단하십니다.”

누군가 들으라는 말투로 봉숙은 허공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장마가 시작되었고 꾸준히 비가 내렸다. 어느 순간부터 비가 싫어진 봉숙은 커튼을 내리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비발디의 사계를 듣다가 로큰롤로 바꿨다. 시끄러움이 실내를 가득 채워서 초인종 소리를 놓친 모양이었다. 그녀의 전화가 울렸고 알지 못하는 번호가 떴다. 전화를 안 받자 문자가 떴다.


<언니, 나 선화야.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안 들리나 봐.>


봉숙은 다시 문자를 들여다보다가 음악을 껐다. 초인종 소리가 계속 울렸다. 

문을 열자 비 냄새와 함께 선화가 들어섰다. 우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많이 젖어 있었다.


“월요일이라 집에 있을 거라고. 경희 언니한테 물어봤어.”

선화와는 전화번호도 집 주소도 공유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경희가 알려주다니, 생각 외였다. 

선화는 다짜고짜로 갈아입을 옷을 달라고 했고 욕실에서 샤워부터 하고 나왔다. 화장을 다 지운 민낯을 보자 비로소 동생 선화인 것 같았다. 그런데 선화는 바로 메이크업을 해서 봉숙을 경악케 했다. 


“맨 얼굴을 못 견디겠어.” 

립스틱까지 다 바른 후에야 선화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저 사진이 여기 있구나. 버리진 않았네.”

벽에 붙여진 가족사진을 바라보던 선화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무슨 일이니? 갑자기”

커피 물을 끓이며 봉숙이 무심히 물었다.


“언제까지 할 거야? 거기서?”

선화는 여전히 가족사진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봉숙이 무슨 뜻이냐며 눈짓을 했으나 선화에게 닿지 않았다.

메이크업을 한 채 봉숙의 홈드레스 차림으로 앉아 있는 선화는 묘하게 천박했다. 

봉숙은 선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린 커피를 들고 그녀 앞에 놓았다.


“내가 볼 때 언니는 10년 전에서 한 걸음도 못 나갔어. 그 억울하고 화가 나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선화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져서 아득했다. 

봉숙은 손나팔을 만들어 선화의 말을 들으려고 했지만 입의 움직임만 보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크게 얘기해 봐, 안 들려.”

자신의 소리조차 멀어서 먹먹했다. 이러다가 귀가 안 들리게 되는 걸까?       

소리가 사라진 공간은 공포와 외로움과 추위로 채워졌다. 

그때  어디선가 맡아본 건초 냄새가 났고 따스함과 연기가 봉숙을 감쌌다. 

찬 몸에 온기가 퍼지자 저만치 누워있는 엄마가 보였다.



“크게 얘기해 봐, 엄마. 안 들려. 뭐라고요?”

엄마는 입을 달싹였으나 소리가 되어 나오진 않았다. 

봉숙은 손나팔을 만들어 엄마의 입에 댔지만 거친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한참 엄마를 흔들다가 멈추고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소용없어.

엄마는 40일을 금식한다고 기도원에 들어갔고 금식 30일 만에 연락이 왔다. 위독하세요. 

엄마의 금식은 봉숙의 남편인 사위를 위한 것이었다. 당시 봉숙의 남편은 느닷없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너무 늦었네요. 길면 석 달?” 

소견서를 붙여서야 겨우 진료받을 수 있었던 대형 병원의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통증 치료 외에는 해드릴 것이 없다고 너무도 담담하게 말하던 의사는 입원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아프기 전인 남편은 입원을 거절했고 걷잡을 수 없이 죽음으로 향해 갔다. 

그때 봉숙은 남편이 달리 보였다.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이 왜 나에겐 이기적일까? 모두 다 두고 혼자 죽어버리기로 작정한 남편의 무책임이 그녀를 화나게 했다. 또한 자신의 병에 대해 어떤 기적도 기대하지 않는 태도에도 원망이 생겼다. 무엇보다 예고도 없이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간 하나님에게 화가 났다. 왜 그러시는데?     

그렇게 다가온 갑작스러운 상황에 봉숙의 엄마가 선택한 것이 금식기도였다. 

