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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Feb 01. 2020

독일은 왜 전후 책임을 질까?

독일인은 어쩌면 이해 못 할 제목

국가 원수라는 단어는 내가 한자가 약해서인지는 몰라도, 뇌리에 혼란을 일으키는 단어 중 하나다. 실제로 수상이 원수처럼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 국민 일부를 원수로 돌리는 작용이 가능한 이유는 국정의 전반적 방향을 직접적 내지 우회적으로 못 박는 역할 또한 국가 원수의 의무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 말은, 대외적 발언과 집안의 사정은 아마도 생판 다르다는 뜻도 된다. 국가 원수의 혹은 국가 기관의 대외적 발언만으로 한 국가의 특정 사항을 이해하기란 그래서 쉽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해석해야 할 정도다.


1,2차 대전이라는 과오와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범죄에 대해 독일이 취하는 자세는 한국에서 주기적으로 회자되는 편이다. 최근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5주년을 맞이해서 독일 내에도 기사가 풍년이다. 역사 교훈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국내의 정치 질서를 수정하기 위해서인지 모호하게, 과거의 기념일을 추모하는 동시에 현재 유럽에서 강세를 떨치는 극우 정당과 풀뿌리 혐오를 지적하는 공식 발언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의 정황 상 전후 책임이라는 주제에 대해 즉각 떠오르는 이웃 나라가 있고, 비교대상을 얻기 위해 독일의 예시에 한국인의 관심이 쏠리는 편이다. 하지만 독일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예시만을 골라서 공급한다면, 큰 수요에 대한 공급을 하게 되어 반응과 호응이 급증할지는 몰라도, 내 마음은 크게 불편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아무리 좋은 예시라도 의도적 대비의 목적으로 간택된다면 사실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대상을 투영하게 되기에, 정보는 결국 선택적으로 남용되고 오용된다. 이렇게 되면 독일에게도, 일본에게도 정당한 처사가 아니다.


흡사 통일의 사례가 그렇듯이, 전후 책임 문화는 중의적으로 전과 후가 복합적이어서 후작업이 더 큰 난제다. 한 국가가 평생 지고 가는 짐은 정체성의 일부가 되고, 체계적인 교화에 대한 반항심을 일으키는 복합적 심리를 형성한다. 독일 국가 원수의 대외적 제스처가 완강한 것은 그래야만 할 필요가 내부에서 지속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 극우 세력의 일부가 유대인 혐오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전면적 전후 상쇄 문화라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유대인 혐오가 암암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라나는 풀뿌리 세력들은 불씨 같은 증오에 불을 댕겨야 모터를 가동할 수 있다. 동시에, 극우 정당의 선택은 민주적 권리여서 유권자가 특정 정당에 투표한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아무리 한 나라의 역사 상 오래 묵은 혐오라도 극좌/우 세력의 성장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기존 정치의 실패가 기여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고, 이 부족함을 주요 담론에서 회피할수록 문제는 커질 것이다. 정치적 리더는 이런 미묘한 지점 위에서 중심을 잡거나, 역으로 동력을 점화한다.


독일의 전후 책임 문화는 일차원적 국제 비교에서 고무적인 면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독일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착해서" 생긴 결과는 절대 아니지 않은가. 전무후무한 체계적 대학살에 대한 후작용이니 별다른 부연설명은 필요 없다. 왜 독일은 전후 책임 문화가 강화됐는지에 대한 깔끔한 답은 없고, 깔끔함을 표방하는 답이 들려온다면 오히려 의심하고 보기를 권한다. 독일의 전후 책임 문화는 결국, 인간의 눈과 생각이 그늘질 때 가파르게 휘말리는 황폐한 내면을 상대로 끊임없이 투쟁하는 실시간의 역사다. 이 부분을 빼놓은 진단은 반쪽짜리만도 못하기 때문에 뭔가 다른 의도를 지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외국인을 향해 전하는 대외적 발언 말고도 같은 독일인을 상대로 하는 말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번역과 해석을 통해 최대한 가능케 해보겠다. 오늘의 기사는, 총리의 실질적 위상 때문에 "총리 민주주의"라고도 불리는 독일의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지만 정치적 행동을 취할 의무 또한 수행하는 슈타인마이어의 연설에 대한 것이다.


