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참 모를 일입니다. 어쩌다 시를 쓰게 되면서 또 어쩌다 SNS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피드에 시를 올리면 캘리그래피 작가님들이 제 시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내주시곤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참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분들은 내가 시집을 출간했을 때도 시집을 구입해서 아름다운 작품과 함께 피드에 올려 열심히 홍보도 해주었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모자랍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일로 2년 가까이 SNS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가을에 다시 SNS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3개월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어색한 기분이 듭니다. 예전에는 시를 자주 올렸지만 다시 SNS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에세이의 일부분을 주로 올리고 있습니다. 친한 캘리그래피 작가님들의 피드를 방문해서 새로 올라온 작품을 감상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안부도 주고받고 있지만 시가 아닌 제 글을 매개로 해서 예전처럼 소통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 시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도 그분들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SNS에서 링크가 걸린 메시지 하나가 떴습니다. 한 캘리그래피 작가님이 보낸 메시지인데 제 시로 작품을 만들어 올리셨더군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일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내가 쓴 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얼마나 감동인지 모릅니다. 감동에 휩싸여 그 시를 반복해서 읽게 되더군요. 그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베란다에 나와서 밤바다를 보고 있는데 저 멀리 작은 포구에서 점멸하는 불빛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문득 그 불빛을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더군요. 그래서 곧장 포구 쪽으로 향했습니다. 마침내 포구에 서서 건너편 작은 등대에서 점멸하는 불빛을 한참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불빛이 초록색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이상한 방식으로 어두운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뻗었는데, 나와 멀리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는 확실히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부두의 맨 끝자락에 있는 것이 틀림없이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이 작게 반짝이는 것을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개츠비가 바다 건너편 옛 연인 데이지가 살고 있는 집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입니다. 나도 점멸하는 초록색 불빛 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니라 개츠비였습니다. 사랑했지만 비루한 내 상황 때문에 그 연인은 나를 떠나가버렸습니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건너편 집에 살고 있습니다. 저 건너 초록 불빛이 점멸하는 곳에서 말입니다. 그때 그녀가 나를 받아들일 만큼 내 형편이 좋았다면 그녀는 저곳이 아닌 이곳에서 나와 함께 서 있었을 겁니다.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저곳이 아닌 바로 이곳, 내 옆이어야 합니다.
점멸하는 초록 불빛은 아마도 개츠비를 환상 속에 빠져들게 하는 매개물 인지도 모릅니다. 개츠비의 하루는 오로지 데이지로 시작해서 데이지로 끝났으니까요.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도 개츠비는 오롯이 데이지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개츠비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저 데이지를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하는 배경일뿐입니다. 조금은 떨어져서 개츠비를 바라보면 사람들은 개츠비를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불가해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개츠비에게 먼지를 털어내듯 데이지를 완전히 잊고 더욱 행복한 삶을 살 것을 주문합니다. 하지만 개츠비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니,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점멸하는 초록 불빛을 바라본 순간 이미 환상에 빠져버렸으니까요. 그 순간부터 개츠비 인생에는 오직 데이지만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환상에 빠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환상에 빠져야만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환상은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평범하게 만드는 기능입니다. 달리 말하면 고통을 평준화하는 기능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하나만 빼고 나머지 모든 것을 뿌연 배경으로 만드는 아웃 포커스(out of focus) 기능입니다. 그렇다면 개츠비의 환상은 후자인 셈입니다.
자발적 사랑의 포로가 되기를 바라는 개츠비의 시각으로 점멸하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의 제목은 <그대의 영원으로>입니다. 여기서 개츠비의 시각으로 보면 이 시에서 '그대'는 사랑했지만 자신이 놓쳐야만 했던 데이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개츠비가 아닌 시각으로 보면 이 시에서 '그대'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삶일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일이란 생각에서 입니다.
오늘은 어느 고마운 작가님이 보내주신 작품 덕택에 한 편의 시를 추억해보았습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