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의 이야기
(정보: 제 얘기는 아닙니다)
지금은 덜하고 오히려 국뽕의 바람이 불어오지만, 얼마 전만 해도 복지 포퓰리즘으로 인해 서북 유럽에 대한 동경 내지 비교의식이 거의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정치적 목적으로 모든 진영에서 목소리를 모으던 터라 좋은 면만 열심히 조명했으리라. 그 조명이 너무 밝아서 사진을 과도하게 보정한 것처럼 실사에 가까운 모습은 거의 남지 않았다. 명암이 날아간 것이다. 독일에서 온 내가 독일에 대해 얘기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어찌나 의아했는지. 저게 어느 나라지? 좋은 나라네? 그런데 저게 어디 있다는 거야?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해는 된다. 분명히 나라마다 막중하고 시간을 다투는 과제들이 있으니까. 복지와 사회적 통념 등 삶에 실질적이고 동시에 과거의 여러 형식에서 진화하고 탈피하는 과정들은 당장의 변신이 아니라 기나긴 과정이니까. 그만큼 누군가는 바람잡이 역할을 자처해서 관심을 끌고 새로운 발상을 소개하며 생각을 열어주는 일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한국과 독일을 비교하는 행동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남녀평등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과는 다른 점들이 많겠지만 여기가 더 높다, 저기가 더 좋다 하는 식의 논쟁은 아주 소모적으로 보인다. 남녀평등이 표면적으로는 독일이 더 높다는 주장을 막을 이유는 없으나, 독일 여성이 보는 남녀평등은 어떤지를 물어보는 것이 훨씬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그들이 보는 남녀평등의 상태, 경험, 대응 등을 하나씩 귀 기울여 듣는다면 남의 나라에 대한 명암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나아가 국경을 넘어선 공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크나큰 제도와 비전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운동 영상을 연달아 보는 것보다 열 번의 정자세 스쿼트가 내 몸에 당장 도움이 되듯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삶 속의 어려움과 상황들을 조율하는 모습은 결국 비슷하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통이 해결의 열쇠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드러난다.
오늘 번역할 신문 기사는 그래서 독일에서 고액 연봉을 버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아래의 글에서 이어진다.
독일 경제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남편보다 아내의 수입이 더 높을 경우 남편도, 아내도 더 불행하다고 한다. 반면 남편이 가장이고 아내가 소액을 벌 경우에 남자의 만족도가 가장 크다고 한다. 설문에 응한 부부 (내지 커플) 중 1/4이 이런 경우라고 한다. 이 상황에 처한 여성들은 직업과 수입 만족도가 높지만 사생활은 타격을 입는 것으로 보인다.
베커 씨는 44세이며 국제 기업의 경영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54세이며 고용 목수이다. 그들의 세전 연봉 액수의 차이는 (2020년 기준으로) 3,7억 원 가량이다. 다음은 그녀의 소감이다.
저는 성공하려는 목적은 따로 없었어요. 가정도 평범했고 가족 중에서 대학은 처음으로 갔어요.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어서 이공계 전공을 졸업했고 박사까지 한 후, 연구직으로 살기에는 너무 답답할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기업에서의 커리어를 딱히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죠. 그저 뭔가 결정을 이끌고 뭔가를 바꾸고 싶다는 것밖에 모르겠더라고요. 그건 과학보다 기업이 제격이니까 결국 3대 컨설팅 회사 중 하나에 입사해서 엄청 많은 일을 하고 각국에 이사와 출장도 엄청 다니며, 전형적인 컨설턴트 생활을 했어요.
2008년에는 국제 기업의 경영 팀장으로 이직해서 여러 번 승진했어요. 평균적인 직업은 아니고, 그건 여자라서 더 그렇다는 사실은 저도 뭐 인정합니다. 남성들은 그 사실과 저의 고액 연봉을 조금 어려워하고, 주눅이 들어해요.
