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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 Oct 01. 2024

제37화 금줄

 출산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슬기는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슬기는 아이를 곧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척 설레면서도 첫 출산이라 겁도 났다. 준석도 마찬가지였다. 기쁘면서도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럽고 긴장이 차올랐다. 그런 두 사람을 다독거리고 안심시키는 건 미자였다. 엄마 없는 두 사람은 미자를 엄마처럼 의지하며 잘 따랐다.

 미자와 준석이 슬기가 입원한 병원에 오가야 했기 때문에 펜션에 일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오전에는 이환이 펜션 일을 도왔다. 이환은 태권도 수업이 오후에 있어서 오전에는 시간이 자유로웠다. 

 오후에는 아르바이트 직원 한 명을 구했다. 그의 이름은 김선우이고 고등학교 때부터 준석과 함께 요리를 배운 준석의 절친이다. 선우는 광주에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집에 와 있으면서 오전에는 기동이 운영하는 K마트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선우도 준석처럼 요리를 무척 좋아하던 터라 펜션에서 일하게 된 걸 기뻐했다. 선우를 이미 알고 있던 재하는 요리도 잘하고 커피도 잘 내리는 그를 믿음직스러워했다. 선영도 준석처럼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선우를 친근하게 대했다.      


 슬기는 예정일에 맞춰 건강한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간호사가 아이를 슬기 품에 안기자, 슬기는 좋으면서도 감격에 북받쳐 자꾸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자기를 낳아준 엄마가 생각났다. 슬기는 생모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미자가 슬기의 마음을 알고 슬기를 다독였다. 그 옆에서 준석은 슬기와 아이를 번갈아 보면서도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 준석을 보고 미자가 아이를 한번 안아보라고 했다. 준석은 안는 법을 모른다면서 주뼛거렸다.

 “자, 이렇게 하고 있어요.”

 간호사가 자기처럼 하고 있으라고 아이를 안는 동작을 취했다. 준석은 손에 난 땀을 바지에 쓱쓱 닦고 간호사가 하는 대로 동작을 따라 했다. 그러자 간호사가 슬기 품에 있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준석의 품에 안겼다. 일순 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준석의 온몸으로 퍼졌다. 준석은 아들과 눈을 마주치고 “안녕, 아가야. 내가 아빠야. 만나서 반가워.”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준석은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났고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 생각도 났다.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준석의 아버지 기동은 나중에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보게 될 터였다.      


 다음날 일찍 기동은 펜션에 와서 미자를 찾았다. 슬기와 아이는 3일 후에 집으로 올 예정이었다. 

 “이렇게 일찍 준석이 아버님께서 어쩐 일이세요?” 

 “사장님께 의논할 게 있어서요.”

 기동은 손에 든 종이가방을 미자에게 열어 보였다. 

 “이게 뭐예요?”

 숯과 솔잎과 잘 마른 붉은 고추가 듬성듬성 꽂혀있는 새끼줄이었다.

 “금줄이에요, 사장님.”
 “금줄이요?”

 “예, 애 낳은 집 대문에 걸어두면 병도 막아주고 부정한 것도 막아준다는 금줄이요.”
 “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은 있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요. 그런데 의논하실 일은……?”

 “다름이 아니라 사장님은 성당에 다니신다고 들었는데 이런 거 걸어두면 미신이라고 싫어하실까 해서요.”

 “난 또 무슨 말씀이라고요. 태어난 아이가 안 아프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뜻에서 할아버지가 걸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염려 마시고 애들 집 입구에 거세요.”
 “아이고, 사장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만들어 놓고도 사장님이 싫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도시에서는 이런 거 보기 힘든데 준석이 아버님 덕분에 이참에 좋은 구경하겠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애들한테도 잘 대해주시고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준석이 아버님도 참, 별말씀을 다 하세요. 준석이랑 슬기가 있어서 저희가 얼마나 든든한데요. 앞으로 그런 말씀 마세요.”

 “아, 네, 사장님. 고맙습니다.”


 잠시 후 미자로부터 기동이 금줄을 쳐놓고 갔다는 소식을 들은 재하가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 별관 입구에 걸린 금줄을 촬영했다. 재하는 촬영한 영상을 미자와 선영에게 보이자 둘 다 신기해했다. 금줄을 보고 신기해하기는 펜션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온 슬기는 금줄에 대해 듣고 기동에게 고마워했다. 준석도 손자에 대한 기동의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뭉클했다. 

