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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Aug 16. 2020

의미 없는 안정적인 직업

코로나로 부각되는 직업의 의미의 의미

안정성이 직업 진로를 추구하는 의미이냐, 의미를 쫒아야지 비로소 길이 생겨서 안정성이 생기느냐. 혹은 의미 있는 직업이란 허상에 불과하냐. 직업 선택의 맹점을 세 갈래로 나누면 이 정도가 되겠다.


한국의 정서에 맞춰본다면 안정성을 추구하는 길은 계약직과 공무원에 (대해서 자주 들리는 대화들에) 해당하고, 의미를 쫒는 노력은 요즘 사퇴라는 주제의 유행에서 보이고, 직업을 의미와 연결하려는 노력이 헛되다는 생각도 사실 맞는 구석이 있다. 완벽한 직업을 찾아다닌다면 만족하기 불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코로나 위기가 더해져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큰 변화를 맞닥뜨리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직업의 종류가 바뀔 수도 있고 모든 주요 산업도 변화를 꾀해야 할 수도 있기에, 안정적으로 보이던 길들도 돌연 불안정해 보일 수도 있다. 혹은 불안정하고 불만족스럽던 직업도 그저 있어줌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의지가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세상살이도, 직업 결정도 마음대로 안된다. 나도 이 부분에서는 항상 생각이 많은데 계획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의미도, 안정도 추구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상적인 결과를 현실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은 내가 개척하는 길이 곧 길이라는 뜻이고, 그 길 위에서 어떤 도전이 발생할지는 미리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사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직업적 변심 중에 한 에피소드를 그린다. 아래에 발췌, 번역한다.


코로나 위기는 특정 직업들의 엄청난 중요성 ("체제 유지"에 필수인 직업이라고 부른다)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다른 특정 직업들의 무의미함도 보여주었다. 미국의 인류학자 그래버는 이런 류의 직업을 "개소리 직업"이라고 부른다. (영어 원문으로는 사실 bullshit이라고 해서 별 의미 없는 직업을 있는 척 포장한다는 표현을 더 적나라하게 한다.) 동료들과 보내던 시간들이 재택근무로 없어지고 나니, 자신의 업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되어서 자신의 직업의 무의미함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지루함이 너무 커지거나 불행에 빠지게 된다. 부동산 투자 매니저로 일하는 34세 익명 여성과 인터뷰를 했다.


저는 고층빌딩에서 보편적인 매니저 직업을 수행하며 투자산업의 모든 클리쉐를 대변해요. 노트북을 항상 들여다보고 전화를 많이 하며 테이크아웃 커피를 달고 살고, 영어 미팅을 자주 하고 출장도 잦아요. 사업 파트너에게 얼굴 도장을 찍기 위해서 런던으로 비행한 적도 있어요.


저희 회사는 자산을 관리해요. 예를 들어 은퇴를 준비하는 의사들의 돈을 투자해요. 부동산을 구매하고 관리하죠. 3년 반 째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요. 의사분들의 노후를 보장한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저희 분야는 좀 변했어요. 부동산을 투자종목으로만 둔다면 수익이 적어요. 그래서 사고 사고, 팔고 팔아요. 팔 때마다 가격이 오르니 수익이 돼요. 그러면 말이 안 되는 액수가 모이죠. 돈 잘 벌었다! 하고 서로를 축하한 후, 새로 생긴 유동자금을 더 높은 가격으로 다른 곳에 재투자해요. 끝나지 않는 쳇바퀴예요.


제 아이를 급성 제왕절개로 낳은 후에 인생 처음으로 의미를 따져봤어요. 배가 한껏 불러서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의사가 저를 당장 병원으로 보냈어요. 수치가 나빴어요. 제왕절개 후 수일간 움직이지 못하면서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갔어요. 간호사분들이 저의 세상 전부였어요. 도움과, 위로와, 지식과, 가족과, 의지였어요. 저는 계속 죄송하다고 했어요. 저를 씻겨주고 음식을 주어서요. 그들은 항상 나에게 행동으로 답해줬어요. 이건 우리가 하는 일이니까 걱정 말아, 라고요. 저는 한없이 감사했고 너무 창피했어요. 적은 수당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이타적으로 일하는지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요. 그리고 저의 고소득 직업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를 깨달아서요.


그 체험이 제 뇌리를 떠나지 않아요. 출산 후 봉사활동을 시도했어요. 하지만 풀타임 직장과 자녀가 있으니 안되더라고요. 코로나 위기가 닥치자,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지탱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을 다시 보았어요. 제 얘기는 아닌 거예요. 아무리 의심이 들어도 직장을 포기하지는 못하겠어요. 수입의 안정성이 너무 편하고, 대학과 회사를 다닌 것이 무용지물이라는 걱정이 너무 커서요. 저는 34살이고 연간 9만 유로 (약 1억 3천 원) 이상을 벌어요. 그리고 굉장히 이 일을 잘해요. 저는 전문가이고 동료들과 고객, 파트너들에게 존중을 받아요. 저희 팀에게 저는 큰 자산이에요. 하지만 제 직업은 개소리 분야의 개소리 직업이에요. 


한국 독일 간의 차이를 말하자면, 직업적 의미 갈구의 형태는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독일 사람은 "꿈"이라는 단어를 직업에 잘 쓰지 않는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은 보편적이지만 꿈이 뭐냐고 물어보지는 않고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청년에게 꿈을 묻지도 않는다. 소망하는 직업을 꿈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사고방식은 큰 정서적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독일인이 한국인보다 직업에 대해서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현실은 한국인이 더 잘 판단한다. 될 확률은 어떨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장단점과 수익은 어떤지, 심지어 안정성과 예상 수익을 따라서 진로를 정하는 경향도 독일보다는 한국에서 보인다. 서점에서 팔리는 직업 관련 에세이도 한국에서 훨씬 수요가 높다. 이런 종합적인 차이는 아마도 양국의 교육과 사회의 거울이기도 할 것이다. 어디가 더 낫고 어디가 어디를 위한 모범이다, 라는 의미를 구하기보다는 각국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특수한 생태계로 인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국 독일 간의 공통점을 말하자면, 직업이라는 것을 아주 이상적으로도, 아주 현실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실제 그 직업의 종사자가 되면 현실적으로만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위에 묘사되신 분은 원래의 직업적 회의가 크지는 않고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었다가 출산과 코로나라는 대격변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른 것 같다. 이런 회의는 도덕적 양심과 관련 있을 것이다.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사회적 관점에서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의미를 갈구하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어쨌든 직업은 우리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여러 갈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직업이라는 것에 투자하는 노력과 자원도 크고 삶의 큰 부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업과 자신 사이의 괴리를 이질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만약 코로나로 인해 이런 생각들을 시작하게 되었다면 건설적인 계기로 삼아서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반드시 사퇴나 이직 같은 극단적 변화일 필요는 없고, 작은 변화를 생각해내고 실천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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