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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Feb 15. 2020

독일은 다문화 사회일까?

평균과 예외

나는 주재원 자녀이자, 이민자 1.5세이자 2세이다. 건너온 시기와 여러 가지 요소가 애매해서 실제로 둘 다 해당된다.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 사회는 둘 사이의 경계가 명확한 편이다. 토요일마다 한글학교에 다녔었는데, 한인 대기업 지사가 많은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특성상, 주재원 반과 2세 반이 따로 있었다. 주재원 반에서는 한국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고 2세 반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준이었다. 나는 주말에 주재원 반을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평일날에는 사회 규범이 미숙한 어린이들 특유의 혹독한 풍파를 정면으로 맞아서 정체성의 과도기를 마주해야만 했었다. 일요일 교회를 포함한 2일간 어울리는 한국인 친구들이 너무 좋았지만, 반면에 남은 5일간 충돌해야 하는 험한 독일 사회의 아이들에게 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특별 조치가 필요했다. 나를 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강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사회를 배워야 했다. 이런 식의 비장함을 어느 정도는 품고서 나는 2세 반으로 옮겼다. 


2세의 사회는 정말 달랐다. 온실에서 자라다가 방목되는 차이였다. 가파른 교화의 시기를 거친 후 단짝 친구들이 생겼고 이러한 소속감은 삶의 많은 부분을 정의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믿을 구석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개인의 정체성은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정리될 만큼 얄팍하지 않아서, 후에 성장하며 나도 자연스럽게 그 작은 사회권을 이탈하게 됐다. 오늘까지 내 정체성은 조금 다양하게 섞여있고, 그로 인해 한독 양쪽의 정서를 날렵하게 왕래하는 일이 내 특기가 되었다. 눈치 보는 걸 선천적으로 싫어해서 잘 못하지만 실제 눈치는 후천적으로 빠르달까.


그렇게 내가 속한 작은 사회들의 전체를 내려다보게 될 만큼 키가 큰 지금, 습관처럼 돼버렸지만 실제로 변화에 힘쓰기에는 귀찮은 작은 불만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각종 선거기간이 다가올 때 나를 대변할 만하게 "생긴" 후보자가 영 없다는 것이다. 이걸 자각하게 된 시점조차 굉장히 늦었다. 심지어 박사를 하고 나서, 미국 유학 출신의 한국인 친구가 나와 함께 독일 투표 전단지를 보며 던진 말에 처음 깨달은 것이다. 독일인인 나를 대변할 후보는 다양하지만, 다양한 나를 대변할 후보가 없다. 즉, 이민자 후보가 적고 동양인 이민자 후보를 본 적은 한 손에 꼽는다. 예를 들어 베를린 녹색당 정치인 중에 한국인 혼혈 분이 계시지만 오직 그것 때문에 내가 그분을 뽑을 가능성은 전무하고 그도 딱히 이민자 정책을 담당하지는 않는 것 같다. 


여기에 보편적인 정치 교훈이 있는데, "나"라는 개인의 모든 니즈를 만족스럽게 대변할 정치인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걸 바랄 바에 내가 직접 차라리 금배지를 다는 것이 빠르다. 동양인 후보가 없어서 불만이다? 나처럼 정치를 안 하는 동양인이 많아서 그런 것이다. 환경, 구조, 문화 등 여러 가지를 탓하려고 시도는 할 수 있겠으나 모든 도구가 내 손에 쥐어진 이상, 평균 이상으로 독일 사회에 교화된 고학력자의 입장인 이상, 도저히 그럴 양심의 여지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책할 건 아니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민주주의적 책임 꾸러미가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일 뿐이다. 사회에 대한 관심, 정세에 대한 정보, 객관적 최선의 판단, 결정적 순간에는 앞선 판단에 의거한 피력 등 말이다.


오늘 기사는 그래서 나 같지만 나 같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원하지 않던 주제에 대해 자꾸만 얘기해야 하는 남자는 무슨 말을 할까?  그를 거듭 추월하고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아서 그것 말고는 다른 말을 못 하게 하는 상황에서?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디아비 의원의 핸드폰이 울렸지만 회의 중이라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의아하기는 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직원이 왜 지금 전화하지? 지금 못 받는 걸 알면서? 몇 초 후에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카람바 안녕, 방해해서 미안해. 사무실 창문에 총알 자국 다섯 개가 있는 걸 지금 발견했어. 경찰에 연락했으니 나중에 시간 되면 전화 줘." 