금식은 엄마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비밀 병기 같은 것이었고 신기할 정도로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확신이 엄마에게 있었기에 누구의 만류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남편은 회복되긴커녕 가파르게 나빠졌고 엄마는 계획한 40일을 채우지 못한 채 봄날에 죽었다. 30일의 굶주림으로 엄마의 시신은 나뭇잎처럼 가벼웠다. 

화장한 재를 수목장 하고 내려오던 길가에는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었다. 그 꽃빛이 강렬해 봉숙은 눈을 감았다. 노란색도 눈이 부시구나.

       

“언니는, 하아! 언니도 뭐 좀 해 봐야 하는 거 아냐? 엄마는 가셨고 형부는 저 모양인데.”

엄마의 장례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 단말마적인 아픔 앞에서 무기력하게 있던 봉숙에게 선화가 던진 말이었다.


“왜? 나도 금식하다가 죽을까?”

봉숙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놀랐다. 선화가 뭐라고 악을 쓰며 그렇게 말하는 자신을 비난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까지 봉숙은 단 한 번도 금식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주변에선 극구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남편의 병이 악화되어 식사를 거의 못하게 되면서 그녀도 먹는 것보다 굶는 것이 편했다. 어차피 굶는 상황이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데 자신을 괴롭히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면 혹시 불쌍히 여겨 고쳐주시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 편 그녀의 마음에는 분노가 자라기 시작했다.


'엄마도 남편도 데려가시면 차라리 나도 죽어버리겠습니다.'

그러나 봉숙은 보름 만에 병원에 실려가 살아났고, 그 두 달 후에 남편은 떠났다.      

남편을 보내던 초여름에 세상에는 비가 내렸다. 빗속에서 봉숙은 남편이 군대 가기 전 녹음해 주었던 ‘여름비’라는 팬플룻 연주곡을 기억했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서늘하게 아름답던 선율은 남편의 죽음으로 미치도록 슬펐다. 남편은 왜 그 곡을 알게 했고 기억나게 하는가. 왜?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오는 물음표에 지친 봉숙은 칩거했고 점점 시들어갔다. 

모든 일을 곁에서 지켜보던 경희가 봉숙을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에 보낸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였다. 



“언니, 내 말 들려?”

어깨를 강하게 흔드는 힘에 봉숙은 꿈에서 깨어난 듯 선화를 봤다. 선화의 선명한 마스카라가 먹물처럼 묻어날 것 같았다.


“비 오니?”

선화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과거와 살 거야?”

봉숙의 힘없이 치켜뜨는 눈을 선화의 강력한 말이 눌러버릴 것 같았다.


“언니는 엄마와 형부를 그렇게 데려간 하나님과 씨름이라도 하려는 모양인데, 부모에게 짜증 내는 애처럼 왜 그렇게 화를 내는데? 떼제 다녀와서 좀 괜찮은 것 같더니 여전해. 벌써 10년이야. 차라리 나처럼 밖에서 돌아. 교회는 무슨.”

생각 같아서는 소리를 질러 쫓아내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식도를 타고 내려가야 할 물이 기도를 살짝 건넌 것처럼 봉숙은 꺽꺽거리며 숨을 건져내느라 애썼다. 그래도 생각은 멈추지 않고 떠들어대는 선화를 어떻게든 떨어내고 싶었다.

 

“언니는 지금 어디 두고 봅시다. 누가 죽는지 하고 씩씩대는 중학생 같다니까.”


“너, 당장 나가!”

마침내 봉숙은 목소리를 끄집어내어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가 선화에게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화의 행동으로 봐서 들리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선화는 봉숙을 부축해 소파에 비스듬히 앉히곤 따뜻한 물을 마시게 했다.      

까무룩 잠들었던 봉숙이 깨어났을 땐 주방 쪽 서창으로 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아마도 건너편 아파트의 옆 벽도 감빛으로 수줍게 물들어 있을 것이다. 물을 마시기 위해 식탁으로 향하는 데 또다시 숨이 막혀 오는 듯해서 의자에 팔을 걸친 채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 눈물이 난다더니, 지금도 그래?’

남편의 군대 시절 그녀가 썼던 편지의 한 구절이었다. 남편은 가끔 저녁식사를 준비하곤 했는데 노을이 고울 때면 꼭 이 문장으로 그녀를 놀렸다. 