제 첫 남편은 대학에서 만났고 좋았지만, 제가 일을 우선시한 결과로 6년 후에 이혼했어요.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할 거예요. 저 같은 직업은 사생활을 기꺼이 일부분 바쳐야 하고, 남편이라면 이걸 받아들여야 해요.
9년 전에 지금의 둘째 남편을 체육 동아리에서 만났어요. 웃기지만 저는 동아리에서도 회장이에요. 남편은 다행히 불편해하지 않아요. 그는 목수이고 저보다 9살 많으며 아주 개성 있는 소형 공방에 고용되어 있어요. 우리 집의 모든 가구를 직접 만들었어요! 그의 직업은 제게 아주 가치 있지만 우리 간 연봉의 차이는 해가 갈수록 넓어져서, 현재는 10배 차이가 나요.
남편은 저에게 용돈을 받아요. 풀타임으로 일하지만 자율적이라서 집안일을 모두 관리하기에 좋고, 실제로 잘해서 요리를 포함한 모든 걸 저 대신 도맡아요. 가장 좋은 건, 제가 일을 많이 하는 것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괜찮아한다는 거예요. 제 전남편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의 직업은 연구자였다가 회계사로 전향했는데 제 연봉은 따라잡지 못했죠. 그는 그걸 무척 힘들어했어요. 아이도 가지고 싶어 해서 현재 새 아내와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제가 지향하는 삶의 목적과 달랐어요. 저는 커리어를 쌓는 김에 제대로 하자는 주의예요. 제 직업은 파트타임이 아예 불가능해요. 제 현 남편은 저의 성취지향적 성향을 처음부터 파악하고 지지했어요. 제가 더 좋은 오퍼를 받아서 외국으로 이사하자고 해도 그는 전적으로 제 편일 거예요.
남편은 아무래도 저의 돈을 생활비로 쓰죠. 계좌를 따로 쓰지 않아요. 남편은 혼자라면 살 수 없을 좋은 집에서 살며 멋진 휴가를 다녀요. 그것을 좋아하고 감사해하지만, 만약 삶의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해도 괜찮을 거예요. 이전에도 당연한 혜택이 아니었으니까요.
저희는 둘 다 과시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돈이 많은 티를 내지 않아요. 제가 검소한 출신이다 보니 그렇게 자란 거죠.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직업 상 참석해야 하는 행사들이 있는데, 그때는 한껏 힘을 주고 고급 음식을 먹으면서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눠야 해요. 그럴 때 제 전남편은 그저 "제 곁의 남자"로 등장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해서 아예 집에 혼자 남거나, 동행하되 행사의 끝까지 불편해했어요. 우리 사이에 많은 금이 가는 순간들이었죠.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런 행사들이 문제가 종종 되더라고요. 이 분야에서 의례 그렇듯이 자의식이 하늘을 뚫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그들은 경제상황이 좀 덜한 타인을 무시하는 행동에서 희열을 느껴요. 그래서 성공한 아내와 동행한 남편들은 자존감이 깎이죠. 그런 류의 행사에서 기분 좋게 놀다 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제 현 남편은 그게 돼요. 말도 잘하고 준수해요. 행사를 가면 여성들에 둘러싸이고 인기가 좋아요. 우리 간의 계급과 수입의 차이를 어찌나 대놓고 밝히는지, 아예 시비가 들어올 수가 없어요. 그는 다 알면서 행동하고 그걸 매력적으로 다뤄서 다들 마냥 그를 재미있어해요. 행사 초청이 들어오면 항상 제 남편을 보내겠다고 말해요. 직장에서도 제 남편의 화교력이 저보다 뛰어난 것을 알아요.
제가 다니는 기업은 남초라서 특히 고위직 중에 여성이 적어요. 그것과 무관하게 대부분의 여자들은 제 직업을 가지기 싫어할 거예요. 연봉과 상관없어요.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쉽게 벌리는 돈이 아니에요. 그래서 특히 자녀가 있거나 사생활을 중시하는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에요.
