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선영과 재하와 준석은 정원 분수대를 청소하러 나왔다. 11월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날이 많아서 10월이 가기 전에 청소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분수대 안 물이 모두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바닥에 있는 동전을 빗자루로 쓸어 모아 양동이에 담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바닥과 벽에 낀 이끼를 막대 솔로 빡빡 문질러서 제거해야 한다. 선영은 물이 차가워서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 물이 다 빠지고 난 다음에 동전을 쓸어 모으자고 했다. 물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작업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재하는 안 되겠다 싶어 물이 무릎 높이 정도 되었을 때 운동복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를 본 선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어머, 재하 씨, 물이 차가울 텐데 조금 기다렸다가 해요.”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물이 그렇게 차가운 것도 아니라서 괜찮아요.”
재하가 막대 솔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러자 반바지 차림으로 인공 섬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던 준석도 내려와 물속으로 첨벙 들어갔다.
“아이, 차가워라.”
재하 말만 듣고 아무 생각 없이 물에 들어간 준석이 생각보다 차가운 물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하하. 천천히 들어오면 괜찮은데 너무 갑자기 들어와서 그렇다.”
재하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준석에게 말했다. 선영도 차갑다고 몸서리치는 준석을 보며 까르르 웃는다.
“그렇게 추우면 밖으로 나와, 준석아.”
“아니 괜찮아요, 누나. 잠깐 호들갑 좀 떨었더니 금세 괜찮아졌어요. 헤헤.”
준석도 재하를 따라 막대 솔로 바닥에 있는 동전들을 한쪽으로 쓸어 모았다.
“준석아, 해 지기 전에 끝내게 쓸어 모으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준석이 넌 양동이에 담아라.”
“그럴게요, 형.” 준석은 돌아서서 선영에게 “누나, 거기 양동이 좀 건네주실래요?” 했다.
“어, 알았어. 자, 양동이.”
선영이 플라스틱 양동이를 준석에게 건넸다. 준석은 양동이를 인공섬 쪽 벽 위에 올려놓고 재하가 쓸어 모아 놓은 동전들을 쓰레받기로 퍼담았다.
“와, 이거 너무 무거워서 안 되겠어요. 다음부터는 반만 담아야겠어요.”
준석이 금세 동전을 가득 채운 양동이를 선영 앞에 힘겹게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준석아. 십 원짜리 동전은 하나도 없고 다 백 원짜리 아니면 오백 원짜리 동전이라 더 무거울 거야.”
동전을 쓸어 모으던 재하가 준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동전 하나에 하나의 소원이 깃들었다고 생각하니까 동전이 달라 보이네.”
선영이 동전 하나를 들고 매만지면서 말했다.
“소원은 이루는 데 의의가 있는 게 아니라 비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소원이 이루어지면야 더 좋겠지만요.”
재하가 선영 옆에 있던 다른 양동이를 가져가면서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소원을 비는 순간만큼 진심이 담길 때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고모도 이 동전을 뜻깊은 곳에 쓰이도록 하시려나 봐요.”
“그러면 나중에 동전 말려서 자루에 담을 때 사진 몇 장 찍어야겠어요.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보낸다고 유튜브랑 소셜미디어에 올리게요.”
재하가 양동이에 동전을 담으며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재하 씨. 자기가 분수대에 던진 동전이 좋은 곳에 쓰인다는 걸 알면 마음이 뿌듯할 거예요.”
그때 선영 앞에 동전이 담긴 양동이를 올려놓으려던 준석이 에취, 에취, 하고 거듭 재채기했다.
“아이고, 준석이 감기에 걸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출산 앞둔 슬기 때문에 아프면 안 되는데…….”
“이제 물 다 빠져서 괜찮을 거예요, 누나.”
준석이 아무렇지 않은 듯 다른 양동이를 집어 들었다.
잠시 후 동전 수거 작업이 끝났다. 분수대에서 꺼낸 동전은 모두 여섯 양동이였다. 재하와 준석은 곧장 벽과 바닥에 낀 이끼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선영도 바지를 걷고 들어가 재하 옆에서 막대 솔로 바닥을 문지르며 이끼를 제거했다. 그러다 한 발짝씩 옮겨가며 솔질하던 선영이 이끼에 미끄러져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다. 그때 재하가 민첩하게 손을 뻗어 넘어지는 선영의 허리를 감쌌다. 그 덕에 선영은 허리만 삐끗하고 넘어지지는 않았다.
“선영 씨, 괜찮아요?”
재하가 자신의 품에 안긴 선영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그 소리를 듣고 인공섬 다른 쪽에서 바닥을 밀고 있던 준석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왜요, 형? 누나가 다쳤어요?”
준석이 오자 얼굴이 붉어진 선영이 서둘러 재하에게서 떨어졌다.
“재하 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고마워요, 재하 씨.”
“근데 선영 씨 허리는 괜찮아요?”
“허리를 삐끗하긴 했는데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죠, 뭐.”
선영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어정쩡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러지 말고 선영 씨는 밖에 나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
“그래요, 누나. 형 말대로 누나는 밖에서 쉬어요.”
준석이 재하를 거들었다.
그때 재하가 먼저 분수대 벽 위로 올라가서 선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영이 잠시 망설이다가 재하의 손을 잡자, 재하가 선영을 위로 끌어올렸다. 밖으로 나온 선영은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았다.
“같이 해야 빨리 끝날 텐데, 어쩌죠?”
“준석이랑 둘이 해도 금방 끝나니까, 선영 씨는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지켜보기만 해요.”
재하는 미안해하는 선영에게 생긋 웃고는 곧장 분수대로 들어가 막대 솔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선영은 그런 재하를 보면서 조금 전 재하의 팔이 자기 허리를 감싸던 순간이 떠올라 다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몸 둘 바를 몰라 하던 선영과 달리 재하는 아무렇지 않게 선영을 대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재하의 말대로 바닥이 타일이라 생각보다 이끼 작업이 빨리 끝났다. 재하와 준석이 이끼를 양동이에 담아 퍼내고 물을 틀자 깨끗해진 분수대에 맑은 물이 서서히 차올랐다.
그날 저녁 펜션 식구들이 둘러앉아 젖은 동전을 마른 수건으로 닦고 깨끗한 자루에 넣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 동전 자루들은 다음날 재하의 차에 실려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지자체에 보내졌다. 성금에는 분수대에서 건져 낸 동전뿐 아니라 미자가 따로 보탠 돈도 포함되었다. 지난번에 지자체 도움으로 운동장에 잔디를 입히는 비용이 줄었다며 이번 기회에 지역사회에 되갚으면 좋겠다는 미자의 생각이었다. 그날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낸 돈은 전부 천만 원이었다.
재하는 성금을 내는 과정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다음 날 재하가 영상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을 때 댓글이 무려 이백 개가 넘었다. ‘좋은 일 했어요’, ‘내가 소원을 빌면서 던진 동전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전달됐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뿌듯하네요’, ‘거북이 펜션 사장님은 인심도 좋으시다’, ‘동전 줍느라고 고생 많았어요’ 같은 댓글이었다. 재하는 댓글 하나하나에 ‘좋아요’를 누르는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댓글을 읽어 본 미자와 선영, 준석과 슬기도 마음이 뿌듯하다며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