노을이 1년에 한 번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남편은 어쩌자고 그런 장난을 했을까. 봉숙을 두고 그렇게 일찍이 가리라곤 생각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  


‘참 오래전 일인데도 아프다.’

가슴을 문지르며 냉장고 문을 여는데 그녀의 눈이 식탁에 닿았다. 

뚜껑 달린 도자기 냄비 옆에 선화의 특이하고 못생긴 글씨가 놓여 있었다.


<언니, 부탁인데 이제 그곳에서 나와. 언제까지 과거와 동거할 순 없잖아. 죽 끓였으니까 속 비우지 말고 꼭 먹어. 내가 음식 못하는 거 알지? 당연히 맛없어.>

분명히 선화가 왔다 갔는데 꿈을 꾼 듯 기억이 몽롱했다. 

냄비 뚜껑을 열자 브로콜리를 갈아 넣은 죽인지 미음인지 모호한 것이 아직 따뜻한 상태로 담겨 있었다. 봉숙은 도로 뚜껑을 닫으려다가 한 숟가락 떴다. 숟가락에 담긴 것은 거의 액체라서 웃음이 났지만 후루룩 마시고 베란다로 갔다. 

밖에는 비 그친 저녁에 놀이터를 찾은 아이들의 소리와 개 짖는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섞여 제법 시끄러웠다. 누구네 집에선가 삼겹살 굽는 냄새와 김치찌개 냄새가 섞여서 베란다를 타고 들어왔다.

     

‘모두들 밥을 먹는구나.’     

   




“사모님, 혹시 몰라서 차수막은 준비를 해 놨거든요? 아주 지하도 아니고 괜찮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비가 더 많이 올 것 같으면 설치를 해 드릴게요.”

타닥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간 발소리는 이 과장이고 이 소리의 주인은 백 부장이었다. 


“요즘 비가 와서 칠판을 안 내놓으시는구나. 제가 재미가 하나 없어졌네요.”

특별한 내용도 아니고, 커피 이름만 바뀌는 칠판을 백 부장은 무슨 재미로 읽는다는 걸까. 다소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장마가 끝나면 정말 재밌는 얘길 써놔야 하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백 부장은 입구에서 서성거릴 뿐 위층으로 올라갈 생각을 안 했다. 봉숙은 그를 안으로 들여 믹스커피를 타서 주었다. 비가 오는 날은 커피가 더 당긴다며 좋아하는 그의 미간에 짙은 고독이 어려 있었다. 백 부장은 아들 얘기며, 다음 달에 또 온다는 바이어 얘기, 자신의 노쇠한 어머니 얘기를 건성건성 했다. 이야기 중에 그는 계속 커피잔을 쥐고 있었는데 손이 떨리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순댓국집은 결국 내놓은 모양이에요. 부동산 예측이 맞았네요. 내 나라도 아니고 어디 음식 장사가 쉬워요?”

봉숙은 자신도 짐작을 하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내놨다는 얘기 끝에 사장과 인도네시아 아내의 얘기를 물었다. 


“아마 다 같이 나간다나 봐요. 부동산 얘기로는. 하여튼 사장도 걸음은 겨우 걷는 정도라 같이 와서 내놨다는데요?”

봉숙은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착각했다. 사장이 회복이 되고 있고 함께 인도네시아로 간다는 얘긴가?


“사장도 그 식구도 다 같이 인도네시아로 간대요. 이해가 안 되죠? 맨날 맞는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데려다가 거기서 죽이려고 하나?”

백 부장은 농담처럼 얘기를 하며 커피를 말끔하게 마셨지만 일어서려는 기색이 없었다. 


“왜, 한 잔 더 드려요?”

봉숙이 묻자 한 잔 더 부탁한다며 담배를 빼어 물었다.


“물고만 있을게요. 교회서 담배 피우는 미친놈은 아니니까.”

봉숙은 상관 않고 다시 믹스커피를 만들어 백 부장에게 내밀었다. 분명히 할 말이 있는 눈치였으나 그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커피만 마시고 올라갔다.      