경영진에 더 많은 여성 인력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이거예요. 어쩌면 현명하고 똑똑한 여성은 이런 직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없을 거예요. 저희 같은 상황에서나 가능한 거죠. 둘 중 한 명이 양보해서 다른 한 명이 커리어에 집중하는 거니까요.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다른 방법은 없겠죠. 이전에 저와 비슷한 직업의 남성과 교제한 적이 있는데 정말 황소 두 마리가 씨름하는 셈이라서 맨날 싸웠어요.
사실 둘 중 누가 더 야망꾼이고 돈을 벌어오는지는 전혀 상관없잖아요. 하지만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서 여성이 더 많이 벌 경우 양심의 가책을 느껴요. 사회가 이걸 예정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쉬워요. 저는 안 그랬지만요. 제가 아는 전문직 여성 중 정말 멋지고 젊은데도 "난 너만큼 실력 있으니까 너만큼 벌 거야"라는 주장을 당당히 하는 사람이 너무 없어요.
제 연봉은 남성 동료들과 비슷해요. 이렇게 될 때까지 용맹하게 협상해야 했어요. 사내 네트워크를 통해서 협상 미팅을 철저히 준비해서 사전에 화력을 장전했죠.
여성들은 자신의 장점을 훨씬 더 인지해야 해요. "저는 이걸 할 줄 알고, 원하고, 할 것이고, 당당합니다"라고 말해야 해요. 연구자료에 의하면 여성들은 남편보다 많이 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는데, 그건 애석해요. 저희들도 연봉을 굳이 온 세상에 알리지 않지만 누가 봐도 제가 더 많이 버는 사실이 자명해요. 아마 여성들은 주변의 반응이 두려울 것이고, 이런 역할 분담이 아직 생소하기 때문에 튀기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의 경우는 말 안 해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 알더라고요. 제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아니까 오히려 존경을 받거나, 반대로 항상 시간이 부족해서 여가 활동에 참여하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 동정을 받아요.
저와 제 남편은 동등한 관계이고 연봉과 무관합니다. 큰 지출을 하고자 할 경우 양쪽 중 누구든 반대할 수 있어요. 휴가지도 함께 결정해요. 직업 관련된 결정을 할 때 서로의 동의를 구하려고 노력해요. 후에 역으로 남편이 하고자 원하는 일이 생겨서 제가 양보할 날도 오겠죠. 이사를 하거나 퇴사까지 할 만할 상황일 수 있겠죠. 그때가 오면 면밀히 토론해야 할 것이에요.
여러모로 나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흥미롭다. 무엇이 여성의 경영진 출현 부진을 설명하는지는 이미 너무 세상에 의견들이 많아서 굳이 나까지 숟가락을 얹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를 들어본 여성은 자신의 위치를 잘 인지하고 있고 여러 실패를 통해서 자신과 배우자에게 잘 맞는 위치를 찾았다. 어쩌면 실패를 허용하는 사회가 한 수라는 생각은 든다. 사회적 통념을 굳이 깨부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이 여러 실패를 겪어서 어느 정도 삶의 개인적 목적에 도달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매 순간의 최선의 선택을 사회적 통념에 재단해야 하는 추가적인 부담이 적다는 사실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혹여나 한국의 사회적 통념이나 문화양식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본인이 말하듯이 꽤나 예외적이다. 독일 여성들도 사회적 통념 아래 있다. 한국인의 시야에서 잘 보이지 않는, 그들의 입장이 또 있는 것이다. 이건 아주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라서, 알면 알수록 한국과 외국의 비교가 부질없음을 깨우치게 된다. 우리는 남의 고충을 모르고, 남은 우리의 고충을 모른다. 만인류의 법칙이다. 그래서 결국 존중이라는 가치가 수천 년이 흘러도 살아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