"사진 하나면 보내줄래? 고마워. 카람바가." 


후에 독일 전국을 뒤흔들 사진이다. 동독에 위치한 카람바 디아비 박사의 의원 사무실 창문을 관통한 총알의 구멍.  


이전에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같은 도시에서 벌어난 일이다. 유대회관을 테러하려다가 실패해 달아나던 중 시내에서 두 명을 죽인 극우주의자의 범행이 이 도시에서 벌어진 지 불과 14주 만이다. 14주가 지나니 다시 이 도시에 혐오가 도사린다. 이번에는 58세의 정치인 카람바 디아비 박사를 목표로 삼았다. 


세네갈에서 자란 디아비 박사는 7년 전에 아프리카 출신 의원 중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 당시 사민당 의원들은 그가 다문화 정책을 펼치기를 반사 자동적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디아비 씨는 1985년에 화학 박사를 하기 위해 동독에 왔던 바이다. 그런 만큼 그의 관심사는 교육과 환경이다. 그가 현재 담당하는 도시의 토질에 대해 졸업 논문을 썼다. 그 당시는 1990년 초였고 도시의 땅이 하도 오염돼있어 소농작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디아비 씨는 여러 작물을 심은 뒤 과실을 연구했으며, 영양학적으로 아무 문제없음을 입증했다. 


디아비 박사는 국회의 교육 위원회에 영입됐다. 그는 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검은 피부 때문에 유명하고 싶지 않다"와 같은 말들을 했다. 그는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정치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종차별이라는 이 주제는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2015년 6월에 디아비 박사의 의원 사무실의 창문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깨뜨린다. 이에 대해 그는 "폭력은 의견 표출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2019년 10월에 유대회관 테러가 벌어지고 나서 디아비 의원은 수시로 현장으로 호출되며 인터뷰를 하고 자신의 도시를 위해 발품을 판다. 그는 침묵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유대회관 앞에서 기다리며 도시의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최근에 적대적이고, 모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들을 더 많이 듣게 돼요." 


이제 2020년 1월에 창문에 총자국이 났다. 아마 비비탄 총의 흔적이라고 경찰 조사 결과가 났다. 


연방 대통령이 디아비 의원에게 연락을 해서 겁먹지 말라는 응원을 건넨다. 국회에서 메르켈 총리가 그에게 다가왔다. "이 사건에 대해 경악했다고, 그녀가 아낌없이 지지해줄 거라고 말해줬어요." 디아비 의원은 그녀에게, 당신이 총리직을 언젠가 은퇴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을 거라고 답변했다. 


어떤 친척들은 요즘 들어 자신에게 물어보곤 한다고 한다: 카람바야, 그렇게 재미있는 직업을 배웠고 화학 박사도 땄는데 도대체 왜 정치 따위를 하는 거니? 그는 그럴 때마다 대답한다. 우리를 괴롭히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옳았다는 만족감을 주기 싫어서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의 목표는 바로 자신이 자취를 감추는 것이라고. "그건 용납할 수 없어요." 


아주 작은 회의감이라도 없나요? "없어요. 그 어떤 의구심도." 


디아비 의원 사무실에 대한 공격은 국회 회의 기간에 벌어졌다. 그와 같은 의원들은 수도 베를린에 있을 기간이며 짬이 나지 않는 시기이다. 그는 그래서 국회와 방송국 카메라 앞을 쉴 새 없이 오가고 있다. 잠을 잘 못 잔다고 한다. 


시민 한 명이 총알구멍에 꽃을 꽂고 갔다. 디아비 의원은 도시를 딱 한 번, 2시간 동안 방문할 시간밖에 못 냈다. 그의 부인이 그를 역에서 만나고, 중식을 테이크아웃한 후 7살 아들과 함께 2시간 동안 식탁에 앉았다가 금세 또 떠나야 한다. 사무실에 들릴 시간은 없다. 혹은 감정적 여유의 부족일지도 모른다.


동독에는 지난 몇 달과 몇 년간 의원의 후퇴가 많았다. 극우세력의 협박을 견디지 못한 시장들이 대부분이다. 그로 인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소도시들이 있다. 월요일에도 다른 소도시의 시장이 개인적 이유로 사임했다. 그녀 또한 과거에 네오나치에게 위협받은 적이 있다. 