창문에는 부슬거리던 비가 멎어서 물방울로 맺혀 있었다. 봉숙은 제습기를 가동해 놓고 흔들의자로 갔다. 며칠 전 선화가 했던 말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었는데 감긴 눈으로 환한 빛이 들어왔다. 그 빛 가운데서 수진이를 비롯한 사람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녀의 가족들, 심지어 봉숙 자신도 함께 서 있었다. 마치 공중에 떠서 이 세상을 보고 있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무슨 말인가 하며 즐거운 모습이었다. 봉숙은 화려한 주홍색 원피스를 입었고 사람들 모두 파티복장이었는데 그들 옷의 색깔은 모두 달랐다. 선명한 원색이었는데 그녀가 아는 일곱까지 무지개 색깔로 이름 지을 수 없는 색들도 있었다. 


‘내가 저따위 원피스를 입다니. 그리고 유체 이탈 같은 이 상황은 뭐지? 내가 죽었나?’

실제의 그녀와 보이는 상황은 분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 있으면서 또 다른 곳에 있었다.      

남편은 짙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봉숙의 주홍색이 반사되듯 그의 소매에 번져 있었다. 자신의 드레스를 내려다보니 남편의 회색빛이 반사되어 그녀의 치맛자락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엄마는 눈처럼 흰 드레스를 입었고 어깨 부분에서 주홍색이 아름다운 원을 그리며 너울졌다. 봉숙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드레스를 다시 보았다. 치마의 중간 부분이 마치 진주를 박아놓은 듯 희게 빛났다. 

분명 한재상 같이 보이는 노인은 감색 정장 차림이었는데 주홍색 손수건이 가슴에서 물결쳤다. 봉숙의 드레스에도 허리 부분에 버클처럼 감색이 아롱졌다.

 

‘한재상이 죽은 거야? 도대체 뭐야?’

머릿속은 혼돈이었으나 시야에 있는 광경은 파티였다. 

멀리서 노란색 원피스 차림의 수진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에는 넓은 주황색이 밴드처럼 퍼져 있었고 봉숙의 가슴에는 노란색 꽃모양의 코르사주가 흔들렸다.  

이 과장도 백 부장도 순댓국집 내외도 모두 각각의 빛깔의 옷을 입었고, 멀리 서 있는 이는 분명 라일라인데 그녀도 분홍색으로 온통 몸을 감고 있었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었고 그들은 모두 주홍색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봉숙의 주홍색 드레스는 온갖 색이 물들었다가 스러지고 크게 자리 잡았다가 작아지곤 했다. 

입을 벌린 채 망연하게 내려다보는 봉숙에게 누구의 소리인지 분명하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에게 흔적이야. 숙아, 그래서 너와 네 사람들이 귀한 거야.”

그녀를 숙으로 불렀던 유일한 사람, 엄마의 소리였다. 봉숙은 그리움으로 눈물이 솟구쳤고  목이 메어 올랐지만 동시에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뭐래? 난, 절대로 싫어!”     

그때 갑자기 둥둥 거리는 드럼 소리에 정신이 제대로 들었다. 깜짝 놀라 흔들의자에서 튕겨지듯 나가 보니 이 과장이 드럼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굉장히 큰 소리로 들렸는데 실제로는 가벼운 토닥임 정도였다. 귀가 먹으려나 봐. 봉숙은 다시 자기 귀를 만졌다. 

이 과장은 전에 그랬듯 헤드폰을 끼고 있었고 불도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 가볍게 채와 발을 놀리고 있었다. 봉숙은 자신이 개입할 계제가 아님을 깨닫고 한쪽 귀퉁이에 걸터앉았다. 

이 과장은 가벼운 면 셔츠 차림이어서 더워 보이지는 않았다.  


‘다행이야. 겨울옷을 벗었네.’

이 과장은 30분 정도를 드럼과 함께 있다가 올라가려고 했다. 


“과장님, 잘 지내요? 별일 없죠?”

봉숙은 그녀에게 다가가지는 않고 멀리서 물었다. 이 과장은 한동안 신생아가 초점 맞추듯 불안정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뭔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부장님 아들이 도망갔대요. 엄마한테로. 둘 다 죽여 버리고 자기도 죽고 싶대요.”

이 과장은 섬뜩한 말을 읊듯이 풀어놓곤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보던 봉숙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침에만 해도 백 부장은 아무렇지 않게 아들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 봉숙이 집중하지 않고 들어서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적어도 누굴 죽이고 죽겠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황급히 이 과장을 쫓아 올라가려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과장이 다시 내려왔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부장님을 만나면 좋겠어요. 부장님은 목사님을 좋아하거든요. 목사님 얘긴 들을 거예요. 죽지 말라고 해주세요. 죽이지도 말구요.”

