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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둘셋 Nov 14. 2023

6. 택씨의 반쪽, 나의 엄마(1)

오여사를 소개합니다.

 택씨와 오여사는 팔십 년대 중반에 모 대학의 캠퍼스에서 만났다. 그들이 어떻게 운명적인 첫 만남을 시작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전해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당시 다방에서 이루어지던 3대 3 미팅 때 처음 만났다고 했던가, 그 미팅에서는 정작 잘 안되었는데 나중에 다시 우연히 마주쳤더랬나. 이제 와서 다시 엄마 아빠의 처음을 묻는 일은 너무 낯부끄러운 일이니 넘어가기로 하고 내가 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오여사는, 아니 오소녀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지 않고 화려한 언변으로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택씨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으리라. 그리고 아마도 택씨는 오소녀의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형과 눈동자에 반했겠지. 그 당시의 오소녀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맑은 달빛을 품은 데이지 꽃이 생각난다. 누가 봐도 귀엽고 아직은 철이 안 든 것처럼 사진마다 그저 해맑게 웃고 있다. 오소녀는 하아얀 조선시대 달항아리 같은 매력이 있다면 택씨는 호리호리하고 까매서 미소를 지을 때 유독 하얀 이가 도드라져 보였다. 많이 마른 이병헌 같은 외모랄까. 둘은 꽤 달랐다. 그래서 서로 끌렸으리라.


 오소녀의 말에 의하면 택씨는 대학생 때부터 자가용을 끌고 다녔다고 했다. 도로에 차도 몇 대 없었을 시대에 대학생이 자차를 끌고 다녔다니 정말 백 미터 밖에서 봐도, 앞 구르기를 하며 봐도 부잣집 도련님 그 자체인 택씨의 모습이 멋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불 같은 연애를 한 뒤 두 사람은 무난하게 약혼식을 하고 결혼에 골인한다. 앞으로 펼쳐질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하지만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은 것, 한 치 앞도 알 수 없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오소녀에게 닥친 첫 난관은 바로 시집살이였다. 오 남매 중 막내아들이라 시집살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결혼했건만, 부잣집에는 늘 그들만의 룰이 있기 마련이다. 오소녀의 시집살이는 내가 다섯 살 때까지 이어지는데 나에게는 3대가 함께 사는 든든하고 즐거운 우리 집이었지만, 오소녀에게는 갓난아이 빼고 다 남인 집에서의 숨 막히는 하루하루였을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대단히 깔끔한, 결벽증 수준의 청결을 항상 유지했다고 하는데 그 넓은 집 마루를 매일매일 삶은 걸레로 3번씩 닦아내야 했다고 한다. 집안일을 봐주시는 이모님께 맡기는 걸로는 성이 안 차셨는지 늘 이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우리 오소녀 셋이서 그 마루를 박박 닦았다고. 결혼 한 뒤 그다음 해에 태어난 나는 낮에는 잠만 자고, 밤에는 울기만 해서 하나도 도움이 안 되었다고 했다. 밤에 잘 자주고 낮에 울어댔으면 오소녀가 그 힘든 하루 일과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평생 사랑을 약속한 반려자인 택씨는 도대체 무얼 하는지 아침 일찍 집 밖에 나가 밤이 늦으면 돌아왔다고 한다. 오소녀를 혼자 그 큰 집에 덩그러니 내버려 두고. 택씨가 너무하다고 느껴지긴 하지만 이때 이 둘의 나이는 아직 서른도 되기 전이다. 둘 다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모른 채 삶의 다양한 변화들을 그저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그다음은 이제 나의 온전한 기억이다. 가세가 기울며 크게 곤두박질치고 난 이후, 우리 집이 사무실 딸린 주택으로 이사한 뒤의 일이니까 말이다. 대여섯 살이었던 나는 사실 우리 집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택씨와 오소녀가 우리 앞에서 내색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둘은 큰 소리를 내며 싸운 적도 없고, 신세를 한탄하며 흐느낀 적도 없고, 우리가 불안에 빠지거나 걱정해야 할 요소들을 내비친 적이 없다. 그럴 수 있었던 힘은 택씨가 낭만파라면 오소녀는 낙천적인 푼수라 가능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오소녀는 굉장히 쾌활한 장난꾸러기였는데 어린 나에게 무슨 장난을 쳤는지 들어보라. 내가 5살에서 8살 사이의 어린이 었을 때의 일이다. 정확한 나이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집에서 살았던 시기가 이때였고, 이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매우 어렸다. 오소녀와 둘이서 손을 잡고 어딘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소녀는 갑자기 눈을 감아보라며 엄마가 손을 잡고 이끌어줄 테니 엄마만 믿고 걸어보라고 나에게 제안했다. 뭐, 못 들어줄 것도 없는 제안이지.

 "좋아."

 난 이때까지는 오소녀를 엄마로서 믿었다. 그리고 몇 발짝이나 앞으로 갔을까.

 "쾅"

 오소녀는 전봇대에 부딪힌 나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대며 미안해했다. 나는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세게, 정통으로 이마 한가운데를 부딪혔다.

 "엄마가 눈 감으랬다고 진짜로 감으면 어떡해. 하하하하."

 인간에 대한 신뢰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대여섯 살 된 애한테 이런 장난을 치고 싶습니까? 라며 조목조목 따지고 싶었지만, 아직 그 정도의 한국어를 구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그냥 '으앙~'하고 울어버렸는데, 그 전봇대부터 우리 집 대문까지 쉬지 않고 울어댔다. 오소녀가 나를 달래려고 업어줘도, 모퉁이 튀김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튀김을 사줄 때도 쉬지 않고 계속. 오소녀는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과 그 사랑의 배신을 알려준 인물이다. 그렇지만 이때의 오소녀의 나이, 여전히 서른 초반이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이니 이제라도 마음으로 용서하도록 해야지. 서른 초반이면 한창 어린애랑 장난치고 싶을 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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