카셀 시 군수의 살인사건도 당연히 잊히지 않았다. 두려움에 떠는 정치인들이 많다. 디아비 의원은 어떤지? "제 힘의 원천은 사람들이 제게 보여주는 연대 의식이에요. 결정적 다수가 민주주의적이고 평화롭다는 확신이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를 향해 인터넷에서 표해지는 연대와, 응원을 전하는 수많은 이메일들이 그에게는 회의감을 퇴치하는 해독제와 같다. 원동력이다. 


사건의 당일 하루 후에 극우정당을 제외한 모든 정파들의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디아비 의원을 둘러싸서 하나씩 사진을 찍고 갔다. 그는 그저 중간에 서서 미소 지었다. 


그의 사무실의 창문은 아직 교체되지 않았다. 곧 교체될 것이고 공격의 흔적은 지워질 것이다. 디아비 의원은 카메라 같은 것도 설치하지 않고 절대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예정이다. "동독이잖아요. 감시에 대해 치 떨리는 역사가 있어서 그건 안돼요." 


공격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이런 일은 항상 벌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일상적이라고 치부하기는 싫어요." 그가 담당하는 도시의 시민이 전부 극우파라는 말이 들리면 그는 항상 방어해왔다. 90년대에 극우주의자들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대다수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지금 그가 바라는 것은 국민이 표하는 반대다. "제 사무실에 총질을 하고 그토록 혐오를 품은 자들은 시끄러울지라도 소수예요." 


그는 4주 전에 소작농 협회에서 정자 분양을 신청했다. 언젠가 먼 미래에 은퇴해서 정자에서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 거기서 그의 두 번째 자서전을 작성할 것이다. 문장 하나는 이미 생각해 놓았다. "그때 그 시절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화요일 오후에는 함부르크의 방송국에서 토크쇼 출연을 할 것이다. 그가 애정 하는 분야인 교육과 환경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종차별에 대해 발언하기로 예정돼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단 제가 하는 게 낫죠"라고 그는 말한다.


인종차별에 대한, 특히 백인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언행과 폭행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편안한 주제가 아니다. 따라서 한국인 독자의 심정도 그럴 테고 일반적인 독일 독자도 그럴 테다. 하지만, 차별이 있는데 없는 척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 


차별은 인간적 본능이고 차별에 기반한 폭행은 심리적 현상을 통한 사회적 일탈이다. 고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났거나 제외된 자들의 행동이기에 그들의 집단 결속력이 무엇에 의해 촉진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특정 정치세력의 비상은 혐오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기름에 던지는 불씨다. 기름은 언제부터 어디서 새었을까. 


그렇다고 동독을 기피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동독의 대도시들은 전 세계의 동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유한 멋과 모두에게 열린 아름다움을 지녔다. 동독에 살아보지 않는 나의 입장에서 유추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프랑크푸르트 부근과 시내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인종차별을 의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눈치가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이민자 비율은 압도적이라서 오히려 유색인종이 백인을 쥐고 흔드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때는 어릴 때라 거리의 법칙을 주로 보고 접하는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하다. 지금은 어른이 됐고 사회적 위치란 것이 생겨서 이전과는 여러모로 다른 평행 사회에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 골치를 썩이고 있는 극우정당의 창립 멤버들은 프랑크푸르트 바로 부근, 내가 살던 바로 옆동네에서 결집하고 창립했다고 한다. 그것도 교회 성당에서, 한국인 주재원의 거주 밀도가 독일에서 아마 가장 높을 동네에서 말이다. 이 극우정당의 초창기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고, 경제학 교수를 포함한 화이트 칼라 종사자들이 모여서 독일의 정치를 바꾸자는 취지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쨌든 후에 독일 전국의 골치를 썩일 극우의 불씨가 내 앞마당에서 구상되고 있었는데도 나는 전혀 몰랐고 지금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듯 평균과 예외는 공존하고 예외에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유학도 여행도 그렇게 보면 못 간다. 그 어디도.


평생을 외국 사회에서 살고 반항도 해보며 이제는 건설적 일원으로 성장한 나로서, 외국에 살고 있거나 가족 혹은 지인을 외국에 보낸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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