 미자는 펜션 식구들에게 금줄이 쳐져 있는 동안은 별관 출입을 자제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것은 미신 때문이 아니라 병균에 취약한 신생아를 보호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 이야기를 하던 끝에 선영은 금줄을 치는 행위를 단순한 미신으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조상들의 지혜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재하는 금줄이 쳐진 관사 입구를 찍은 짧은 영상을 펜션 식구들만 볼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자며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 올렸다. 사람들은 그 영상을 보고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금줄을 현실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금줄 때문에 재미있는 해프닝도 있었다. 손님 중 누군가가 금줄에 만 원짜리 지폐를 꽂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그걸 본 다른 손님 몇 사람도 만 원짜리 지폐를 꽂아 놓았다. 그 아래를 지나다니는 준석과 미자는 금줄에 지폐가 끼워져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나중에 책방에 온 손님이 금줄에 누가 돈을 꽂아 놓았다는 말을 듣고야 알았다. 준석이 돈을 빼서 세워보니 십만 원이 넘었다. 재하가 준석을 대신해서 기동에게 전화해 금줄에 돈을 꽂아두기도 하냐고 물었더니 기동도 금시초문이라며 어리둥절했다. 미자는 점점 애 낳는 사람이 줄어드는 요즘에 애를 낳았다는 걸 알리는 금줄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서 돈을 꽂아 놓고 간 거라고 해석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준석은 슬기와 의논해 아이를 위해 잘 쓰겠다고 했다.   

   

 며칠 후 기동은 손자 이름이라며 반으로 접힌 한지 한 장을 준석에게 건네고 돌아갔다. 준석은 기동이 손자 이름을 짓고 있다는 걸 재하의 귀띔으로 알고 있었다. 준석은 멀어져가는 기동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입이 안 떨어졌다. 

 준석은 한지를 그대로 슬기에게 가져가 건네며 먼저 펼쳐보라고 했다. 슬기는 어떤 이름일지 궁금해하며 조심스럽게 한지를 펼쳤다. 

 “율! 신율! 이야, 근사한 이름이다. 준석이 넌 어때?”

 “어, 나도 맘에 들어. 율아, 율이 엄마, 부르기도 괜찮다.”

 “아버님이 이 이름 짓느라 오랫동안 고민하셨겠다. 나중에 이름이 맘에 든다고 아버님께 전화드려야겠어. 준석이 너도 아버님 만나면 고맙다고 말씀드려, 알았지?”

 “어, 알았어. 근데 우리 호칭 좀 바꿔야겠다.”

 “호칭? 어떻게?”

 “사장님이 그러셨잖아. 이제 아이도 태어났으니까 야, 너, 쟤 하는 건 애 교육상 안 좋다고.”
 “맞다, 사장님이 그러셨지. 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율이 아빠, 율이 엄마라고 하면 될 테고, 그럼 우리끼리는 뭐라고 부를까? 여보, 당신?”

 슬기는 쌕쌕 숨을 쉬며 자는 아이가 깰까 봐 소리죽여 쿡쿡 웃었다.
 “윽! 무슨 여보 당신이야, 닭살 돋게.”

 준석은 질겁하며 닭살 돋은 팔을 쓱쓱 문질렀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

 슬기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그냥 누구 씨라고 부르자. 슬기 씨, 준석 씨, 이렇게. 어때, 슬기 씨?”

 준석은 흘끔 슬기를 보면서 씩 웃었다. 

 “그것도 좀 닭살 돋긴 한데, 그래도 그게 그나마 낫겠다. 얼마간은 호칭 때문에 좀 웃겠다. 그치, 준석 씨?”

 “저기요, 슬기 씨. 간지럽게 말끝을 왜 그렇게 길게 빼고 그래요?”

 “아, 간지러우세요, 준석 씨? 준석 씨는 이제 일하러 가셔야죠.”

 “근데 이렇게 부르니까 은근히 재밌다, 그치?”

 “그러네. 근데 이제 일하러 가야지. 펜션 식구들한테도 율이 이름 알려드려.”

 “어, 그럴게. 갔다 올게. 율이랑 잘 놀고 있어.”

 준석은 먼저 슬기의 볼에 입을 맞추고 이어서 자는 아들 볼에도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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