이 과장은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부장님은 목사님을 좋아해요’를 잊어버리지도 않고 되풀이했다. 백 부장이 봉숙을 좋아하든 말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침부터 이 남자가 믹스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면서 하고 싶었던 얘기를 끝내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올라가서 만나 봐? 그래서 뭐 어쩌려고. 그럼 놔둬?’

이 과장이 올라가고 나서 봉숙은 반지하를 맴돌며 생각에 잠겼다. 창밖으로 비는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두워진 날씨 때문에 때를 어림할 수 없었는데 어느새 점심시간인 모양이었다. 이 과장이 다시 내려와 커다란 사발면을 놓고 올라갔다. 비가 와서 배달 음식이 아니 탕비실의 비상식량을 먹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사모님, 아무래도 차수막 설치를 해야겠어요. 오늘 오후에 비가 무지하게 쏟아진다고 하던데요?”

백 부장이 처음 보는 남자 직원과 함께 알루미늄 재질의 물건을 들고 왔다. 차수판인 모양이었다. 백 부장은 익숙한 솜씨로 산책로 쪽과 입구 쪽에 설치를 했다.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나사를 조립해 끼우는 방식이라 설치는 간단했다. 두 남자의 작업을 바라보면서 차수막으로 과연 물이 막아질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저 정도로 막아질 물이라면 굳이 설치를 하지 않아도 반지하는 이상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웬만해서는 괜찮을 거예요. 그런데 건물 세우고 처음 겪는 장마라 일단 준비는 한 거니까 좀 불편하셔도 참으세요.”

백 부장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전에 아들 얘기를 할 때와 똑같았다. 전역하면 여행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그는 왜 진짜 이야기를 숨겼을까? 봉숙은 일 마무리를 하고 있는 백 부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부장님, 저와 점심 같이 하실래요? 뼈다귀 감자탕 맛이 괜찮던데요.” 

봉숙의 느닷없는 제안에 백 부장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함께 온 남자를 보내고는 머뭇거리다가 뒷면의 벤치에 걸터앉았다.  


“저는 라면 먹었습니다. 사모님 드시라고 아까 이 과장이 들고 내려가는 것 같던데요?”

백 부장은 테이블에 덩그마니 놓여 있는 사발면을 슬쩍 훑었다. 


“아, 그래요. 그럼 후식이라 생각하고 차 한 잔 하세요. 비도 오는데 고생하셨어요.”

봉숙의 말에 백 부장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그러마고 했다. 

봉숙이 파라핀초에 불을 붙이고 삼발이 위에 박하차를 넣은 유리 주전자를 올려놓는 동안 그는 아침처럼 마른 담배를 물고 있었다. 

박하향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실내는 편안했다. 봉숙은 첼로 모음곡을 작게 틀었다. 생각 같아서는 하드록을 틀고 싶었으나 참았다.

아무 말도 없이 백 부장은 박하차를 마셨고 봉숙은 계속 컵을 채웠다. 

둘 사이의 침묵이 길어지며 옅어진 회색 하늘에선 비가 잦아들었다. 

봉숙은 다시 유리 주전자에 박하차를 가득 채운 후 백 부장을 놓아두고 흔들의자로 갔다. 

남자의 아프고 쓸쓸하고 분노에 찬 감정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전이되는 것이 싫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비는 완전히 개이고 저녁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졌다.

      

“사모님, 감사합니다. 걱정 마세요.”  

흔들의자에 앉아 자신의 꿈인지 환상인지를 생각하던 봉숙은 남자의 소리에 일어섰다. 시간상으로 보니 백 부장은 거의 4시간 이상을 앉아 있었다. 봉숙이 남자 쪽으로 돌아서는데 그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듯 인사를 하곤 밖으로 나갔다. 박하차가 담겨 있던 유리 주전자는 거의 비었고 파라핀 초도 꺼진 지 오래였다. 

      

‘뭐지? 난 그저 졸고 있었을 뿐인데.’ 

백 부장이 나간 문 쪽으로 노을 한 자락이 비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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