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여있는 물건을 보면 일단 서랍에 넣는 버릇이 생겼다. 문제는 서랍에 한 번 들어간 물건은 쉽게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책상에 딸린 3단 서랍장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잡동사니의 무덤이 되었다. 이 무덤에 빛이 들어가는 날은 이사하는 날이거나 심신의 변화로 큰맘 먹고 날 받아서 대청소하는 날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살다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다짐의 실행은 대개 거창한 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늘 마음에 걸리고 개운치 않았던 물건들을 치우는 일 같은 지극히 소소한 일부터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오래된 물건을 치우는 일은 그저 단순한 일은 아니다. 물건마다 나의 손때가 묻어있다. 그 손때라는 것이 추억의 다른 말이기 때문에 그저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물건들을 탈탈 털어 부어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물건 하나하나를 추억하면서 나름의 작별을 고해야 한다. 그래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서랍장 청소도 날을 받아서 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청소를 미루는 일을 단순히 게으름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잡동사니 무덤을 도굴하는 날이다.
제일 먼저 손에 잡힌 것은 열쇠고리 뭉치였다. 나는 해외여행 기념으로 현지에서 구입한 열쇠고리를 지인의 가방에 달아주었다. 지인의 가방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열쇠고리를 볼 때마다 기분이 썩 좋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여행 기념품을 고를 때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늘 열쇠고리였다. 당연히 집에 열쇠고리는 늘어갔고 희귀한 열쇠고리는 장식하기에도 괜찮은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장식장을 차지하고 있던 열쇠고리들은 어느 순간 장식장에서 밀려나 서랍 속에 유폐되었다. 나는 요즘에도 에코백에 열쇠고리를 달고 다닌다. 하지만 요즘에는 학생이 아닌 이상 가방에 열쇠고리를 달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다. 나에게 열쇠고리는 나름 삶의 소중한 기념품이다. 나는 그렇게 소중한 추억을 정리하고 있었다. 열쇠고리 하나하나마다 여행지를 떠올리는 촉매제가 되었고 나는 그곳으로 시간여행을 해야 했다.
다음으로 편지 한 묶음을 집어 들었다. 요즘에는 손 편지를 쓸 일이 없다. 예전에 연인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쓴 편지나 군대에서 친구들에게 받았던 편지는 이른바 낭만적인 추억을 되살리는 단골 서사가 되어버린 지도 오래다. 나 역시 편지를 썼던 일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 손에 들린 편지가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을 기억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웠던 추억만 간직하고 여러 통의 편지를 불에 살라버렸지만 끝내 불 속에 던지지 못했던 몇 통의 편지가 아직도 서랍에 남아있었다. 내가 지금껏 그런 편지를 불태우지 못했던 것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거나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다. 그건 사랑에 충실한 아름다운 나를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런 미련 없이 편지를 불에 태울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 묶음도 발견했다. 카드나 연하장을 여태껏 쉽게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보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손 글씨로 써서 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SNS나 문자 메시지로 주고받는 카드나 연하장에 예전만큼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는 것은 내 감성이 너무 삭막해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서인지 확언할 수 없다.
오늘은 만년필도 정리의 대상이다.
언젠가는 만년필로 글을 쓸 때 사각거리는 소리가 내 마음에 평온을 주기도 했다. 만년필의 잉크를 충전하는 일도 감성을 충만하게 하는 일이었다. 조용히 시각과 촉각을 다소곳이 모아 만지작거리는 그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명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선물로 받은 값비싼 만년필도 일기를 노트 대신에 컴퓨터에 쓰고, 핸드폰의 다양한 메모 기능을 활용하게 되면서부터 잉크가 굳어져 버렸고 본연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한동안 상의 안주머니에 하릴없이 꽂혀 있었다. 만년필로 인해 좋은 기억을 남긴 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으로 오늘은 미련 없이 만년필을 신문지로 돌돌 말았다.
오래된 명함판 사진도 여러 장 나왔다.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면서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첩에 끼워두기엔 작은 크기라 그냥 사진관 이름이 인쇄된 봉투에 담긴 채로 서랍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어딘지 어색한 것은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다. 사진사의 ‘김치’나 ‘위스키’ 같은 주문대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려 해 보지만 웃는 게 더 어색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사진사가 어색한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더니 웃는 모습이 한결 자연스러운 사진으로 바뀌었다. 사진관에서 돌아와서는 어색한 웃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의식적으로 웃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사진을 찍을 때면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서 내 사진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안 찍게 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지라도 가끔 셀카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사진 속에 담아두고 안부와 격려의 말을 건네고 싶다. 사진은 버릴 수가 없다. 사진첩 빈자리에 줄을 맞춰 붙여두었다. 거기에 두면 다음에 또 다른 감성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오후 내내 무덤을 도굴한다는 생각으로 서랍장을 뒤집었지만, 절반은 다시 서랍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절반의 물건들은 한 번쯤은 더 추억하고 싶은 물건들이었다. 다음에는 미련 없이 서랍을 깨끗하게 비우리라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