연방 대통령 슈타인마이어는 나치 산하의 학살 수용소이던 아우슈비츠의 해방 75주년을 맞이하여 독일인의 역사적 잘못과 책임을 상기했다. 이스라엘에 위치한 대학살 추모관인 야드 바쉠에서 개최된 행사에서 그는 "저희 독일인이 역사를 통해서 영원한 교훈을 배웠다고 오늘 말씀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연설하며 "하지만 혐오와 선동이 전파되고 있기에 그럴 수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최근에 독일 내에 두 명의 사상자를 초래한 유대회관 테러 등에 대한 언급이었다.


"같은 시대도, 같은 단어도, 같은 범인도 아니지만, 똑같은 악입니다. 결국 답변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입니다: 다시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리라! 그래서 기억하는 데에 결말은 없어야 합니다."


독일의 최초 수상으로서 대학살 추모관인 야드 바쉠에서 연설한 슈타인마이어는, 독일은 역사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저희 독일의 책임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부응해야 합니다. 그것에 의해 저희를 판단하셔야 합니다." 그는 이어서 "반유대주의와 항쟁하겠습니다! 국가주의가 품은 독에 항거하겠습니다! 유대인의 생명을 보호하겠습니다! 저희는 이스라엘의 편에 섰습니다. 이곳 야드 바쉠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약속을 갱신합니다"라고 확약했다.


그는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구축되고 오늘날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에 의해 특히 의문시되는 국제 질서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저희 독일인은 본 질서를 지지하며 여러분 모두와 함께 방어하기 원합니다"라고 미 부통령 펜스를 포함한 관중 앞에서 연설했다.


영어 연설이었지만 그는 유대 종교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로, 새롭고 특별한 경험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히브리어 축복 구절을 읊으며 연설을 시작했다. 마지막 또한 히브리어로 장식했다.


그 외 약 50개국의 국가 원수들이 야드 바쉠에 모여서 독일 산하의 아우슈비츠 해방 75주년을 기렸다. 이스라엘 외무부에 의하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로 최대 규모의 국가 행사였다. 1월 27일에는 나치 독일에 점령됐던 폴란드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해방 이후 75년째 해이다.


기사의 후반부는 그 외 국가들의 연설에 대한 거라서 생략한다. 이 기사의 포인트는 독일 국내에서 재점화되는 혐오의 잔재가 일상적이진 않지만 예외적이지도 않고 음지에서 존속한다는 것이다. 즉, 국제무대서의 완강한 표명은 내심 양면적 의미가 있다. 


사실상 국정 실세인 메르켈 총리의 경우를 보자. 2019년 12월에 이미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던 그녀에 대한 기사다.


메르켈 총리는 전 독일 산하의 아우슈비츠 소용소를 방문하며 나치의 범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여기서 독일인이 행한 야만적인 범죄에 대해 깊은 수치심을 느낀다"라고 그녀는 폴란드 국무총리가 참여한 자리에서 말했다. 모든 형용할 것을 넘어서는 범죄를 마주하면 충격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침묵이 유일한 답변이면 안되고, 그때의 범죄에 대한 기억에 깨어있을 책임을 독일이 지닌다고 하였다. 


그 시절에 독일인이 범인이었음을 정확히 명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총리는 요구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희생자에게 진 빚이며, 그때의 범행에 대한 책임은 독일과 뗄 수 없어서 국가 정체성의 뚜렷한 일부분이라고도 말했다. "끝맺음이란 있을 수 없으며 상대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독일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큰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동시에 증가하는 반유대주의에 대해 경고했다. 현재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다시 늘어나고 있으며, 인종주의, 혐오, 반유대주의 등이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저희는 반유대주의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독일과 유럽의 모든 사람들은 집에 온 듯 안전하게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폴란드 국무총리도 연설에서 망각에 대한 경고를 전했다. 산증인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기억을 보존하고 육성할 책임이 그만큼 커진다고 했다. 폴란드 국가는 나치 독일의 범죄에 대한 기억을 유지할 의무를 지겠다고 했다. "기억이 떠난다면 여기서 고통받은 사람들을 두 번 해하는 것일 겁니다." 


주 독일 유대인 의회는 앞서 메르켈의 아우슈비츠 방문에 대해 중요하고 의미가 깊다는 발언을 했었다. 의회장 슈스터 씨는 이 방문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독일 시나고그에 가해진 테러 사건 두 달 후인 지금, 그리고 사회적으로 극우 움직임이 관찰되는 이 시점에 "매우 중요한 신호"라고 표현했다. 


그녀의 방문으로 인해 메르켈은 나치 범죄에 대한 "아주 분명한 자세"를 보이며, 그것은 그녀의 임기 중 항상 강조한 바와 일치한다고 슈스터 씨는 덧붙였다. 그래서 65세의 그녀가 총리 임명 후 14년이 지난 지금에야 아우슈비츠를 방문하는 사실에 비판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 수용소를 방문하는 독일 수장 중 그녀는 세 번째에 불과하다. 그녀 전에 슈미트 총리와(사민당) 콜 총리가(기민당) 유일했다.


생존자 투르스키 씨도 총리의 방문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녀가 그곳으로 간 것 자체가 그에게는 의미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제스처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브란트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추념비에서 참회의 무릎을 꿇은 사건) 무릎 끓었던 제스처가 그 어떤 연설보다 값졌죠." 93세인 투르스키 씨는 1944년 아우슈비츠로 이동됐다. 그는 기자로 일했고 바르샤바에 위치한 폴란드 유대인 역사박물관의 창립자 중 하나다. "메르켈은 독일 과거에 대해서 놀라운 용기로 발언한 적이 많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래서 그녀가 아우슈비츠에서 정확히 어떤 말을 할지는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전날 독일 연방과 주는 아우슈비츠 추모관의 보존에 최대 6천만 유로를 기여하기로 결정했다 (현 시각 약 80억 원). 


2020년 1월 27일 나치 산하의 최대 규모였고 독일이 점령했던 폴란드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의 75주년이 다가온다. 그곳에서 약 백십만 명의 사람이 죽임을 당했으며 대부분 유대인이었다.


어떻게 인간과 인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의문을 다시금 품게 되는 역사인 것 같다. 그렇게 자주 들어오고 논해본 역사인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런 의문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이성적, 분석적 이해를 했을 때 딸려오는 감성은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공감력의 발현이다. 당연히 사람은 사람인지라 감성을 통해 좀 더 깊은 이해에 접근하게 될 때가 많다. 내가 박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당혹스러운 감정이 동력으로 탈바꿈했던 경우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교육과 공인이 지향하는 접근에서 감성이 포문을 열면 안 된다. 감성은 관성이다. 이해하기 전에 고개를 드는 감성은 무엇을 기반으로 감성적인 것인가? 우리가 아는 옛 것들 혹은, 적용되기엔 사뭇 너무 다른 경험들과 유사하다고 착각하는 순간적 결과로 생기는 헛감성일 위험이 다분하다.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옛날에 나를 해코지한 사람과 코가 닮았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비호감을 품는 셈이다. 무의식적이고 어쩔 수 없는 반사 작용이자만 적어도 공적 책임을 지기로 선언한 교사이거나 정치적 공인이라면 인식적 과오를 의식하고 경계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이것이 독일에서 전 교과과정을 겪으며, 동시에 주독 한인 교포사회의 구세대 및 신세대를 한가운데서 접하면서 동시에 부분적으로나마 그 자체인 나의 철학이다. 독일의 예시가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바람을 자극하는 건 맞다. 하지만 적어도 독일의 예시를 개입시킨 전후 책임 문화의 비교에서는 감정적 접근의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래도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비추천한다. 정치적 동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누구에게 제일 득이 되는지 따져보는 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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